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 꿈꾸지 않았던 천직

조회수 2017. 9. 15. 08: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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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박산호의 '책바다에서 헤엄치기'(11)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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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번역의 세계]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장르 소설 번역가 '코랄' 박산호[책바다에서 헤엄치기] 11화 '꿈꾸지 않았던 천직'입니다.


나는 하루키의 산문을 좋아한다. 얼마 전에도 그의 글을 읽다가 나도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읽던 중이었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 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간혹 하루 작업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번역에 들이는 시간은 하루 대여섯 시간 정도 된다. 하지만 일도 연이어 할 수는 없고 중간중간 쉬어줘야 한다. 말 없는 뇌도 휴식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짬짬이 집안일도 해야 하고, 끼니도 챙겨야 한다. 그러니 사실상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2 정도가 일에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지만 이 역시 지금 일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지점에서 무 자르듯 일과 휴식의 경계선을 긋기는 어렵다.


이런 일을 생업으로 삼은 지 어느새 15년을 넘겼다. 어떻게 이 긴 시간을 한 가지 일로 이어올 수 있었을까? 번역료 수입이 생계의 방편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글쎄다. 그보다는 하루키의 해석 쪽으로 더 기운다. 아무래도 이 일이 내게 잘 맞아서, 내가 이 일을 좋아해서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먹고살게 됐으니 나는 꿈을 이룬 걸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렸을 적 나는 번역가란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글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기억은 있다. 좀 더 세상 물정을 알고 난 다음에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희망은 희망일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야 카피라이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직업이란 걸 알게 됐다. 뒤늦은 방황이 시작됐다. 결국 대학 문을 나서야 할 순간은 다가왔고 아무 회사라도 들어가는 게 우선이었다. 이 역시 희망은 희망일 뿐이었다. 졸업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입사의 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방황은 무기한 지연됐다.


그 와중에도 영어만큼은 유독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책을 다시 잡았다. 통역사의 꿈을 키운 것도 그때부터였다. 하루 열 시간도 넘게 공부에 매달렸다. 하지만 고진감래의 성공담은 내 것이 아니었다. 2년 정도 시도 끝에 접고 말았다.


결국 꾸는 꿈마다 산산조각 나는 쓴맛을 본 끝에 생계를 위해 발을 들인 곳이 번역업계였다. 삶은 막다른 골목에서 뜻밖의 출구를 열어보이곤 한다. 번역은 내게 그런 출구였다. 시작하고 보니 의외로 잘 맞았다. 하면서 애정도 커졌고 자존감도 느껴졌다. 예전에 맛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15년. 내 인생 처음으로 이토록 긴 시간 포기하지 않은 일이 생겼고, 덕분에 밥벌이까지 하게 됐다. 가끔은 내가 한 일에 대한 칭찬도 들으면서 어쩌면 나도 세상에 쓸모가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대견함마저 느낀다.


뒤늦은 깨달음도 있다. 한때는 나 자신 실패라 여겼던 경험들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둘 보탬이 됐다는 것. 책을 끼고 허송세월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간들이 지금 독서 체력의 밑거름이 됐고, 통역사를 꿈꾸며 죽자 사자 매달렸던 영어 공부가 지금 번역 일의 토대가 됐다.


유학 시절 여러 상점의 판매원을 전전하며 길렀던 사회성도 다양한 출판사, 편집자 들과 관계 맺는 데 도움이 되고 있고, 영어회화 강사 시절 경험은 지금의 번역 강의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구직 기간에 겪어야 했던 무수한 퇴짜는 프리랜서 번역 초기 숱하게 겪기 마련인 거절과 아픔을 이기는 면역력을 길러줬다. 결국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등바등했던 노력은 어떤 식으로든 내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을 봤다. 오노 지로라는 스시 장인. 미슐랭 가이드 역사상 최고령 3성 셰프라는 기록의 주인공 이야기였다. 초밥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 상을 받은 날에도 오후에 가게에 나가 스시를 만들었다고 했다.


스시에 노력을 기울여 봐야 스시일 뿐, 뭐 새로운 게 더 나오겠나. 처음에 선배들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보다 더 잘,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믿었고, 독창적인 스시를 연거푸 만들어 냈다. 노력하는 아흔 살 현역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런 그도 타고난 스시 장인은 아니었다. 9살 때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스시를 배웠다. 아버지는 집을 나서는 어린 아들에게 `너에겐 돌아올 곳이 없다`고 했고, 아들은 낯선 주인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악착같이 일에 매달렸다.

영화로도 제작된 책 <마오쩌둥의 마지막 댄서>에는 중국 발레리노 이춘신 이야기가 나온다. 1961년 중국 칭다오 깡촌의 가난한 집안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11살 때 마오쩌둥의 아내인 장칭이 후원하는 발레학교에 선발됐다.


선발이라고는 하지만 본인 의지와 상관없는 우연의 결과였다. 학생을 뽑으러 온 심사관은 그를 지나쳤지만 담임선생의 제안으로 심사를 받게 됐다. 오금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은 끝에 유연성 시험을 통과했고 듣도 보도 못한 춤의 세계로 떠밀려 들어갔다.


발가락이 길다는 이유로 시작된 발레리노 인생. 본인으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지만 예술혁명 전사를 찾던 당시 중국에선 있을 법한 일이었다. 낯선 세계에 밀려든 이춘신은 향수병에 시달리는가 하면, 마르고 작은 체구 때문에 2년 내내 꼴찌를 전전했다. 운 좋게도 좋은 스승을 만나 발레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고 결국 발레리노로 명성을 국경 너머까지 알릴 수 있었다.

일이란 뭘까? 지로와 이춘신, 두 사람에게 그것은 오랜 꿈의 성취가 아니었다. 느닷없이 닥친 파도 같은 운명이었다. 그들 앞에 애당초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타인이 정해준 삶에 어떻게든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발버둥쳐야 했다. 그런 중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키웠고 성공적인 삶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지금까지 세대 상당수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부모든 교사든 국가든, 나 이외 누군가가 알게 모르게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 혹은 강권했고, 자의반 타의반 주어진 직업의 선택지로 뛰어든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세대는 거의 공백 상태에서 자기 일을 찾고 길을 내야 한다는 더 큰 곤경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닌지.


세월의 터널을 먼저 지나온 내가 건넬 수 있는 답이란 무엇이든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무개그처럼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어떤 일이든 해보기 전까지는 내게 맞는 일인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내가 생각했던 그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정도 수모라면 수입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보수는 적어도 내 자존감의 수위에 맞는 일인지조차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너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야," "요즘 잘 나가는 일이야", "수입도 괜찮대"... 이런저런 타인의 달고 쓴 말들은 실전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

일본 광고 카피 중에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어른이란 말 대신 어떤 직업을 바꿔넣어도 좋다. 삶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 일도 모험이 됐다.


스시 요리사가 되고 싶다면 지로가 했던 것처럼 먼저 뜨거운 행주를 손으로 꽉꽉 짤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번역가가 되고 싶다면 한 문장, 한 단락을 어떻게 잘 옮길 수 있는지 고심해보는 게 좋다.


도전해본 후에 내 일이 아니라 생각되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좌절과 실패는 아프다. 결심을 번복하는 것은 더 고통스럽다. 하지만 제대로 깨져야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막연한 조바심과 두려움에 저울질만 반복한다면 한 걸음도 못 나간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16년차 번역가의 자리에 이른 내가 들려줄 수 있는 화려하지 않은 조언이다.


글쓴이 박산호

한국 외국어대 인도어과와 한양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영국 브루넬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2003년 ‘못 말리는 유모’ 시트콤으로 영상 번역에 데뷔해 시트콤과 요리 프로를 번역하다가 2005년 출판 번역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영화 <양들의 침묵>에 매료돼 동네 도서대여점의 장르 소설들을 독파하면서 애정을 키우던 중, 우연히(혹은 운명적으로) 스릴러 소설 대가인 매튜 스커더의 <무덤으로 향하다> 번역 테스트에 통과하면서 출판 번역계에 입문했다.


번역한 책은 <세계대전Z>, <싸울 기회>, <차일드 44 시리즈>, <레드 스패로우>, <100세 혁명>, <퍼시픽 림>, <솔로이스트>, <비독 소사이어티>, <도살장>,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등 60여 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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