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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지식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신간 <열한 계단> 펴낸 '지대넓얕' 채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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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작성일자2016.12.01. | 14,03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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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인기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진행자로, 기존에 없던 '독특한 지식인'의 상을 만들어낸 작가 채사장. 학자나 전문가의 어려운 언어가 아닌,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그의 인문학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정리하고, 잘 말하고, 잘 쓸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정작 개인적 이야기는 잘 꺼내오지는 않았던 그가 이제 처음으로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

아프고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1년 만에 신간을 냈다. '열한 계단', 제목이 독특하다. 형식도 독특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열한 개의 고전을 나의 성장기와 연결시켰다. 그래서 '인문학적 수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맞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나 ‘시민의 교양’과는 색깔이 많이 다른 데다, 기존에 나왔던 어떤 에세이, 어떤 인문학 책과도 다른 독특한 지점이 있다. 이런 책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런 형식의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실제로 내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의 현실적인 경험 속에는 《열한 계단》 속의 고전을 통해 내가 품은 질문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엮여 있다. 경험과 인문학이 동시에 내 삶을 하나의 방향으로 밀어냈다.

앞서 출간했던 책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배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이제는 천천히 내 이야기를 꺼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인문학이 삶에 미치는 영향의 실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에서 내게 강한 영향을 미쳤던 고전들의 내용이 포함되는 건 필연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불편함"이라는 핵심 메시지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묻고 싶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었는지. 평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편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아프고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기까지 갈등은 없었나.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집필 과정 내내 고민했다. 하지만, 너무 감정적이거나 감상적으로 기우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경계였을 뿐, 아픔을 너무 많이 드러낼까 봐 경계했던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삶의 과정에서 아픔을 경험하고 이를 인내한다. 나 혼자 더 많이 고생하고 고민했던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담담하게 서술할 수 있었다.
마음이 쓰였던 건 작고 초라한 살림이 아니라, 밤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굽은 등이었다. 그 오랜 기도가 만들어내는 고요함 가운데 어머니의 흐느낌이 시작되면 나는 화가 났다.
-《열한 계단》 中

불편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부제가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이다. 요약하면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시켜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며 성장한 인간의 이야기더라.

고전의 지식과 저자의 경험이 정반합(正反合)으로 연결되는 걸 보면서, 헤겔의 변증법이 이렇게 쉽고 명쾌한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웃음) 평소에도 어떤 문제나 주제의식과 마주쳤을 때 정반합의 사유를 하는 편인가.

기존에 출간된 책도 그렇고 이번 <열한 계단>도 그렇고 중간부터 읽기는 어렵다. 각 부분이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일관된 방향을 가지고 종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신경 쓰는 이유는 책이라는 형식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서다. 그 어떤 매체도 책이 담아내는 정보의 농도나 연속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 다른 매체가 아니라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책이라는 형식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책 고유의 특성을 살려서 독자에게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거다.

책을 쓰면서 지식들의 연결과 연속성을 고민하는 거지, 평소 현실에서 따로 변증법적으로 문제를 고민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는 질문이 자라났다. 정말 믿음만 있으면 모든 죄는 용서받는가. 우리는 그렇게 구원되는가. 그렇다고 스스로 대답하면 할수록, 마음속에서는 타자로부터의 구원에서 오는 초라함이 뿌리를 내려갔다.
-《열한 계단》 中

-왜 ‘불편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논지에는 충분히 설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책이 휴식이고 재미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까지 불편해지기는 싫다는 독자가 있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

‘불편한 책’은 상징이다. 사실은 ‘불편한 세계’나 ‘불편한 현실’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독서가 휴식이고 위안인 사람이라면 불편한 책을 피해도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와 현실도 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대면하게 되는 세계의 진실은 피할 수 없다. 낯설고 불편한 세계를 만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불편함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데 있어서 존재론적인 필연인지 모른다. 우리는 매순간 불편함을 극복하면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책은, 실제 세계에 맞서게 될 인간을 사전에 단련시켜준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열한 계단》 中

-하나의 책을 삶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 매 계단마다 아주 매끄럽다. 자기가 읽은 책을 어떻게 삶으로 연결시키는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걸 가능케 하는 독서법이랄까, 자기만의 책 읽는 비법이 있나. 읽기 전에 이러이러한 생각을 한다든지…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질문을 바꿔, 영화를 보는 비법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뭔가 이상할 것이다. 현대인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잘 골라내고 열정적으로 잘 보며, 세련되게 평가한다. 왜냐하면 재미있기 때문이다.

책도 의무가 아니라 재미로 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중해서 읽고 자신의 삶에 연결시킬 것이다. 책을 신성시하거나 독서에 권위를 부여하지 말고 재미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읽히고, 삶을 뒤흔드는 책이 있다. 안 읽히는 책이라면 부채의식을 갖고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쉽게 스쳐 보내는 태도도 필요하다.

넘어진 자리에서 울지 않고 일어나는 사람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는 낄낄대며 읽었는데, 재수 시절부터 대학 시절 그리고 군대 시절까지 쭉 읽다 보면 마치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열한 개의 에피소드 중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안 병장’ 이야기가 나오는 에피소드다.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면서 안 병장과 나누었던 이상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 감정들이 속속 떠올랐다. 안 병장이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이상주의자로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집필하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이상적인 인간이 있다. 그런 이는 보통 숨겨져 있다. 극한의 상황이 찾아왔을 때, 타인의 시선 때문에 허세를 부리던 사람들마저도 지쳤을 때, 누가 진짜 이상적인 인간이었는지가 밝혀진다. 그는 상황을 핑계 삼지 않고, 부조리에 불평하지 않으며, 자기 삶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간. 자기 삶의 입법자. 안 병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열한 계단》 中

-그럼 그것과는 별개로, 특별히 좋아하는 계단은 몇 번째인가? 말하자면, 현재의 채사장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삶의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에피소드는 열 번째와 열한 번째 계단이다. 우파니샤드와 초월에 대한 내용인데, 마음에 쏙 든다. 낯설어하실 독자들이 많을 거라는 걱정도 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실제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출간 후에 이에 대해서 많은 분과 이야기하게 될 것이 기대된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학문이 아니라 당신이다. (…) 당신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섬세하게 숙고함으로써 판단하게 된 스스로의 전망을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현시대가 구획지어놓은 과학과 학문이라는 영역 안에 머물며 거기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신기한 것들을 만나고 놀라워하며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합리주의라는 근현대의 기준 안에 당신의 드넓은 영혼을 구겨 넣지 않기를 바란다.
-《열한 계단》 中

-책에 나온 성장의 과정을 보면 어떤 대목에서는 너무 나약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솔직해서 독자로서는 기쁘긴 하지만. (웃음) 지금의 계단에서는, 결과적으로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다시 안 병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책에 나오지 않는 내용인데, 일러스트를 그리다가 입대한 안 병장은 자기 얼굴을 너무나 잘 그렸다. 자신의 단단한 턱과 작은 눈과 그 특징들을 꼭 다른 사람이 그려준 것처럼 너무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거다. 놀랐다. 자신을 이렇게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해서.

《열한 계단》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안 병장의 자화상을 떠올렸다. 자신을 미화하거나 꾸미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삶 대부분을 실제로 어리고 나약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게 사실이니 책에도 그대로 드러났을 뿐이다. 지금은 단단한 사람까지는 아니지만 넘어졌을 때 울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되지 않았을까.
죽음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다

-'사고' 이후, 책 후반부를 지배하는 ‘죽음’의 정서, 죽음 이후에 대한 인식과 사색은 매우 낯설고 독특하면서도 몰입도가 높다.

죽음과 초월에 대한 열 번째와 열한 번째 계단은 정성을 많이 들였다.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도록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었고,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정확히 반영되었는지 무수하게 점검했다. 삶 속에서 나와 비슷한 질문을 가졌었거나 경험이 선행된 독자는 무척 명쾌하고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이라는 소재 자체는 그야말로 독자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독자들에게 그 부분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겠다는 팁을 준다면.

사람마다 삶의 경험이 다르므로 아직 죽음이나 초월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독자라면 특별한 감흥 없이 그저 읽을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칼 융이 ‘티벳 사자의 서’ 서문에 적었듯이 어떤 이에게 이 책은 닫힌 책으로 시작해, 닫힌 책으로 끝날 수도 있을 거다.

닫힌 문을 열고 책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유일한 팁이 있다면 그건 앞선 체험일 것이다. 앞선 체험이 있는 독자는 안으로 쉽게 들어오기를, 앞선 체험이 없는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첫 번째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이 삶도 마찬가지라는 걸요. 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것에 마음 쓰고 집착하며 가슴 졸이겠지만, 죽고 나면 어차피 사라질 거예요.
꿈이 아무런 기반도 없이 깨어남과 함께 사라지듯이, 삶도 아무런 기반 없이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겠죠. 허망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든 것인지도 몰라요. 삶이 다시 돌아온다고요. 이 먹먹함을 숨기기 위해 사후세계를 상상해내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도 몰라요.
-《열한 계단》 中

-위의 질문과 연결해, 죽음에 관한 깊은 고민이 ‘현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경우는 없나. 가령, 그런 이유로 우리 주변에는 그 주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사람들도 많다.

의도적으로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고민하지 않을 수 있다면 먼 미래의 사건을 일부러 앞당겨 고민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순간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죽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찾아온다. 열한 계단의 마지막에 이야기되는 죽음과 초월에 대한 문제는, 없는 문제를 만들어내고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질문에 대해서 담담히 설명할 뿐이다.

인문학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역사 속 소크라테스처럼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인문학을 추구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비슷한 생각인가.

그렇다. 여전히 인문학이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학문의 상아탑에 모셔진 성물이 아니라 서민들의 입속에서 발현되는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인문학이 누구의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은 모든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문학에 계급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문학을 생산하는 주체가 따로 있고, 그것을 그저 소비하는 타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문학은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에 의해서 생산되고 향유되어야 한다. 인문학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재화가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에 의해서 활용되는 놀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인간의 눈과 입은 원래가 모난 까닭에 가까운 대상일수록 쉽게 흠을 찾아내고, 쉽게 상처를 입힌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상처입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을 당신으로부터 밀어내야 한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 말도 없이 깊은 내면으로 고독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열한 계단》 中

채사장은 '여행자'다. 그는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가 아니다. 사회는 공동체 전체의 효율을 위해 한 명의 개인에게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전문가가 되려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세상은 학교이고 인간은 배우며 여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논리정연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이유다. 더불어, 끝없이 펼쳐진 사유의 대지 위를 떠도는 '지식가게의 사장'을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적 대화를 위한 팟캐스트 방송.
채사장, 이독실, 김도인, 깡선생의 <지대넓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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