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을 위협한 맹수, 독일 5호전차 판터

조회수 2018. 3. 21. 11:3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다양한 게임에 등장하는 전차 '판터'에 대해 알아보자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다. 독일군은 흑해부터 발트해까지 동유럽 전 지역에서 방심하고 있던 소련군을 기습했다. 이후 4년간 동유럽을 수 천 만 명의 피로 물들인 후에야 간신히 끝난 독-소 전쟁의 시작이다.


   

독소전쟁 초기 독일군은 병사부터 장교, 장성까지 하나같이 소련을 얕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열등민족'이라 생각했던 슬라브족 따위는 간단히 꺾을 수 있다는 자만심이 가득했다. 실제로 독소전쟁 초반 독일군은 엄청난 속도로 소련군을 격파하며 진격했다. 그러나 곧 소련군은 결사적인 저항에 나섰다. 얕보고 있던 소련군이 끌고 온 KV-1, KV-2 같은 중전차는 독일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소련의 T-34 중형전차도 그런 무서운 존재였다. 급하게 동원되어 마무리조차 부족했지만 독일군의 자랑인 3호/4호 중형 전차가 쩔쩔맸다. T-34 전차의 특징인 이상한 형태의 앞면은 실은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설계된 경사장갑 이었다. KV-1, KV-2에 이어 T-34 전차의 악명이 독일군에게 퍼져 나갔다.


    

독일군은 소련군을 상대하기 위해 88mm 강펀치를 단 6호전차 ‘티거’ 중전차를 1942년 실전투입했다. 이어 1943년 6월, 소련의 도시 ‘쿠르스크’를 둘러싸고 독일군과 소련군이 격돌했다. 독일군에게는 본토에서 열차로 실어온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T-34처럼 기울어진 형태의 전면장갑에, 긴 포를 달고 있는 다부지게 생긴 신형 전차였다. 독일 5호전차 판터 중형 전차의 첫 등장이었다.

▶ 독일군이 노획한 소련 T-34 중형전차
▶ 독일 5호전차 '판터(Panther)'. 나중에는 그냥 '판터'라고 부르게 된다.

굴욕의 데뷔전

6호전차 티거 중전차가 1942년 첫 투입에서 ‘굴욕’을 겪은 것처럼, 5호전차 판터 역시 선배(?)의 굴욕을 그대로 계승하고 말았다. 티거가 그랬던 것처럼 아직 완성이 덜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비장의 무기’로 무리하게 전선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1943년 6월 말 총 200대의 판터가 공세에 앞서 쿠르스크 전선으로 투입되었지만, 열차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기계 고장으로 2대를 손실했다.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된 7월 5일이 되자 사용 가능한 판터는 184대가 남아 있었다. 비장의 무기라며 동원했는데 전투도 하기 전에 고장 등으로 잃은 것이 16대였다.

▶ 쿠르스크 전투 중 기동하고 있는 독일군 전차

공세 시작 5일차인 7월 10일이 되자 최전선에서 기동하고 있는 판터는 10대에 불과했다. 쿠르스크 전투 기간 동안 독일군이 손실한 판터 중 실제 교전으로 손실한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기계 고장이나 지뢰를 밟아 일어난 손실이었다. 끊임없는 판터의 고장이 독일군을 괴롭혔다. 역사에 남은 명 전차의 굴욕적인 데뷔전이었다.


   

그러나 판터의 위력만큼은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터는 특히 장거리 교전에서 뛰어났다. 경사를 준 전면장갑은 매우 단단했고, 주포로 장착하고 있던 75mm 포는 원거리에서 소련 기갑장비를 쉽게 격파할 수 있었다. 반면 당시 소련군이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던 76.2mm 포를 장착한 T-34는 판터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거의 격파가 불가능했다.


    

소련군은 쿠르스크 전투에서 버려진 판터 전차를 회수해 분석했고, 이 중 단 한 대 만이 76.2mm 포를 장착한 T-34에 격파 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련군은 판터에 맞서기 위해 85mm 포를 장착한 개량형 T-34의 배치를 서둘렀다. 방어력이나 포의 정확성 등 여러 면에 있어 85mm 포를 장착한 T-34조차 판터와 대등하게 겨룰 수는 없었지만, 소련군답게(?) 물량으로 어느 정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동부전선에서 명성을 쌓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판터의 대대적인 개량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정면 대결이라면 판터가 주적 소련의 어떤 기갑장비와 상대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판터는 소련군 주력 전차인 T-34를 2000m 거리에서 관통이 가능했다. 반면 T-34는 85mm 포를 단 개량형 조차 500m까지 다가와야 정면에서 판터를 격파할 수 있었다.

독일은 판터를 조금씩 개량해 가며 동부전선으로 보냈다. 데뷔전에서 판터를 괴롭혔던 여러 고장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쿠르스크 전투 이후 수세로 돌아선 독일군에게 판터는 축복이나 다름 없었다. 판터는 곧 동부전선에서 소련 전차를 다수 격파하며 악명을 쌓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예상대로 정면 대결의 경우 판터는 장거리에서 소련 IS-2 중전차와도 대등한 교전이 가능했다.


    

판터의 역할은 '저격수'에 가까웠다. 판터에 장착된 75mm 포의 우수한 관통력과 명중률, 그리고 숙련된 독일 전차병이 더해지면 수 백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적 전차를 저격해 격파할 수 있었다. 판터의 이런 우수한 성능은 적인 소련군도 인정하고 있었고 최고의 강적으로 꼽았다. 소련군은 ‘공식적으로는’ 노획한 독일군 판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전선에서 노획한 판터를 사용하는 일도 있었다.

끝까지 연합군을 괴롭힌 공포의 맹수

한편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연합군은 이 새로운 맹수에게 말 그대로 불벼락을 맞았다. 1944년 초, 판터는 이탈리아 안치오 전투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극소수의 판터만이 전투에 참가했기 때문에 연합군은 이 신형 전차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 결과는 그 해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다.

▶ 프랑스 전선에서 열차로 이동 중인 판터

연합군은 당초 판터가 극소수만 생산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이 되어서야 판터가 기갑 사단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 생산되었다고 판단을 바꿨다.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간 동안 3호전차나 4호전차를 독일군 주력 기갑병기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노르망디에 배치된 독일군 전차 중 1/3 이상이 판터였다.


    

30톤짜리 M4 셔먼 중형전차와 45톤에 달하는 판터는 같은 ‘중형’ 전차지만 체급부터가 달랐고, 원거리에서 소련의 중전차와도 맞짱을 뜨는 성능인 만큼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에게 판터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75mm 포를 달고 있던 미군의 M4 셔먼 중형전차가 전면에서 판터를 쏴도 도통 관통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 75mm 주포를 장착하고 있는 M4 셔먼으로는 판터에 이빨도 먹히지 않았다

미군의 M4 셔먼 중형전차가 판터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비교적 방어력이 약한 측면과 후면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판터는 덩치와는 다르게 최고 속력 46km/h를 찍는 기동력을 자랑했고, 주포의 명중률도 우수했기 때문에 판터 하나를 잡기 위해 셔먼이 줄줄이 터져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미군은 결국 76mm 포를 장착한 신형 셔먼 전차와 90mm 포를 장착한 M36 대전차 자주포를 동원해서 판터에 맞서는 수 밖에 없었다. 1945년 1월에야 90mm 포를 장착한 신형 중전차 M26 퍼싱이 유럽에 실전배치 되었다. 퍼싱은 단 한 방으로 티거와 판터를 격파하는 등 강력한 위력을 보였지만 이미 전쟁은 끝나가고 있었다.


   

영국군은 ‘티거’ 같은 독일 중장갑 전차에 대항하기 위해 M4 셔먼 중형전차에 강력한 위력의 17파운드 대전차포(76.2mm)를 장착한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 전차는 적어도 주포의 위력만큼은 판터 못지 않았다. 셔먼 파이어플라이는 노르망디에서 ‘티거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의 티거 중전차를 기습해 격파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 영국군의 셔먼 파이어플라이
▶ 연합군에게 격파당해 강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 판터

그런데 셔먼 파이어플라이는 장거리 명중률에 다소 문제가 있었고, 결국 ‘확실하게’ 판터를 처치하려면 일정 거리 내로 들어가서 교전을 벌여야 했다. 반면 판터는 1000m 까지는 90% 명중률도 가능하다고 할 만큼 주포가 정확했다. 그래서 노르망디에서 영국군 셔먼 파이어플라이는 매복해 있다가 진격하는 판터를 기습해 저지하는 식으로 운영되었고, 이는 나름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연합군도 소련군처럼 극소수의 노획한 판터를 사용했고, 연합군 전차병들에게도 판터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급과 수리가 어렵고, 몇몇 기계 결함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연합군 입장에서도 판터는 공방이 잘 갖춰진 아주 무서운 전차였다. 프랑스는 전후 독일에게서 보상으로 압수한 판터를 1947년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유명하지만 게임에는 잘 안 나오는 판터?

판터는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6천대 이상이 생산되어 동서에서 연합군과 소련군을 괴롭혔다. 강력한 성능과 활약 외에도 판터는 현대 '주력 전차(Main Battle Tank)' 개념의 선조로 꼽힐 정도로 전쟁사에 미친 영향이 크지만, 게임에서는 생각보다 만나기가 어렵다.


    

아무래도 같은 동물 친구(?)인 6호전차 ‘티거’ 중전차가 훨씬 더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느려 보이지만 단단한 방어력에 강력한 한 방을 지닌 6호전차의 특성이 게임에 잘 어울리기 때문 아닐까? ‘판터’가 등장하는 게임을 살펴보자.


    

판터 전차를 가장 잘 써먹을 수 있는 게임이라면 역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를 들고 싶다. 판터 전차는 독일군이 ‘생산’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차로 1과 2 모두에 등장한다. 친구인 6호전차 티거 중전차는 생산이 아니라 외부 호출로 따로 불러야 하는 방식이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1에 등장하는 쾨니히스 티거(왼쪽)과 판터(오른쪽)
▶ 적을 유린하고 있는 독일군 기갑 병기 3형제. 가장 아래가 4호전차, 왼쪽이 판터, 오른쪽이 티거1이다.

두 게임 모두 ‘판터’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원을 퍼먹지만, 그만큼 판터의 특징인 ‘전면이 단단하고 기갑전에 강한’ 특징도 게임에 잘 반영되어 있다. 대신 측후면이 약하고, 보병 무리 한 가운데에 무리하게 집어넣는다든가 하면 순식간에 터지는 판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문명4에 등장하는 판터

시드마이어의 ‘문명4’에서는 독일 문명의 특수 유닛인 팬저(Panzer)로 등장한다. 명성 그대로 다른 문명의 기갑 유닛을 상대할 때 50% 공격 보너스를 받으며 한 턴에 여러 번 공격할 수 있는 ‘전격(Blitz)’ 특성을 기본으로 달고 있다. 후속작인 ‘문명5’에서는 티거1 탱크가 팬저로 등장했다. 아쉽게도 ‘문명6’에서는 독일 문명의 특수 유닛이 잠수함 ‘유보트’로 변경되었다.

의외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는 판터가 별로 등장하지 않았다. 콘솔로만 나왔던 ‘콜 오브 듀티3’에 잠깐 등장했고,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에 등장했다.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에서는 소련군 캠페인 도중에 등장하는데 화염방사기가 달린 T-34-85 탱크를 타고 판터를 때려잡아야 한다. 달려드는 독일군 보병도 처치해야 하고 판터도 상대해야 하니 몹시 바쁜 미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기갑 장비를 다루고 있는 MMO ‘월드 오브 탱크’와 ‘워썬더’에는 독일군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워썬더’에는 초기형부터 후기형까지 다양한 판터와 구축전차 형태인 ‘야크트판터’까지 등장하는데 주포 위력도 괜찮고 기동력도 좋지만 후진이 매우 느려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슬픔(?)이 있다.

▶ 워썬더에 등장하는 야크트판터 지휘차량. 이 놈의 후진속도보다 사람 뛰어가는게 더 빠르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