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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건진 아빠의 인생, 영화 '아빠의 화장실'

조회수 2018. 4. 12. 11: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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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아빠의 인생~ 씨네쿠리의 MOVIE TALK
브라보 아빠의 인생

나는 아빠다

모 카드사에서 내놓은 “아빠 힘내세요”란
 CM송이 모두의 공감을 자아내던 때가 있었죠. 그만큼 가장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참으로 무겁습니다. 두 어깨 위에 온 가족의 생계와 미래가 얹혀 있으니까요. 주저앉아 눈물 흘릴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하루가 길기만 합니다. 이런 고단한 사정은 세계 어디나 다 똑같을 겁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낯선 일조차 마다하지 않죠. 당연한 의무와 거룩한 희생 사이, 그 중간쯤에 아빠의 인생이 자리해 있습니다. 혼인서약 때는 미처 몰랐던 시련이겠지만 이제 와서 없었던 일로 하자고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죠. 아마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와 뚝 꺾인 출산율 역시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순 없을 것 같군요. 

출처: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

저 역시 딱히 자식을 낳고 싶다는 욕심이나 출산과 양육은 부모 된 자의 마땅하고 숭고한 도리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말 그대로 어쩌다 아빠가 됐죠. 하지만 이유 같은 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내 아이를 남한테 잘 키워달라고 맡길 것도 아닌데 죽이 되든 밥이 타든 씩씩하고 건강하게 키워보는 수밖에요. 물론 이런 대책 없는 아빠의 속내 같은 건 되도록 모르고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죠. 어쨌든 말입니다. 남들과 똑같이 부모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자식은 하루하루 물 먹은 죽순처럼 쑥쑥 자라는 환경에 처해 있다 보니 저도 요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가장 두렵고 눈물 나게 절망스러운 건, 자식의 꿈을 응원해주지 못하는 아빠일 때입니다. 응원은 커녕 나의 변변찮은 직업이, 모아둔 것 없는 재산이, 불안한 노후가 행여 자식의 꿈에 장애가 될까봐 늘 전전긍긍하죠. 그래도 언제까지 못 본 척하거나 남의 집 불구경하듯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습니다. 뭐든 해야 합니다. 나는 아빠니까요. 

출처: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세자르 샬론, 엔리케 페르난데스 감독의 2007년작, <아빠의 화장실>입니다. 남미의 우루과이가 배경인데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장실을 짓는 엉뚱한 아빠가 등장합니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루과이를 순방했을 때 실제로 일어났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토대로 만든 얘기죠. 몰래 국경을 넘으며 밀수를 일삼고 툭하면 소리만 지르는 한심한 아빠가 왜 이렇게까지 화장실에 집착하는지 과연 가족들은 그 속내를 알게 될까요? 

출처: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이미지 출처 https://www.taringa.net/
아빠의 화장실
The Pope's Toilet, 2007
감독 세자르 샬론, 엔리케 페르난데스
주연 버지니아 멘데즈, 버지니아 루이즈, 마리오 실바

화장실에서 건진 아빠의 인생

우루과이와 브라질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멜로. 요즘 이곳에 낯선 활기가 감돌고 사람들은 모이기 무섭게 술렁거립니다. 바로 교황의 방문에 맞춰 멜로 마을에 최대 수만명의 인파가 찾아올거란 장밋빛 보도 때문이었죠. 마을 사람들은 전 재산을 쏟아부어 음식 재료를 장만하고 관광 상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대박의 열병에 감염된 건 비토 가족도 마찬가지였죠. 비토는 밀수꾼입니다. 이왕 죄 짓고 사는 거, 통 크게 마약이나 총기 같은 걸 취급하면 폼도 나고 좋겠지만 그는 겨우 건 전지나 밀가루 따위를 몰래 들여오는 보따리 밀수꾼이죠. 이런 아빠를 믿고 살아야 하는 아내 카르멘과 딸 실비아는 가슴 졸이며 한숨 쉬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비토가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바로 유료 화장실을 만들겠다는 포부였죠. 수만 명의 사람이 한 번씩만 사용해도 떼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 허황된 계획에 아내와 딸도 홀랑 넘어가버립니다. 

출처: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이미지 출처 http://rarefilm.net/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뒷마당에 터를 다지고 벽을 쌓고 근사 한 지붕도 올려놨건만, 정작 제일 중요한 좌변기를 살 돈이 없다니. 교황의 방문까지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하루. 초조해진 비토에게 아내 카르멘이 아껴왔던 쌈짓돈을 묵묵히 건넵니다. 드디어 1988년 5월 8일. 교황의 역사적인 방문을 맞아 온 마을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단 한 사람, 비토만 빼고 말이죠. 그 시각 비토는 국경 너머에서 좌변기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달려오는 중이었으니까요. 이 와중에 늙은 개처럼 헐떡이던 자전거마저 장렬히 쓰러지고, 비토는 이제 변기를 어깨에 이고 전력질주하기 시작합니다. 무릎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악물고 달려야 합니다. 

출처: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이미지 출처 https://latinta.com.ar

하지만 이 복된 날, 어깨 위에 은총 대신 변기를 짊어진 채 숨을 헐떡이는
그를 반긴 건 사람들의 무관심뿐이었죠. 비토뿐만 아니라 이날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노점을 차린 주민들도 허탈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이 날 교황의 방문은 미디어에서 환상을 심어준 탓이 컸습니다. 수만 명의 신도가 마을을 찾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실제로는 8천여 명 정도에 그쳤다고 하죠. 그마저도 대부분은 멜로 마을 주민들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그래도 아주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비토의 달콤한 꿈은 사라졌지만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붙들고 화장실 좀 사용해보시라고 권하는 아빠의 간절한 노력에 실비아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죠. 세상에서 가장 못나 보였던 아빠가, 사실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아빠라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으니까요.

출처: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이미지 출처 http://www.labutaca.net/

가족이란 이런 거겠죠.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
다. 지구를 지키듯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아빠의 삶을 어떤 이들은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죠. 아내이기 전에 여자이고 싶고 자식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격체이고 싶은 것처럼, 아빠 역시 본인의 삶을 존중받고 싶을 겁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란 노래처럼,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게 아니라 우리 덕분에 힘을 낼 수 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말이죠. 


글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산(山),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헤어전문잡지 월간 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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