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나온 토종 한국인 구글 본사 발탁

조회수 2020. 9. 24. 14: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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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구글 하드웨어 오퍼레이션팀의 유일한 한국인
이화여대 졸업한 토종
동료와 대화 일일이 사전으로 기록해 공부

처음엔 스쳐 지날뻔 했다. 모델인 줄 알았으니까. 1m75의 키에 작은 얼굴, 딱 붙는 청바지에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린 모습이 안꾸민 듯 세련돼 보였다.

 

모델 화보 촬영지로 인기가 높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 이곳의 화사한 날씨만큼이나 시원한 미소로 맞아준 박보영씨(29)는 구글 하드웨어 오퍼레이션 팀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다. 넥서스 폰, 크롬캐스트, 크롬북 등 하드웨어 런칭을 담당하고 있다. 


박씨는 이화여대 재학 시절 1년의 해외 교환학생을 제외하곤 해외 생활을 해보지 않은 ‘토종’ 한국인이다. 2011년 구글 코리아에 입사한 뒤 3년도 안돼 본사로 발탁됐다.

구글 하드웨어 오퍼레이션 팀의 박보영씨/jobsN

초반엔 험난했다. 회의가 거듭되는 동안 모자라는 영어를 따라잡으려 남들보다 두 세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가끔은 의사소통 방식이 달라 마음 상하기도 했다. 구글 코리아 근무 시절에도 해외 팀원들과 영어로 회의를 했었지만, 본사 근무는 여러 의미에서 ‘속도’가 달랐다. 

한국에선 ‘열심히’ ‘묵묵히’ 이런 문화들이 있잖아요. 티 내지 않고 겸손하게 일에 매진하다보면, 누군가 그 모습을 알아주기도 하고요. 근데 여긴 아니더라고요. ‘나의 생각과 주관’을 굉장히 강조해야 해요. 하나의 토픽에 대해서 나의 의견은 무엇인지, 왜 그런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지, 이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제가 속으로 다른 어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주지 않거든요. 처음엔 혼란스러웠어요. 이젠 미팅 중에 적절히 제 의견을 공유하며 조화롭게 일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요.

그는 이제 구글의 대세녀다. 일 많이 하는 걸로 알려진 구글 내에서도 일 잘하기로 소문났다. 얼마 전 구글 전세계 직원을 대상으로 분기별 16명을 선발하는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에 뽑혀 한달 간 아프리카 가나를 다녀왔다. 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구하라, 얻으리라

어떻게 본사로 오게 됐나요? 

회사 생활한 지 2년 반 정도 됐을 때 ‘다음’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구글에선 사내 간 부서이동과 커리어 개발에 대한 문제를 매니저와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 고민을 매니저와 팀의 디렉터에게 오픈해서 이야기했어요. 6개월 정도 고민 끝에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보기로 결심했어요. 이후 사내 포털을 통해 본사에 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 지 알아봤고, 3번의 인터뷰를 통해 실리콘 밸리로 오게 됐어요.

본사 자리 경쟁이 심했을 것 같은데.

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운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본인의 노력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시간을 충분히 갖고 고민하며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한 후에, 이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했던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이전에 맡았던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들과 알게 되고 일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신뢰를 쌓아갔던 것도 도움이 되었구요.

도움받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사내에 ‘커리어 개발’ 프로그램이 있어요. 매니저와 5년, 10년 뒤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현재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그 로드맵에서 현재의 매니저는 어떤 도움을 줄수 있는지 계획을 짜고 논의하는 자리에요.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좀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남들과의 경쟁보다는 자신과의 경쟁을 격려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와보니 어떻던가요.

한국에선 한두달 정도 걸렸던 일들이 여기서는 빠르면 일주일 안에 이뤄지니까 더 많이, 더 빨리 일해야 하는 압박이 있어요. 여러 의사결정자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니 프로젝트 진행의 속도감이 대단했어요. 가장 당황했던 건 대화법의 차이였어요. 회의 때마다 끼어들 틈 없이 대화가 진행돼요. 처음엔 영어도 잘 안되고, 한국에서 겸손의 미덕을 배우고 자란지라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집중했어요.

혼자 듣기만 하면 안될 것 같은데요.

사실 끊임없이 손들고 의견을 이야기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미팅중 다양한 생각이 드는데, 여기저기서 치고 들어가니 낄 틈이 없는거죠. 그러다 정신차려보면 이미 의사결정이 나 있고, 그 프로젝트를 리드할 사람이 정해져있더라구요. 제 스타일을 100% 바꿔야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보다는 조금씩 제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는 저만의 방식을 쓰고 있어요.

동료는 선생님

영어 문제는 어떻게 극복해 나갔나요?

영어 공부용 구글 닥스(docs)를 만들어서 미팅할 때 창을 열어놓고 회의 중 나온 유려한 문장이나, 친구들끼리 대화할 때 쓰는 슬랭 등 제가 나중에 쓸만한 표현을 모두 기록 했어요. 어휘를 ‘vocabulary’라고 하잖아요. 그걸 활용해서 제 이름 보영의 ‘보'를 넣어서 ‘bo-cabulary’라고 문서 이름을 지었어요. 처음엔 영어 못하는게 자랑도 아니고 민망해서, 굳이 회사 동료들에게 이야기 안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이야기 했더니 오히려 친구들이 재밌어 하더라구요. 오리처럼 물 밑에서 헤엄치고 있던 저의 노력을 좋게 봐준거죠.

처음 듣는 표현이 많았나요.

한국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 같은 표현이 있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듯, 미국에서도 특정 표현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표현이 나올 때마다 제가 질문하면 동료들이 재미있어하며 설명을 해줬어요. 이제 팀 문화가 돼서, 특이한 표현이 나오면 ‘이거 bocab에 올리자’고 동료들이 얘기해요.

 예를 들면 어떤 특이한 표현인가요.

단어 대신 숙어를 이용하거나, 문장을 시처럼 현란하게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whipping the dead horse’ 라는 표현이 있는데,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죽은 말을 계속 때린다’라는 의미에요. 이 표현이 미팅에서 사용될때는 ‘특정 토픽에 대해서 이미 이야기할대로 했으니, 더 이상 이야기해봤자 달라질게 없다"라는 의미가 되더라구요. 친구들이 이런 표현 설명을 잘해줘요. 가끔 제 문서에 와서 스펠링도 고쳐주고요.

다양한 인종이 모인 실리콘벨리의 문화는 어떤까요.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을 때 거기에 바로 예스, 노, 좋아, 싫어 등의 단답형 대답을 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깊은 질문이 오고가는 문화가 신선해요. 사회적 잣대로 바로 평가를 내리는게 아니라 본질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는 태도가 창의적인 문화의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큰 꿈을 가지고 온 친구들이 많고, 이런 사람이 모여 기존 관습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어떤 일이건 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요. ‘불가능’이라는 의미의 역치를 높이는 거죠. 구글에선 “Never say ‘never’”라는 말을 자주 해요.

우선 시도하라

2년 남짓이지만 구글 본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다면요?

구글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지난 5월에 3주동안 아프리카 가나에서 다녀왔어요. 분기별로 전세계 16명의 구글러를 뽑아 개발도상국에서 NGO단체 혹은 그 지역의 중소기업을 돕는 짧은 컨설팅 프로젝트에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IT과목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한국, 이스라엘, 멕시코, 아르헨티나, 아이티, 미국, 중국 등 12개 국가 국적을 지닌 16명이 모였죠.
구글에서 재능기부 봉사를 하는 모습/jobsN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요?

각자의 재능(skill)에 맞게 프로젝트를 고를 수 있는데, 저는 하루에 3000원 미만의 수익으로 생활을 하는 아프리카의 빈곤층 소작농들의 농업 효율성을 높이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각종 정보 (날씨, 재배 팁, 농작물의 시장 가격 등)를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와 함께 했어요. 소작농들은 농작물의 시장 가격을 전혀 모르고, 그저 현금이 빨리 필요하기 때문에 말도 안되게 싼 가격에 작물을 파는 경우가 많아요. 소작농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적절한 시기에 조달할 수 있는 모델을 제안하고, 가치 산정 방법도 알려줬어요. 제때 필요한 비료를 사고, 더 많은 작물을 재배하도록 안내도 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게 있다면.

“세상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음식을 남기면 부모님께서 종종 아프리카의 배고픈 아이들을 생각해보라하셨었는데, 사실 가슴에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좋은 걸 볼 때마다 제가 가나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소통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요. 제가 이렇게 매일 먹을 음식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어떤 이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요?

잘 놓아진 도로, 빌딩, 상하수도 시스템 등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어요. 농장에서 한 여성이 아이 손톱을 이로 잘라 주는 걸 보면서, 제가 누리고 있는 작은 물건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신기한 건, 그렇게 배고픈 이들인데도 굉장히 밝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하나 없다는 거에요. 샌프란시스코엔 그들과 비교하면 많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들이 있는데 말이죠. 사람이 행복한 데 필요한 게 뭘까? 같은 철학적 생각이 많아졌어요.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우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회사에서 제품을 런칭할때 ‘course-correct’ 혹은 ‘fast-follow’ 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일단 런치하고 부족한 부분을 재빨리 고치거나 방향성을 조금씩 바꾼다는 의미에요. 아직 해외 생활을 해보지 않은 분이라면 생각과 현실이 다를 가능성이 커요. 그 차이가 긍정적인 방향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도 혼자 고민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은 편인데, 일단 시작해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 소신 중에 하나가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뭐든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는 거에요. 다른 사람이 저와 똑같은 상황을 경험 한다고 해도 전혀 다른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선 시도해 보세요.

미국 마운틴뷰=조선일보 최보윤 특파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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