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도 피하지 못한 '식품 업계의 저주'

조회수 2018. 6. 22. 18: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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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및 유통 업계에선 증설의 저주라는 표현이 있다. 제품이 인기를 끌어 공급 부족 현상을 겪을 때 시설을 늘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품 인기가 뚝 떨어지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업계 징크스로 여겨질 만큼 이런 과정을 거쳐 인기가 뚝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돼 나타났다. 기업들의 야심찬 시설투자를 머쓱하게 만든 사례들을 모아봤다.

없어서 못 사던 허니버터칩, 지금은?

출처: 해태제과 페이스북

2014년 시장에 나온 허니버터칩은 ‘달콤한 감자칩’ 열풍을 일으켰다. 시장에선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출시 당해에 약 2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허니버터칩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대형마트에선 허니버터칩에 1인당 판매 개수 제한을 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출처: 동아일보 DB
허니버터칩 출시 당시 이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길게 줄이 늘어선 모습.


심지어 온라인 중고거래 장터엔 아래처럼 허니버터칩 냄새를 파는 게시물이 올라올 정도였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출시 이듬해엔 인기에 탄력이 붙으면서 단일제품으로 매출 1000억 원을 바라보는 수준까지 인기가 올랐다.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어지자 해태제과는 2015년 8월 결국 강원 원주에 제2공장을 짓고 생산량을 늘렸으나....

해태제과는 당시 제2공장을 증설하면 허니버터칩 연매출이 기존과 비교해 두 배 가량인 2000억 원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증설 전보다 월매출은 5억 원 정도 더 늘어나는 수준에 그쳤다.


다만 허니버터칩 판매량이 늘지 못한 덕에 소비자 입장에선 더 다양한 감자칩을 맛볼 수 있게 됐다. 해태제과는 공장 증설한 설비를 허니더블칩 등 다른 감자칩 라인으로 돌리면서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였다. 당시 해태제과 측은 “애초에 제2공장은 허니버터칩뿐만 아니라 다른 감자칩 제품도 만들려고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허니버터칩의 인기가 떨어진 것과 동시에 주가하락과 영업이익 하락을 겪은 해태제과는 결국 증설의 저주 피해자로 기억되고 있다. 

오뚜기 제쳤던 꼬꼬면, 하지만...

출처: 동아일보

꼬꼬면은 유명 개그맨 이경규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 요리경연대회 출품을 위해 개발한 제품이다. 2011년 7월 출시 되자마자 빨간 국물 일색이던 국내 라면시장 판도를 뒤집을 만한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출시 초기엔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출시 첫 해에 8000만 개 이상 팔려 나갔다. 한때 라면시장 점유율 20%까지 치솟았다.


당시 팔도는 꼬꼬면의 인기로 사상 처음으로 오뚜기를 제치고 라면시장 업계 3위에 올랐다. 꼬꼬면의 인기에 고무된 팔도는 출시 이듬해 3월 500억 원을 들여 라면 공장을 증설했다. 급기야 팔도는 자체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 하에 한국야쿠르트에서 분사까지도 결정했다. 꼬꼬면이 매출을 견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으나...


증설 이후 매출 급감하더니, 출시 2주년엔 판매량이 10분의 1수준까지 떨어졌다. 업계 판도를 바꾸면서 신라면의 인기를 50% 아래까지 끌어내린 제품이었으나 기대주로 끝나고 말았다. 꼬꼬면의 인기 하락 요인을 두고선 지금도 적기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열풍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는 의견과 나가사끼짬뽕, 기스면 등 경쟁제품들이 마케팅 물량을 풀어 인기를 끌어내렸다는 분석 등이 나온다.

맥주 시장 흔든 클라우드

출처: 클라우드 홈페이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한국에도 맛있는 맥주가 필요하다며 2014년에 선보인 야심작 클라우드. 물을 타지 않은 맥주라는 컨셉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럼 다른 맥주들은 그동안 물을 탔다는 말이냐"며 소비자들을 분노케 해 맥주업계 전체를 성토하게 만든 문제작이기도 하다.


가격은 좀 비쌌지만 높은 도수와 진한 향으로 카스와 하이트가 양분하던 시장을 흔들었다. 출시 1년 만에 시장 점유율 7%대를 넘겼다. 클라우드가 승승장구하자 롯데칠성음료 주류부문(롯데주류)은 6000억 원을 들여 생산설비를 늘렸다. 출시 첫해 이미 5만 킬로리터 생산규모를 두 배 늘렸고, 이내 20만 킬로리터 생산능력을 갖춘 새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클라우드 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뚝뚝 떨어져 현재 3~4%대에 머물고 있다. 수입맥주와 비교하면 프리미엄 제품으로 보이지 않고, 국산 제품 보다는 비싸다는 단점 등이 지적된다. 게다가 수입맥주가 '4캔 만 원' 프로모션을 통해 가격 경쟁력까지 높이면서 타격을 받았다.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하면 세금을 덜 내는 주세법의 허점을 이용해 수입맥주가 영역을 넓히는 사이 클라우드의 경쟁력은 떨어졌다. 롯데주류는 밀러 등 해외맥주를 수입 판매도 하고 있어 국산맥주 침체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출처: 홈플러스
"4캔에 9600원" 최근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사와 편의점 등이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맛의 수입맥주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산 맥주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결국 롯데주류는 당시 증설한 생산설비 일부는 지난해 6월 출시한 신제품 피츠를 만드는 데 활용하고 있다. 수입맥주 공세 속에 전반적인 생산이 위축되면서 이후로는 신제품을 더 내놓진 못하고 있다.  


결국 식당 등 업소 시장을 뚫어야 하지만 이쪽에선 오랫동안 영업망을 구축한 하이트와 카스를 넘어서지 못한다. 클라우드가 소맥(소주+맥주) 폭탄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 때문에 식당 시장서 성장이 정체돼 있다. 

SNS타고 인기 빨리 오르고 빨리 식고...수요 예측 점점 어려워져

흔히 식품시장은 스테디셀러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반짝 인기를 얻다가 사라진 제품도 부지기수다. 재작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가 사라져버린 바나나맛 초코파이 등도 증설의 저주를 겪은 제품이다. 오리온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상반기 바로 생산설비를 늘렸으나 열기가 곧바로 식어 머쓱해졌다. 롯데제과의 몽쉘 바나나 제품도 마찬가지로 생산설비를 늘렸으나 판매량이 떨어진 사례다. 

출처: 오리온 제공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맛. 반짝 인기를 얻었으나 생산설비 증설 뒤 무섭게 인기가 사라졌다.

히트 상품의 인기가 너무 빨리 사그라들면서 제품 수요를 예측해야 하는 현업부서는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다.


식품시장에서 제품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막대해진 소셜미디어(SNS)의 영향력이 첫 손에 꼽힌다. 이른바 먹방 등을 통해 신제품이 빨리 소개되고 급격히 유행으로 번지는 일이 많아진 것. 반면에 워낙 경쟁제품이 많아지고 흥미가 순식간에 시들해지는 것도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보인다. 무분별한 미투 제품의 양산 또한 제품 장수를 막는다. 워낙 경쟁사들이 우후죽순 비슷한 제품을 쏟아내다 보니 초기 제품의 희귀성과 특별함이 사라지면서 인기도 뚝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출처: 해태제과 홈페이지

2010년대 들어 연달아 증설의 저주가 발생한 탓일까. 최근 식품업계는 무턱대고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것보다 기존 제품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참신하다는 인상은 주면서도 장수제품의 친숙함에 기대는 전략이다. 최근 등장한 커리맛, 명란맛, 스테이크맛 등 한정판 과자들은 증설의 저주를 피하면서도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려는 시도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이와 같은 한정판들의 생소한 시도 때문에 괴작이나 끔찍한 혼종으로 일컬어져 웃음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제품들엔 점점 까다로워지는 소비자의 입맛을 파악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으려는 식품업계의 고민과 노력이 숨겨져 있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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