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 다 읽고 옮기는 게 나을까

조회수 2017. 7. 1. 11: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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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12. 고치는 사람, 안 고치는 사람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해외 양서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번역의 세계]는 외국어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반대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읽고 나면 번역서들이 달리 보일 겁니다.


오늘은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제12화 '고치는 사람, 안 고치는 사람'입니다.


번역가들은 원서를 먼저 다 읽어본 다음 우리말로 옮길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속사정을 들어보시죠.


번역계에는 해결되지 않은 논쟁거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우선 대충 번역하고 나중에 꼼꼼히 고칠 것이냐,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꼼꼼하게 번역할 것이냐의 논쟁이다. 지금도 팽팽히 맞선다.


번역가도 두 부류로 나뉜다. 이른바 '고치는 번역가'와 '(거의) 안 고치는 번역가'.


'고치는 번역가'는 최대한 빨리 초벌 번역을 한다. 모르는 단어는 원어 그대로 두고 넘어간다. 어떻게든 책 한 권을 꾸역꾸역 다 번역한 뒤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꼼꼼히 들여다보며 문장을 고친다.


오타와 비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순, 절의 구조, 수사법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한다. 그러다 보면 초벌 번역에 걸리는 시간과 고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비슷한 번역가도 있다.


이에 반해 '안 고치는 번역가'는 처음부터 단어 하나하나, 구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가며 번역한다. 황소걸음이다. 이렇게 1차 번역을 끝낸 후 오타와 비문만 고쳐서 제출한다. 아예 더는 손대지 않고 출판사에 넘기는 번역가도 있다. (편집자도 할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번역 스타일이 이렇게 상반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한다. 내가 보기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성격’이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 문제를 풀어봤으면 기억할 것이다.


그때도 두 부류가 있다. 우선 쉬운 문제들부터 골라 푼 뒤에 다시 어려운 문제를 찾아 도전해나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무작정 1번 문제부터 순서대로 풀어 내려가는 친구가 있다. (나는 후자였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자기검열 없이 써내려간 후에 다시 읽어보며 퇴고하는 방법이 좋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무언가 뚜렷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에는 컴퓨터 앞에 앉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쯤이면 내가 어느 부류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 후자 쪽이다.)


'고치는 번역가'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론은 ‘해석학적 순환’이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읽을 때마다 매번 해석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가령 소설의 경우만 해도 결말을 모르고 읽을 때와 알고 읽을 때의 독서 경험은 전혀 달라진다. 처음에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요소들이 다시 읽을 때는 부각돼 보이기도 하고,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난다.


번역 일의 절반이 독서다. 번역에서도 해석학적 순환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되지 않던 문장이 책 전체를 일별한 후 다시 읽어보면 명쾌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이유로 번역 원고에 착수하기 전에 우선 원서를 통독하는 번역가도 있다. 나도 초창기에는 그런 방식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점차 통독을 하는 중에도 집중력이 낮아지더니, 나중에는 급기야 첫 페이지를 펴서 바로 번역을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소설 번역가는 사전 완독을 꺼리는 이유가 결말을 알면 번역의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요즘 원서를 미리 읽지 않는 데는 좀 민망한 이유가 있다. 정작 번역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난 후 번역을 시작할 때쯤이면 (새 책을 받아든 것 같다고 하면 좀 과장이겠고) 벌써 읽은 내용이 가물가물해지니 말이다. 아직도 기억력이 싱싱하거나, '해석학적 순환'의 오묘함을 즐기고 싶은 번역가라면 원서를 먼저 통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작은 딱정벌레의 위대한 탐험』(궁리, 2016)을 번역할 때의 일이다. 만화책이어서 가볍게 생각하고는 몇 장 훑어보고서 곧장 번역에 들어갔다. 웬걸, 뒤로 가면서 막장드라마가 되더니 급기야 동료가 아빠 되고 엄마 되고 형도 되는 것 아닌가. 이런 관계 변화에 극적인 효과를 더하려면 호칭과 존비어에 변화를 줘야 했다. 결국 맨 앞으로 돌아가 대화문의 어미를 하나하나 바꿨다.


뒤이어 같은 출판사와 작업한 『어메이징 인포메이션』(궁리, 2017)도 별생각 없이 곧바로 번역에 들어갔다. 이번엔 도서관 사서가 대학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어서 모두 높임말로 옮겼다. 다 해놓고 보니 오히려 격의 없는 반말투가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일일이 고칠 각오를 하고 편집자에게 물어봤다. 의외로 높임말이 어색하지 않다기에 그냥 두기로 했다. 두 책 다 먼저 원서를 통독한 후에 번역 전략을 세워 작업을 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안 고치는' 쪽의 번역가들도 할 말은 있다.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한 생각의 덩어리를 글로 빚어내야 하는 작가와 달리 번역가는 1차 완성된 작품을 상대하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미 원저자가 퇴고 과정에서 충분히 고민한 결과물이므로 다시 부산을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번역문의 자구를 다시 원문과 대조해가며 고치려다가는 한국어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거나, 원문의 전략을 소화하지 못한 채 '창작'의 과욕을 범할 우려까지 있다는 말도 한다.


내 경험상으로는 원저자가 초고를 철저히 고치고 편집자가 훌륭히 다듬은 글일수록 번역 과정은 확실히 수월하다. 반면, 원저자가 '생각의 흐름'에 따라 쓰고 그 뒤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출간된 원서를 맡았을 때는 저자가 했어야 할 고민까지 번역자가 떠안은 꼴이 된다. 여간 고역이 아니다.


물론 외국어의 전략이 한국어의 전략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언어가 됐든 잘 다듬어진 글일수록 번역도 편하다. 설령 고생을 하더라도 그만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어쨌거나 지금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처음부터 읽어가면서 우리말로 옮기는 방법을 택한다. 그런 다음 번역 원고를 통독하면서 거슬리는 표현을 다듬어간다. 그러다 보면 1차 번역 때는 어색했던 문장이 '해석학적 순환'을 거친 뒤에는 한결 자연스럽게 읽히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가끔 혼자 감동할 때도 있다.


물론 모든 번역가에게 그런 식으로 '은총'이 강림하는지는 모르겠다. 각자 터득한 대로, 통하는 방법대로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참고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도 라틴어 성서를 처음으로 독일어로 옮긴 번역가였다.)




노승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회사와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2006년에 출판 번역에 입문해 11년째 번역을 하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번역가이자 실력만큼 속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계형 번역가. 지금까지 50권가량을 번역했다. 편집자가 뽑은 《시사인》 2014년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됐다.


주요 역서로는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 노엄 촘스키의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 아룬다티 로이의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이단의 경제학』,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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