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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도 하고 돈도 벌고…구체관절 인형 옷 만드는 여자

취미로 하다 전직해서 책까지 낸 작가 라디오(최지은)씨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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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 작성일자2018.06.13. | 13,70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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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주간동아'에서 DIY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정말 다양한 DIY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체관절 인형 옷을 만드는 최지은 씨를 인터뷰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사랑스러운 인형을 잔뜩 들고 나와 해맑게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최씨의 본업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인형 옷 제작은 그의 퇴근 후 소소한 취미일 따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틈틈이 작업하다 보면 인형 옷 한 벌을 만드는데 4~5일씩 걸린다던 최씨. 그랬던 그가 4년 만에 인형 옷 관련 책을 냈다. '인덕(인형 덕후)'들 사이에서 '라디오'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최씨. 그에게 물었다. '덕질'하던 취미생활로 돈을 벌어보니 어떤 기분이냐고. '성공한 덕후(성덕)'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인형 옷 만드는 작가 '라디오'입니다. 이번에 '라디오의 인형 옷 클래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데요. 블라이스와 국내 작가 인형들 사이즈로 이뤄진 패턴 북을 내게 되었어요.


# 블로그 'Lovely Ravely'가 인형 덕후들 사이에서 원래 유명했잖아요. 책은 어떻게 내게 된 건가요.


출판사 '라의 눈'에서 평소 인형 옷 분야에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된 일본 번역본을 내고 있었는데요. 편집장님께서 국내 작가의 인형 옷 책도 내고 싶어 하셔서 수소문하시다가 저와 연락이 닿았어요. 저 역시도 언젠가는 일본 작가들처럼 인형 옷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던 때라 연락을 받고 정말 많이 놀랐어요. 책이 출간된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 닉네임은 왜 '라디오'인가요?


너무 오래전부터 쓴 닉네임이라... 제가 중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계속 라디오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거든요. 평소에 작업할 때도 라디오를 즐겨 들어서 닉네임을 정할 때 그 부분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2014년 '주간동아'에서 DIY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인터뷰했을 당시의 최씨(우측).

본업이 따로 있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와서 틈틈이 작업하면 한 벌을 만드는 데 4~5일 걸려요. 옷을 한 번 만들기 시작하면 온 집 안이 실밥과 먼지투성이가 되지만, 남편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디자인 조언도 해주죠. (2014년 인터뷰)

# 예전에는 분명히 취미생활 이랬는데... '덕질'이 본업이 되었군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블라이스 인형 행사인 '블라이스콘'에 나갈 준비 중이라고 했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나요. 어떻게 착실하게 '성공한 덕후'로의 길을 걸어왔는지 여정을 소개해 주세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본업으로 삼은 건 3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블라이스콘' 행사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어요. 해외에 나가서 각국의 다양한 작가들의 의상과 인형들을 보고 매료되어 인생에 한 번쯤은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해 보고 싶었어요. 그 후 회사를 그만뒀고, 지금까지 인형 옷을 만들고 있어요. 파리 블라콘 이후에도 도쿄, 함부르크, 스페인 말라가, 싱가포르 행사에 참가했는데 싱가포르 행사 때는 너무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셔서 부스가 무너질 뻔할 정도였어요. 해외 행사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 분들께도 구매 문의가 많이 들어오게 되었죠. 그 덕에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인형 옷 해외 판매를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만드는 의상 색감이 화려해서 그런지 특히 중국분들께 구매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 남편은 여전히 취미생활을 지지하고 디자인 조언도 해주나요. 예전에는 부모님이 탐탁지 않아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남편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예요. 사실 말이 본업이지 수입도 들쑥날쑥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할 때면 한없이 예민해지는데 짜증 한 번 없이 다 받아줘서 미안할 때도 많아요. 대신에 '별로다' 싶은 디자인을 하면 거침없이 독설을 내뱉을 때도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저를 좋아해 주는 남편에게 항상 고마워요. 요새는 남편도 자기 취향의 인형이나 장난감들을 사모아서 같이 취미를 즐기고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항상 몸 상한다고 걱정하셨는데 이번에 책 나온 걸 보시고 많이 기뻐하셨어요.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 원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출신이잖아요. 본인 옷이나 남편 옷은 만들어 입지 않나요?


제 옷을 한번 만들어 볼까 싶어 나름 디자인도 하곤 하는데 항상 작은 옷만 만들다가 막상 사람 옷을 만들려니 귀찮아져서 만들기도 전에 포기해요. 남편 옷은... 수선 정도?

# 예전에는 옷을 팔고 생기는 수익은 다시 새로운 옷을 만드는데 쓴다고 했는데... 요즘은 수입이 어때요? 요즘도 계속 인형을 수집하나요?


50체 이후부터는 세보지 않았어요. 아마 집에 인형이 60~70체 정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도 사모으는 편이긴 한데 나름 소비를 줄여보려고 '한 달에 한 체만 사자!'라는 목표를 정했어요. 인형 옷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니와 바비인형 옷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수입은 요즘도 비슷해요. 좀 다른 점은 인형도 산다는 것?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모아 두었다가 해외 행사 갈 때 경비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원단이나 부자재를 구입하는데 쓰기도 해요.


# 요즘의 일과는 어떤가요.


되도록 아침에 일찍 일어나 회사 다닐 때와 비슷한 일정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평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작업을 시작해요. 행사가 있을 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요. 원단은 동대문 원단상가에서 구매하기도 하고 요새는 해외 행사에 나가면 현지 원단상가들을 돌며 구매하고 있어요. 확실히 이국적인 느낌도 많이 나고 독특한 컬러들이 많아서 저만의 의상을 만들기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해외 행사는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나가는 것 같아요.

# 인형에게 어울리는 디자인, 라디오만의 발상은 어디에서 얻나요.


여러 곳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꾸준히 컬렉션 잡지도 사모으고 있고 영상미가 좋은 영화나 일러스트, SNS 등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에서도 영감을 받을 때가 있어요.


# 근본적인 질문, 인형이 왜 좋아요? 인형 옷은요? 


어렸을 적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휴지로 둘둘 말아 인형 옷이랍시고 만들었던 것이 시작이었죠. 옷 만드는 것이 좋아서 중고등 학교 때는 코스프레도 많이 했고 대학도 의상디자인과로 진학했어요. 그러다 인형에게만 어울리는 그런 아기자기한 느낌이 좋아서 인형 옷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덩달아 인형도 좋아진 거죠.

때때로 여행지에서 얻는 영감을 인형 옷에 반영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도 한다.

#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뭘 하나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풀죠?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놀아요. 그때는 디자인하려고 스케치북을 꺼내면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펜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쳐다도 안 봐요. 가끔은 원단시장에 가서 하염없이 돌아다니는데 원단을 보고 디자인이 생각날 때도 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활공간이자 작업 공간인 집을 나가려고 애써요. 근교의 카페라도 가서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좀 쐬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풀려요.


#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인형 사진은 뭘로 찍나요. 


블로그용은 주로 DSLR로 촬영해요. 여러 장 찍어서 올리기 때문에 배경이 예쁜 카페나 공원에 가서 주로 찍어요. 작업하다가 중간중간 찍거나 가볍게 찍어 편집해서 올리고 싶을 때는 아이폰이나 똑딱이를 이용해 사진을 남기곤 하지요.

이 책의 모델로 등장하는 인형들은 네오 블라이스, 쿠쿠클라라, 제리베리, 카카롯이다. 블라이스를 제외한 인형 3종은 모두 국내 인기 작가의 인형들이다.

# 아끼는 인형과 의상 몇 가지 소개해 주세요.


'육일전' 행사에서 구매한 원오프 클라라 인형이 제 최애예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인형이라 애착이 가장 커요. 이번에 출간된 책 표지도 제 최애 인형이 장식했어요. 의상은 만들 때마다 고생하고 사연이 있어서 어느 한 벌을 선택하기가 힘드네요. 애착을 갖는 옷이 있다면 아마도 제 이름을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로열 시리즈'가 아닐까 싶어요. 실크 원단으로 인형 바디에 피트 되게 만든 의상인데 지금까지 총 5종류를 만들었어요. 시리즈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죠.


# 롤 모델이 있나요? 


인형계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일본의 작가 '하논(hannon)'씨가 제 롤모델 이예요. 그녀의 감성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동경하고 있어요. 하논 씨의 책이 나왔을 때 일본에서 열리는 전시회까지 직접 가서 사인을 받아오기도 했죠. 

# 인형 옷에도 사람 옷처럼 트렌드가 있나요? 그렇다면 요즘 뜨는 컬러나 올해의 핫한 자수법, 바느질이나 원단 같은 게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사람 옷처럼 트렌드가 급변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있어요. 컬러는 아직까지는 파스텔 계열을 많이 선호하는 것 같아요. 연한 핑크나 노랑, 보라 같은 밀키 한 컬러들이요. 에이프런과 같이 코디가 가능한 원피스류가 인기가 많고요. 예전에는 얇은 아사 원단과 리버티 원단을 많이들 사용했는데 요즘은 실크 원단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국내뿐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남미, 유럽까지 아우르며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가는 인형 옷 작가 ‘라디오’의 첫 책이 출간되었다. 의상 디자이너 출신답게 디테일 완성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까다로운 소재도 과감히 사용하며 인형 옷 분야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 책은 주로 누가 사서 봤으면 좋겠어요?


인덕(인형 덕후)분들이 많이 사셔서 제 책을 보시고 옷을 만들어 입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아직 인형을 잘 모르시는 일반인들도 사 보시고 인형의 세계로 입문하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 '그냥 덕후'에서 '성공한 덕후(성덕)'가 됐는데, 지금 비슷한 덕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성덕'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루고 싶은 게 더 많아요. 인덕(인형 덕후) 분들이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인형놀이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인형이든 의상이든 구매하는데 과열 양상이 너무 심해서 어떨 때는 사는 것도 판매하는 것도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저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듯이 자기 개성껏 인형을 꾸미고 플레이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올해 나가는 행사나 다른 책 계획이나 이것저것 활동계획이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책이 한 권 더 나올 예정이에요. 단독 책은 아니고 여러 작가분들과 함께 작업한 책인데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6월에 벨기에 브뤼셀, 9월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인형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에요. 앞으로의 활동이나 출간 관련 소식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 혹은 스트레스를 풀고자 열심히 덕질을 하고 있어요. 주위로부터 '허튼짓한다' '돈 안 되는 일 하네'라며 핍박받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예를 들어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퇴근 후에 만화를 그리는 직장인이라던가. 이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절대 주눅 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숨기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주변 사람들을 공략해서 같이 취미를 공유하는 편이거든요. 일 이외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건 삶을 더 건강하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취미가 본업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본업이 되어서 받는 스트레스도 물론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이 글은 구기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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