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사막을 달리는 남자

조회수 2020. 9. 23. 13: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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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고비·아타카마·남극 2번씩 완주
대우건설 퇴사 후 달리기 시작
세계 오지레이스 그랜드슬램 2회
산·들·사막·남극 가리지 않고 달려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45)씨. 서른 살에 사하라 사막을 처음 달렸다. 완주 희열에 한 번 더 돌았다. 이후 고비 사막, 아타카마 사막, 남극도 두 번씩 돌았다.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한 번씩 완주하면 오지레이서 그랜드슬램이라 부른다. 그랜드슬램 2회 완주자는 유씨가 세계 최초다.

유씨는 대우건설을 그만두고 레이서가 됐다. 서른 살의 청년은 왜 달리기 시작했을까. 레이스 같은 그의 인생스토리를 들어봤다.

사막레이스에 출전한 유지성씨/유지성씨 제공

건축설계사, 인생설계를 바꾸다

오지레이스가 뭔가요.

어디든 달리는 거예요. 살기 힘든 환경, 극지방, 정글에서 마라톤을 하는거죠. '트레일러닝'이라고도 해요.

원래 하던 일은요?

건축설계를 10년 정도 했어요. 건원건축, CHS(미국 회사), 대우건설 설계팀에서 일했죠.

레이서가 된 계기는요.

1998년 대우건설에 있을 때 아프리카 리비아로 파견 명령을 받았어요. 어릴 적부터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여행하는 게 로망이어서 신났죠. 틈날 때마다 사막에서 놀았어요. 어느 날 숙소에서 TV를 보는데 사람들이 사막을 막 뛰어다니더라구요. 미친 사람들 같았죠. 그런데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와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안뛰면 안되겠더라구요. 2000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모로코 사하라사막 레이스에 참가신청을 냈어요.
국제대회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유지성씨/유지성씨 제공

달리려고 20㎏ 감량하다

원래 운동을 잘했나요.

운동을 싫어했어요. 회사 그만둘 때 몸무게가 90㎏였어요. 달리기 배우려고 마라톤 동호회에 찾아가 봤는데요. 뚱뚱한 놈이 기록도 없는데 어떻게 사하라사막을 가냐며 비웃더군요.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대회를 9개월 남기고 체계적으로 살을 빼며 혼자 준비했어요.

어떻게요?

열심히 뛰면서, 대회 주최측에 도와달라고 메일을 보냈어요. 체력관리방법은 물론이고 신발·배낭·장비브랜드 정보를 받았죠. 한국에 없는 물건은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사왔어요.
운동 전의 모습/유지성씨 제공

선구자의 험난한 인생 레이스, 자유의 영역을 넓히다

첫 레이스가 궁금해요.

사하라 사막을 완주했어요. 힘들었죠.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 발 껍질이 다 벗겨졌거든요. 사람 속살이 그렇게 빨간 지 처음 알았어요. 마지막 날엔 진통제도 효과가 없었어요. 눈물 나고 배고프고 서러웠어요.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겠어요.

아파서 눈물이 흐르는데 입에서 웃음이 나는겁니다. 이상하죠?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자유가 이런것이구나'.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 희열에 완주했죠.

어떤 매력일까요?

오지레이스도 마라톤처럼 순위를 매겨요. 하지만 꼴찌는 물론 1등도 순위를 신경쓰지 않아요. 1등보다 꼴찌를 더 환호해줘요.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기에 공감하는거죠. 완주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거고, 이게 레이스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뿌듯한 경험을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웠겠어요.

준비할 때 부터 매일 홈페이지에 일기를 썼어요. 모로코 대회를 마치고 많은 분들이 자기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더군요. 기뻤어요. 평범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거죠. 다음해 모로코 대회엔 24명이 함께 갔어요.

사람 모아 다니는 게 쉽지 않은데요.

제가 대표로 장비와 식량을 일본에서 주문하고 준비했는데, 나중에 그게 문제가 되더라구요. 중간에서 돈을 떼먹었다는 겁니다. 환율차이로 생긴 잔돈 500원까지 물고 늘어지더라고요. 제가 방심한거죠. 끝까지 몰아붙이며 마녀사냥을 하는데, 죽을 생각을 하며 잠실대교로 간 적도 있어요.
각종 세계 대회에 참가한 유지성씨/유지성씨 제공

인생도, 레이스도 온전히 혼자 달리는 것

어떻게 다시 기운을 냈나요?

레이스죠. 모로코 대회에서 만난 미국의 ‘racing the planet’ 회사 대표로부터 2003년에 연락이 왔어요. 함께 대회를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고비사막 레이스, 아타카마사막 레이스, 남극 레이스를 기획했어요. 이중 ‘고비사막 레이스’를 알리고 싶어 KBS ‘도전지구탐험대’에 연락했어요. 한국에서 생소한 사막레이스를 흥미롭게 보더라구요. 그렇게 2003년에 방송까지 타게 됐습니다.

이후 오지레이스를 이용해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했다. ‘RUNXRUN’ 대표, KTRA 코리아 트레일러닝 협회장, Asia Trail Master, Racing The Planet 멤버 및 한국 대표, 국제트레일러닝협회(ITRA, International Trail Running Association) 한국 대표, 아웃도어 레저 칼럼니스트…이제 수많은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 

국내 대회도 기획하셨네요.

‘Korea 50K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를 작년에 시작했어요. 올해 두 번째 대회가 열렸구요. 장소는 경기도 동두천이에요.

많은 분들이 참가하나요?

네. 올해 830명이 함께 달렸어요. 그중 300명이 외국인에요. 세계 랭킹 상위권 선수 10명을 포함해서요. 지자체의 도움을 받고, 아웃도어 브랜드의 지원을 받아 성공적으로 열고 있어요.
KBS2 도전 지구탐험대 출연 모습 / 유지성씨 제공

많은 사람이 오지레이스의 매력을 알게 되면 좋겠어요.

전문가들은 정보를 끌어 안고 아마추어에게 알려주지 않아요. 자기들만 ‘프로’란 거죠. 전 아마추어를 빠르게 흡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같은 사람만 하는 거야'라고 우쭐대기 싫어요. 그래서 누가 찾아오면 최대한 알려 주려고 노력해요. ‘일단 20㎞만 뛰어봐’라고 이끌어주면, 스스로 본인의 한계를 깨닫고 노력해요. 그 다음에 ‘50㎞를 뛰어봐’라고 해요. 그렇게 조금씩 ‘프로’가 되는 거죠.
동두천 KOREA 50K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 2016/유지성씨 제공

평소 훈련은 어떻게 시켜 주세요.

크고 작은 레이스모임이 많아요. 서울에서 주말마다 모여 산을 뛰어 오르내립니다. 제주도와 지리산 까지 갈 경우도 있구요.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씨/jobsN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지세요. 한국인들은 혼자가 되면 불안해 하는데, 각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트레일러닝을 추천합니다.

jobsN 최슬기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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