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헤어 조현의 고전머리 도전기

조회수 2018. 6. 4. 16: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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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국제한국미용 페스티벌 고전머리 부문 금상 수상자를 만나다.

2018 국제한국미용 페스티벌 고전머리 부문 금상 수상자 조현 원장. 헤어전문잡지 월간그라피가 그에게 고전머리에 도전한 이유를 물었다.

2018 국제한국미용 페스티벌 고전공모전(창작트레머리) 부문 금상을 축하드립니다. 고전머리에 도전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현재 4개의 살롱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적인 미를 살린 저희만의 개성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전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전머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박경화 고전머리 기술강사님에게 전수받았고요. 이번에 수상한 작품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트레머리로 높고 화려하게 쌓아 올린 것이 특징입니다. 가체의 사치가 심해지면서 1788년 금지령이 내려졌고 그 이후로 트레머리의 풍습이 점점 사라지게 됐습니다. 현재까지도 상당 부분 고증이 되지 않아 창작으로 재창조한 작품입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고전머리에 사용하는 가체는 인모가 아니기 때문에 한번 엉키면 풀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가체를 땋을 때는 한 번에 정확하게 땋아야 합니다.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죠. 머리에 고정할 때도 탄탄하게 고정하면서 전체적인 균형도 맞아야 하는데 가체가 워낙 무겁다 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미용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군 제대 후 방황하던 제게 어머니가 미용을 해보라고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그 품이 많이 그리웠기 때문에 미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여가시간 없이 일만 해야 하는 미용이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제안을 받고 거의 한 달을 고민했죠. 그러다가 내가 원장이 되면 미용실 근무 환경도 개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호남대학교 뷰티미용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멘토가 있다면? 

단연 어머니입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명성이 부담도 되고 무겁게 느껴졌지만 훌륭한 어머니 덕분에 알게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늘 솔직하고 변함없이 고객들과 소통하고 서비스하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십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저와 함께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신뢰를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해 100호점까지 오픈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스타일을 연구하며 실력과 경험을 쌓는데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 나이에 대표가 되어 아직 부족한 면도 많지만 항상 배우면서 실천하는 대표로 남고 싶습니다.

에디터 김미소

포토그래퍼 사재성

온라인에디터 이미나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정기구독문의 02-5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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