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 만든 마일즈 수류탄, 이거 실화냐?

조회수 2017. 12. 11. 20: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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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30사단 서상우·염원경 병장, 군 장병 발명경진대회 대상
자신들의 노력과 부대 배려로 '대상' 이어 '우정'과 '꿈'까지 거머쥐어

‘군 복무’란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이 ‘제약’이나 ‘답답함’을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엄격한 규율이 있는 병영에서는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해 알찬 결실을 얻기도 한다. 군 당국도 병사들의 자기계발을 장려하는 추세. 


육군30사단 독수리여단 폭풍대대 3중대 서상우(23)·염원경(22) 병장의 경우 자신들의 노력과 부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큰 성과를 거뒀다.  


출처: 이상신PD
육군30사단 서상우 병장이 '군 장병 발명경진대회' 시상식에서 일반병사 부문 대상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얼마 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군 장병 발명경진대회’ 시상식에서 일반병사 부문 대상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출품한 ‘마일즈 수류탄’. 외형이나 작동 원리가 병사들이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지녀서다. 


같은 생활관 동기인 서·염 병장은 사실 이번 대회 준비 전까지 평범한 병사에 불과했다. 두 사람 모두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1학년만 마치고 입대한 터라 전문 지식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염 병장이 국방일보에서 대회 공고를 보고 참여를 제안하면서 도전이 시작됐다. 

출처: 이상신PD
마일즈 수류탄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

"군 생활 중 불편을 느꼈던 점에서 아이디어를 찾았습니다. 마일즈(Multiple Integrated Laser Engagement System·실탄 대신 레이저를 사용해 전투를 벌여 교전 활동이나 피해 결과를 실전과 유사하게 체험할 수 있는 장비) 장비로 중대급 각개전투훈련을 했을 때 수류탄이 없어서 그걸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서 병장)


출처: 이상신PD
마일즈 수류탄 아이디어를 처음 낸 서상우 병장.

이들이 만든 마일즈 수류탄은 빛과 소리의 속도 차를 이용해 작동한다. A가 센서를 착용한 B쪽으로 수류탄을 던져 바닥에 떨어지면 빛(레이저)와 소리가 동시에 발산된다. 


B가 착용한 센서는 이를 감지하는데 빛과 소리가 거의 동시에 센서에 도달했다면 마일즈 수류탄은 B 바로 옆에 떨어진 것. 반면 0.01초, 0.1초 등 시간 차가 커질수록 수류탄은 B로부터 더 먼 곳에 떨어진 셈이 된다.  


충전식 배터리를 내장해 반복 사용할 수 있고 GPS도 장착해 풀숲에 떨어져도 쉽게 찾도록 했다. 방수처리로 빗 속에서 사용하거나 물속에 떨어져도 고장 나지 않는다.


출처: 이상신PD
마일즈 수류탄 시제품들. 상자 안에 든 것이 센서다.

최대 고비는 예선·본선 후 이뤄진 최종심사였다. 3주 안에 시제품을 만들어 심사위원들 앞에서 출품작을 발표해야 했다. 


"1학년만 마치고 입대해 회로 제작이나 3D 프린터 사용, 캐드(CAD) 제작 등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업체에 제작을 의뢰하려고 했는데 1,000만 원이 든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가 하자고 결론 내렸습니다."(염 병장)


이때 병사들의 자기계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부대가 파격적인 배려를 해줬다. 두 사람에게 3주간의 공가(公暇)를 허락한 것이다. 덕분에 두 사람은 서 병장의 집에서 합숙하며 시제품 제작에 매달릴 수 있었다.


"세운상가에서 부품을 사서 유튜브를 보며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3주 내내 밤을 새우다시피 한끝에 완성했는데 부대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죠."(서 병장)


출처: 이상신PD
군 장병 발명경진대회 참가를 제안했던 염원경 병장.

출품작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대단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부대 간부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윤대담(중위) 2소대장은 "수류탄은 실제 근접전투에서 위력적인 무기인데 현실적으로는 훈련소에서 한 번 던져보고 실제 훈련에서 사용해볼 기회가 적은 만큼 안전한 마일즈 수류탄을 도입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간부들도 마일즈 수류탄이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만 했는데 병사들이 직접 만들다니 놀랍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전적 훈련을 위해 마일즈 수류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은 내년에 자체 개발한 마일즈 수류탄을 전력화할 예정이다. 

출처: 이상신PD
자신들이 발명한 마일즈 수류탄의 개선점을 의논하는 서상우(왼쪽) 병장과 염원경 병장.

대상 수상 소식을 듣고 "서로 껴안고 거의 울 뻔했다"는 서·염 병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대상’뿐만 아니라 ‘우정’과 ‘꿈’까지 거머쥐었다.


"준비하느라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습니다. 믿고 의지할 상우가 없었다면 대회에 나갈 생각조차 못했을 겁니다. 군에서 이런 좋은 친구를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입니다."(염 병장)


"대회를 준비하면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고 공부에 흥미도 생겼습니다. 또 준비 과정에서 업계 관계자들을 많이 만나면서 시야도 넓어져 스타트업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구체화하게 됐습니다."(서 병장)


출처: 이상신PD
마일즈 수류탄 시제품들.

이번 대회에서는 두 사람 외에도 많은 간부와 병사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액체를 이용한 발명체’(간부 부문 대상 육군52사단 김경철 중령), ‘긴급구조 요청이 가능한 전략신발’(일반병사 부문 은상 국군 9100부대 박정호 육군 상병) 등 21건의 발명품으로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내년 1, 2월 잇따라 전역하는 서·염 병장은 좀 더 많은 병사가 군 발명경진대회는 물론 다양한 기회를 활용해 복무 기간을 인생의 훌륭한 이정표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입대 전에는 군에 와서 발명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개선할 점을 생각하다 보니 이런 결과를 얻었지요. 누구나 이런 아이디어는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게 도전하다 보면 군 생활 속에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겁니다." 

김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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