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 = 7잔 + 반잔, 상술일까? 아닐까?

조회수 2018. 6. 10.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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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7.5잔이어서 360ml?...소주 업체 설명은 다르다

소주 용량과 관련해 익히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360ml짜리 소주 한 병을 소주잔(약 50ml)에 따르면 약 7.5잔이 나오는데 이게 주류업체의 상술이라는 것이다. 모두들 똑같이 돌려 마신다고 가정해도 두 명이든 일곱 명이든지 간에 한 잔 내지 반 잔 정도는 늘 부족하기 때문에 술을 더 시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하이트진로 측의 설명은 다르다. 

출처: 동아일보DB
1920년대 출시한 초창기 진로 소주.

진로 소주를 처음 출시한 1924년 당시에도 소주는 360ml였다. 이 기준은 전통 부피 기준에 따른 것이다. 흔히 '댓병'(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크다는 의미의 '대大'가 아니다) 이라고 부르는 한 되(1800ml) 기준 용량의 10분의 1인 '홉'(약 180ml) 또한 술의 용량을 재는 기준으로 사용됐다. 진로는 두 명 정도가 마시기 적당한 2홉 분량을 소주 용량 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훗날 홉을 ml 부피기준에 맞춰 360ml 로 생산하고 있고 이게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출처: 참이슬 인스타그램

일부에선 홉 기준이 당시 일본에서 술을 측량하는 부피 표준이어서 여기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본 사케를 따르는 작은 술병 단위인 도쿠리가 한 홉이다. 일본서는 한 홉짜리 술도 소매점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진로는 1970년대까지 2홉짜리 소주와 4홉짜리 소주를 모두 팔았는데, 생산라인을 단일화 하는 과정에서 2홉으로 통일됐다. 이처럼 생산 효율화를 위해서도 표준 작업은 중요하다. 후발주자들 역시 360ml 용량으로 소주를 출시하고 있다. 

막걸리 한 병은 왜 750ml일까?

그럼 전통술인 막걸리는 왜 홉 단위가 아니라 750ml일까? 정작 막걸리가 시장에서 상품으로 취급된 것은 소주보다 늦은 한국전쟁 이후다. 처음부터 ml 단위를 기준으로 제품을 생산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업계 표준은 1000ml였다. 업계 선두주자인 장수생막걸리(서울탁주)가 현재와 같은 750ml로 출시된 것은 1996년부터다. 

큰 병은 한손으로 따르기에도 불편하고, 쏟는 경우 등도 발생해 식당 판매용으로 적당치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용기 줄이기에 나섰다. 시장 조사에 나선 결과 적정 용량은 750ml로 정해졌다. 이와 관련해 서울탁주 측에 확인을 요청했다. 서울탁주 측 관계자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진 않다"면서도 "내부에서 확인한 결과,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셨을 때 생기는 취기 수준의 용량을 기준으로 막걸리 한 병 사이즈를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밝혔다. 

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도수 차이 때문에 최소 소주보다 두 배는 많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게 자연스럽게 현재의 용량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막걸리 시장에서 1990년대 초반 500ml 제품이 출시됐는데 너무 작아 보인다는 이유로 실패를 맛본 것도 참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제품 역시 막걸리 후발주자들이 참고하는 제품이 됐다. 다만 최근엔 이 또한 글로벌 시장에선 한 병 분량으로 너무 크고, 이 때문에 세계화가 어렵다는 지적 등이 있어 막걸리 업체들은 다양한 용량 제품들을 실험해보고 있다. 

커피, 스타벅스의 12온스 기준이 프랜차이즈 사이즈의 표준으로

그렇다면 스타벅스 커피 톨사이즈는 왜 300ml 내지는 400ml처럼 똑 떨어지는 수가 아니라 어중간한 355ml를 기준으로 정한걸까? 

출처: 스타벅스
스타벅스 커피 톨사이즈 컵

초창기 스타벅스는 미국서 숏(Short)과 톨(Tall) 사이즈로 컵 용량을 구분했다. 10온스(oz)를 경계에 두고 8oz와 12oz 제품을 작은 용량과 큰 용량으로 나눠 판매한 것이다. 1999년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할 당시 이를 한국 상황에 맞게 ml단위로 환산해 표기했다. 톨사이즈인 12oz가 ml단위로 환산하면 약 355ml다. 스타벅스 커피의 기본용량이 355ml인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왜 스타벅스는 톨사이즈를 기본 사이즈로 두는 것일까? 추후 그란데 사이즈(16oz)까지 더해지면서 총 3가지 사이즈로 판매됐는데 이중 톨 사이즈가 중간이어서 기본형이 됐다. 훗날 벤티 사이즈(20oz)까지 등장하면서 해외에선 톨과 그란데가 함께 중간 사이즈로 인식되는 추세다(벤티 윗사이즈가 나와도 메뉴판에는 톨 그란데 벤티 정도만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한국에서 원두 커피에 대한 선호가 크지 않을 때 진출한 스타벅스는 작은 커피잔 위주로 마시던 당시 생활상을 고려해 숏과 톨 사이즈를 중심으로 판매전략을 짰다. 초창기 북미 스타벅스처럼 두 사이즈의 판매 비중이 높았고, 이후 사이즈 종류가 많아 메뉴판에 모두 기재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숏 사이즈가 메뉴판에서 사라진 이후(그러나 이는 메뉴판에 없을 뿐 판매되고 있다)에도 톨 사이즈를 가장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사이즈로 강조했다.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들 또한 스타벅스의 사례에 맞춰 기본형 사이즈를 12oz 전후(330~370ml 정도)로 두는 경우가 많다. 관련 시장의 주요 제품이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은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선 제품 용량을 정할 때 해당 제품의 선두주자의 용량 기준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왜 그럴까? 업계 후발주자들은 시장조사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로 든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대체로 소비자들은 어떤 특정 소비재의 외관과 중량, 경험에 익숙해지면 그와 다른 형태의 제품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양이 너무 적다거나 많다라는 인식을 하는 기준은 다른 제품과의 비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업계의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되는 기술 특성을 갖추거나 부피나 용량의 기준점이 되는 상품들을 흔히 지배적(dominant) 제품이라고 일컫는다. 지배적 제품은 다수의 소비자에 의해 선택된 이후엔 다른 기업들이 당연히 따라가야 할 사실적인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이처럼 업계 대표 제품들은 단순히 자사의 매출을 늘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판도까지도 좌우한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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