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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혁명을 원합니다!

조회수 2016. 11. 19.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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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한다 VS. 미안하다, 둘 다 원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부 세워내자!
이는 '부담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낸 중고생혁명 추진위원회의 구호였다.

하지만 중고생의 발언이 사회적 파장을 이끌어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기에 <한겨레21>은 수능을 일주일 앞둔 11월10일 실례를 무릅쓰고 3명의 청소년을 만나보았다.
출처: 왼쪽부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치리(17), '중고생혁명 추진위원회' 최준회(18),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나수빈(18) / 한겨레21 자료사진

학교 안팎의 시국선언이 쏟아지고, 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 이렇게 활발한 이유가 뭘까.
나수빈

일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파급력이 커져서 집회 접근이 쉬워졌다. 예전에는 ‘집회’라면 ‘무서운 데 아냐?’ ‘맞는 거 아냐?’ 했는데, 요즘은 놀이공간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예전에는 ‘네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면, 이제는 ‘이 길에 있어도 우리가 살아남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런 생각의 전환이 움직임을 끌어냈다.
최준호

당사자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가 그랬다. 이명박 정권 이후 역행하는 야간자율학습 강화, 일제고사 부활 등에 저항한 것이다.

2016년 성인들은 ‘중고생과 관련된 게 뭐야?’ 하는데, 집회에서 중고생들은 정유라(최순실 딸)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 우리는 ‘헬조선’에서 입시난·취업난을 겪으며 사는데, 비선 실세 자녀는 특례입학을 누리며 살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다.
치리

모두가 생각한 괴물이 있다. 그것이 실제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다. 짐작했던 불의 따위는 전부 날려버릴 거대한 불의가 눈앞에 딱 나타났다. 이전 세대가 신군부를 마추쳤을 때 받은 충격과 비슷하지 않을까.
집회에 참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 안에도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 등을 조롱하는 패러디가 넘친다. 왜 그럴까.
치리

‘왜 그럴까’를 따지는 것이 이상하다. 항상 있었는데 이제야 보이는 거다. 세월호 사건 이후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정치를 말하는 흐름이 있었다. 하야 정국이 되면서 주목하니 새삼 보이는 거다.
최준호

수도권과 지방권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방은 수도권과 분위기가 다르다. ‘학생인권조례에 찬성하십니까?’ 물으면 수도권 학생들은 ‘찬성, 반대’로 답하지만, 지방 학생들은 ‘그게 어떤 거죠?’라고 묻는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 지방권 학생도 수도권 학생과 같은 속도로 반응하는 데 놀랐다. 그만큼 민주주의 훼손이 축적됐다는 뜻이다.
출처: 일요신문(사진제공 = 최준호)
나수빈씨는 청소년이 밀집된 공간인 학교에 있다. 집회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나수빈

학교에서 친구와 같이 대자보를 써서 창문에 붙였는데 친구들이 많이 응원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연예인 얘기보다 정치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 건 처음이다.
여전히 집회에 가거나 대자보를 붙이면 벌점을 부과하는 학교가 많다고 들었다.
최준호

아주 많다. 내가 있는 춘천에선 한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모든 학교에서 (집회와 대자보를) 금지했다. 중고생혁명 사이트에 집회 포스터를 올리면 댓글이 2천 개씩 달린다. 그런데 같이 가자고 친구를 태그하면 ‘벌점이래’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아쉽네’ 하고 끝난다.
이번 퇴진 요구 집회에 참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호는 뭔가.
나수빈

‘청소년도 국민이다’라는 말에 공감했다. 당연한 말이고 천부인권인데 굳이 말해야 하는 현실은 비참하지만, 주권자 입에서 자신이 주권을 가졌다는 말이 나온 건 그 의미가 배가 된다고 생각한다.
최준호

‘중고생도 주인이다’였는데 함축적인 구호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청소년이 차별받고 소외됐다. 이번에 광장으로 나옴으로써 우리가 주권자임을 보여줬다.
출처: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 투데이신문

사실 앉자마자 먼저 나온 이야기는 ‘저격’이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1월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따져물었다. 중고생 시국선언자들 사이에 선 최준호씨에게 붉은색 동그라미를 친 사진을 보이며 말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찾아봤더니 최모씨로 나오고요. 이제 만 18세, 중고생연대 이런 걸 하면서 통진당 청소년비대위원장을 하다가 나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니까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저 날은 고등학생 교복을 똑같이 입고 나가서 자기가 고등학생인 것처럼 하는 겁니다.”


김 의원은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구호를 언급한 다음 장관에게 “중고생연대에 대해서 이적단체성 조사를 하십시오. 적극 검토하세요”라고 다그쳤다. 올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씨는 “청소년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교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세워내자’가 북한식 표현이라는데.
최준호

처음 알았다. 4음절 구호에 맞추기 위해서 한 거다.

혁명이 뜻하는 정치학적 의미를 모르지 않지만, 굳이 혁명이란 말을 쓴 것은 단순히 박근혜 정부를 하야시키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지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서다. 사회의 본질을 바꾸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중고생에게 알리고 싶었다.
치리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는 중고생혁명 집회의 배후가 아수나로라고 하던데. 우리끼리 “저 집회에 아수나로 활동가는 한 명도 없는데” 하면서 웃었다.
일베 같은 극우세력의 괴롭힘은 이전에도 있었을 것 같다.
나수빈

지난해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이라는 단체 이름으로 거리행동을 하면서 청원을 받았다. 한명 한명 신상이 (일베에) 털리더라. 무서웠다.
치리

‘아수나로를 염려한다’는 조갑제닷컴의 염려가 있었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홍위병’ 운운하는 우파 언론의 기사도 있다. 개인적으론 퀴어퍼레이드에 나간 사진이 일베에 오른 적이 있다. ‘일베로’에 갔다.
나수빈

베스트 게시물에 올랐단 거다. 의상이 ‘핫’했나 보다.
최준호

일베 스타들이다. (웃음) 지금까지는 극우세력이 신상털이를 했는데, 이번엔 이판사판이니 보수세력이 지금까지는 부담스러워서 하지 않던 ‘청소년운동 털이’를 하고 있다.
하야정국에서 벌어질 신상털이가 무섭지 않나.
치리

그게 두려우면 아무것도 못한다.
최준호

여론을 생각해 ‘혁명’이란 말을 부드럽게 쓰려고 한다. ‘혁명정권 세워내자’ 대신 ‘1960년엔 4·19혁명, 2016년엔 중고생혁명’ 식으로. 원래 혁명이란 말은 4·19혁명에서 따왔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순간 중고생이 중심이 된 역사였으니까.
나수빈

지금 순화하면 지는 거 아닌가.
최준호

다양한 시민이 참여하는 시국이니 양보하는 거다.
치리

나는 혁명이란 말이 세다는 느낌은 안 받았다. 그런데 혁명의 내용이 뭔지 잘 모르겠다. 혁명이 기존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라면, 지금 시국은 아직 아닌 것 같다. 중고생이 청소년의 전부가 아닌데 중고생이 아닌 청소년을 배제하는 면도 있다.

극우세력이 ‘조종당한다’고 한다면, 민주시민은 ‘기특하다’고 한다. 이번 퇴진 요구 정국에서도 어김없이 많은 시민이 청소년 집회를 보고 “고맙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운동을 해온 당사자들은 이런 반응이 “고맙지 않다”고 한다. 청소년을 주체로 보지 않는 면에서 ‘조종당한다’와 ‘미안하다’는 다르지만 같은 말이란 것이다.


청소년운동가 ‘난다’는 2008년 경험한 ‘보호주의’ 경험을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 운동사>에서 밝혔다. ‘촛불소녀’로 불렸던 그가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 기사화됐는데, “집에 가고 싶어요”란 말이 사진에 달렸다. 당시 외친 말은 “평화시위 보장하라”였다.


그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의 이런 경험들은 청소년운동이 ‘청소년 보호주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논의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21 사진자료
이번 집회에서도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나.
나수빈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거나 눈물 흘리며 ‘기특하다’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면 ‘아~ 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주체니까 이렇게 하지 마세요’ 하기는 어렵다. ‘조종당한다’와 ‘기특하다’가 태도만 다를 뿐 청소년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의미는 다르지 않다.
치리

심하게 말하면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래야 인식이 바뀐다. 같이 싸우는 사람들인데 뭐가 미안한지 모르겠다.
최준호

나는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수빈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런 사회를 만든 책임감에서 나온 말임을 안다. 보호와 보호주의 경계가 참 애매하다.
한편으론 ‘어차피 어른들이 만드는 게임의 룰이야’ ‘집회의 끝은 뻔할 거야’ 하는 친구도 많지 않나.
최준호

김태형 심리학자는 우리 세대를 ‘좌절 세대’라고 한다. ‘해봤자 되겠느냐’에 적응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이 어쩌면 그런 회의를 넘어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치리

다른 방식으로 주목해야 한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하야하고 정권이 바뀐다면 굉장히 높은 기대치가 형성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망쳐놓은 것이 너무 많아 당장 좋아지기 힘들다.

그런 현상에 대해 ‘그래, 내가 안 좋아질 거라고 말했잖아’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야 한다.
나수빈

조금 다른 면에서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어차피 어른들의 세상’이라면 오히려 우리는 당돌하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제나 어른들의 집회와 같은 틀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이니까 과감하게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묻지 않아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달라.
치리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절망스러웠다. 밝혀지는 사실들이 사실이 아니면 좋겠고 믿기도 어려울 만큼 끔찍하다. 냉소하거나 무기력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청소년 성인들에게 ‘그만 좀 미안해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나수빈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집회에 나온 게 아니니까.
최준호

청소년이 집회에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출처: 촛불소녀 / ㅍㅍㅅㅅ
나수빈

참, ‘촛불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최준호

당시 전국 청소년민주연합이 만들어졌다 없어졌다.
치리

반짝하다 사라졌다.
출처: 거리로 나온 청소년 / 오마이뉴스

정치사에 청소년이 등장하면 ‘사건’이 된다.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멀리는 일제강점기 3·1운동까지 역사 속에서 청소년은 변화의 주체로 칭송된다. 그러나 현실과 역사는 다르다. 21세기 이후 4~5년을 주기로 반복된 저항 속에 청소년은 언제나 ‘발견’되고 사라졌다. 민주세력이 ‘기특하다’고 하면서 정작 청소년 참정권에는 무심한 사이, 이들은 극우세력의 비난을 최전선에서 몸으로 이겨내왔다.


최준호씨는 “이번 운동이 성공한다면 최소한 청소년 투표권은 보장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부터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나수빈씨는 “이번 일이 역사책에 한 줄이나마 기록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원문기사 / 신윤동욱 기자

편집 및 제작 / 신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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