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사라지면서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백반집으로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를 찾듯, 나는 집 앞 백반집에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노부부가 열무를 다듬고 있다.
“할머니, 김치찌개요.” 하고 자리잡으면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가 생선부터 꺼내 굽는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편이라 내게 눈인사만 건네고 열무를 다듬는 데 열중한다.
두 분이 마주 앉아 열무를 다듬는 모습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고, 행복해진다.
어느새 할머니가 쟁반을 들고 나온다. 명란젓과 전, 방금 구운 고등어와 직접 담근 겉절이다. 할아버지는 고기가 푸짐하게 든 김치찌개 뚝배기를 직접 들고 온다. 할머니가 손을 델까 봐 걱정되는 마음 때문이다.
밥을 먹기 시작하면 할아버지는 물을 가져다주고 간다. 나는 부러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는다. 누가 떠다 주는 물을 마시는 아이처럼 아무 말 없이 받아먹고 싶어서다.
다 먹을 즈음 할머니가 묻는다.
“더 줄까?”
“괜찮아요.”
“일은 어때?”
“새로 옮겼는데 전보다 나아요.”
내가 일어서면 두 분은 꼭 문 앞까지 배웅 나온다.
“더 먹지. 부족하지 않아?”
한 번도 음식을 더 먹은 적 없는데도 꼭 두 번씩 물어본다.
“배불러요. 잘 먹었습니다. 또 올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사라지면서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엄마가 사라진 뒤로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대신 집 앞에 있는 백반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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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울시 중랑구에서 이호진 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