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관계 맺기가 어려워요.."

조회수 2018. 5. 28. 10: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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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사연 100책
100사연 100책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과 사연.
그 사연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깊은 관계. 즉 친밀한 관계가 맺기 어려워집니다. 또 어려워질수록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가 않아집니다. 인턴이긴 하지만 사회생활은 잘하고 있는 편이고 나름 인정도 받고 제 일에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렇게 친했던 고등학교 때 베프들도 만나고 싶지 않고, 이야기조차 하고 싶지 않네요. 귀찮기도 해요. 다른 지인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인지 점점 애인을 사귀는 것도 어려워지더군요. 좋은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 20대 중반 여성 바나나반하나 님
이상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가족 이외의 관계는 대부분 '필요'에 의해 시작되고, 필요의 소멸과 함께 끝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을 하고 관계를 지속한다는 얘기예요.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이나 주목하는 주제를 이 생각의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관계' '처세' '~하는 방법'과 같은 책이 끊임없이 나오고 또 읽히고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경향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지난해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혼자' '미움' '고독'과 같은 제목의 책이 늘었더군요.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 깊은 관계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만한 사회생활, 적절한 자부심, 얼마간의 귀찮음. 밖에서 볼 때에는 특별히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이거든요.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변화시키고자 하는 건가요? 이 대답은 스스로에게 들려줘야만 합니다.
친밀한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
'파트리크 쥐스킨트'<비둘기>입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괴짜로 이름난 작가입니다. 상을 주겠다는 것조차 마다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죠. 그의 작품에서도 작가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세상에 다가가지도 않고, 세상이 다가오는 것도 거절하지만 그럼에도 고독을 느끼고, 고독으로 신음하지요.

하지만 그는 괴롭거나 불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가 '좋아서' 세상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비둘기>의 주인공은 파리에서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는 조나단 노엘이라는 남자입니다. 그에게는 친구도 가족도 없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가면 편안히 쉴 수 있는 작은 방 하나가 있어요. 그에게는 이 방이 삶의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방문 앞에서 비둘기 한 마리와 마주칩니다.
이 작품은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한 마리의 비둘기를 목격한 그날 하루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노엘의 혼란과 고통, 그리고 결심들이 담겨있어요. 왜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평생의 목표였던 집과 목숨까지 버리려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이 책을 추천드린 이유는 이 책이 관계 맺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에요. 관계의 시작 혹은 주체는 언제나'나'입니다. 관계의 외부적인 요인을 살피고, 기술을 익히는 것 역시 무의미하지는 않을 거예요.
노엘에게는 불행한 과거가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사라졌고,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캐나다로 이민을 갔으며, 결혼해서 자신의 아이를 가졌던 아내는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람이 나서 도망쳐 버립니다. 그가 어떻게 바꿔볼 수 없었던 상황,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커다란 시련과 아픔이 됐을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거예요.

다른 어떤 것도 바라거나 꿈꾸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작은 방 하나만으로 만족했던 그에게 마치 자신을 거부하듯 방 문 앞을 가로막고 있던 한 마리의 비둘기에 왜 그토록 깊은 절망을 느꼈을지 그의 불행했던 과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은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보다 수월하게 문제의 해결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둘기> 속에서 급기야 자살을 결심했던 노엘은 비와 함께 천둥이 치는 밤을 보내고 난 후 어쩐지 한 번 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 이상 비둘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지요. 단지 하룻밤의 시간을 넘긴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겁니다.
어쩌면 지금 고민하고 계시는 관계의 문제는 얼마 간의 시간이 필요한, 단순한 시간의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지금까지의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라요. '필요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만나는 진정한 의미의 깊이 있는 관계를 원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어요.

삶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씩 멈춰 서기도 합니다. 스스로 멈추기도 하고, 외부의 영향으로 멈춰 세워지기도 하지요. 그런 순간이 어색하고 당황스러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들을 잘 넘긴다면 조금 더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요. 앞으로 만나게 될 소중한 인연 사람들과의 관계를 응원합니다.
글 | 플라이북 에디터  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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