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염전노예'가 말하는 현대판 노예생활, 그리고 사회 적응기

조회수 2018. 4. 23. 15: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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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주인이 갑자기 와서 형을 막 때리더라고.
갑자기 나도 때리더라고...

'신안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박형석(가명)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형석씨가 지옥의 섬을 탈출한지 4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현재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화학회사에 다닙니다.


염전노비 생활을 할 때는 새벽 2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어요.
지금은 평범하게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형석씨를 출근길에 만나 염전노예 생활을 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버스 터미널에 있었는데 모르는 분이 와서 좋은 자리 있다고...
저도 갈 데도 없고 돈도 없었고...

신안 염전에 끌려간건 낯선 사람의 꼬드김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낯선 사람의 꼬임에 넘어가 신안 염전에 끌려갔습니다.

2012년 말부터 2014년 3월까지의 염전 생활노예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형석씨는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동네 주민, 매표소 사람, 심지어 경찰마저 한통속이었습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형석씨는 가까스로 탈출성공합니다.

서울의 한 쉼터에 들어가 소소한 일을 시작했어요.

격리된 섬에서 육지로 돌아온 그가 정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석씨는  정부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를 도운 것은  민간단체입니다.

무엇보다 염전 노예일 때 누리지 못했던 자유가 좋아요.

그러나 '염전 노예'였던 분들 모두가 이렇게 사는 건 아닙니다.

아직도  못 나온 사람들이 있을거에요.

이런 고충을 겪었지만 보상을 받는 일도 만만치 않아요.

형석씨를 포함해 '염전 노예' 8명은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승리한 건 탈출하려고 적극적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던 형석씨 혼자입니다.

형석씨는 약한 사람들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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