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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C 2017]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꼈으면" '레플리카 -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

조회수 2017. 9. 18. 15: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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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개최된 BIC 2017 컨퍼런스의 키노트 강연을 정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뭔가 의미를 담고 있는 게임은 잘 안 맞는다. 개발자가 게임에 만들어 둔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는 건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실을 풍자하는 게임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즐기려고 하는 게임인데, 내가 처해있는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는 보고 싶지 않았다. 스트레스만 받으니까.


15일 부산인디게임커넥트페스티벌 2017에서 열린 컨퍼런스의 키노트 강연 '레플리카 -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은 딱 그런 게임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눈을 떼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라면서 들이미는 게임. 어떤 의미에서는 '불편한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디개발자 SOMI는 왜 이런 게임을 만들게 됐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디개발자 SOMI


* 본 기사는 키노트 강연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화자의 입장에서 서술했습니다.

* 경어는 생략했습니다.


0. 서론

키노트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큰 무대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매우 긴장된다. 이른 아침인데도 외국에서까지 내 얼굴 보겠다고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부산에서 혼자 게임 개발을 하고 있는 SOMI다. 2014년부터 유니티를 배우며 게임에 입문했다. 게임과 무관한 직장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즐기고 좋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큰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게임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래빗홀3D라는 게임을 만들었고, 두 번째 게임이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딸을 구하는 아버지의 여정을 그린 레츠놈이었다. 작년에는 레플리카를 출시했고, 올해엔 리갈던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



-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 

이 주제를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나는 여기 나온 게임들을 내가 생각하기에 정치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게임의 여러가지 사례를 알아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어떤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로 이용될 수 있는 측면을 살펴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또, 대표적인 정치적인 게임에 들어있는 정치적 메시지, 함의를 생각해보고 그것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나는 게임학과 교수도 아니고, 게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한 사람의 개인 개발자로서 그런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햇을 때는 게임학 개론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실질적으로 느꼈던 부분들, 치밀한 각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하는 건 두 가지다.


레플리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그 메시지로 플레이어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이 레플리카가 어떻게 정치적 매체로서의 역할을 주었나하는 것이다.

레플리카는 플레이어가 주인을 알 수 없는 휴대전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독특한 게임이다. 게임에는 총 12개의 엔딩이 있고, 정부 기관의 대규모 감시 체제, 파시즘, 언론 통제와 개인 훔쳐보기 본능, 전체주의, 죄수의 딜레마 등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1. 테러 방지법과 리틀 브라더

나는 게임을 만들 때 이런 생각으로 만든다.


게임은 나를 전달하는 매체다.

게임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겪은 개인적인 경험, 내가 살았던 시대적인 상황이 합쳐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레플리카라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살았던,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한다.



- 나의 나라

국적은 밝히지 않겠다. 이게 내가 살고 있는 나라였다.


레플리카가 만들어질 무렵, 당시 작가의 나라는 대통령 선거 후보자에도 등록되지 않았던 인형사가 정부 기관을 꾸리고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21세기 라스푸틴의 재현이라 불리는 상황 속에서 인형사는 당시 최고 정부 고위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꼭두각시에게 지시를 내린다.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계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좌편향이 매우 문제다."


때문에 정부기관과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야권 인사를 지지한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됐고, 심각한 손해와 탄압, 억압을 받았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전 민주 대통령에 대한 옹호를 드러낸 이미지에 나온 영화에 도움을 줬던 한 기업의 대표는 퇴진 압박을 받았다. TV에서도 정치 비판 코미디를 찾기 어려워졌다.


또,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는 정부에서 티켓을 모두 수거하거나 악의적 여론을 조성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정부나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금기시되는 시절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요즘은 이에 대해 많은 매체를 통해 보고 듣다보니 당연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듯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불과 몇 일 전에 일어난 것처럼 선명하게 실감난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여당은 테러방지법을 발의한다. 국가기관이 테러가 의심되는 사람의 통신 기록, 개인정보, 사상, 신념, 위치 정보와 기록까지 모두 수집, 관리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 테러방지법이었다.


당시 야당은 이 내용 자체가 개인에 대한 억압, 정치적인 폭압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192시간을 기록한 필리버스터를 감행한다. 국회에서 정부 야당이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했던 것이다.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연단에 섰던 야당 의원 중 한 명은 책을 가지고 나와서 읽었다. 그 책이 바로 코리 닥터로우 저술의 '리틀 브라더'라는 소설이다.



- 리틀 브라더

리틀 브라더는 한 소년이 근미래의 샌프란시스코에서 겪는 사건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국토안보부에서 전체주의와 대규모 감시 체제로 사람들을 폭압하는 상황, 한 평범한 소년이 테러 위험 인물로 지명된다. 소설은 평범한 소년이 고문과 수사를 겪는 과정에서 정부와 정보 기관을 상대로 싸우는 과정을 그린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참담했다. 이 소설이 대한민국...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안되는데, 나의 나라의 현실보다 더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오히려 이 나라의 상황이 소설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현실이 근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인 곳이 이곳이다."


영화가 개봉됐을 때 한 영화사 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누군가는 국회 연단에 서서 10시간이 넘도록 테러 방지법의 위험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는 거리에서 시위를 했다.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노래로 그 위험성을 알리려 했다.


그러면 게임을 만드는 내가, 게임 작가로서 내가 해야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레플리카의 메인스토리를 구성했다.

레플리카에서 플레이어는 국가안보부에 감금된 17살 고등학생이다. 플레이어는 친구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고, 그 친구는 이미 테러위험분자로 지정됐다. 국가안보부의 요원은 플레이어에게 휴대전화를 뒤져 친구가 테러범이라는 증거를 찾으라고 강요한다. 페이스북 댓글, 공유를 한 흔적, 문자 송수신 기록 등은 모두 이 친구가 테러범이라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플레이어는 선택할 수 있다. 국가안보부 요원이 이야기하는 대로 친구를 테러범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내가 테러범이 될 위험을 감수하고 부당한 압박에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이런 구조의 게임을 만들면서 플레이어가 이야기의 상호작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게임이라는 매체의 장점이라 생각했다. 다른 매체에서 찾기 힘든 이 특징은 플레이어에게 도덕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이에 직면한 플레이어는 선택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중압감과 책임감, 때로는 죄책감을 느낀다.


플레이어는 게임 상의 인물이 고뇌하는 걸 느끼고, 실제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을 때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레플리카에서 2차 세계대전 전범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변명과 같은 선택을 원한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하고, 반응하고, 거부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가 단 한 번이라도 이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길 바랐다.


그리고 단 한번이라도 그런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이 게임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2. 파시즘의 전조

테러방지법, 파시즘, 전체주의 등을 담아내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야기해야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우리 사회를 법치주의를 가장해 개인 자유와 사상, 신념을 억압하는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가 정보 기관의 해킹프로그램 구매다.

2015년 해킹팀이라는 악명 높은 이탈리아 사이버 무기 판매업체의 이메일과 고객 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그리고 최상위 고객 명단에 한국이 포함돼있었다. 이 내용은 리틀 브라더의 한국어판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며, 사실이다.


2015년 당시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당시에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언론은 이미 정부 비판 기능을 상실한 상황이었고, 국가정보기관은 이 프로그램 도입이 국내 시찰용이 아니라 북한 감시용이었다고 변명함으로써 상황이 일단락됐다.

나는 이렇게 실제로 있었던 일을 게임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게임에는 이 문제와 관련된 기사들이 그대로 실려있다. 기사 밑에는 댓글도 있는데, 이 역시 당시 댓글을 그대로 옮겨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게임에 전혀 이질감 없이 녹아들었다.

다른 것도 많다. 대표적인 게 국정역사교과서 논란이다. 당시 정부는 대통령 지시로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를 모두 국정교과서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대한민국의 현재 역사 교과서는 99.9%가 좌편향돼있고, 국정교과서 제작에 반대한느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볼 수 없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이후 저자를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 국정교과서는 역사 소설이 됐다. 그들은 독재정권을 미화하고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부역했던 고위 공직자들의 행적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지 수순을 밟았다.


게임에서는 이 내용을 이렇게 담아보려 했다. 플레이어와 그 친구들이 정치적인 단어들, 사상의 다양성을 교육받지 못해서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국가편찬교과서에 들어있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여주며 위험성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게임에서는 페이스북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만으로 플레이어의 친구가 구속됐다. Gmail과 텔레그램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테러 위험 인물로 지목된다. 이 내용도 당시 작가가 살고 있던 나라의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넣은 것이다.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관련된 CNN보도가 있었다. 트위터 리트윗을 했기 때문에 구속됐던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또, Gmail을 썼기 때문에 자료 은폐 위험이 있다고 구속 영장이 청구됐던 적도 있다.


혹시 여러분 중에 Gmail을 쓰는 분이 있는가? 테러 용의자다.

게임의 리뷰를 읽어보면 이런 리뷰가 많았다.


"이거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

"너무 만화 같아."

"너무 유치해."


그리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게임의 내용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통렬하고 처절한 현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싸구려 디스토피아 만화에 나오는 그저 그런 내용이라고.

정말 세부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지지만 이쯤에서 끝내려 한다.

왜냐하면 이건 녹화되고 있고, 나는 온건적이고 보수적인 평범한 어용 시민이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이 어떻게 창작됐는지에 대한 배경을 이야기했을 뿐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부 정책을 부정하려했던 건 아니다.  


나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애국자다.




3. 출시, 그 이후

개발자인 내게 보이는 건 몇 개의 숫자 뿐이다. 판매량이나 매출, 리뷰 갯수. 그 외에는 일부 기사의 댓글이나 플레이어가 달아둔 몇 개의 코멘터리가 전부다. 따라서 이를 해석하는 건 사견이 많이 들어갈 수 있어서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나열하려 한다.

레플리카의 한국어 버전이 나오고 반응을 얻으면서 국내의 모 극우 사이트에서는 레플리카를 이렇게 표현했다. 좌익 빨갱이 게임. 즉, 북한을 옹호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빨갱이가 만든 게임이라는 것이다.  


리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레플리카 개꼴통게임이넼ㅋㅋㅋㅋ. 만든 놈이 뭐하는 놈인지 알고 싶다."


여기서 포인트는 '만든 놈이 뭐하는 놈인지 알고 싶다.'였다.


나는 이 리뷰를 읽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온 내 얼굴과 가족 사진 등 내 신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삭제했다.


두려웠다.  


한국어 버전을 만들면서, 그리고 이런 게임을 만들면서, 사실 이 부분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이런 반응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를 실제로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나는 매우 두렵고 매우 혼란스러웠다.

스팀의 리뷰 중에는 이런 게 정말 많았다.


"판사님, 이 게임은 고양이가 플레이했습니다."


이런 것도 있다.  


"집 앞에 마티즈가...읍읍..."


외국에서 오신 분들은 이게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지 모하겠지만, 한국인들은 사건을 아니까 알 것이다.


물론 이것들을 당시 사회에서 유행하던 유행어 정도로 짚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한 시대에서 유행하는 유행어와 농담들에는 반드시 그 당시 대중의 잠재 의식이 포함돼있다는 것을. 막연한 두려움이 농담 속에 있는 것이다.

이외에 게임에 대한 호의적 평가와 걱정, 관심도 많았다.


미국의 언론사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에서는 나를 '정치 운동가(political activist)'라고 소개했다. 리뷰 중에는 제작자가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되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면서 내 건강과 안위를 걱정해주기도 했다. 한국의 진보 신문 중 하나인 한겨례에서도 2016년을 빛낸 최고의 게임으로 레플리카를 선정했고, 본인을 전직 CIA 스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SNS를 통해 내 게임을 홍보해줬다.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나는 아주 겸손하다. 또, 경제적인 가치, 상이나 돈, 이런 것에 현혹되지 않는 순수한 예술가다. 그래서 레플리카가 어떤 상을 받았고 몇 위를 했고, 매출이 어느 정도고, 얼마나 인기있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이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있었던 일을 나열했을 뿐이다. 여러분이 레플리카가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알아야 하니까.


나는 애플 앱스토어 피처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유료 게임 1위를 했다. 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게임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다.


스팀스파이에 따르면 레플리카는 중국과 한국에서 압도적인 판매를 기록했다. 사실 중국 매출이 이정도로 나올 것이라 상상하진 못했다. 어떠한 홍보도 하지 않았고, 시장 진입 방법조차 몰랐기에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레플리카가 정치적인 게임인 만큼, 그 반응은 정말 놀라웠다. 스팀스파이 수치에는 적게 나오지만 터키에서의 반응도 남달랐다. 그들은 계속해서 당시 자기들의 정치 상황과 레플리카를 비교하며 이메일늘 보내왔고, 심지어 레플리카의 팬사이트를 만들어 게임을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싸구려 디스토피아 만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통렬한 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과 경험은 모두 상이하다.

그런데도 이런 게임들에 공감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지점을 이끌어내는 매체가 있다면, 그리고 게임이 이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레플리카 출시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레플리카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촛불시위, 전 대통령 탄핵, 블랙리스트 관련자 구속, 그리고 새로운 민주 정부의 수립까지. 우리는 정말 급변하는 역사 현장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당일, 나는 레플리카를 무료로 공개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앞서 보여준 레플리카에 관한 성과에 대한 이미지 중 맨 오른쪽에 있는 건 탄핵 당일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다. 탄핵 당일, 모든 단어들이 탄핵과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거기에는 레플리카도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이 탄핵을 축하하면서 레플리카를 탄핵의 축배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관점과 생각과 사상을 담은 내러티브가, 게임이라는 매체를 정치적인 매체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격동의 역사 현장에서, 내 게임이 정치와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걸 느꼈다.




4. 정치적 매체를 만든다는 것

정치적이라는 건 국가 또는 정부의 운영과 그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국가 운영을 포함해 개인과 집단의 상호작용, 그 안에 내포된 권력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은 그 권력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사회와 민족, 인간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할 방향이고 내가 추구해야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은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내기 가장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5. 아직도 하고픈 이야기가 많다.

사실 레플리카를 만들고나서 대사가 하나도 없는 리듬게임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야기하고 싶은 요소가 많다. 그래서 아직은 조금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고 있는 게 '리갈 던전'이다. 콘셉트는 재미없는 게임, 그리고 본격 수사서류 작성 격무 시뮬레이션을 표방하고 있다. 나는 지루한 게임을 좋아하고, 지루한 게임이 생각의 공간을 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리갈 던전에서 플레이어는 경찰대학을 갓 졸업하고 형사팀장에 발령된 신임 경찰이다. 여러분이 할 일은 사건의 수사나 단서를 찾아내는 게 아니다. 수사종결된 사건의 수사 서류를 읽고, 판례를 검토하고 적용 법조를 찾고, 적용 법조의 구속 요건에 맞는 행위를 긁어서 사건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은 피의자를 기소할지 불기소할지 결정해야 한다.


지루하지 않은가?


기소와 불기소를 결정하기 위해 검토하는 과정에서 단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바로 점수다. 왜냐하면 성과주의는 조직의 경제성과 능률, 경제성을 극대화하는 최상의 제도니까. 게임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한동안 크게 이슈가 됐고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경찰'. 이 문제가 대두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절도범을 잡으면 2점, 살인범을 잡으면 15점을 준다. 이런 점수들은 승진과 급여 평가의 주 원인이 된다. 상명하복의 조직에서 개인이 받은 점수는 그가 얼마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피해자는? 그리고 범죄 예방은? 그들이 그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게임에서도 플레이어들은 여러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여러분의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면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게임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6. 마무리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 생각과 관점을 담은 이야기를 담은 실험적인 게임을 많이 만들 것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발표 경청해주셔서 감사하다.


키노트 강연이 끝나고 나서 바로 게임을 구입해 플레이해봤다. 그리고 인디게임 개발자 'SOMI'가 키노트 강연에서 이야기했던 '책임감'과 '죄책감'을 어느 정도는 느껴볼 수 있었다. 왜 '어느 정도'였냐면, 세상이 이전보다 조금은 더 좋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레플리카를 플레이해 본 이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이번 강연을 접하는 순간까지도 플레이하지 않았던 이도 있을 것이다. 이번 강연은 양쪽 모두에게 의미 있는 강연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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