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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갑질은 보도라도 되지..중소기업은 폭로해도 관심 없어"

조회수 2018. 4. 25. 1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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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乙)은 폭로라도 하지만 병(丙)이나 정(丁)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35)의 ‘물벼락 갑질’ 이야기를 꺼내던 A 씨(37)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다니던 한 중소기업에서 당한 경험이 떠올라서다.


지난해 10월 A 씨는 결재서류와 관련해 사장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었다. 사장은 종이컵에 든 음료를 A 씨 얼굴에 뿌렸다. 지방대 출신인 A 씨를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A 씨는 “우리 회사도 ‘사장 독재’나 다름없었다. 고함은 기본이고 막말과 욕설이 일상이었다. 몇 년 전에는 사장이 부장급 직원에게 재떨이를 던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출처: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A 씨 회사는 1995년 설립된 비상장 중소기업이다. 직원은 100명 미만이다. 그는 “대한항공은 대기업이라 그런 갑질이 사회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작은 기업에선 그보다 더한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조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알려진 뒤 대한항공 전·현직 임직원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선 ‘을의 공격’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하지만 상당수 중소기업 직장인에게는 남의 일이다. 더 심한 갑질이 벌어질 때가 많지만 내부 견제장치가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다.


한 대기업 하청업체에 다니는 B 씨는 “사장이 욕하고 고함치고 물 뿌리는 걸 ‘갑질’로 규정한다면 나는 5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갑질을 당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B 씨는 “사장은 고성을 지르는 건 일상이고 인격 모독과 술자리 성희롱도 일삼는다. 하지만 아무도 견제하지 않으니 죄책감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간 관리자의 횡포가 심한 경우도 많다. 지난달 서울의 한 중소 건축설계회사 회식 자리에서 부장이 신입사원 뺨을 7차례나 때린 사건이 발생했으나 회사는 쉬쉬하고 있다. 


회사 규모가 작아 폭로자가 쉽게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직원이 50명가량인 한 기업에 다니는 김모 씨(31)는 “사장이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하인 부리듯 하면서 시키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내용만 보면 누가 당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어 폭로나 고발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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