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산책을 부르는 여행지

조회수 2019. 5. 29. 14:32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결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걷게 되는 길이 있다. 

<더 트래블러> 기자들이 추천하는 세계 곳곳의 산책 코스를 소개한다.

1.
캐나다 밴쿠버 | 그랜빌아일랜드

현지인이 바글바글한 거리에서 현지인인 척 걷는 것을 좋아한다. 방향을 잃고 헤매다 왔던 길을 몇 번씩 돌아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새로운 도시로 떠날 때마다 그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부터 확인하는 이유다. 그랜빌아일랜드는 밴쿠버 남부, 폴스크리크 쪽으로 섬처럼 튀어나온 작은 반도다. 과거 낡은 창고들이 난립하던 공장지대를 재개발해 레스토랑과 상점, 증류소, 극장, 갤러리로 가득 채웠는데, 특히 재래시장인 그랜빌아일랜드 퍼블릭 마켓을 중심으로 모든 볼거리가 밀집해 있다. 가까운 산지에서 매일 아침 들여오는 온갖 농산물과 해산물, 가공품은 물론 친근하게 말을 섞는 상인과 시민들의 열기가 산책 내내 이방인의 걸음을 함께 달아오르게 한다.


Tip

평소 술을 즐긴다면 캐나다 최초의 마이크로 브루어리인 ‘그랜빌아일랜드 브루잉’과 정체성 강한 로컬 스피릿을 빚는 ‘더 리버티 디스틸러리’는 꼭 들러볼 것. 산책 후엔 선착장 앞에 잠시 앉아 부둣가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아름다운 마무리다.


2.
룩셈부르크 시티 | 벤첼워크

눈부신 풍경을 그저 즐기고 마음에 품는 것도 좋지만, 때로 산책이란 그 길이 다듬어온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새로 둘러싸인 룩셈부르크 시티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트레일 같다. 가파른 성벽과 두 줄기의 강물이 구시가를 완전히 포갠 채 동화적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그 절벽과 강물을 따라 끊어지지 않고 대부분의 경계를 순환하는 고리 모양 루트가 바로 벤첼워크다. 그러니까 일단 이 길에 몸을 싣고 나면 성벽길을 걷고 어퍼타운과 로어타운을 오가며 현지인의 삶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코니’라 불리는 보크 포대 위의 풍광이 도시의 굴곡진 천 년 역사를 감싸 안는다.


Tip

바쁜 여행자를 위한 속성 핵심 코스는 보크 포대에서 출발해 절벽 주변을 도는 2~3시간가량의 루트. 다만 일정에 여유가 좀 있다면 구시가 중심부에서 출발해 보크 포대를 끼고 절벽을 내려온 뒤 아랫마을까지 한 바퀴 둘러볼 것을 권한다.


3.
베트남 달랏 | 쁘렌 폭포

해발고도 1500미터에 위치한 달랏에는 깊은 계곡과 폭포가 흔하다. 그중에서도 웅장한 규모의 다딴라, 퐁고르, 코끼리 폭포 앞에선 절로 마음이 겸허해진다. 세차게 내리꽂는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조금 두려운 기분마저 든다. 쁘렌 폭포는 규모로 따지면 이들에게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사람을 평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높이는 10미터 남짓에 수량도 많지 않아 물줄기가 가볍게 내려앉는다. 푸르고 붉은  물들이 폭포를 소복하게 감싼 모습도 정다워 보인다. 대로와 멀지 않은데도 인공의 소음 하나 없이 고요하기까지 하다. 공원처럼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으니 느릿느릿하게 걸어도, 가만히 앉아 사색해도 만족스러운 산책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Tip

쁘렌 폭포는 1960년대까지 작은 동물원으로 운영됐다. 크기는 작지만 케이블카, 보트, 양궁, 베트남 민속의상 체험 등 각종 즐길 거리가 남아 있는 이유다. 구 소련 시절의 지프차로 폭포 뒤쪽의 산 정상까지 올라볼 수도 있으니 여유를 두고 둘러보자.


4.
페루 리마 | 바랑코 예술지구

어느 도시를 가든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그래피티로 가득한 건물 외벽이며 거리를 감싸는 자유분방한 분위기, 세련된 카페와 바, 이성을 마비시키는 수공예 상점들까지, 동네 전체가 하나의 산책 코스로 손색이 없다. 리마의 미라플로레스 외곽에 위치한 바랑코 예술지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국적인 수목과 우아한 카소나스 스타일의 건물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현지 음악가와 디자이너, 사진작가, 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덕분에 리마의 다른 지역에 비해 확연히 짙은 낭만이 감돈다. 사방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남미 힙스터들,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상점이며 가판대가 이 여정의 백미다.


Tip

그저 걷는 것만으로 산책의 묘미는 충분하겠지만, 만약 예술 애호가라면 바랑코를 대표하는 3개의 미술관 관람은 놓치지 말 것. 페드로 데 오스마 박물관과 리마 현대미술관, 마리오 테스티노 미술관이 그것이다.


5.
미국 소살리토 | 브리지웨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 너머 북쪽으로 올라가면 남프랑스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항구에 닿는다. 고급 요트가 다닥다닥 늘어선 선착장이 한눈에도 고급 휴양지임을 느끼게 하는 이곳은 소살리토. 본래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동네였는데, 해변 풍광으로 유명해지며 부자들이 몰려들어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

됐단다.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의 한 도시지만, 사실 시라기보단 마을에 가까운 규모. 덕분에 한 바퀴 돌아보는 데 부담이 없다. 브리지웨이를 따라 이어진 아기자기한 상점 거리, 골목마다 숨은 카페며 갤러리들 역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화사한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 바다와 수목이 모두 반짝반짝 빛난다.


Tip

소살리토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에는 캘리포니아가 자랑하는 골든게이트 국립 휴양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금문교를 건너면 바로 시작되니, 소살리토를 오가는 길에 한 번쯤 들러볼 것을 권한다. 하이킹과 승마, 자전거 라이딩의 명소다.


6.
일본 홋카이도 | 도카치 천년의 숲

오직 깊은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밀도 높은 초록빛의 안온함과 흙의 포근함, 햇살이 나뭇가지 틈을 비집고 쏟아질 때의 황홀함. 그런 곳에선 정말이지 하루 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홋카이도 중서부의 구릉지대에 위치한 도카치 천년의 숲이 그랬다. ‘천년의 숲’이란 그간 목재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심어온 침엽수를 도태시키고 이 지역 본연의 꽃과 나무를 가꾸며 앞으로 1000년의 시간을 들여 전통적인 숲을 복원하겠다는 의미. 그만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허투루 심거나 다듬는 법이 없다.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하는 홋카이도의 ‘안쪽’ 풍경이 이 땅의 1000년 뒤를 기꺼이 상상하게 한다.


Tip

숲은 어스 가든, 메도 가든, 포레스트  가든, 팜 가든 등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작정하고 둘러보려면 하루는 족히 필요하다. 꼭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개인적 선택은 포레스트 가든.


7.
두바이 | 시티워크

섬세한 자연, 느긋한 사색의 시간을 꿈꾼다면 사실 시티워크는 그 기대에 부합하지 못할 거다. 다만 혁신적인 엔터테인먼트 천국으로서 두바이의 정체성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오늘날 이 거리만큼 적당한 산책로도 없다. 쇼핑과 미식, 엔터테인먼트 등 현지인의 최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한데 모인 이곳은 부동산 개발회사인 메라스가 조성한 복합문화지구. 물타카 알 아드와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에 골목길이 뻗어 있는데, 각종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은 물론

영화관, 게임 센터 등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가 빼곡하다. 무엇보다 여행객이며 외국인 거주자의 비중이 압도적인 두바이에서 에미라티의 일상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드문 장소다.


Tip

프랑스의 블렉 르 라, 영국의 닉 워커,  이란의 ICY & SOT 형제 등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16팀의 작품이 시티워크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니 골목길을 누비며 하나씩 그래피티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놓치지 말 것


8.
스위스 몽트뢰 | 레만호

백조가 우아한 자태로 유영하는 호수에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인다. 드넓은 호수의 끝엔 새하얀 눈을 뒤집어쓴 알프스가 보인다. 스위스의 리비에라로 불리는 몽트뢰의 레만호 풍경이다. 알프스 다른 지역과 달리 연중 온화한 기후로 호수를 따라 야자나무가 줄지어 있어, 남프랑스의 바다 도시를 닮았다. 실제 레만호는 전체 면적이 582제곱킬로미터로 바다처럼 넓다. 호숫가에는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기념품, 빈티지 소품을 파는 노점이 자리해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훈훈한 온풍을 맞으며 호반의 둥근 면을 따라 느긋하게 걷다 보면 산책이 주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Tip

스위스관광청에서는 자동차 여행 루트를 제안하는 ‘그랜드 투어’의 일환으로 런치 박스를 판매한다. 몽트뢰 바로 옆 도시인 브뵈에서 구매 가능하며 가공육과 치즈, 빵, 과일 주스로 이뤄져 호숫가에서 피크닉을 즐기기 좋다.


9.
중국 리장 | 리장고성

어떤 풍경은 낯선 시공간 속으로 산책자를 이끈다. 이를테면 붉은 오화석이 반짝이는 돌바닥 위로 수백 년은 된 목제 가옥들이 도열한 거리, 거미줄처럼 마을 구석구석을 훑는 오래된 수로의 풍광이 그렇다. 리장고성에서의 매 순간이 동화나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 같았던 건 풍경 아래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의 더께 때문이었을 거다. 실제로 리장고성은 윈난성 서북부 해발 2400미터 지역에 위치한 중국 나시족의 고도다. 오랜 시간 일대의 상업 및 교역 중심지로 번성한 만큼 골목마다 유서 깊은 자취가 그득한데, 여행자로선 어느 하나 탐나지 않는 길이 없을 정도. 시간이 멈춰 선 도시에선 산책마저 뜨거운 모험이 된다.


Tip

리장고성은 연간 3천만 명의 여행객이 찾는 관광지다. 그러니 호젓한 산책을 원한다면 추천 시각은 오전 7시. 고산지대의 청명한 햇살 아래, 거리가 오롯이 풍경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