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5천 주겠다' 그래도 사람 못구하는 신종직업은?

조회수 2018. 11. 5. 14: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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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탈리스트의 세계
입원환자만 전문적으로 돌보는 의사들
"돈? 중요하지 않아 미래 불안정해 도전 못해

“연봉 1억 5000만원, 주 40시간 근무, 교수실 제공‘


요즘 주요 병원 여기저기 걸려 있는 의사(전문의) 채용공고다. 전문의라도 초봉은 8000만원 정도라니 지원자가 줄을 설 것 같지만 사람을 못 뽑아 난리다. 신직업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ist·입원전담 전문의) 이야기다.


호스피탈리스트는 병원에서 진료·수술을 하지 않고 오직 병동에 상주하면서 입원환자만 돌보는 전문 의사다. 인턴·레지던트 생활을 끝내고 전문의를 딴 ‘막내 의사’들이 채용 대상이다. 한 병동(환자 45명 내외)당 호스피탈리스트 2~5명이 주 7일, 24시간 교대로 환자를 돌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국내 주요 병원 30개를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 기관으로 선정했다. 8개월이 지난 12일 현재 서울대병원 등 병원에서 채용한 의사는 15명. 그러나 30개 병원에서 뽑아야 할 호스피탈리스트 숫자는 100여명에 달한다. 병원들이 치열한 인재 쟁탈전 벌이고 있다.


전문의를 취득한 대형병원 1년차(전임의ㆍFellow)의 초봉은 약 8000만원. 그러나 병원들은 호스피탈리스트에겐 연봉 1억원~1억 5000만원 주겠다고 외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대형병원 관계자는 “수개월간 채용에 실패하다가 파격적으로 2억 5000만원의 연봉을 제시해 겨우 사람을 구했다"며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왜 돈을 많이 주는데 지원자가 없을까. 

육선정 jobsN 디자이너

◇ 의료사고 줄이고 환자 진료 질 높일 수 있다


호스피탈리스트가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제도 변화 때문이다. 서울대병원ㆍ아산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서는 담당 교수가 진료·수술·환자 회진을 병행한다. 문제는 환자가 많아 진료와 수술에 시간을 뺏기다 보니 담당 교수의 입원 환자 회진은 하루 1차례에 그친다는 점이다. 담당 교수가 먼저 일차적으로 진료의 방향을 결정하면 낮과 밤, 새벽 진료는 전공의(레지던트)의 몫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법을 바꿔 올 연말부터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연속근무 36시간 이내)으로 제한했다. 많은 전공의가 연속 36시간 근무를 하며 입원 환자를 보고 있다. 낮에 이어 야간근무하고 쪽잠을 자고 다음날 또 낮 근무를 하는 식이다.


그러나 오는 12월부터는 현실적으로 입원환자를 돌볼 인력이 부족해진다. 기존 전공의의 평균 주당 근무시간은 약 100시간. 올해 12월부터 주당 80시간으로 줄어들면 전공의당 4160시간(4년 기준)의 의료 공백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 내과학회 분석이다. 

출처: jobsN
서울대 병원 응급실 모습. 의사들은 중간중간 간식으로 배를 채워 가며 환자를 돌본다

반면 미국은 호스피탈리스트들이 입원 환자를 전담한다. 전체 의사의 5%(4만4000명)가 24시간 환자를 밀착 관리한다. 정부 관계자는 “전공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면 야간과 주말에 병원은 의사가 없는 ‘무의촌’으로 바뀔 수 있다. 미국 방식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과학회 강현재 이사(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통상 입원환자의 70%는 전공의가 돌보고 있다.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진료와 수술일정으로 바쁜 담당 교수들이 야간 입원 환자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내과의 경우 담당 교수는 100여명, 전임의 60여명, 전공의는 100여명이 일한다. B대형병원 2년차 전임의는 “의사 수가 많아 보여도 의사당 진료를 맡는 환자가 최소 40~50명에 이르기 때문에 일일이 입원 병동을 돌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자료를 보면, 국내 내과 입원 환자 수는 2011년 860만명에서 2014년 912만명으로 늘었다. 의사 1인당 입원환자 수(1주일 1일 휴식·313일 근무시)는 2011년 16.24명에서 2014년 19.06명으로 덩달아 증가했다.


호스피탈리스트는 대면 진료의 최전선에 있다. 병동에서 입원한 환자의 진료와 시술, 처방을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진료 지연과 불필요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00가 아프다’는 환자의 요구에 의사가 즉각 달려올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한 병동당 5명의 호스피탈리스트가 그룹을 짜서 2주는 주간근무, 1주 야간근무, 2주 휴무 스케줄로 돌아가며 환자를 진료한다.


강 이사는 “야간에 일하더라도 정해진 근무를 하고 2주씩 쉬는 것이기 때문에 근무 조건이 나쁘지 않다”며 “미국 병원들은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으로 환자 의료사고와 사망률을 줄였다”고 말했다.  

출처: 내과학회·플리커 캡처
호스피탈리스트 채용공고

◇ “사실상 레지던트 5년차, 평생 반복할 수 없다


그러나 호스피탈리스트를 바라보는 막내 의사들의 시각은 차갑다. 얼마 전 전문의 자격증을 딴 김모(31)씨는 “청소부 아줌마 같은 잡일에 도전할 생각이 없다”며 “병원에서 이전처럼 전공의를 부려 먹을 수 없으니 호스피탈리스트란 직군을 뽑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턴ㆍ레지던트 생활 4년간 입원 병동을 돌며 밤낮없이 주말까지 일했다고 했다. 그런데 호스피탈리스트가 되면 영원히 ‘레지던트 5년차’ 생활을 반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전문의를 딴 의사들은 자기 전문성을 쌓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외과 의사는 수술 실력을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입원 환자만 평생 돌보는 것은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전문의 자격증을 딴 막내 의사들은 큰 대학병원의 인기 많은 과에서 2년 전임의를 거쳐 조교수, 종신이 보장되는 정교수 승진 과정을 밟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제 갓 생겨난 신생직군인 호스피탈리스트는 아무래도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의사는 “호스피탈리스트로 입사해서는 원장, 부원장같은 병원 경영진을 꿈꾸며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직에서 자리 잡기 어렵고 동료와 관계가 모호해 월급만 받고 퇴근하는 ‘알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대부분 병원들은 1~3년 채용을 보장하는 연봉 계약직으로 호스피탈리스트를 뽑고 있다. 새롭게 도입한 직업인만큼 효과를 알 수 없어 섣불리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내과학회 관계자는 “종신을 보장받는 교수를 제외한 병원 의사들은 사실상 연봉 계약직으로 일하기 때문에 근무 처우에 큰 차이가 없다”며 “늘어난 입원환자 전문의들로 효과가 입증되면 종신 근무를 보장받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조선DB

◇ 막내 의사에게 ‘진료 교수’란 직함주고 당근책


정부도 시범사업에 참여한 각 병원에 ‘당근’을 제공하고 있다. 호스피탈리스트를 뽑는 병원 병동의 입원 환자 한명 당 1 만~2만9940원을 준다. 한 병동당 필요한 호스피탈리스트 수를 채우면 병동을 채운 환자만큼 돈으로 계산해 보상해주겠다는 것이다.


추가 수입이 생긴 병원들은 호스피탈리스트의 연봉을 올리면서 ‘진료 교수’란 직함을 주고 교수실까지 제공한다. 전문의를 따고 병원에 전임의로 입사히면 ‘임상 강사’란 직함을 받는다. 이에 비해 파격적인 조치다. 근무시간은 주 40시간 이내로 설정하거나, 아예 ‘야간당직을 안 시키

겠다’고 홍보한다.


대한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호스피탈리스트는 치료 계획을 혼자 수립하는 독립적인 의료 인력인 만큼 비전이 있다”며 “다만 의사란 직업은 안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정부와 병원이 더 성의를 보이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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