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사리체프] 펑크족&아티스트&여행가&헤어드레서

조회수 2018. 6. 18. 17: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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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스타일리스트이자 사진가인 김세호가 해외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기록한 창조하는 손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

미용인의 손은 ‘창조’하는 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소중하다. 헤어 스타일리스트이자 사진가인 김세호가 해외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기록한 창조하는 손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한국의 미용인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번에 헤어전문잡지 그라피가 만난 창조자의 손 주인공은 러시아에 살고 있는 키릴 사리체프이다. 스스로를 펑크족, 아티스트, 여행가 그리고 헤어드레서라고 정의하는 이 남자와의 인터뷰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K i r i l l S a r y c h e v ( F o u n d e r o f H a i r F u c k e r )

한국의 <그라피> 독자들에게 당신 그리고 당신의 팀 ‘Hairfucker’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키릴 사리체프(KirillSarychev)이고 또 다른 이름은 Hairfucker입니다. 31세이고 미용 경력은 14년이 됐으며, 저를 펑크족, 아티스트, 여행가 그리고 헤어드레서로 소개하고 싶어요. 미용을 시작하고 10년 동안은 평범한 살롱워크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새로운 미용 테크닉을 비롯해 사진, 예술, 디자인,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저만의 창의성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헤어는 제게 창조 그리고 사람의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도구예요. 전 헤어 자체를 사랑하지는않습니다. 피부에 닿는 모발의 느낌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헤어의 형태, 사회에서 헤어가 주는 개성과 헤어를 통한 교감에 관심이 있죠. Hairfucker 프로젝트는 6년 전 제 파트너인 Maria Fufaeva와 함께 설립했는데, 사실 10년 전 장난스럽게 만든 이름이었어요. 저속하고 멍청하게 느껴질 수있지만 우리 스스로 이러한 시선을 극복하고 국제적인 브랜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Hairfucker는 몇 가지 파트로 구성된 프로젝트로 살롱, 교육 아카데미그리고 쇼와 퍼포먼스 등 창의적인 활동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파트가 있으며, 주로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4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고있습니다. 우리 팀은 처음부터 독립적인 형태의 브랜드를 지향했기 때문에 제품 브랜드에 속해 일하지 않습니다. 미용사가 특정 제품 브랜드를 위한 홍보 판매자로비춰지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 팀은 브랜드 밑에서 샴푸를 파는 쪽보다는 우리만의 디자인을 만들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더욱 집중하는 편이죠.

당신의 유년 시절은 어땠나요? 

러시아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문제아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11세에 처음 접했던 록음악은 제게 신의 선물과도 같았고, 그때부터 반사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게 됐습니다. 그 시기에 전 일반적이지 않았고 기이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세상을 돌아다녔죠.

역시 평범하지 않은 삶을 통해 지금의 당신과 Hairfucker가 만들어졌군요. 미용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공장, 사무실 등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보다 의미 있고 유용하며 창조적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었죠. 그러던 와중 항상 많은 여성이 방문하는 헤어살롱이 매우 따뜻하고 깨끗하게 느껴졌고, 아름답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직감했어요. 또한 사람들은 평생 머리손질을 해야 하니 미용이야말로 내가 일하며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심을 굳힌 뒤 어머니에게 미용학교를 다니는 게 어떨지 물었는데 당신은 제게 학교에 가지 말고 마을 최고의 살롱에서 일을 먼저 시작해보는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해당 살롱을 찾아갔죠. “이 살롱에서 열심히 스태프 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헤어드레서가 되고 싶습니다.” 호기롭게 살롱 문을 두드렸지만 저는 고작 10대에 문제아였으며, 행색 또한 펑크 스타일로 드레드 헤어에 얼굴 곳곳에는 피어싱이 가득했죠. 당연히 거절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홀로 미용을 하게 됐어요. 독학을 하며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고 여러 파티와 축제를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 제 고객으로 만들어나갔죠. 그 당시 전 브레이드 헤어에 매우 자신 있었는데 이 작은 마을에서의 모든 브레이드 스타일은 섭렵했다고 생각했기에 좀 더 스스로에게 흥미로운 미용의 길을 찾고 싶어 무작정 상트페테르부르크 로 갔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19세였죠.

제법 유명한 미용실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제게 그 어떠한 창의적인 자극도 주지 못해 그야말로 지루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21세 때는 한 나이트클럽의 지하 한편에 최초의 헤어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이트클럽을 폐쇄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지루한 살롱워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느꼈죠. ‘살롱워크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헤어로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싶다.’ 일단 돈을 벌기 위해 약 6개월 동안 살롱워크를 병행했고 결국 오래된 건물 다락방에 나만의 헤어를 창조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손에 상처가 굉장히 많네요. 

원형 전기톱에 손가락 하나가 잘렸을 때 ‘다시는 디자이너 생활을 하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훌륭한 의사를 만나 지금은 문제가 없습니다. 또 싸우다가 유리병에 손을 맞아 찢어지거나 하는 등 수많은 상처가 남아 있죠. 하하. 그러한 과정에서 저는 미용을 위한 도구는 단지 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도구는 손이 아닌 마음이고 정신이라 생각하죠. 그 후 미용기술에 열중하기보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와 개념을 발전시켜나가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려 일하게 됐고, 그들을 디렉팅하면서 내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우리 아카데미는 커트와염색의 기술적인 부분에 한정된 교육보다는 디자인을 생각하고, 분석하며 창조하는 일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서양의 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는미용 교육 시스템을 고민하지요. 모방이 판을 치는 세계에서 미용인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기반으로 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죠.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전 여행을 정말 좋아해요.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항상 가위와 염모제를 가지고 다니는데 제 기술을 공유하고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영감을 주고받기 위함이죠. 또한 사진과 영상 작업도 함께 하고 있는데, 우리팀은 그것을 팝업 헤어드레싱(Pop-Up Hairdressing)이라고 부르고 있어요(살롱 밖 어디에서든지 헤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호수, 산, 도시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재미’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작업하기때문에 언제 어디를 가든지 항상 즐겁습니다. 또 그 지역에서 직접 모델을 찾거나 현지에서 즉석으로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기도 하죠.

미용인으로서 목표. 

미용 산업의 변화를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용은 지난 100년간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세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은 대부분 여러 브랜드 회사가 고용해 해당 브랜드를 위한 스타일을 생산하게 만들어요.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닌 샴푸 하나를 더 팔기 위한 것이랄까요? 새로운 것을 전혀 볼 수 없는 구조인 거죠.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제품과 테크닉이 등장하는 이 시대에 과연 염색하는 방법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이 방법 하나밖에 없을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목표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브랜드의 상업성에 종속되지 않은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전 미래의 헤어 디자인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에서 머리를 한다든지 잘린 머리카락을 재생하는 일과 같은 것 말이죠.

한국 미용인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

20년, 50년 그리고 100년 후 미용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어떤 인식을 갖게 될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기존의 것을 반복하거나 남의 것을 베끼려 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찾아보려 노력하세요. 미용을 통해 혁신가가 되고 미용을 통해 예술을 창조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니까요.


에디터 장혜민

사진(인터뷰) 김세호(사진가, 헤어 스타일리스트)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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