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배크만 씨네] 아내는 왜 상담이 받고 싶은 걸까?

조회수 2017. 6. 24. 12: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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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배크만 가족의 좌충우돌 일기 (2)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베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북유럽 소설 바람을 국내에 몰고온 스웨덴발 베스트셀러 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블로그 일기를 깜짝 연재합니다.


배크만은 작가이기 전에 유명 블로거이기도 합니다. <오베라는 남자>도 사실은 그의 블로그에 대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에서 시작됐지요.


그 뒤 그의 블로그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을까요. 그의 명랑쾌활 북유럽 가족의 일상 속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북구 특유의 생활 풍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친구 같은 부부와 두 자녀가 한 지붕 아래에서, 옥신각신 티격태격 오손도손 살아가는 유쾌한 일상을 삽화와 함께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야기는 '미심쩍은 남자의 놀이터 산책'입니다.


번역: 이은선

일러스트: 최진영

배크만 가족을 소개합니다
*프레드릭 배크만 (36세)
요즘은 아이들까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그깟 과자 좀 집어먹었기로서니. 이래 봬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말이지..

*아내 (37세)
결혼이 아이 셋 키우는 일이 될 줄이야. 이 집에선 출근도 내 몫이다. 철없는 남편 뒷수습까지. 이만하면 내가 원더우먼 아닐까.

*아들 (7세)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고 물으면 솔직히 고민된다. 머리 속에는 레고 배트맨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딸 (4세)
무시하지마. 내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다구. 바닥에 드러누워 울음을 터뜨리면 다들 어떻게 되는지 알지?

지난주에는 사무실을 함께 쓰는 친구 N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N은 그 자리에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요즘은 그가 아이를 맡아 돌보는 시기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근처 놀이터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무직이나 다름없는 30대 중반의 남자 둘이서 아이를 데리고 대낮에 할 만한 일이 뭐 있겠는가. (무직이나 다름없는 30대 중반의 남자 둘이서 아이도 없이 특별한 이유 없이 놀이터를 찾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처럼 가는 길에 세븐일레븐에서 맛대가리 없는 커피를 사서 종이컵으로 마시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 친구 N은 평범하고 게으르고 재주 없는 사람이 아니어서, 집에서 끓인 환상적인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가지고 왔다.


게다가 달달한 꽈배기 번까지 직접 구워서 멀끔한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 온 것 아닌가. 그뿐 아니었다. 들고 온 조그만 가방에서 진짜 머그잔을 꺼내더니 거기다 커피를 따라주기까지 했다.


그는 번을 굽는 사내였다. 그것도 직접. 나는 그런 걸 집에서 구울 수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일은 처녀가 잉태하고, 전기를 직접 만들어 쓰는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커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친구 N이 그냥 내려서 온 게 아니라 냄비에 넣고 끓인 거였다. 카우보이나 빌헬름 모베리(*스웨덴의 소설가)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거기에다 그는 진짜 머그잔까지 들고 왔다. 손잡이며 기타 등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잔을 말이다.


우리가 같이 간 공원은 스톡홀름 한복판에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다른 부모들도 우리를 쳐다봤다. 거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대놓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중간에 내 친구 N이 달아난 아들을 잡으러 갔다. 순간 나는 대낮에 꽈배기 번과 진짜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놀이터에 혼자 나와 있는 남자가 되고 말았다. 이러다 경찰에 신고당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몰려왔다.


경찰들이 뭐라고 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뭐라 하건 나로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생방송 <다운튼 애비>(*20세기 초 영국이 배경인 시대극)에나 어울릴 의상을 입고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더구나 내게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데는 타고난 재주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면 그걸 개선한답시고 점입가경으로 만들고 만다.


이번에도 나는 놀이터에 아이 없이 혼자 와서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꽈배기 번을 먹는 남자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잽싸게 잔을 들어 보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남자로 서서히 변신을 꾀했다. 그래야 덜 미심쩍어 보일 테니까.

그날 놀이터에 있었던 사람들을 내가 다 대변할 수는 없지만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건 아닐지 몰라도 내가 엉뚱한 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은 피할 수 없었다. 무슨 사회규범 파괴자가 된 것만 같았다.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나보다 더 튀는 사람 옆으로 가는 것이다. 이 사람에 비하면 나는 평범해 보이지 않으냐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보다 나은 방법은 자신감을 키워서 34살짜리가 불안해진 13살짜리처럼 굴지 않도록 하는 것일 테지만 너무 무리한 요구는 말기로 하자.)


다행히 탐색에 나서자마자 알맞은 상대를 거의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중년기 후반의 남자에다 인상도 좋았다. 손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이미 나이로 미루어 봐서 할아버지이겠거니 짐작한 터라 다행이었다. 맘대로 짐작해도 맞추기만 하면 용서되는 게 우리의 불문율이니 말이다.)


아이가 모래밭에서 노는 동안 그는 돌 위에 가만히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노를란스 굴드 맥주였다. 이 시점에서 그게 중요한 부분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가끔 손자가 모래판에서 뭘 도와달라고 하면 그는 유모차에 달린 컵 홀더에 맥주를 꽂아두고는 (부가부 유모차였다. 이것도 엄청 중요한 부분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컵 홀더가 어마어마하게 잘 늘어난다.) 가서 모래성을 같이 쌓아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와서 천하태평으로 맥주를 마셨다.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컵 홀더에 담긴 맥주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맥주를 들고 나온 할아버지가 그런 나를 경우 없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진짜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이 그의 눈에는 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놀이터에 진짜 머그잔을 들고 나오겠는가 말이다. 다시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다른 성인들과 비교했을 때 나의 자신감과 과대망상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시사하는 바가 큰 에피소드라 하겠다. 모래밭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을 했다니.


나는 상담을 받으러 갈 때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전문가와 대화를 나눈다. 다녀와서는 아내에게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을 전한다. 그러면 아내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그녀가 다른 전문가를 찾아가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나는 모르겠다.


#내_친구_N과_내가_모래밭에서_맥주를_마셨다면_N은_다른_건_몰라도_제대로_된_맥주잔과_잔_받침을_챙겨가지고_나왔을_것이다.


프레드릭 배크만 Fredrik Backman 


30대 중반의 작가이자 블로거. 데뷔작이자 첫 장편소설인 『오베라는 남자』로 인기몰이. 인구 9백만의 스웨덴에서 84만 부 이상, 전 세계 28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미국 아마존 소설 분야 1위, 뉴욕타임스 종합 1위 기록. 40개 언어권에 판권이 수출되면서 2016년 영화로도 제작. 이후 출간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세계적인 작가로 등극. 신작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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