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 고래의 '짝지꼬리'를 아시나요?

조회수 2017. 3. 18. 14: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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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10. 나의 사랑하는 사전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해외 양서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번역의 세계]는 해외 도서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제10화 '나의 사랑하는 사전'입니다.


번역가가 좋아하는 사전은 어떤 사전일까요? 외국어에 능통한 번역가가 왜 사전은 시도 때도 없이 뒤적이는지, 외국어 책을 번역하는데 왜 갈수록 국어사전을 더 찾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들어보시죠.


번역가란 사전을 섬기는 족속이다. 사전이 하는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 어떤 면에서 번역가가 하는 일은 사전이 알려주는 낱말을 적절히 배열하는 것이 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번역가는 진입 문턱도 낮은 편이어서, 해당 외국어의 기초 문법을 알고 좋은 사전만 장만했다면 누구나 기본 요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번역 일을 지망하는 사람은 넘쳐나고 번역료는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낱말의 적절한 배열’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번역가가 된다는 것과 좋은 번역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래도 사전이 좋으면 아무래도 번역도 좋아진다. 번역가로서는 사전에 각별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나 같은 번역가에게 좋은 사전은 뭐니 뭐니 해도 뜻풀이(번역어)가 많은 사전이다. 번역가가 수시로 사전을 뒤적이게 되는 것은 대개는 생판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라기보다는 수많은 번역어 중에서 가장 알맞은 것을 고르기 위해서다.


사전에서조차 마음에 드는 번역어를 찾지 못하면 번역가의 고뇌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럴 때 적당히 타협해서, 내키지 않는 번역어라도 사전에서 갖다 쓰는 것을 기계적 직역이라 한다.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갖다붙이는 것은 '아몰랑 의역'이라 부른다.

번역가의 일은 독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책의 원문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번역어로 표현해 내야 한다. 엄밀히 말해 번역가가 사전을 찾는 이유는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떤 단어를 다른 어떤 단어로 대체하는 게 더 좋을지 골라내기 위해서다. (번역가를 위한) 사전에 풀이 단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컴사전을 즐겨 썼다.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린 뒤로는 야후사전의 빨간펜 기능을 애용했다. 영어 단어 위에 빨간펜 커서를 올리면 뜻풀이를 보여주는 미니 사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야후가 몰락하면서 더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네이버 영한사전을 쓴다. 네이버에서 독자적으로 구축한 것이 아니라 기존 종이 사전을 출판사별로 합쳐놓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동아출판’이라는 이름의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이다. 이유는 아까 말했듯이 번역어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질보다 양이다.

번역 경력이 햇수를 더하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횟수도 점점 많아진다. 영한사전에 번역돼 나오는 단어를 다시 국어사전에서 찾아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져서다.


영한사전에는 나와 있는데 국어사전에는 없는 단어도 많다. 여기에도 일종의 '중역(이중번역)'의 문제가 개입돼 있다. 우리 영한사전들이 처음 만들어질 때 대개는 일한사전의 뜻풀이를 그대로 가져온 결과인 듯하다. (이런저런 영한사전의 문제점들은 이재호의 『영한사전 비판』(2005)에 자세히 나와 있다.)


국어사전으로는 주로 표준국어대사전을 쓴다. 이유가 있다. 국가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권위를 등에 업기 위해서다. 꼭 쓰고 싶은 번역어를 찾았는데 '비표준어'라고 표시돼 있으면 갈등하게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생경한 한자어를 써야 하나, 북한어나 비표준어인 아름다운 우리말을 써야 하나?

가령 영어 단어 ‘fluke’에는 ‘고래의 꼬리지느러미처럼 끝이 갈라진 꼬리’라는 뜻이 있다. 이걸 영한사전에서 찾으면 ‘(끝이 갈라진) 고래 꼬리’라고만 나와 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 보면 ‘짝지꼬리’라는 표제어와 함께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진 꼬리’라는 설명까지 나와 있다.


문제는 '짝지꼬리'라는 단어는 북한어라는 것. 북한어를 그대로 써도 되는지 국립국어원의 상담 창구인 '우리말365'에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표준어를 쓰는 것을 권장한다”였다. 대응하는 표준어가 없는 경우에는 풀어서 쓰는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럴 거면 왜 북한어를 우리 사전의 표제어로 실어놓은 걸까? 어쨌거나 소심한 나는 ‘꼬리발’이라는 내 나름의 신조어를 만들어 썼다.

이렇듯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문제는 적지 않다. (박일환의 『미친 국어사전』(2015)에 잘 나온다.) 표제어와 뜻풀이만 해도 뜯어고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당장 현실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뭔가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사전이라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다. 존중하되 비판하라!


요즘은 온라인 사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다 보니 번역 작업 중에 인터넷 접속이 끊기는 것은 재앙이다. 인터넷 연결은 이상이 없어도 이따금 국립국어원 홈페이지가 먹통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초조해진다. 미심쩍은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찜찜해서 도무지 번역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급기야 '거금'을 주고 표준국어대사전 스마트폰 앱까지 설치했다. 이젠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공간에 글을 올릴 때도 사전을 참고해야 안심이 될 정도니. 이런 것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어법 같은 형식에 집착할 시간이 있으면 내용을 좀 더 고민해야 할 텐데. 번역을 하면서 점점 쪼잔해지는 듯하다.

종이사전도 찾아볼 때가 있다. 내가 아직도 즐겨 참고하는 유일한 종이사전으로는 『두덴 발음사전』이 있다. 외국 인명이나 지명의 표기가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용례에도 없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없고, 신문·잡지에도 없으면 으레 이 사전을 펼친다.


이곳에서 찾아낼 확률은 20%쯤 된다. 여기에도 없으면 유튜브 동영상이나 Forvo 같은 발음 웹사이트를 검색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단계까지 가게 되면 시간 대비 효율이 급감하기 시작한다.


가장 번역답지 않은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게 되는 꼴이다. 외래어는 그냥 원어로만 표기하고 편집자가 알아서 고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집자들의 원성이 빗발치는 듯하다.)


번역가에게는 또 다른 도우미가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어다. 정식 사전 취급을 받지는 못할 때가 많지만 더없이 귀한 친구다. 나 같은 번역가도 중요한 정보를 얻을 때가 많다. 물론 누구나 편집·수정할 수 있다는 한계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위키백과는 출발점으로 이용하고 다른 자료들로 교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키백과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번역의 시대는 위키백과 이전과 위키백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진지하게 나돌 정도다.

요즘은 나무위키라는 것도 등장했다. 검색하다 보면 이곳으로 연결될 때가 많다. 믿어도 될 만한지는 아리송하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짜 정보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보의 수준은 낮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다. 무엇보다 번역가에게는 정보의 정확성이 필수이고, 콘텐츠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전은 뇌의 연장이다. 모든 정보를 모두가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비효율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전을 기억의 대용품으로 쓴다. 문제는 머리 밖의 뇌가 업데이트되지 않고 마냥 머물러 있을 경우다.


종이 사전은 정기적으로 개정판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온라인 사전은 오히려 정체돼 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공짜니까 이것만도 감지덕지하며 써야 하는 건가. 이용자의 자발적 참여에만 의존한 개정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주인 없는 정원이 절로 가꿔질 리는 없다.


공동체의 말과 글살이를 위한 사전에도 제 일처럼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검색, 사전을 삼키다』(2016)의 저자가 그런 경우다. 그런 사람의 요란하지 않은 공헌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었야 함은 물론이다.


필자 소개



노승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회사와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2006년에 출판 번역에 입문해 11년째 번역을 하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번역가이자 실력만큼 속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계형 번역가. 지금까지 50권가량을 번역했다. 편집자가 뽑은 《시사인》 2014년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됐다.


주요 역서로는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 노엄 촘스키의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 아룬다티 로이의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이단의 경제학』,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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