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설리, 압박에서 벗어난 뉴 코르셋이 주는 로맨티시즘
작년 한 해는 몇 년 전부터 부상한 라운지 웨어를 비롯해 파자마 로브 슬립 같은 침실에서 입는 옷이 일상복으로 인기를 끌었다. 느슨한 실루엣에 촉감 좋은,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기본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올해 역시 그동안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욕망의 아이러니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은밀한 것들에 대해 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먼저 짙은 네이비와 청순한 미드나이트 블루를 오가는 그러데이션 튤 드레스 위 섬세하게 수놓인 비즈 장식은 낭만적인 밤 하늘을 연상케 할 만큼 신비롭다. 코르셋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은 과감하면서도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건드렸으며, 더불어 섬세한 크리스털 주얼리와 심플하면서도 약간은 매니시한 터치가 느껴지는 타임피스의 믹스 앤 매치 스타일링이 인상적이다.
뷔스티에 드레스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올 하우스에 부임한 뒤 매 컬렉션마다 꾸준히 밀고 있는 실루엣이다. 2016년 9월 선보인,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글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를 새긴 티셔츠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의식을 적극적으로 환기시킨 그의 첫 디올 컬렉션에서 부터다.
여성상에 대한 압박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코르셋을 가지고 옷을 선보였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과거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선보였던 뉴 룩(new look)과 관련이 있다. 당시 뉴 룩은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름다웠던 벨 에포크 시대를 향수하며 허리를 다시 조이는 유행을 이끌었다. 실제로도 디오르는 가슴부터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코르셋을 여성들에게 입혔다고 한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이러한 디올 하우스의 전통에 맞서 오히려 코르셋이 상징하는 여성이라는 존재를 작품 중심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여성적이라 쉽게 치부해 버리는 관점에 대해 질문한다.
그 모습도 자유롭다. 설리와 정려원의 뷔스티에 드레스가 테크닉적인 언더웨어의 단면을 끌어올려 고급스러운 레이스 자수와 상체의 곡선을 따라 그래픽적으로 보이는 일래스틱 장식으로 위트를 가했다면, 수지의 심플 블랙 드레스는 데일리에도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또는 어깨선을 따라 로고 플레이를 더해 스트리트적인 뉘앙스를 더하기도 한다. 윤아는 레드로 강렬한 여성미를 매혹적으로 해석했고, 공효진은 변화와 반복이 만들어낸 색다른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한층 액티브한 무드의 뷔스티에 룩을 선보인 바 있다.
과연 거리에서 볼까 했던 슬립 웨어와 파자마 셔츠가 당당하게 제 몫을 하는 것처럼 상체에 딱 들어맞는 코르셋 블라우스 역시 동시대를 대표하는 키 아이템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다. 하지만 기능을 잃은 대신 인체공학적 절개선을 디자인으로 업데이트, 실용적이면서도 동시에 로맨티시즘을 공유하는 뉴 코르셋의 의미를 한번 더 곱씹어 본다면 한층 더 즐겁게 패션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글=최정윤(셀럽스픽)
dondante14@celpi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