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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게임의 만남, 바이오쇼크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 철학적 메시지 3박자가 완벽했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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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어바웃 작성일자2018.03.14. | 1,78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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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철학이라고 하면 재미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문학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철학이라 하면 유명한 책 제목이나 (말도 안 되는) 딜레마 같은 것만 떠오르는 게 사실이거든요.

▶ 그 놈의 딜레마 좀 제발 그만!

이렇다 보니 철학과 게임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에, 지루하기만 한 철학을 관련시킨다는 건 꽤 이상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게임 시나리오와 게임 평론에서 철학이 중요한 위치로 급부상하게 되었고. 이제는 철학적인 내용이 안 담긴 스토리를 찾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게임과 철학, 이 두 가지 단어를 통해 눈치 챈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갓겜연구소’ 이번 에피소드는 게임 시나리오의 깊이를 깊은 저 바닷속 수준까지 끌어준 ‘바이오쇼크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게임도 예술이야 예술!

2015년 기준으로, 총합 2500만장의 판매를 올린 ‘바이오쇼크 시리즈’. 2007년 첫 작품인 ‘바이오쇼크’부터, 2013년에 발매된 ‘바이오쇼크 인피니트’까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절한 역사와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절히 성공적인 판매량. 이렇게만 보면 마니아층이 두터운 게임 시리즈에 불과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바이오쇼크 시리즈’가 게임 업계에 불러일으킨 열풍은 게임의 역사에 크게 장식될 만 합니다. 저급한 대중문화라며 천대받아 오던 게임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큰 공로를 끼친 게임이기도 하며, 잘 짜인 세계관이 가지는 영향력과 컨텐츠를 21세기에 다시 한번 입증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 게임을 하며 보게 될 문장 대부분은 이념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바이오쇼크 시리즈’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철학에 있습니다. ‘바이오쇼크’는 기존 게임들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품에 철학적 요소를 잘 활용했고. 철학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도, 작중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경각심과 메시지를 ‘재미있고 쉽게’ 전달했거든요.

깊은 저 바닷속 심해도시, 랩처

▶ 소설 ‘바이오쇼크: 랩처’의 표지 겸 랩처의 모습. 수작이니 관심이 있다면 추천

‘바이오쇼크’는 바닷속의 심해도시 랩처와 랩처를 둘러싼 이념과 사람들간의 갈등을 게임이란 표현방식을 통해 생생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한때는 유토피아였을 침수되고 파괴된 랩처의 시설들. 스플라이서로 대표되는 부작용을 무시한 과학기술과 윤리 없는 향락주의. 경쟁만이 권장되는 광신적인 이념이 만들어낸 모습들은 플레이어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바이오쇼크’가 게임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자유방임주의로 표방되는 무한경쟁의 문제점? 소수에 의해 이끌어지는 이상은 절대 다수를 위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 극단적인 이상과 고집은 결국 파멸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만약 ‘바이오쇼크’가 스토리를 통해서 극단적 자유의지주의를 비난하기만 했다면, ‘바이오쇼크 시리즈’는 지금처럼 찬양 받지 못했을 겁니다. ‘카리스마 있고 인간적인 악당이 나오는 게임!’ 혹은 ‘게임 속의 도시 TOP’같은 곳에나 나오는 게 전부였겠죠. 

▶ 중간 보스(?)만 작품 분위기에 충실했던 그 게임

실제로 광기니, 심연이니 하며 철학적인 소재를 활용한 게임들은 많습니다만. 대부분은 캐릭터의 성격이 ‘철학적인 흉내’를 낸다거나. 명대사 같은 것만 남기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철학책에서나 볼법한 인용구와 단어를 써가며, 별의 별 충격적인 장면들을 보여줬던 게임들, 과연 철학적인 부분이 있긴 했을까요?

게임 플레이에 녹아 든 철학

결국 ‘바이오쇼크’가 호평을 받은 이유는, 겉만 번지르르한 인용구와 어려운 단어들로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겨서가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해야 게이머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게임이란 매체에 대한 높은 이해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랩처에는 과거의 영광에서 찾을 수 있는 찬란함과 광기와 폭력에서 만들어지는 무질서함이 공존하고 있다.

‘바이오쇼크’에서 주인공은 이미 황폐화되고 폭력과 광기만이 가득한 랩처를 탐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어드밴쳐 게임들이 다 그렇듯, 게임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사건의 진상과 숨겨진 베일을 파해지게 되죠.

   

어드밴쳐 게임의 특징인 진상의 조사와 탐험은 ‘바이오쇼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파괴되고 침수된 랩처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보단, 직접 겪는 쪽이. 스플라이서들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마주하며, 살아남기 위해 싸우게 되고. 랩처의 설립자 앤드루 라이언이 추구하던 자유방임주의의 모순된 모습들이 남겨진 기록물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은 더 없이 효과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글의 서두에 적은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철학과도 논지가 비슷합니다. 주장하는 바가 아무리 숭고하고 교육적이며 새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나 설득하는 수단이 부실하면 쉽게 공감하기가 어렵거든요. 

하지만 ‘바이오쇼크’는 랩처의 설립자 앤드루 라이언이 틀린 이유, 더 넓게 나가서 현실의 ‘자유방임주의’라는 이상에 경각심을 가져야 되는 이유를, 게임 속의 다양한 장소와 연출 그리고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그 주장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바이오쇼크, 그 이후

수 많은 명작들이 나왔던 2007년. ‘바이오쇼크’는 최다 GOTY로 선정됨과 동시에, 96점(PC, 44개의 평론기준. Xbox 360, 88개의 평론기준)이라는 절대적인 평가를 받으며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됩니다.

   

‘바이오쇼크’의 성공 덕일지. 시대의 흐름 덕일지. ‘바이오쇼크’를 전후로 게임 평론 문화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재미있는 플레이가 선사해주는 경험들은 이미 수 없이 증명되어 왔지만. ‘바이오쇼크’처럼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 그리고 (철학적) 메시지 3박자가 완벽한 게임은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이 이후로 게임 평론가 그리고 마니아 게임층은 ‘바이오쇼크’와 같이 ‘깊이 있는’ 게임을 갈망하기 시작합니다. 게임 산업의 발달로 평균적인 게임 플레이의 수준이 높아지고, 경력 있는 시나리오 라이터의 영입으로 스토리는 더욱 흥미로워지고 있지만. 이런 ‘깊이 있는 메시지’는 너무나 값진 것이고, 지금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 스포일러는 자제합시다.

그런 문화 덕에 가장 혜택을 많이 본 게임이 바로, 2012년에 발매된 ‘스펙 옵스: 더 라인’과 2013년에 발매된 인디 게임 ‘더 스탠리 패러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게임 모두, 게임이라는 매체 특성을 잘 살려 플레이어에게 강렬한 메시지와 생각할 거리들을 남겼던 게임이고. 이런 ‘깊이 있는’ 게임을 원하던 평론가들과 하드 코어 게이머들을 통해 입소문을 탔던 게임입니다.

인피니트: 심해에서 하늘로, 이상에서 신념으로

이후, 2010년에 발매된 ‘바이오쇼크 2’는 전작에 비교해 약간 섭섭한 성적을 내게 됩니다. 아무래도 전작만큼의 충격과 신섬함을 주지 못한 점이 크게 작용했겠지요. 물론 그와 별개로 전작에서 부족했던 게임성을 수정하고, 마스코트 캐릭터인 빅 대디를 플레이한다는 간지 때문인지(?), 게이머들에게서 인기는 여전했습니다.

▶ ‘The Bioshock Infinite we never got’, 예정에 없던 연기 탓일까?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수정된 채로 발매되었다.

출처 : Crowbcat · The Bioshock Infinite we never got

그런 기대 속에 공개된,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불러들이는 ‘테어’ 능력이 보여주는 연출. 심해의 랩처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 방식을 보여주는 공중도시 컬럼비아. 밝고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광신과 선민이 가득한 도시의 모습은 ‘바이오쇼크’ 그 이상의 게임이 될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예정에 없던 연기와 수 차례의 수정 끝에 발매된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익히 잘 알듯,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2013년에 큰 인기를 끌어, 모든 게이머들이’ 바이오쇼크 시리즈’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판매 성적 역시 폭발적이고 평론의 리뷰 점수도 호재였죠.

▶ 백인우월주의, 종교 광신, 파시즘. 이는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배경인 컬럼비아의 주된 신념들이다.

더 충격적이고, 되새기는 맛이 강한 스토리를 보여줌으로 입소문이 난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철학적인 부분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줘,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게임플레이와 스토리, 메시지의 3박자가 잘 어울러진 ‘바이오쇼크’와 달리.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게임플레이와 스토리가 어울러지지 않고, 어드밴처 성격이 줄어든 탓에 몰입감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이오쇼크’의 완성도를 기대하거나, 초창기 공개 트레일러를 기대하던 마니아층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바이오쇼크: 인피니트’가 달성한 흥행은 “바이오쇼크 시리즈를 6부작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2K 회장의 말을 실현가능 한 꿈으로 해줄 수 있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다음 번에 고치면 되는 거기도 하고요.

대량 해고 & 리마스터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게임 평론과 게이머들의 취향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바이오쇼크 시리즈’이지만. 구체적인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유로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개발사인 ‘이래셔널 게임즈’에서 대량해고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800명 가량의 인력이 해고 되었으며, 15명의 핵심 개발자만이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루머와 추측,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정황증거들이 커뮤니티에서 오가게 되었고. 소규모 개발사도 아니며, 훌륭한 작품들을 제작하던 개발사를 한번의 결정으로 백지로 되돌려버린 선택에 대해. 개발사인 ‘이래셔널 게임즈’의 공동 창립자 켄 레빈과 배급사 ‘2K’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실상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제작이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영원히 후속작이 안 나올 수 있다는 의미였거든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기 시리즈라면 꾸준히 나올법한 차기작 루머는 찾아보는 게 힘들 정도였고. 이런 결정에 실망하거나, 차기작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서 ‘바이오쇼크 시리즈’를 추억으로만 간직하는 게이머들도 늘어났습니다. 한때 게임 커뮤니티 최고의 마니아층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씁쓸함만이 남게 된 셈이죠.

그래도 ‘바이오쇼크 시리즈’가 ‘갓겜’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이오쇼크’와 ‘바이오쇼크 2’가 리마스터 유행에 편승하길 바랬습니다. 올해로 나온지 10년이 넘은 게임이라 하더라도, 이미 기본이 튼실한 게임들이니 말이죠.

   

허나 그런 기대 끝에 발매된 ‘바이오쇼크 콜렉션’은 문장 그대로 ‘유행에 편승’한 수준에 불과했고. 심지어 몇몇 이펙트는 원본보다 더 나빠지거나. PC판은 제대로 된 테스트 조차 하지 않고 발매한 문제로 오히려 과거의 명성에 먹칠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이오쇼크’를 뛰어넘는 게임이 나오길 바라며……

앞으로 ‘바이오쇼크’보다 더 뛰어난 게임이 분명히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 어떤 장르가 될지, 어디서 만들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게임산업의 발전을 고려해보면. ‘언젠가는 나오겠지’라는 추측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가 되더라도. ‘바이오쇼크’는 계속해서 언급되고, 회자되며, 비교될 것입니다. 오히려 ‘바이오쇼크’보다 더 뛰어난 메시지와 완성도를 지닌 게임이라면. 그건 ‘바이오쇼크’ 팬들이 더 좋아할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제서야 ‘바이오쇼크’를 이긴 게임이 나온 셈이고, ‘바이오쇼크’를 하며 느낀 충격 그 이상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두 손 벌려 환영할 일이거든요.

▶ 자신의 이념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악역은 단순한 악역들과 차별화 될 수 밖에 없다.

게임에 철학이 더해졌을 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를 증명해낸 ‘바이오쇼크 시리즈’는 이제 10주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법, 이미 ‘바이오쇼크’는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생각했지만.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1편의 박스아트를 찾아보자, 귓가에 희미한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도 랩처가 그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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