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인공지능시대 의사도 위기.. 읽고 생각해야죠"

조회수 2016. 5. 29. 17: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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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축구대표 팀닥터 서동원 원장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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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삶을 사는 사람 곁에는 책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해서 살아보겠다는 뜻의 다른 말입니다.

그 사람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 근황을 알아보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코너가 예측 불허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일기 릴레이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뜻밖의 독서 취향을 발견하고 의외의 책과 조우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소설가 김연수->'영혼의 슬픔' 저자 이종영->출판기획자 조원식->만화가 박흥용->임지훈 카카오 대표->이준익 감독->박정민 배우->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김봉진 '배달의 민족' 대표->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김주환 연세대 교수->뮤지션 한희정->김대현 작가 편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김주환 교수가 추천한 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입니다.

김주환 교수 편 바로가기

재활전문의사인 서동원 원장을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기도 한데 지난 런던올림픽때 국가대표 축구팀 주치의를 맡았습니다. 아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김주환 교수의 추천의 말

서동원 원장이 근무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 바른세상병원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개인병원 치고는 꽤 큰 병원이더군요. 하지만 원장실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수술을 한 차례 끝내고 온 듯 하늘색 반팔 수술복 차림이었습니다. 오후에도 수술이 잡혀 있다고 했습니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코너에 의사가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구나 그는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두 가지 전문의를 겸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축구팀 팀닥터로도 봉사한 적이 있습니다. 책 이야기에 앞서 별난 이력부터 들어봤습니다.
-김주환 교수의 추천을 받으셨는데 어떤 사이세요?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입니다. 저는 고려대, 김 교수는 서울대라서 학교는 달랐지만, 제 초등학교 동창인 수학자 김용환 연세대 교수가 중간에서 소개해줬어요.

제가 재활의학 레지던트 마치고 보스턴 하버드 의대로 2년 연수를 갔는데 거기에 보스턴 칼리지 교수로 와있었어요. 그때도 반갑게 만나서 왕래했어요.

요 앞에 인터뷰한 걸 보니까,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에코 선생 밑에서 기호학까지 공부한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웃음)
-책은 좋아하세요?
대단한 독서가는 못 되지만 틈틈이 꾸준히 읽는 편입니다. 어릴적에는 어머니가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위인전집인가를 사다주셔서 열심히 읽은 기억이 나네요. 4남매 중 둘째이자 장남인데 제가 제일 열심히 읽은 것 같아요.(웃음)

중고생 때는 학교 공부 하느라 다른 일반 소설 같은 것은 챙겨 읽을 환경은 아니었고. 대학 가서도 의학 공부에 치여서 다른 책은 많이 못 읽었어요.

10여년 전 병원 개업하고부터 좀 읽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주변에서 책을 선물로 주는 분들도 있고. 제가 관심이 생겨서 사보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책은 여러가지를 동시에 읽는 타입이에요. 제 아내는 한 책 다 읽고 다음 책을 읽어야지 어떻게 그러냐고는 하지만...(웃음)
-분당에서 꽤 큰 병원이라고 들었는데요.
올 8월이면 만 12년이 됩니다. 2003년 전문의 따고 봉직의(월급 받은 의사) 생활하다가 이곳 건물 2층에 세 얻어서 개원했어요. 그전에는 울산종합병원 과장으로 있다가 주말 부부 생활이 힘들어서 서울로 옮겨 안세병원에 있다가 독립했죠.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전문의 과정 둘을 하셨다구요. 양쪽이 비슷한 분야 같기도 한데, 어떤 의미가 있죠?
재활의학과는 신경질환 진단하고 재활 치료나 물리 치료처럼 칼은 쓰지 않는 치료만 합니다. 응급 상황은 거의 없고, 그래서 훈련 과정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육체적 부담도 적은 편이에요. 정형'내과'라고 보시면 돼요.

반면에 정형외과는 머리나 혈관 흉부, 내장 등을 제외하고 우리 몸을 다쳤을 때 거의 다 관계가 됩니다. 특히 대학병원의 경우 응급실에 환자가 매일 들어오고, 수술실 들어가면 초긴장 상태에서 칼을 써서 찢고 자르고 톱질하고 못 박고 하는 일을 매일 같이 합니다. 또 다음날 수술 준비하고 책도 찾아보고.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육체적인 업무 부담이 굉장히 크지요.

그러니까 제 경우는 둘을 다 거쳤는데, 군대로 치면 육군 병장 제대하고 장교로 임관했다가 다시 공군이나 해군 이병으로 입대해서 훈련을 받은 셈이죠. 정형외과 4년 레지던트 과정이 아주 혹독한 편이었죠.

처음엔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4년 마치고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과장으로 일하다가 2년간 미국에서 연수하던 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다시 정형외과를 지원했어요.
-그런 경우에는 편입을 하나요?
레지던트 1년차부터 다시 하지요. 4년 훈련 받고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두 번째로 땄죠.
-굳이 그렇게 할 사연이 있었나요?
재활의학과 전문의 따고 미국 연수 갔을 때 하버드 재활의학과 안에 있는 '근육세포생리연구소'로 갔어요. 사람 근육세포를 가지고 연구하는 곳인데, 근육질환이 난치 중의 난치거든요. 다 유전적 질환이고 치료가 어려워요. 근육만큼 인체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무시당하는 게 없어요. 살점 좀 떨어져도 죽지 않으니까.

하지만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골다공증도 오고 몸이 약해지곤 해요. 그런데도 근육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과가 임상에는 없어요. 그나마 재활의학과가 관심을 갖는 편인데 제가 간 하버드대 재활의학과의 교수가 근육계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거기로 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제가 일찍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스포츠 질환을 공부하고 싶어서 지원한 거죠. 거기서 재활의학과 연구소에 매일 출근해서 연구를 하는데 주 3회 정형외과 교수들을 따라다니면서 진료도 돌고 많이 배웠죠. 그때 정형외과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더군요.

결국 스포츠 의학을 할 거면 재활의학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또 하나의 중요한 도구가 정형외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년 연수 마치고 보통은 교수로 가거나 개업할 상황에서 정형외과 수련의 과정에 다시 지원했어요.
-늦깎이였군요.
그때 정원이 2명에 모두 5명이 지원했는데 제가 최고령자였죠.(웃음) 다들 저보고 떨어질 거라고들 했는데 운이 좋게 붙었어요. 보통은 정형외과 전문의 따고 재활의학 진료까지 보거나, 재활의학을 한 사람은 굳이 힘든 정형외과까지 새로 공부할 필요는 못 느끼는데 저는 좀 무모한 일을 한 거죠.
-무모한 일을 왜 하셨나요?
뒤늦게 제 적성을 안 거죠. 원래 타고난 성품은 외과의인데. 사실은 인턴 마칠 때 정형외과 경쟁률이 너무 셌어요. 그래서 저는 막연히 재활의학도 정형외과와 비슷할 거야, 그쪽 공부하면서 이쪽도 배우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정형외과는 전공자가 아니면 수술실도 함부로 들여보내지 않았어요.

미국에 가서야 수술실 따라다니면서 겪어보니 내가 이걸 못해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더군요. 지금이라도 지원해서 시험 쳐서 떨어지면 받아들이자. 그런데 붙었어요. 와서 보니 내가 원래 했어야 하는 거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만족하세요?
물론입니다. 처음엔 아이들도 초등학생이고 해서 부모님이랑 가족들이 반대했는데 그래도 아내가 흔쾌히 지원해줬어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금 두 전공의 인기도는 어떤가요?
정형외과는 최고 중 하나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한 편이고. 재활의학과도 지금은 정상급입니다. 고령화와 함께 노인층 인구가 많아지니까. 반면에 소아과나 산부인과가 갈수록 줄고 있죠. 출산률 떨어지고 신생아가 줄어드니까.
-전공의 자격이 둘이라는 게 병원 일에도 도움이 많이 됐나요?
비수술 치료인 재활의학과 수술이 주인 정형외과 둘을 같이 하기 때문에 병원이 커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어요.
-축구대표팀 팀닥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축구를 좋아하셨나요?
어려서부터 축구를 하는 것, 보는 것 다 좋아했어요. 동네에서 장비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고 2때 대표 선수로 나가서 뛰다가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적도 있어요. 그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의대에 와서야 알았어요.
-그쪽은 잘 몰라서 말입니다만, 그런 상태에서도 모르고 지낼 수 있나 보죠?
그럴 수 있죠. 몸이 불편한 쪽은 피해서 생활하고 축구도 하게 되니까. 다른 사람 눈에는 좀 이상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제가 어려서부터 팔씨름 왕이었어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져본 적이 없어요. 선천적으로 근수축력이 좋은가 봐요.

하버드 근육세포연구소에서 실험 세포를 연구원 것을 쓰는데 제 것을 뽑아보니 엄청 튼튼하게 나왔어요. 집안 내력이겠죠.(웃음) 지금은 치료를 늦게 해서 후유증 때문에 축구는 보는 것만 주로 합니다만. 전방십자인대 손상 환자에 관한 한 제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정도입니다.(웃음) 실제로 수술 경험도 많고 결과를 논문으로도 내고 있어요.
-국가대표 축구팀 팀닥터는 어떻게 맡게 되셨죠?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때 국가대표팀 팀 닥터로 간 적이 있어요.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제가 대한축구협회에 지원했어요. 그때 병원 개업하고 잘 안 될 땐데도 2주 동안 후배 의사 뽑아서 맡겨놓고 갔다 왔죠.

그때 박주영, 이근호 선수가 뛰던 시절인데. 박주영 선수가 나이지리아팀과 시합하던 중에 점프하고 내려오다가 팔꿈치가 빠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재빨리 뛰어 들어가서 끼워줬는데, 다음날 3개 지상파 취재진이 저한테 찾아와서 인터뷰를 청하더군요. 밤 11시 경기였는데 전 국민이 봤으니까. 그 다음 날 9시 뉴스에 제가 나오니까 아는 사람은 다 연락이 오더군요.(웃음)
-박주영 상태가 걱정이 돼서 물어본 거겠죠?(웃음)
두 경기를 한 상태였고 마지막 경기에 뛸 수 있는지를 물어본 거죠. 뛸 수 있다고 했죠. 실제로 뛰었고요.

그 뒤에 런던 올림픽 때도 국가대표팀 따라간 적이 있어요. 올림픽은 안 가봤으니까 가보고 싶었어요.
-지금 병원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요?
전문의가 22명에 정규직 직원이 모두 260명 정도 됩니다. 성남에서는 개인병원으로 가장 크지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관절 전문 병원이 경기도에 두 곳 있는데 성남에서는 저희가 유일해요.
-빠르게 성장한 것 같은데 비결이 뭐죠?
우선 제가 전문의 자격증을 둘 갖고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재활의학과 전공의의 경우 말초신경(PNS)에 대한 이해력이 깊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이 좋게 난 것 같어요. 하지만 초기 1년 가까이는 병원이 정말 안 됐어요. 개원식 때 선배나 주변 사람들이 와서 보고는 정형외과 개업지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큰길에서 들어간 외진 곳이어서 간판도 잘 안 보이고. 처음 6개월 동안 내원 환자가 50명을 못 넘었어요.
-개원할 때 입지는 생각 안 하셨나요?
그땐 생각을 못 했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약이 됐어요. 환자가 적으니까 설명해줄 시간이 많은 거예요. 자료집을 놓고 의학 공부를 시켜준 거죠. 당신은 왜 아프고 메카니즘은 어떻고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15분, 길게는 30분씩 했던 것 같아요. 당시 학교에 강의도 나가던 중이었고 저한테도 정리가 되고 좋았어요. 그 자료는 다시 컴퓨터에 입력해서 설명 자료로 삼고. 그렇게 한 2년 했더니 환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손님이 밀려들기 시작하는데 감당이 안 될 정도였어요.

보통 정형외과 개원하면 혼자서 150명은 봐야 현상유지가 된다고 했는데 저는 그때 의사를 한 명 더 뽑았어요. 보통 원장 혼자서 낮에 진료하고 밤에 수술하는 식인데, 저는 한 명 더 뽑아서 진료와 수술을 서로 엇갈리게 맡아서 진행했어요. 그 뒤로도 1.5배쯤 파이가 커질 때마다 의사 1명을 더 뽑는 식으로 했어요.

환자 입장에서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게 되니까 좋은 거죠. 대개 개인병원 가면 원장님 수술중이라고 해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게 없도록 한 거죠.
-이제 책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주로 어떤 걸 읽으세요?
요즘은 소설도 읽곤 하지만 주로 논픽션류를 좋아했어요.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책을 좋아해요. 모든 과학이 집대성된 책이라서 아주 재미있게 봤죠. 10년 전쯤에 처음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 제 옆방에 있던 10년 선배도 그걸 읽고 있다고 간호사가 전해주면서 웃던 게 기억 나네요.
한때 징기스칸에 관심이 꽂힌 적도 있습니다. TV에서 영화인지 다큐인지를 보고 매료돼서 관련서들을 가지를 치듯 찾아 읽었어요. 어떻게 그런 난관을 뚫고 엄청난 세계 제국을 세웠을까 궁금했죠.

그때 얻은 교훈 중 하나가 징기스칸이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만한 정보력을 갖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적진 상황을 신속하게 알 수 있는 정보력이 제국의 기반이 됐다는 거죠. 정보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그 부분이 많이 와닿았어요. 저희 분야도 의학 정보나 정부 고시, 보험 정보 같은 게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요즘도 매일 의료진 회의를 하는데 순번을 정해서 저널의 최신 정보를 발표시키곤 해요. 꽤 비싼 최신 저널도 온라인으로 받아보는데 그런 게 다 징기스칸 영향이라고 할 수 있죠.

또 한 가지 교훈은 징기스칸의 리더십이에요. 그가 마을을 쳐들어가면 적이 완전 괘멸될 때까지는 모든 병사들이 전쟁에만 집중하게 했어요. 전리품은 나중에 똑같이 나눠주는 방식으로.

저도 매년 의사들을 평가할 때 두 가지를 봐요. 환자의 수술 만족도와 친절도예요. 저는 의사들에게 수술을 많이 하라거나 매출 올리라고는 안 합니다. 그렇게 하면 피해는 환자들한테 가니까요. 수술받는 환자의 만족도에만 집중하게 합니다. 그런 식으로 나름의 서비스 품질을 관리합니다.
-이건 피터 드러커의 경영서군요.
드러커는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이 이야기하는 걸 보고 처음 알게 됐는데 찾아보니 엄청난 사람이더군요. 그의 경영 사상에 반해서 여러 권을 샀어요. '창조하는 경영자'를 보면 페이지마다 단어만 바꾸면 병원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았어요. 주로 침대에서 읽고는 다음날 병원에 가서 이렇게 하자고 한 경우가 많아요. 병원 시스템을 바꾸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가끔씩 반복해서 읽고 생각을 환기합니다.
-여기 스티브 잡스 평전은 어떻게 읽게 되셨지요?
1987년에 애플 매킨토시를 첫 컴퓨터로 구입할 때만 해도 잡스는 잘 몰랐어요. 워즈니악이 다 만들었고 잡스는 그냥 수완 좋은 경영꾼 정도로만 알았죠.

그러다 아이폰 3가 처음 나왔을 때 소개한 기사를 읽고는 다음날 사서 써봤죠. 존경심이 확 생기더군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어마어마한 걸 만들었을까 하던 차에 전기가 나왔길래 단숨에 읽었어요.

일대기를 보면서 존경할 점도 있고 좀 문제도 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저는 유순한 사람이어서 남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데 잡스는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도 항상 다르게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점은 저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한때는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으니까요. 동질감을 갖고 읽었어요. 또 이 사람이 추구하는 완벽주의가 의학에서는 아주 중요하거든요. 허술하면 반드시 문제가 돼요.

또 융합을 추구한 것도요. 잡스도 완전히 새로운 게 아니라 기존의 모든 걸 융합했잖아요. 저는 그걸 의료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합니다. 병원 설계나 치료법 같은 것도.

저희 진료실은 다른 병원과 달라요. 앞쪽에 진료실이 있고 뒤에 복도가 꼭 있어요. 의사들끼리 모여서 의논하고 토론하는 공간을 만들어뒀어요. 일종의 협진 개념을 공간적으로 적용한 건데.

이게 사실은 하버드에서 배워온 거예요. 거기 가봤더니 의사들은 가운데 모여 있고 진료실은 밖에 있더군요. 의사들이 가운데에서 책도 찾아봤다가 서로 의논도 하다가 차트나 엑스레이도 봤다가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환자한테 가서 진료를 보는 거예요.

제가 봉직의 생활을 길게 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의사들이 대체로 독방에 갖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진료실에 앉아 있다가 환자가 들어오면 차트 보고 엑스레이 보는 식이죠. 책은 환자 앞에서 안 보죠. 그 자리에서 그때 지식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고 환자를 보내는 시스템이에요. 다른 과나 동료 의사들끼리 교류는 주로 회식 때만 있어요.
그래서 저는 혼자 개원할 때부터 진료실을 세 개 만들고 뒤에 복도를 뒀어요. 거기서 저 혼자 책도 찾아보고 모르는 것 전화로 물어보기도 하다가 1진료실 들어가서 환자 보고, 2진료실 들어가서 환자 보는 식으로 했어요. 지금도 진료센터가 본관 1, 2층, 신관 2층 다 그렇게 돼 있어요. 의사들이 서로 의논하고 융합하게 만들려는 노력이에요.

앞으로도 융합이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문이과 분리조차 구시대적 발상 같고, 문과생이 이과 개념도 가져야 하고 반대이기도 해야 해요. 서로 협조해야죠. 의학은 또 어떻게 하면 다른 과학이나 기술과 접목해서 잘 해갈까 고민해야죠. 저는 지금도 새 의료도구를 만들어서 특허 신청을 내보기도 합니다.

가령, 저희 병원은 UD(업로드/다운로드) 시스템이라고 해서, 환자들의 진료영상을 전송다운받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쓰고 있어요. 해외에 나간 환자 중에서 심심찮게 국제전화나 이메일로 필요한 진료영상을 보내달라거나 현지 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줄 테니 봐달라는 요청을 하곤 해요. 방법을 찾다가 온라인으로 바로 내려받아 보는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거죠. 등록환자는 무료로 언제 어디서나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게.

저희는 전산팀을 따로 두고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고 있습니다. 환자나 의료진이 불편하면 그 자리에서 바꾸게 해요. 요즘은 모바일 서비스도 추진 중입니다. 이게 다 전산과의 힘이죠. 미래는 디지털이고 특히 모바일로 이동 중이기 때문에 병원도 대비해서 준비하고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면?
묵사(默史) 류주현(1921-1982) 작가의 대하소설 ‘조선총독부’를 읽고 있습니다. 우연히 이천 도자기 박물관에 갔다가 보고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60년대에 처음 월간 신동아에 연재됐다가 나온 소설인데 최근에 다시 나왔더군요.

사실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은 중국인데. 20세기초에 잠깐 패권을 잃었을 뿐이지 그전에는 G1이었잖아요. 그렇지만 한족이 이어져 온 게 아니라 몽고한테도 정복당하고 여진한테도 당하고, 그런 역사가 재미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청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하면서 우리 갑오경장이나 근대와도 연결해서 책을 읽게 됐어요. 요즘은 일제강점기 때는 실제로 어땠을까 궁금한데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해서. 읽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어요. 총독부와 고종의 관계라든가 여러가지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 게 많아요.
-앞으로 계획을 간략히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알파고 때 인공지능 이야기로 떠들썩했잖아요. 그때 장차 사라질 위기의 직업으로 단순 진단 의사도 거론되더군요. 실제로 진단이라는 것은 질환과 증상만 입력하고 검사 수치만 넣으면 바로 나옵니다. 인공지능이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최신 업데이트된 컴퓨터를 10년 전에 전문의 딴 의사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결국 뭔가 창의력이 있어야 모든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비단 의사뿐만 아니겠지요. 저도 그런 위기감을 갖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창의력 있게 병원을 하려고 해요. 그러려면 책도 읽고 논문도 읽고 연구하는 병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병원에 노무현 대통령 디스크 수술을 한 척추의사 이승철 원장이 있는데 중국에 강연 갔다가 5년 전과 너무 달라져서 깜짝 놀라고 왔어요. 예전엔 많은 걸 가르쳐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엄청난 자본력으로 첨단 의술, 장비를 도입하고 있다는 거예요.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에 의료산업이라는 게 결국 클 수밖에 없는 산업이에요. 사람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겠어요. 그만큼 의료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는데 우리 의료는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어요. 의료수가 문제도 그렇고 규제에 묶인 게 많아요. 저로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투자해서 세계적인 병원으로 키워보려고 합니다.
-다음으로 '요즘 무슨 책 읽는지 궁금한 분'으로 누구를 추천하고 싶습니까?
배우 안성기 씨를 추천할까 합니다. 이분 아들과 제 아들이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학부모 모임에서 보곤 하는 사이입니다. 배우로도 좋아하지만 이분 독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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