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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7.08.11. 작성

<택시운전사>의 독일인 기자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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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쇼박스

광주 5·18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9일만에 60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10일 오후 기준).


한국 사회의 가슴 아린 상흔이자, 부채이면서 동시에 자산인 5·18 광주.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 중 다수는 '광주가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할 정도죠. 어디 그들뿐일까요. 광주는 한국 현대사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1980년의 광주로 인해 1986년의 민주화도 가능했습니다.

1980.5.22. 조선일보 1면. 좌측 '광주 일원 소요 사태'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광주'사태'는 신군부가 폭력성을 강조하고 사건을 왜곡하기 위해 쓴 용어다.

출처 : 조선일보

전두환 군부가 광주로 통하는 길, 전화선, 소식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끊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광주에서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하는 걸 그대로 믿었습니다.


언론도 군부의 주장을 받아썼고요. <조선일보>는 광주시민들을 "총을 든 난동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영화 속 위르겐 힌츠페터

출처 : 쇼박스
철저한 침묵 속에 고립된 광주를 보도한 건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였습니다. 

영화에서 택시운전사 송강호와 함께 광주로 갔던 그 인물이요.

그의 보도로 광주의 참상은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위르겐 힌츠페터(왼쪽)가 광주 인근에서 계엄군과 찍은 사진

출처 : 허핑턴포스트, 위르겐 힌츠페터

영화는 힌츠페터가 공항을 떠나는 장면까지만 보여줍니다. 힌츠페터의 광주 이후 족적은 어땠을까요?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그는 5월 18~19일 광주를 찾아 참상을 기록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영상을 보냈습니다. 전두환 군부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에 등장합니다.


힌츠페터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광주를 찾았습니다. 계엄군이 잠시 물러나 소강상태였던 5월 23일의 광주를 찾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같은 해 9월에는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한데다 김대중에 대한 사형이 선고되자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을 만듭니다. 45분 짜리의 이 다큐는 세계에 전두환 군사 정권의 폭정을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상이 80년대 중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대학가와 성당에서 비밀리에 상영되었습니다. 광주에서 폭동이 있었던 줄로만 안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꾸준한 관심을 가졌던 그는 86년 11월에도 서울에 있었습니다. 


그때 광화문 시위 취재를 하던 그는 사복 경찰에게 맞아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어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출처 : 광주드림 사진자료

이 사건에 대해 힌츠페터는 “80년 광주 보도 이후 나는 전두환 정권으로선 눈엣가시였다”며 “86년 폭행 사건은 나를 위협해 한국에서 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당시 현장 촬영필름을 빼앗으려는 안기부를 피해 복사본을 만들려고 찾아간 <한국방송>에서도 구타를 당할 정도였다 했을까요.

출처 : 한겨레

1995년 기자직에서 은퇴한 힌츠페터는 2003년 한겨레신문사가 수여하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받았고요.


2005년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2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특별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5년 5·18 25주년 추모제에 참석한 위르겐 힌츠페터

출처 : 오마이뉴스

그는 이후에도 한국을 자주 찾았습니다.


광주를 방문한 적도 여러번이죠. 힌츠페터는 2005년 광주 방문 때에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5·18기념재단에 맡겼는데요.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힌츠페터의 머리카락과 손톱

출처 : 5·18기념재단
2004년 심장질환으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애초엔 "광주시민들 곁에 묻히는 게 꿈이다. 죽으면 5·18묘지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완강히 반대하자 "그럼 화장한 유골의 절반이라도 5·18묘지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광주는 거동이 불편했던 2006년에도 찾았을 정도로 그에겐 각별한 곳이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수 년이 지난 2016년 1월 25일, 그는 독일 북부 라체부르크에서 투병 끝에 7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머리카락과 손톱 등 유품이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치됐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힌츠페터는 생전에 “5·18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민주화운동의 ‘본보기’”라며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린 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민주화가 이뤄졌음을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아직도 학살 책임자들과 그들의 앞잡이 구실을 했던 언론이 반성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선 너무나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산 자의 몫은 그의 말대로 '잊지 않는 것' 아닐까요?


제작/김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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