의외의 인맥 27년 절친 서수민PD, 조선희 작가가 말하는 '촌년들의 성공기'

조회수 2018. 11. 5. 14: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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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열정적으로 GO!
대학 때 함께 살기도 한 27년 절친
조선희 '한때 서툴고 촌티나는 나 싫었다'
서수민 '남들은 나에게 관심없다 눈치보지 말자'

'개그콘서트' '1박2일 시즌3' '프로듀사' 등을 성공시킨 스타 PD 서수민(45)과 '조선희 스타일'을 만들어낸 사진 작가 조선희(46). 치열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20년간 버틴 두 사람.


얼핏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27년 절친이다. 연세대 의생활학과 90학번 동창. 두 사람 다 전공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서수민 PD는 연극, 조선희 작가는 사진에 빠져 살았다.


가장 큰 공통점은 '촌년 정신'. 서수민 PD는 경북 포항 출신, 조선희 작가 고향은 경북 왜관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낸 책 제목이 '촌년들의 성공기'. 각자 컴플렉스와 상처를 극복해온 이야기를 담았다.


둘은 차이점도 있다. 각자 꿈의 직업을 갖기까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출처: (주)인플루엔셜 제공
1990년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에 입학하면서 만난 조선희 작가와 서수민 PD(오른쪽). 서울 아닌 지방에서 올라온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20년 넘게 사진업계와 방송계에서 버틴 비결로 '촌년정신'을 말했다. '길들여지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또 우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말한다.

◇ '안정 vs 질주' 너무 달랐다

두 사람은 대학 3년간 동거했다. 월세 12만원을 둘이 나눠내며 부엌, 화장실도 없는 방에 살았다. 겨울에는 연탄을 뗐다. 시쳇말로 '볼 꼴 못볼 꼴' 다 봤다.


① 조선희는 사진에 '올인'했다.

전공 공부에 필요한 재봉틀 살 돈으로 사진기를 샀다. 4년 내내 사진만 들고팠다. 동아리에서 독학으로 배웠다. 근로장학생으로 대학 잡지 사진기자가 됐다. 방학마다 월급 30만원을 받고 남대문 의류상가에서 카탈로그 사진도 찍어봤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창고에서 온종일 마네킹에 옷을 바꿔입혀가며 일했다. 웨딩 사진을 찍었다가 필름값도 못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내 스타일대로 신랑·신부 얼굴만 확 클로즈업해서 찍었지. 남들도 새로운 걸 좋아할 줄 알았지. 난 잘해준다고 한거였어요. 그렇게 싫어할 줄 몰랐어. 사진관 사장이 앨범을 집어던지면서 쫓아내더라고. 5만원은커녕 필름값도 안 주는 거야. 너무 억울해서 수민이 붙잡고 울었어."


② 순간의 열정보다 책임감을 믿는다.

대학졸업 후 1년 가까이 놀았다. 준비해놓은 게 없어 일반 기업엔 지원조차 못했다. "정말 사진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1996년 유명 사진작가인 김중만 작가에게 다짜고짜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다. 3년 동안 김중만 작가의 촬영 현장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사진을 배웠다.


"그렇게 하고 싶던 자리인데도 몇 달에 한 번씩 그만두려고 했어. 이러다 아무 것도 못하고 청춘이 썩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 그때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한 자리인데 무책임하게 나가진 말자' 의리로 3년을 버텼어." 

출처: MBC캡처
조선희가 어시스턴트 시절 찍은 배우 이정재 화보. 촬영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치열했기에 이 사진을 얻기 위해 12시간 넘게 촬영했다. 보통 어시스턴트는 작가를 도우는 역할이라 실제 화보나 인물 사진을 찍기 까지는 오래 걸린다. 조 작가는 "제가 해보고 싶다"라고 말해 기회를 얻었다.

③ 욕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조선희 작가의 말투는 독특하다. 목소리도 크다. 모델과 교감하는 방법은 무조건 반말하기. 처음봐도 무조건 '언니' '오빠' '00야' 라고 한다. "친근해서 좋다"와 "예의 없다"를 동시에 들었다. 자연히 호불호가 갈렸다.


약도 됐다.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시절 패션잡지 편집장이 지나가듯 물었다. "배우 이정재 화보 누가 잘 찍겠니?" "제가 잘 찍을 것 같습니다. 물론 경험은 없어요. 근데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제 처음이 돼주세요." 실제 화보를 찍게 됐다. 이후 조선희는 이병헌, 송혜교, 신민아 등 국내 유명인 사진을 대부분 찍어봤다.


"욕심은 전혀 나쁜 게 아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어? 그러니 마음을 비우라거나 욕심을 버리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④ 촬영에 들어가면 물불 안가렸다.

다양한 포즈를 요구했다. 배우 얼굴에 페인트칠을 한 적도 있다. 집요하게 찍다보니 '인물사진은 조선희가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패션 화보 사진에서도 주가를 올렸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진 작가가 됐다.


2005년 아들을 낳고 현장에 돌아오자 모든 장비가 디지털로 바뀌었다. 세상이 바뀐 기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익숙해지는데 1년 반이 걸렸다. 1인 기업으로 연매출 10억원을 냈다. 상업사진에만 머무르지도 않았다. 유명인 100명을 모아 재능기부 사진 프로젝트를 했다. 책도 5권이나 냈다.


질주하는 야생마같았지만 때로 대학 동기 서수민이 부러웠다. 취업, 결혼 등 모든 일을 잘 계획한 후 실행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출처: 조선희 작가 인스타그램
대학 1학년 시절 MT 가기 전 신촌 역 앞에서. 뒷줄 맨 왼쪽이 조선희, 왼쪽부터 다섯째가 서수민이다.

◇ 꽃이 피는 시기는 다르다

서수민 PD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컸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음악, 연극, 문학을 좋아하셨다. 그 영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연극반을 만들었다. 대학에서도 자연스레 연극 동아리에 들었다.


① 인생 전반부는 분산투자였다.

"선희처럼 연극 하나에만 몰두한 건 아니에요. 연극 안에서도 연출, 연기, 무대장치까지 다 배웠어요. 사실 하나에만 빠지면 다른 길을 못 찾을까봐 불안했던 거예요." 방송국에 들어가기 위해 신문방송학과를 이중전공했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은 거의 없었다. 대학 때, 급하게 5만원이 필요해 고향집에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 안 받겠다고 하십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과외는 기본이었다. 설문지 돌리기, 호프집 알바, 자판기 관리 아르바이트까지 다양했다. 공연장에서 하루종일 페인트 칠하고 3만~4만원을 받은 적도 있다.


대학교 3학년 방송국 PD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연극판에 있는 선배들이 너무 가난한거예요. 그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한 달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조직 생활이 좋았다.


③ 입사 당시 KBS에서 11년만에 뽑은 여자 예능 PD였다.

"시끌벅적하게 시작했죠. 그런데 개그콘서트를 맡기 전 15년 간은 그저 그런 PD였어요." 여자라는 걸 내세우기 싫어 항상 후드티셔츠만 입었다.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싸웠다. '소심하고, 부끄러움 잘타고, 상처 잘 받는' 서수민은 어느새 KBS 예능국의 '쌈닭'이 돼 있었다.


입봉작(처음 메인PD로 연출하는 프로그램)은 신인 발굴 프로그램 '개그사냥'이었다. 개그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기에 시작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 번도 1~3지망 프로그램에 배정되지 못했다. 이미 자리잡은 프로그램을 물려 받았다. 기획안을 써서 상을 받아도 연출은 안 시켜줬다. 이후 '스펀지2.0' '뮤직뱅크' 등 전문 분야 없이 여러 프로그램을 떠돌았다.


④ '대표작 하나 못 남긴 PD'.

미래가 보였다. "그때는 억울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위에서 봤을 때 '서수민은 있던 프로그램 유지는 할 수 있는데, 새로운 걸 맡기기에는 불안'했던 거예요."


친구 조선희가 부러웠다. "'선희가 업계에서 인정받을 동안 난 뭘했지?' '월급이라는 안정감에 취해 나를 발전시키지 않았던 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오직 하나에만 매달려 꿈을 이룬 선희에 비해 제가 너무 작아졌어요."

출처: KBS·서수민pd 트위터 캡처
입사 때부터 개그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던 서수민 PD는 2010년 15년만에 개그콘서트를 맡게 됐다. 담당 PD가 다른 방송사로 옮기고,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내부 분위기가 안좋을 때였다. 고민 끝에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극중 '용감한 녀석들'에서 개그맨 박성광이 서수민 PD 실명을 거론하며 디스(힙합 용어로 비난한다는 뜻)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안티팬이 생기고 가족들이 불편을 겪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

⑤ 갑자기 기회가 왔다.

2010년, 입사 15년째. 줄곧 맡고 싶었던 '개그콘서트'에 가라고 했다. "프로그램 내부는 엉망이었죠. 메인 PD가 이직했고, 작가와 개그맨들이 다 빠지고 있었어요. '관 뚜껑 박으러 가냐'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고민하다 가기로 했습니다."


서 PD 합류 이후 개그콘서트는 '대박'이 났다. 시청률 22%를 넘겼고, 유행어도 수없이 만들어냈다. 맥락없이 맡았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이 도움이 됐다. 입봉작 '개그사냥'에서 만난 신인 김준현, 김지민 등이 스타가 돼 있었고, '뮤직뱅크'에서 맺은 인맥으로 게스트 섭외를 할 수 있었다.


하나가 잘 되자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하게 됐다. 하향세였던 '1박2일'을 맡아 시청률 1위로 만들었다. 예능 PD였지만 드라마 '프로듀사' '마음의 소리'도 연출했다.


"수민이처럼 어느 곳에서든지 한 번 잘하면 두 번, 세 번 기회가 생겨요. 그 한 번을 만들 때까지 얼마나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지가 문제지.(조선희)"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컴플렉스와 상처를 두 사람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한때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 때문에 오해를 샀던 조선희 작가. 일할 때 '남들도 나와 같겠거니' 하는 마음에 '오버'한 게 화근이었다. 초반에는 "앞으로 조선희랑은 일 안한다"라고 말한 스태프도 있었다.


"예쁘게 말하는 법을 못 배워서 그런가봐요. 시끄럽고 서툴고 촌티나는 나. 30대까지는 이런 내가 싫었어요. 40대가 되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됐어요."


항상 자신감에 차 있어 보였던 조선희 작가의 고백은 의외였다. "이 세상에 아무리 성공을 해도 자기 자신이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 있으면 정신병자야.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고, 그걸 고치려고 하는 게 사람 아닌가요?"


'다른 사람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한 직장에서 20년 일한 서수민 PD의 깨달음이다. "둘째 낳고 '가족 오락관'에 배정됐어요. 30년 넘게 방송된 프로그램이었죠. 한 지인이 '서수민 너도 이제 다 됐구나' 해요. 한물 갔다는 뜻이었어요."


혼자 고민에 빠졌다. '이제 제작에서 빠지라는 말인가' '회사에서 나가라는 건가' 별 생각을 다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도 나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남들은 너무 바빠서 내가 애를 둘 낳았는지,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지 잘 몰라요. 프로그램이 재밌으면 '잘 하고 있나 보네'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 시선에서 자유로워져도 됩니다. 정말로."

출처: 조선희 작가 페이스북 , '박명수의 라디오쇼' 인스타그램
26년을 함께한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칭찬인지 험담인지 모를 말을 편하게 주고 받았다. "난 얘가 이렇게 잘될 줄 몰랐어요", "연극 동아리 구경갔는데 수민이는 아예 책을 읽드만"…. 긴 세월 함께 해온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였다. 최근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한 두 사람.

지금 알고 있는 걸 20~30대에도 알았다면 좋았을까?

(조선희) 조언을 듣는다고 전부 받아들이는 게 아니잖아요. 그 조언과 내 생각의 교집합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건 중요해요.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외로움, 결핍,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예요. 공감하는 부분에 줄을 그어요. 다른 사람도 그런 외로움이 있다는 동료의식이 생겨요. 예를 들어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본 젊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구나'하고 바로 느끼진 않겠지만 위로가 되는 거지.
(서수민) 미리 알면 좋았을 것 같아요. 삶에 대한 자세가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일을 풀어가고 사람 대하는 방식이 좀 더 여유로웠겠죠. 돌이켜 보면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좀 편하게 막 살아볼까 합니다.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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