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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의 세월을 초월한 역사적인 CPU, 인텔 8세대 코어 i7-8086K

조회수 2018. 6. 19. 10: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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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8086 프로세서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한정판 CPU

지난 6월 8일, 인텔은 8세대 코어 i7-8086K CPU를 출시했다. 인텔은 8086K 출시를 기념해 총 8086개의 i7-8086K CPU를 전 세계 사용자에게 추첨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는 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이 i7-8086K는 단일코어 터보부스트 5GHz를 달성한 최초의 소비자 데스크톱 프로세서로, K 모델명이 붙은 만큼 추가적인 오버클러킹까지 가능한 강력한 성능의 CPU다.

▶ 인텔 8세대 코어 i7-8086K

인텔의 8세대 코어 i7-8086K CPU는 성능 외에 역사적으로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컴퓨터 산업의 핵심인 x86 아키텍처, 그리고 그 x86 아키텍처의 출발점인 인텔 8086 프로세서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한정판 CPU이기 때문이다. 인텔의 CPU를 포함해 현재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프로세서가 이 x86 아키텍처에 근원을 두고 있다.

축복받지 못한 시작

1978년 6월 8일, 인텔은 최초의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8086을 발표했다. 인텔은 8086을 두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라며 요란한 광고에 나섰지만, 실제로 인텔이 8086에 건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시기 인텔은 차세대 주력 프로세서 8800(후의 iAPX 432)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고, 32비트 기반의 8800이야말로 인텔의 모든 것을 보여줄 프로젝트였다.


     

반면 8086의 시작은 초라했다. 1976년 5월, 36세의 엔지니어 스티븐 모스(Stephen P. Morse, 1940~)가 8800 개발에서 8086 개발로 재배치되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8086 개발이 시작될 당시 팀에는 프로젝트 매니저 빌 폴먼(Bill Pohlman), 그리고 엔지니어 스티븐 모스 단 두 명 밖에 없었다. 게다가 스티븐 모스는 당시 CPU 설계의 핵심이던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8086의 시작이 이렇게 초라했던 이유는 일종의 땜빵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8086은 기대주 8800이 나올 때까지 자일로그(Zilog) Z80 같은 경쟁자의 위협에서 시장을 방어하기 위한 인텔의 미봉책이었다. 적당한 성능에 기존 프로세서와 호환되는 정도면 됐기 때문에 인텔 고위 경영진은 아무도 8086에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인텔이 8086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티븐 모스는 자유롭게 CPU를 설계할 수 있었다. 후에 다른 인텔 엔지니어가 합류하기 전까지 스티븐 모스는 말 그대로 혼자 아키텍처를 설계해야 했고, 모스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소프트웨어를 더욱 효율적으로’라는 관점으로 8086을 설계했다.


    

8800에 비하면 8086 팀은 말 그대로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개발은 꾸준히 진행되었고, 2년여의 개발 끝에 인텔은 1978년 8086 프로세서를 내놓았다. 그러나 인텔도, 8086 개발팀도, 심지어 아버지인 스티븐 모스 조차도 이 8086이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초기 시장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NASA에서 8086을 우주 개발을 위해 채용하는 정도였다. 스티븐 모스는 1979년 3월 인텔에서 퇴사했다. 8086은 그가 완성한 유일한 CPU다.

IBM이 바꾼 운명

한편, 1980년대 초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애플이 촉발한 PC 열풍은 이전까지 메인프레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던 IBM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장을 낳았다. IBM도 1975년 역사상 최초의 ‘상용 휴대용 컴퓨터’ IBM 5100을 내놓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제품은 본격적인 가정용/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노린 제품은 아니었다.


    

1980년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특별 팀을 구성했는데, 이 팀에게는 단 1년만에 PC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책임자 필립 돈 에스트리지(Philip Don Estridge, 1937 ~ 1985)는 고심 끝에 PC의 부품을 IBM이 자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부품을 조합해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첫 IBM PC 를 위해 돈 에스트리지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CPU는 인텔의 8088이었다. IBM은 인텔 프로세서를 선호했고, 인텔 8086과 8086의 형제 버전인 8088 중 단가가 좀 더 저렴한 8088을 선택했다. 두 프로세서의 차이는 외부와 신호를 주고받을 때 16비트냐 8비트냐의 차이였고, 결국 근본 설계는 스티븐 모스의 x86 아키텍처였다.

▶ IBM PC 5150

1981년 8월 12일 IBM 최초의 PC 제품 ‘IBM PC 5150’이 등장했다. 결코 뛰어난 성능은 아니었지만, 시장에 이미 있는 흔한 부품으로 조합해 PC를 만든다는 돈 에스트리지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IBM은 빠른 PC보급을 위해 확장슬롯 구조를 채용하고, 다른 회사들이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를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자신들이 만든 PC의 거의 모든 구조를 공개했다.


     

IBM이 가지고 있던 명성에 힘입어 5150 자체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5150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컴퓨터 시장을 몰고 갔다. 비록 IBM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곧 다른 회사들이 IBM의 이 PC를 복제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원조 IBM PC는 물론, IBM PC의 구조를 그대로 채용한 복제품이 속속 등장해 시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IBM PC의 등장 이전까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제조사마다 서로 다른 CPU와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에 제조사가 다른 PC를 사면 소프트웨어나 주변 기기도 매번 사야 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IBM PC와 복제품이 시장을 뒤덮기 시작하며 ‘IBM 호환 PC’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애플이나 코모도어 등 독자적인 PC 플랫폼을 생산하던 업체는 빠르게 도태되기 시작했다.

▶ AMD가 인텔과 계약을 맺고 생산한 AM286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인텔 8086에서 출발한 x86 아키텍처도 함께 사실상 표준이 되었다. AMD는 1982년 인텔과 계약을 맺고 8086과 8088 프로세서를 생산해 IBM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NEC도 8086/8088을 역분석해 호환 CPU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이릭스(Cyrix), 후지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지멘스(Siemens) 등 수많은 업체가 x86 아키텍처 기반의 프로세서를 디자인 및 생산했거나 지금까지 하고 있다.

x86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CPU

40년 전 스티븐 모스가 설계해 내놓았던 8086은 CPU 클럭이 최대 10MHz에 불과했다. 인텔 코어 i7-8086K은 앞서 설명했듯 단일 코어 기준으로 최대 5GHz의 클럭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모스가 만든 8086 명령어는 40년의 세월을 넘어 8086K를 포함한 수많은 CPU에 계승되고 있다. 물론 1978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 1978년 인텔 8086(좌), 2018년 인텔 8086K(우)

인텔이 8086 프로세서와 x86 아키텍처 4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8세대 인텔 코어 i7-8086K CPU는 엄밀히 말해 성능 면에 있어 8세대 인텔 코어 i7-8700K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8086K에 담긴 의미는 무엇보다도 특별하다. 지난 40년동안 컴퓨터 세상을 바꿔 온 8086과 x86 아키텍처의 직계 후손이라는 상징성은 다른 그 어떠한 CPU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컴퓨터 마니아라면 반드시 노려봐야 할 제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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