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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넌 이 일에 안 어울려. 안 되겠다. 네 아빠지만 너를 해고해야겠어."

조회수 2020. 1. 6. 12: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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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아버지는 내게 해고 통보를 했다. 내쫓기듯 일터를 나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
랐다. 예전에 해고 통지를 받을 때와는 다른 아픔이었다.

두 번의 해고

회사 사정이 심상치 않은 건 진즉에 눈치챘건만 상황은 예상보다 더 빨리 나빠졌다. 회사는 하루아침에 부도가 났다. 나는 일자리를 잃고 밀린 월급도 받지 못했다. 삶의 의욕이 사라져 갔다. 


‘에라, 될 대로 되라지!’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간 나는 밤늦도록 컴퓨터 게임을 하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쯤 일어났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니 몸과 마음이 나태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지켜보는 부모님은 얼마나 속상할까?’ 


더 이상 지금처럼 지내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 날, 알람에 맞춰 4시 30분에 일어났다. 잠시 후 거실로 나온 아버지가 놀라 물었다.


“왜 일어났어? 아직 새벽인데?”

“나도 오늘부터 아빠랑 같이 출근하려고!” 


아버지는 무조건 안 된다며 퇴짜를 놓았지만 결국 내 고집을 못 이기고 허락해 주었다.


“그럼 하나만 약속해. 속상한 일 생겨도 절대 화내거나 싸우지 않기다!” 


들뜬 마음에 밥 한 공 기를 뚝딱 비우고 일터로 향했다.

 

“오늘부터 우리 딸도 일하기로 했으니 다들 잘 가르쳐 주라고!”

그런데 페인트칠을 맡긴 집주인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모두 밖에서 집주인을 기다려야 했다. 작업복 차림으로 추위 속에서 네 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칠하는 동안 물건에 페인트 안 묻게 조심하고!”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신신당부한 뒤 내게는 낮은 틈새를 칠하는 쉬운 일을 맡겼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허기진 배를 채우러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주인이 다짜고짜 문전박대를 하는 게 아닌가.


“재료가 떨어져 음식을 못 만들어요. 그만 나가 주세요!” 


“뭐 이런 경우가……!” 

하며 따지려는 찰나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곤 편의점으로 뛰어가 먹을거리를 사 들고 왔다. 우리는 한적한 거리에 앉아 빵과 우유로 점심을 때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잠 쫓으며 일터로 나간 아버지가 여태껏 이런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 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아무리 봐도 넌 이 일에 안 어울려. 안 되겠다. 네 아빠지만 너를 해고해야겠어.” 


보다 못한 아버지는 내게 해고 통보를 했다. 내쫓기듯 일터를 나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예전에 해고 통지를 받을 때와는 다른 아픔이었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을 참기 위해 무릎에 놓은 작업 가방을 세게 끌어안았다. 


몸에 밴 페인트 냄새 탓인지 주변 사람들이 찡그린 얼굴로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하는 수 없이 다음 역에서 내려 플랫폼 구석진 의자에 앉아 가슴을 치며 울었다.


아버지는 늦은 밤에야 퇴근했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을 보이기 싫어 감기 몸살이란 핑계를 대며 꼼짝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 무언가를 책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딸이 반나절 일한 돈이다. 이거 마시고 푹 자거라!”


원기 회복제 한 병과 오만 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품삯은 아버지의 일당을 나눈 것이었다.

 

자식은 부모에게 평생의 짐이지만 부모는 그 짐을 절대 땅에 내려놓지 않는다. 


“힘들다, 버겁다.” 라는 말 대신 “힘내거라. 사랑한다!” 

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가끔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지? 나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날을 떠올린다. 


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아버지를 보며 또 한 번 용기를 얻는다. 내일은 더 잘 살아 보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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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울시 성북구에서 정선미 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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