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집 이야기 3편 '상식의 차이'

조회수 2019. 9. 28.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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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elling and Architecture
건축사의 집 이야기 3편 '상식의 차이'

양성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상식의 차이

‘처음 집을 짓고자 하는 이들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온통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한 변명들뿐이었습니다.

건축사가 하는 일은 의뢰인이 살 집을 도면으로 그려주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멋있게 포장해서 ‘행복한 삶의 현장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행복한 순간을 그려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는 말을 저도 들어왔지요. 하지만, 늘 그렇게 행복함이 같이하는 직업은 아닌가 봅니다.


건축사의 주 업무 중 하나는 변명을 늘어놓는 일입니다. ‘집을 설계하는 데 무슨 변명을 한다는 것이지?’라고 의아해하겠지만, 건축사가 관공서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하는 도면은 온통 변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피고는 법을 어기지 않았는가?’라는 공무원의 질문에, ‘네. 저는 높이 제한 규정을 준수하였고, 대지 안의 공지를 확인하였고, 건축 규모의 제한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집을 짓도록 설계하였습니다’라고 변론하는 것이 관공서에 제출하는 설계도면의 주된 역할입니다. 공무원과의 대화는 변명과 변론이 주된 내용이지요. 마치 건축사가 무슨 범죄 현장의 용의자처럼 되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변명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건축설계를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건축법>을 어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건축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래도 건축사라는 직업의 주 업무는 행복을 디자인하는 게 맞으니까요. 물론, 행복이라는 것이 집을 잘 설계하고, 또 그런 집을 짓는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안방과 화장실과 마당과 서재를 그리면서, 그 안에서 이루어질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요.


그런 즐거운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의뢰인과 건축사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 둘이서 같이 블록 쌓기 놀이를 하다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쌓지 않는다고 서로 투정 부리듯이 말이지요. 그럴 때 어른들은 서로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세상일들이 그렇게 양보하기 쉽나요.


설계하는 과정에서의 양보도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의뢰인과 건축사는 설계 과정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정당성은 너무도 분명하고 확고해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갈등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당사자들도 그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애매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을 ‘소유권’과 ‘저작권’의 갈등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제가 여기에서 그 갈등의 법적인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보다 사실은 도덕적인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 나중에 말하지요.


이 갈등의 본질에는 ‘건축물의 형태와 공간을 구상하고 디자인한 것은 건축사이므로, 이 건축물의 디자인은 남이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건축사의 주장,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해 달라고 적절한 대가를 지불했으므로,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마음에 들게 고쳐달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의뢰인의 주장이 있습니다. 두 주장은 제각기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서 대립 상황이 심각한 수준일 때에 정말 법정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저작권에 관한 건축사의 입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건축사가 저작권을 주장하며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건축 디자인이 건축사의 창작활동에 의한 저작물임에도, 그것을 훼손한 사안에 대해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품 디자인처럼 반복해서 디자인을 재생산하고, 그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디자인을 반복해서 재생산하고, 그에 대한 저작권을 건축사에게 지급하여 준 예는 시저 펠리 Cesar Pelli가 설계한 교보빌딩이 대표적이다.

교보생명은 지방에 유사하게 생긴 사옥을 지을 때마다 도면을 국내 설계사무소에서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저작권 비용을 시저 펠리에게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흔치 않은 경우이지요.


저작권은 창작물의 독창적인 부분을 그 작가의 고유한 무형의 지적 소유물이라고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모 기업에서 일본의 구마 겐코 Kuma Kengo라는 유명 건축가의 설계도면이 공사하기 매우 어렵다는 이유로, 그에게 설계를 변경하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구마 겐코는 “설계를 변경하는 것은 좋지만, 그럴 경우에는 제가 설계한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빼주기 바랍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결국 그 기업은 설계 변경 없이 그대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건축사에게 흐뭇한 미담이겠지요? 하지만, “열심히 디자인한 것을 의뢰인이 공사하는 중간에 마음대로 바꾸어서 속상했다”는 이야기, “설계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리저리 바꿔 달라고 해서 마지못해 디자인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푸념을 건축사들에게 심심찮게 듣습니다. 의뢰인과 건축사 간의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지요. 귓속에서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당신이 구마 겐코야?’


하지만, 의뢰인도 설계를 요청할 때 저작권과 관련해서 꼭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아무리 마음에 드는 집이라고 해도, ‘이 집과 똑같이 설계해주세요’라는 요청은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그 집을 설계한 건축사나, 그 집을 모사해서 디자인하는 건축사에게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하는 것과 똑같이 베끼는 것은 다르니까요. 물론, 남의 집과 똑같은 집을 짓기를 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만일 그러한 경우 법적인 문제보다도 저작권과 관련해서 설계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건축사의 창작 노력에 대한 배려는 문화적 삶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기본적인 소양이 아닐까요.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 분야에서 저작권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건축에서는 아직 사회적으로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저작권에 대한 법적인 것이 아니라 창작활동에 대한 의뢰인의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비슷하게 생긴 건축물이 많이 있지만, 결코 똑같은 건축물은 없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겼어도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말이지요.

저작권 문제로 디자인 카피 의혹을 제기했다는 두 건물. 위 건축물의 건축주는 아래의 건물을 보고 카피한 것이 아니라 외장재의 홍보자료를 보고 제품의 가능한 패턴의 한 가지로 이해했다고 한다. 디자인을 참고한 것과 카피한 것은 저작권 문제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지만, 작가를 오해하게 만드는 행위는 건축사에게도 심적 상처를 준다. <한라일보>, 2014년 8월 5일 기사 참고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건축사의 작업은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짜는 산고의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고통은 결국 그 디자인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이유이며, 의뢰인이 디자인을 변경하고자 할 때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이 건축사의 도면이 기계적으로 그린 것에 불과하다면 의뢰인의 요구에도 아무런 미련 없이 디자인을 변경할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의뢰인과 디자인 때문에 의견 충돌이 잦은 건축사는 그만큼 그 건축물이 잘 지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 의뢰인의 입장에서 건축설계를 바라볼까요. 건축사의 ‘자기 디자인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푸념, 혹은 ‘왜 허락 없이 자기 디자인을 바꾸려고 하느냐’는 항의가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상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 집을 자기 맘에 들도록 설계해 달라는데, 건축사가 된다 안 된다 그러면서 속상해하고 따질 일이 뭐 있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내가 맘에 들어서 고른 물건을 마트 사장이 “그건 안 좋으니 이걸 쓰세요”라고 하면서 다른 물건을 사라고 강요한다면 기분이 퍽 상하겠지요. 마치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저도 최근에 의뢰인으로부터 이런 항변을 들었습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디자인이 제 맘에 영 내키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의뢰인이 “이게 잘 못 돼도 제가 잘못 한 거고 손해를 봐도 제가 손해를 보는데, 건축사님이 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까?”라고 화를 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돈이 들어도 의뢰인의 돈이 들 것이고, 불편해도 의뢰인이 불편할 것이고, 집이 무너져도 일차적으로는 의뢰인이 피해를 보게 되니까요. 바로 그 점 때문에 건축사는 의뢰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건축사는 좋은 집을 설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좋은 집을 가지려면 의뢰인이 설계에 참여해야 하고, 어느 정도 건축에 대한 관심을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알아서 다 해주세요” 이것은 건축사들이 좋아하는 의뢰인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글쎄요 그렇게 저를 믿을 수 있을까요? 건축사의 창작 의지와 실력을 존중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어떤 의뢰인도 결국에는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건축물의 디자인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 건축물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사람은 건축사가 아니라 의뢰인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건축사가 좋은 집을 디자인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결국 그 집에서 살아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가족이기 때문에 의뢰인 역시 자신의 바람을 포기할 수는 없지요.


건축사가 디자인하고자 하는 집의 형태가 의뢰인의 마음에 꼭 들었다면 가장 좋은 상황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의뢰인도 건축사도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의뢰인은 내가 살 집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바라고, 건축사는 내가 디자인하는 것이니까 내 디자인의 의도를 받아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둘 다 이유가 있는 주장이지요. 여기서 건축사는 작가의 권리를, 의뢰인은 소유자 혹은 사용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지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둘 다 중요합니다. 사실 건축설계가 건축사와 의뢰인이 다 함께 만족하는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건축사는 의뢰인이 평생토록 살 집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디자인에 반영하도록 애를 써야 하고, 의뢰인은 디자인이 건축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건축설계는 의뢰인과 건축사의 공동작업이라는 것이지요.


의뢰인과 건축사가 제각기 권리를 주장할 때, 우리는 반드시 법정으로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거의 없고요. 사실 그런 다툼이 싫어서 어느 한쪽이 자신의 의견과 소신을 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사들 모임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사람이 의뢰인의 요구에 의해서 자신이 생각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로 의견이 상충될 때, 서로의 생각을 설득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식이 아니지요. 좋은 집을 만드는 과정에는 서로의 좋은 생각을 취해서 더 나은 결론으로 유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몇 해 전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 일입니다. 외관 협의가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에서 그에 따른 창호도를 그려서 의뢰인에게 보여줬습니다. 3일 정도 지나서 의뢰인으로부터 팩스가 왔습니다. 팩스에는 창문의 크기와 위치를 50㎜ 혹은 100㎜ 정도 높이거나 낮추어 달라고 표시돼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순간적으로 매우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창문의 크기는 외벽의 돌 나누기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작은 치수까지 바꾸어가면서 일방적으로 도면을 고쳐달라는 것에 대해 화를 냈습니다. 사실 창문의 크기를 조정하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조절하였을 경우 외벽의 돌 나누기 선들이 창문의 크기와 맞지 않는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였습니다. 게다가 고심하여 정한 창호의 크기를 이유를 말하지 않고 변경해달라고 통보받은 것이 불쾌하기도 했습니다.

창호의 높이를 조절해달라면서 외벽 돌 나누기와 창호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었다. 어떤 판단이 합리적인지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태도였지요. 그때 의뢰인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창문과 비교하면서 제가 그린 도면의 창문을 따져보니 그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건축주는 그게 외관상에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확인할 수 없었겠지요. 저는 문득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과를 하고 제가 화를 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외벽의 돌 나누기의 선과 창문의 윤곽선이 일치되지 않게 되는데 괜찮겠느냐?”라고 물었지요. 의뢰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창문을 조정해달라”면서 “외벽 돌 나누기의 선과 창문이 맞지 않는 것은 감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화를 낸 것에 대해서 “전문가는 화를 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저의 버릇없는 행동을 전문가의 의견으로 받아준 답변이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건축사와 의뢰인의 의견이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사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하면 삶이 피곤하겠지요.


요새는 건축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오는 의뢰인을 자주 만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그려 보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의뢰인이 그리는 대로 도면화해서 설계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의뢰인에게 원하는 집의 그림이나 생각을 적어달라는 것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의견이 상충될 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입니다. 제게 대화는 곧 설계 방법이기도 합니다. 건축사만의 생각으로, 혹은 의뢰인만의 생각으로 진행된 디자인은 결코 만족스러운 좋은 집이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금 자기반성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대화와 토론을 하는 데에 매우 익숙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입장을 바꿔가면서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데에 매우 어색한 듯합니다. 그러는 것만으로도 훨씬 부드럽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요. 좋은 집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 지점은 같은데 서로 다투면서 힘들어할 필요는 없겠지요. 설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설계 방법론으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건축사와 의뢰인은 공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한 배에서 노를 나누어 저을 때에 혼자 열심히 젓는 것보다 옆에서 젓는 속도에 맞추어 노를 젓는 것이 배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시키는 방법이듯이 말이지요.

'건축사의 집 이야기'기사는 연재 시리즈로 매주 토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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