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일본을 가지고 놀았던 조선청년의 실화!

조회수 2018. 3. 7. 16: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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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박열 편 (Anarchist from Colon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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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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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제 강점기에 아나키스트로 활동하던 '박열'이라는 조선 청년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아나키스트들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이념으로 제국주의의 폭력성에 대해 분노하고 투쟁했었는데요. 민중의 평등, 권력과 폭력의 부당성에 대해 자신들의 사상과 이념을 토대로 투쟁했던 이들이 바로 당시의 아나키스트였습니다.

바로 그 당시, 일본 여성이자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는 청년 조선이라는 잡지에서 박열이 쓴 시 ‘개새끼’를 읽고 그의 신념에 반해 동거를 제안했고, 두 사람은 함께 불령사라는 아나키스트 단체를 만들게 되는데요.
그러던 1923년 9월, 일본 관동지역에서는 진도 7.9 규모의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40만 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집과 가족을 잃은 일본 국민들의 원성이 심해지자,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으며, 조선인의 저주 때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불령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한다는 공식 발표와 함께 계엄령까지 선포해버렸습니다.
급기야 계엄령을 선포한 일본 내각이 불령선인들을 마구 잡이로 잡아들였고,
무고한 조선인들이 학살당하는 ‘관동대학살’ 이 일어나자, 어찌된 일인지 박열은 후미코와 함께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렇게 3일 만에 무려 6천여 명의 조선인이 살해당하자, 일본 내각의 미즈노 내무대신은 여론의 관심을 돌릴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고,
일본에게는 대역죄인이지만 조선에게는 영웅이 될 만한, 박열을 지목하게 됩니다.

한편, 자신을 이용하려는 미즈노의 속셈을 눈치 챈 박열은 사형을 당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해,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재판에 나서게 되는데요.
하지만 검사 다테마스와의 심문 과정에서 박열은
"밥이 너무 적은 것은 나를 모독하는 것이다", "연인 후미코와 함께 어머니께 보내드릴 사진을 찍고 싶다.", "‘재판에서 조선말을 쓰겠다." 등
기상천외한 요구 조건으로 일본 제국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과연,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남은 박열의 재판에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을까요?

일본 제국을 가지고 놀았던 조선의 불량 청년 박열의 실화를 담은 영화, <박열>의 개봉일은 2017년 6월 28일입니다.
실제 영화 장면들은
아래 페이스북 영상,
또는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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