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헤엄쳤던 난민소녀, 올림픽 선수 되다

조회수 2018. 6. 13.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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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터키와 그리스 사이 망망대해, 시리아 난민들로 가득 찬 고무보트가 위태롭게 떠 있었습니다. 8인용 보트에는 20명이 한데 엉켜 있었고 탑승자들 중 가장 어린 아이는 고작 6세에 불과했습니다.


유럽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부하를 견디지 못 한 엔진이 고장났고 배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난민들은 공포에 질려 울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중심을 잃었다가는 배가 전복돼 모두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난민들은 조금이라도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짐을 죄다 물에 던졌습니다. 

유스라 마르디니(Yusra Mardini·20) 씨도 그 배에 탔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17세 청소년이었던 유스라 씨는 배와 연결된 밧줄을 손목에 묶은 채 언니인 사라 씨와 함께 배 밖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릴 적부터 수영을 배운 자매는 어떻게든 배의 방향을 유럽 쪽으로 돌려 모두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잔잔한 수영장이 아니었고 배는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해는 점점 저물어 가고 바다는 거칠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탑승자들 중 수영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은 언니와 저였으니까요. 언니는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날 돌아보지 말고 네가 사는 것만 생각해’라고 말했어요. 보트 위에서는 꼬마 무스타파가 절 바라보고 있었죠. 아이가 걱정하지 않도록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버지의 열혈 수영교육 덕분에 전국대회에 나갈 정도로 뛰어난 수영실력을 갖게 된 유스라 씨였지만 전쟁은 꿈 꿀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수영장에서 연습 도중 포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천만다행히 탄이 터지지 않아 목숨을 건졌으나 인근에 있던 남성 두 명은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유스라 씨는 유럽으로 떠나자고 부모님을 설득해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25일간의 목숨 건 여행 끝에 유스라 씨는 독일 베를린에 새 터전을 꾸릴 수 있게 됐습니다. 6개월 뒤에는 시리아에 있던 가족들도 모두 합류했습니다.

한 숨 돌리자마자 유스라 씨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수영을 계속하고 싶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통역가에게 자신이 시리아에서 뛰어난 수영선수였다는 것을 강조하며 독일에서도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간절한 염원이 통했던 것일까요. 유스라 씨는 난민대표팀 자격으로 선발되어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처음에는 ‘난민팀’ 이라는 단어에 부끄러움과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막상 올림픽 무대에 서자 난민들을 대표해 세계 스포츠 축제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2018년 5월 자서전 ‘버터플라이: 난민에서 올림픽 선수가 되기까지’를 펴냈습니다.

유스라 씨는 “제 꿈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도 참가하는 것입니다. 아직 제 자신이 어떤 팀에 소속될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시리아 대표팀도 아니고 독일 팀도 아닙니다. 2020년에는 난민 대표팀이 꾸려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수영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지금도 거센 파도와 싸우며 유럽 쪽으로 배를 돌리려 애썼던 그 날이 생생하다는 유스라 씨. 그는 자서전을 통해 희망을 전했습니다.


“힘든 기억을 가지고 산다는 건 항상 등에 무거운 돌이 든 가방을 짊어지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가방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 가방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에요.”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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