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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의 집 이야기 5편 '내 집을 내가 그리면 안되나'

조회수 2019. 10. 12.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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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의 집 이야기

양성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064-751-9151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이 꿈인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으로 자기 집을 가졌을 때, 그 느낌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지어진 집을 매입할 때에도 그러한데, 자신과 가족이 살 집을 직접 구상하고 짓는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어 잠도 못 이룰 지경이 됩니다.


자신과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하기로 하고 자금 계획을 세우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어떤 집을 지을까’하는 구상입니다. 그 구상이 바로 건축설계입니다. 숙원인 집을 짓는데 건축사에게 알아서 설계해 달라고 아예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만난 의뢰인들은 대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생각한 집을 그려서 갖고 왔습니다. 저는 아무리 서툰 그림이라도, 그 속에는 건축사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 잘 표현해서 건축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의뢰인의 의무입니다. 그렇다고 평면과 입면을 그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도면으로 그리는 기술적인 작업이야 당연히 건축사에게 맡겨야겠지요. 의뢰인은 건축사에게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자기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에 대한 구상은 먼저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노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걱정이라든가, 대지가 차도와 가까워서 애들 안전이 걱정된다든가, 또는 주방은 거실에서 잘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염려와 바람을 정리하는 것이지요. 건축사가 이러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점쟁이가 아닌 바에 의뢰인이 원하는 집을 설계하기란 사실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를 최대한 정리해서 건축사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예쁜 집을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상의 맘에 드는 집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설계를 그처럼 해달라고 종종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곤란을 적잖게 겪습니다. 왜냐하면, 외관은 대부분 내부 공간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집을 설계할 때 외형보다 평면 구성을 먼저 고민합니다. 자신과 가족의 형편에 따라 평면 구성이 달라지는데, 그에 맞는 것을 인터넷으로 찾기란 어렵습니다. 집의 설계가 창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제각기 삶의 패턴과 가족 구성 그리고 취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건축사의 취향도 다 다르다는 점도 한몫을 합니다.


스스로 자기 집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을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집은 방과 거실, 욕실과 같은 단위 공간을 조합한 결합체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에게 필요한 단위 공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체크해야 합니다. 그것을 스페이스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보기 좋은 공간이라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만들어서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면 안 되겠지요. 따라서 처음에는 공간에 대한 환상을 고려하지 말고 필요한 단위 공간의 최소한의 크기를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몇 평보다는 가로 몇 미터에 세로 몇 미터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생각이 좋습니다. 면적은 필요한 폭과 깊이로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이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복도나 계단과 같은 공간들이 덧붙으면서 실제 공간은 더 커집니다. 공간을 세부적으로 디자인하다 보면 초기 스페이스 프로그램보다 넓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세부적인 계획은 건축사와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건축사의 도면 그리기는 생각을 수치화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 중에서 숫자처럼 객관적인 약속은 없습니다. 건축사는 건물의 모든 부분을 숫자로 표현합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유곡선도 그것을 정확하게 의도대로 만들게 하려면 결국 수치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주 피곤한 일이지요. 그런 피곤한 일까지 의뢰인이 익힐 필요는 없겠지요.

원하는 공간 제시 예
필요한 실의 면적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개별로 그려가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수치는 가능하면 중심선 치수로 생각하되, 그러지 못할 때는 안목으로 생각했음을 건축사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직접 도면을 그리거나, 드물게 모형까지 만드는 의뢰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풍부한 꿈들이 사라지고 재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도면과 모형과 같은 테크닉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정작 중요한 공간에 대한 느낌이나 질감에 대한 생각 그리고 필요한 공간을 유용하게 얻는 방법에 대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이 과정은 건축사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설계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스스로 할 일은 무엇일까요? 건축사에게 주문할 자기만의 꿈을 꾸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부엌은 어떤 느낌이면 좋을까? 좀 따뜻한 분위기, 아니면 소란스럽게 떠들 수 있는 곳, 아니면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요리에 집중할 수 있는 곳? 안방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창문을 열었을 때 무엇이 보이면 좋을까, 침대를 들여놓을까, 서재를 넣을까, 내가 꼭 갖고 싶은 특이한 공간은 뭘까? 이런저런 생각을 메모하듯이 적읍시다. 자신과 가족이 갖고 싶어 하는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금의 어린아이가 자랐을 때 어떤 공간이 필요할지도 생각합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도면으로 그리지 말고 수필을 쓰듯이 차분히 적으면 좋습니다.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건축주가 그린 구상안. 지금 가지고 있는 가구의 치수를 모두 메모해서 새로 지을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집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섣불리 다른 집의 평면을 카피하지 않기 바랍니다.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스스로 그리지 않고, 무의미하게 인상적이고 좋아 보이는 공간의 사진을 잔뜩 가지고 오는 의뢰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맘에 드는 이성이 아무리 많아도 결혼은 선택한 단 한 사람하고 하듯이 마음에 드는 모든 분위기를 다 누릴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자신이 취하고픈 단 하나의 공간 느낌이 무엇인지 숙고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마트에서 쇼핑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잡지를 오려서는 결코 원하는 집을 그려나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집의 평면 구성을 참고하고 멋있는 입면들을 분석하는 일은 건축사가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늘 그런 일을 해 왔거든요. 의뢰인은 다른 사람의 집을 기웃거리기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집을 관찰하고, 그것을 건축사에게 고백하듯이 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살 집인데, 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려주지 않나요?”이런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건축사는 사실 의뢰인에게 있어 도구와 같은 존재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집을 대신 그려주는 도구이지요. 하지만, 건축사는 생각하는 도구라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 안 됩니다. 의뢰인의 요구대로 그려주지 못할 때는 분명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잘 들어 보기 바랍니다. 설계는 결코 의뢰인 혼자서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건축사가 항상 올바로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건축사는 최소 십수 년 집을 그리는 일로 살아온 전문가입니다. 집을 디자인하고 지을 때 발생한 많은 문제에 대한 경험을 일반인보다 많이 가지고 있지요. 그 경험을 존중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집을 요구하기 바랍니다. 집을 그리는 과정은 항상 건축사와 의뢰인이 함께해야 합니다. 물론, 혼자만의 판단으로 그리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왜, 상대방이 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까?’화가 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후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도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 집을 자기가 그리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그리다 보면 나중에 발견한 단 하나의 실수로 서너 달 고민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합니다. 흔하게 발생하는 실수 중 하나는 이층집을 구상하면서 계단 면적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결국, 그것을 나중에 알고 법규에 맞게 면적을 조정하다 보면 멋있게 꾸미려던 특별한 공간을 없애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또 흔한 실수는 사는 집의 화장실을 줄자로 재니 1.5m 폭이면 되겠다 생각하고 계획을 잡는 경우입니다. 1.5m의 폭은 벽체 중심선으로 따지면 1.7~1.8m 폭으로 벽을 세워야 가능한 치수입니다. 따라서 도면을 작성할 때 벽체 두께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몇 달을 고민해서 그린 도면이 의미 없는 휴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본인이 원하던 집이 20평 정도면 되는 줄 알았는데 25평 정도로 늘어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단순한 이유가 처음으로 도면을 그리는 일반인에게 대단히 낯선 작업일 수 있으며, 또 그런 단순한 오류가 결국 계획을 전부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으로 바뀝니다.


설계하다 보면 의뢰인이 바라던 많은 꿈을 포기하는 경우를 봅니다. 공사비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거나, 필요한 공간의 총면적은 30평인데 25평 이내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정리되지 않은 계획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축사는 어쩌면 그런 꿈들을 냉정하게 포기시키는 일을 많이 합니다. 의뢰인은 대개 자신이 보유한 자금보다 더 많은 것을 꿈꿉니다. 그래서 꿈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중에 포기하지 않고 실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바람과 여건상 포기하는 게 나을듯한 일장춘몽一場春夢을 선별하는 것도 건축사의 주된 일 중 하나입니다. 건축사가 포기하기를 권유하는 꿈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 꿈 중에는 분명 조금씩 다듬어 가면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집의 모습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을 짓는 것은 매우 냉정한 작업입니다. 인터넷에서 본 예쁜 벽을 만들려면 비용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혹은 여기서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또한 사진으로 본 이미지가 실제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 … 여러 가지 부정적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건축사의 역할입니다.


직접 자기 집을 그려 보고 싶다는 의뢰인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이렇습니다. 인터넷을 먼저 뒤지기보다 자기가 처한 조건을 먼저 확인하고 정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혼자 그것을 그리려고 하지 말고 건축사와 함께 그리기 바랍니다. 건축사는 도면을 대신 그려주는 생각하는 도구입니다.

'건축사의 집 이야기'기사는 연재 시리즈로 매주 토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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