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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북] "출판혁명 이제 시작..이미 만화를 잃었다"

조회수 2016. 4. 25. 14: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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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디지털과 공진화가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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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해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느긋하게  읽어가 보시면 어떨까요. 이번엔 책 읽기와 만들기에 청춘을 불사른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오늘(23일)은 책의 날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책은 갈수록 홀대받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독서율 통계를 보면 그렇습니다.

작년 한 해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이 65.3%였습니다.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입니다. 선행 조사가 실시된 2년 전보다 6.1%포인트가 더 떨어졌습니다.

독서 시간도 줄었습니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1권, 독서시간은 평일 22.8분, 주말 25.3분으로 2년 전보다 감소했습니다.

출판계도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비교 가능한 71개 출판사의 최근 5년간(2010-2014년) 총매출액은 4년 전에 비해 8.9%나 줄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넋두리는 상투적인 엄살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디지털 혁명이 있습니다. 그 파도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앞 조사에서 책을 읽는 성인의 경우에는 독서량이 오히려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3년 12.9권에서 지난해 14.0권을 기록했습니다. 책 읽기의 양극화입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부의 양극화'를 말했다면, 지식 자본의 소비와 축적도 양 갈래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시는지요?

오늘 [미니북]은 '출판의 미래' 저자와의 인터뷰입니다. 장은수 출판문화실험실 대표입니다. 민음사에서 신입 편집자로 출발해 최고경영자까지 지낸 출판인입니다. 꾸준하고 성실한 책 읽기와 서평, 출판 리뷰로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물론 책 좀 읽는 독자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익은 인물입니다.

오랫동안 숱한 책을 읽고 만들어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저술로는 첫 작품인 이번 책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밀도 높게 기술했습니다. 출판계의 현재와 미래를 그린 상세 지형도라고 부를 만합니다. 출판계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고민해왔거나 고민 중이거나 조만간 피할 수 없는 화두들로 가득합니다. 출판계에 대한 애정어린 '죽비'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출판의 미래에 대해 낙관합니다. 자신의 어릴적부터 오랜 체험을 토대로 읽기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며, 그런 한 책과 출판은 유구한 생명을 이어갈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봤습니다.

출판계에서 일하면서 혁신을 고민하는 분, 이 방면의 창업과 취업, 전업을 생각하는 분, 책과 출판의 현재와 미래에 관심 있는 독자 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번에도 얼마간 인내가 필요한 긴 글입니다.


-어떻게 처음 책과 인연을 맺게 되셨지요?
사실 저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달동네 단칸방에 온 가족이 살았어요. 어렸을 적에 집에 책이 없었어요. 교과서가 제게는 첫 책이었죠. '어릴 적부터 주변에 굴러다니는 책들을 좋아했다'는 식의 이야기란 제 기억에는 없어요.(웃음)

처음으로 진짜 재미있게 독서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예요. 학교에서 임원을 맡았는데 그게 도서부장이었어요. 초등학교 도서실 관리 담당이 된 거죠. 관리라고 해봐야 청소도 하고 책 빠진 것 제대로 꽂아두기도 하고, 그런 일이었죠.
-그땐 규모가 어느 정도였죠?
일반적인 초등학교 도서관 수준일 텐데 그래도 몇천 권은 됐지요. 어느 학교나 그 정도였을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읽기를 시작했어요. 계몽사 세계소년소녀명작전집, 딱다구리 그레이트 북스 같은 전설의 시리즈들을 한 권씩 읽기 시작해서, 그해에 한 천 권쯤 읽었어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직장을 다니셔서 집에 일찍 와봐야 별 게 없었어요. 그래서 읽기에 취미를 붙였어요. 기기묘묘한 이야기들에 빠져서. 책을 읽으면서 글쓰는 재미도 붙였어요. 시도 짓고 수필 같은 걸로 백일장에서 상도 받고 하면서 글이란 게 참 재미있는 거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국문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요?
5, 6학년 때쯤이죠. 글과 관련된 일, 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일찍 강하게 빠져들었군요?
네. 그게 첫 번째 계기였어요. 집 사정이 안 좋아서 부모님이 책을 계속 사주실 형편은 못 됐어요. 주로 용돈을 아껴서 헌책방에서 한 권씩 사서 봤죠. 문예지도 보고.
-그때 문예지라면?
'문학사상'. 중학교 때 읽기 시작했어요. 그땐 아주 쌌죠. 민음사 세계시인선도 한두 권씩 읽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시집들을 많이 읽었죠. 김현승, 김소월... 중학교 때 많이 읽고 상도 타고 하니까, 제깐에는 재능이 있는 줄 알았어요. 사실은 없었던 건데. (웃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러니까, 작가가 될 정도의 재능은... 글쎄요, 그때는 잘 쓴다고 주변에서 얘기도 하곤 했지만, 나중에 혼자 돌이켜 생각해보면... 글 쓰는 재주는 그렇게 높진 않았던 거죠.(웃음)

중학교 때는 헌책방에서 많이 읽었어요. 만화도 좋아해서 중고교 시절엔 만화도 많이 봤어요. 고모가 만화방을 하셨는데, 방학 때 가서 그 집 만화를 다 읽곤 했죠. 그것도 재미있는 독서 경험이었죠.

요즘 아이들은 너무 정보형 독서에서 먼저 시작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 경우는 이야기 읽기였어요. 만화도 일종의 그런 거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읽는 것 자체에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때 읽기가 완전히 몸에 붙어서 지금까지 계속 읽고 살게 된 거죠.
-대학 진학 때는요?
고등학교 때도 문예반을 했어요. 계속 시도 소설도 쓰고 문예지도 읽었죠. 그때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문예 중앙'에 김화영 선생님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파트릭 모디아노 작품 번역한 걸 통째로 실었어요.
-아, 그때요? 발표됐을 무렵인가요?
그렇죠. 실린 것은 1979년도인데, 저는 헌책방에서 샀으니까 좀 뒤였죠. 김화영 선생님을 워낙 존경하기도 해서 그 책을 사서 읽은 기억이 나요. '아주 글을 아름답게 잘 쓰는 사람이구나. 이런 걸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대학 진학 때도 서슴없이 국문과를 지원해서 들어갔죠. 성적으로는 다른 과에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바꾼 것 같아요. 대학에서는 국문과니까 친구들이랑 같이 문학동아리도 계속 하고 글도 쓰고 연극도 하고...(웃음)
-연극도요?
아, 연극반에서 잠깐. 그냥 친구 따라 갔다가. 저는 몸이 못 따라가니까, "넌 조명이나 해" 이렇게 되고 말았죠.(웃음)
-신춘문예 같은 데도 응모했나요?
네. 신춘문예 같은 데도 계속 냈죠. 되진 않았지만. 시를 계속 쓰고 싶었어요. 대학신문에 가끔 발표도 했고. 그 중 한 편이 청년대학문예선집인가,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런 데 실리기도 했어요. 계속 글을 쓰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국문과 대학원에도 갔죠.

그 다음 군대를 갔다온 후에 잠깐 공백이 있었어요. 복학을 해야 하는데 8개월 정도 시간이 남아서 애매해졌죠. 그때 출판저널 기자이면서 시도 썼던 같은 과의 김중식 선배한테 물어봤어요. 출판사에서 잠깐 일하고 싶다고 했죠. 민음사를 소개해줄 테니 잠깐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대 후 곧바로 민음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거기서 책 만드는 일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어요. 이 일을 계속해도 좋겠다 싶더군요. 주변에선 반대했죠. 복학에서 계속 공부하라고. 권영민 교수님 같은 분은 "너는 전형적인 책상물림인데 무슨 사업을 하겠다고 그러느냐"고 하시면서...
-석사 후 박사 전이었나요?
아뇨, 석사 과정 중간이었어요. 그래서 석사를 중퇴한 거죠.
-과정 도중이니까 만류하신 거군요.
그렇죠. 그만두지 말고 복학해라, 너는 공부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해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해서 이런저런 잡지에 평론은 계속 썼어요. 그러고 보니 글 쓰는 걸 안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어떤 형태로든, 문학 평론이든 출판 평론이든 에세이든 계속 썼죠.
-그런데 어떻게 이제야 첫 책이 나왔죠?
제게 어떤 결벽 같은 게 있었던 같아요. 에디터가 책을 묶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만일에 묶으려면 제대로. 이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가 있는 것을 책으로 내야지, 여기저기 조각조각 발표한 것을 그냥 모아서 책으로 내는 것은 좀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자기 기준이 높았군요.
네, 제 기준이죠. 책이라고 하면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담아야 한다는. 주변에서는 비평집을 내라, 그동안 그렇게 많은 글을 썼는데 묶어서 내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사실 그런 글만 해도 합쳐서 만 매 가까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글들은 대체로 시의성이 있는 글들이어서 묶어서 책으로 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민음사에서는 바로 편집자로 일을 시작하셨나요?
네, 막내 편집자로.
-첫 책은 뭐였죠?
처음 받은 원고는 김경용 선생의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었는데, 그건 제가 에디팅을 좀 세게 했어요. 당시 일반적인 출판 관행은 원고가 들어오면 빨리 교정 봐서 내는 거였거든요.
저는 기호학 공부를 학교 다니면서 많이 했기 때문에, 저자와 깊이 소통해서 전체를 좀 뜯어고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계를 다시 잡고, 책 뒤에는 기호학 소사전 역할도 할 수 있게 색인이랑 용어 해설도 만들어서 달았어요. 그런 작업에 1년 정도가 걸렸어요.
-아주 의욕적이었군요.
그런 편집이 그전에는 드물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낯설어들 했지요. 제가 혼자서 첫 번째로 낸 책은 권영민 선생님의 '한국 현대문학사'였어요. 제자였으니까 "네가 맡아라"고 해서. 그때도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과 협의했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게, 가령 '6.25 전쟁'이라고 할 건지, '한국 전쟁'이라고 할 건지, '6.25 사변'이라고 할 건지 여러 용어가 있었어요. 선생님은 '6.25 전쟁'으로 하자고 하셨는데, 저는 한국 전쟁으로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용어 같은 것도 세심하게 골랐던 기억이 나요. 좀 '액티브'했죠. 그런 게 재미있었어요.
-신참이었으면 자기 목소리 내기가 조심스러웠을 것 같은데요.
그런 의식은 별로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교지 편집 같은 걸 계속 했거든요. 대학 때도 동인지 편집을 했고 해서. 편집 일 자체는 오래 했던 터라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어요. 또 비교적 아는 영역이고 마침 공부를 깊게 했던 영역이어서 좀 적극적으로 토론할 수 있었던 분위기였어요.

그러니까, 책으로 나오기 전의 세계가 있잖아요. 의견을 내고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해서 원고가 업그레이드되고,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게 되는 걸 경험하면서 편집 세계의 재미를 느낀 거죠. 그래서 편집자 생활을 계속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해만 더 휴학을 해보자' 싶었죠. 물론 등록금도 좀 벌자는 이유도 있었고요. 그게 굳어져서 지금껏 이어오게 됐죠.
-민음사에서만 쭉 계셨나요?
문학팀장을 거쳐서 편집장, 황금가지 편집장, 편집이사, 황금가지 대표, 민음사 대표를 끝으로 재작년 가을에 퇴사했죠. 22년 있었어요.
-편집자 출신으로 대표이사까지 한 경우가 드물죠?
거의 처음일 거예요. 말단 편집자로 시작해서 올라간 경우는. 그전에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주 드문 경우죠. 대개 사주 경영 회사가 많으니까. 경영권도 그렇게 승계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더 일하실 나인데?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시골 동생 집에 가서 휴식을 취했어요. 쉬면서 산책도 하고 구상을 좀 했어요. 우선 정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에 대한 생각, 출판에 대한 생각, 문학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

마침 순천향대에서 아는 분이 2년 가르치는게 어떠냐, 제의가 와서 맡게 됐죠. 초빙교수 자리를 얻어서 연구 기반을 마련한 셈이죠.

편집문화실험실이라는 개인 연구소도 만들어서 전 세계 출판 정보 같은 것, 예전부터 하던 것을 종합적으로 정립하기 시작했어요. 기획회의에도 글을 계속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출판 현황에 대한 이야기로 왔는데요. 어떤가요?
출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 2012년 무렵에 붕괴됐다고 생각해요. 예전 출판 모델이 완전히까지는 몰라도 더 이상 작동 안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왜 그런지, 무슨 일인지 해명을 하고 싶었어요. 도대체 출판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쓰고 만들고 읽는 활동의 기존 방식이 왜 더 이상 작동을 안 하는지, 새로운 방식이 생겨났다면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는 건지, 그후에는 어떻게 될 건지, 이런 것들을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엔 쉽게 생각했어요. 평생 하던 일이니까 금방 하겠지 싶었는데, 파고 들어가보니까, 우선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어요. 모바일 미디어 같은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얽혀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책이나 출판뿐만 아니라 모바일 혁명이라는 큰 흐름에서 봐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콘텐츠 비즈니스를 공부하게 됐고 그래서 시간이 늦어졌어요. 1년 정도 걸렸어요. 마침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도 가서 1주일 정도 비즈니스클럽에서 전 세계에서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도 들어보고. 그런 경험이 저로선 처음이었는데 생각의 기회가 생기면서 정리를 할 수 있었어요.
-출판계에 22년 동안 일하는 동안에는 지금처럼 큰 변화는 없었나요?
좀 과격하게 말하면, 교보문고가 80년에 생긴 후로 출판계에 커다란 변화는 없었어요. 2009년에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면서 변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죠. 언론사계에도 출판계에도. 얼마 전에 한 방송사가 부동산을 매각해서 월급 주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어요. 다른 미디어도 사정은 비슷할 거예요.

그런 미디어 혁명 와중에 출판계도 휩쓸린 거죠. 과거 규칙들이 붕괴되면서. 사실 그후에도 3년은 버틴 거예요. 2012년 전까지는 그런 대로 출판계 전체로는 성장도 되고 괜찮았는데, 2013년 들어오면서 정체에 빠져서 3년 내내 안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도서정가제에도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대로 가면 서점과 출판사가 공멸한다는 위기감에서. 물론 정부 지도도 있었지만. 그것도 제가 보기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고, 연착륙을 위한 시간을 번 정도라고 할 수 있어요. 근본 문제는 따로 있는 거죠.
-근본 문제라면 어떤 걸 말하죠?
그동안 출판은 종이산업으로 여겨져 왔어요. 인쇄 수단을 통해서 지식 내지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 이걸 책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해왔죠. 그걸 판매하기 위한 수단이 서점이죠. 그런 방식으로 유통을 해왔어요.

지금은 그게 아닌 책들이 너무 많이 생겨난 거예요. 대표적으로 전자책이 있고 오디오북 같은 소리책도 있고 네이버 지식백과에 들어가 있는 것도 책이죠. 분할 콘텐츠 형식으로도 팔리고. 그러다보니 종이 형식의 출판으로만 보면 출판 영역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거지요.

거기다 생산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어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정도로. 쪼그라든 시장에서 생산은 쉬워지니까 공급 과잉 상태인 거죠. 심하게 말하면 공황 상태라고도 할 수 있죠. 총수요는 주는데 공급은 늘고 있으니 전형적인 공황이죠. 이래서는 출판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에서 출판업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그러니까, 출판이 지금까지 팔아온 것은 책이 아니라 읽기였다는 거예요.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 독자들이 읽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웹사이트든, 모바일이든. 읽어주기만 하면 출판은 성립이 돼요.

책도 그렇게 보면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재정의해야죠. 구현 방식을 두고는 다양한 형식이 나오겠죠. 출판사는 독자들이 원하는 어떤 형태로든 콘텐츠를 공급할 의무가 있게 됩니다.
-책이라는 콘텐츠의 특징이 근본적으로 소수 미디어라고 하셨지요. 소수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나요?
요즘은 책이 사실 3천 부 나가기가 어렵다고들 해요. 그렇다고 해서 책이 상품으로서 실패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 출판 시장 규모를 봤을 때 기본적으로 3천 부 정도 나가게 돼있다는 뜻이에요. 그런 소수 취향을 향해서, 그사람들을 타겟팅해서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저는 1백만 부짜리 책은 기획해서 만들 수 없다고 계속 주장하는 입장이에요.

그런 점에서 출판은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라고 봐요. 많은 사람을 한 번에 만족시키고 빠지는 영화 같은 매체와는 달라요. 신문과도 달라요. 신문은 잠재 독자 1백만 정도를 전제로 만들잖아요. 하지만 책은 2-3천 명 정도의 취향 공동체를 대상으로 이뤄진다고 봐요.

그래서 책이라는 것은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와도 바로 연결돼 있죠. 사회의 주류 의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를 표현할 권리가 있고, 그걸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가 책인 거죠.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판매와 가치 사이의 영원한 불화가 책이라고도 하셨더군요.
출판사 분들은 늘 '요즘이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는 그말을 들으면 '진짜 책이 안 팔리나보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쉬면서 그게 무슨 말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실은 책이 가치지향적인 데서 오는 거예요. 더 많은 사람이 그 가치를 공유해줬음 싶은데 늘 그 기대에는 못 미치는 거예요. 그 간극에서 오는 불황이지, 실제로 그만큼 안 팔린 건 아니었어요.

1947년부터 출판 통계를 잡아봤는데, 출판계 전반적으로는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적이 없어요. 1977년인가 딱 한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정확하진 않지만. 그 외에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과거에 입에 담았던 불황은 더 읽어줬으면 하는 희망에서 오는 '희망의 불황'이라고 이야기해요. 역설적인 불황인 거죠.

반면 최근에 미디어 혁명 이후에 나오는 불황은 달라요. '절망의 불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로 책이 안 팔리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책과 출판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지금의 상황을 '발견성의 위기'라고 규정하셨죠.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인식하는 것이 발견이라고 한다면, 발견성은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죠. 발견성 개념은 2012년부터 중요하게 떠올랐어요. 전 세계적으로 주로 전자책과 더불어. 종이책은 서점에 진열만 해놓으면 사람들이 알 수 있지만 전자책은 알릴 방법이 없어요.

그전까지 출판계는 그 문제에 대해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종이책도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서점 수가 줄고, 책도 실물 판매보다 온라인으로 판매가 되고, 신문의 출판 지면도 줄고 하면서 책을 출간해도 독자한테 알리는 게 굉장히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출판사들은 서점을 통해 독자에게 알리는 방법을 찾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서점은 그걸 이용해서 광고비를 받기 시작했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이 팔려도 수익성은 나빠지기 시작한 거예요. 원래 출판사는 서점에 위탁 판매 위해 배본할 때 30-40% 깎아줬는데 독자를 찾아준다는 이유로 또 돈을 물게 된 거죠. 이제는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많이 팔려도 납본 수익에서 광고비까지 집행해야 하니까 사정이 나빠진 거죠.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그런 돈을 지불할 수 없는 출판사들은 발견조차 기대하기도 어렵고. 돈을 내는 출판사도 옛날만큼 수익은 좋지 않고. 전체적으로 위축이 된 거죠. 광고 효과는 서점으로 집중되다 보니 다른 광고는 끊게 되고, 그러니 비독자(평소 책에 관심은 없지만 우연히 광고를 보고 사게 되는 사람)가 사라지는 거예요. 독자와 비독자 사이의 단절이 커지는 거죠.

또, 책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읽기, 저는 '짧은 글 읽기라'고 부르는데, 짧은 글들과도 치열한 읽기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됐잖아요. 쉽게 말하면 페이스북과도 매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걸 뭘로 알 수 있느냐면, 책의 최저 판매량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베스트셀러는 문제가 없어요. 어차피 나가는 건 나가니까. 하지만 기본 판매라는 게 있잖아요. 책이 나오면 기본적으로 나가는 수치가 계속 아래로 떨어지고 있어요.
-다른 나라들도 그렇죠?
전반적으로 세계적인 현상인데 우리나라는 좀 더 심하죠. 그러니 저자의 반란이 시작된 거죠. 책을 내면 옛날 같으면 출판사가 3천 부는 팔아줬는데 못 팔아주면 불만이 생기잖아요. 거기다 아마존이 매력적인 제안을 내놨죠. '우리랑 직거래하면 70%를 줄께'라고 했죠. 저자 입장에서는 출판사의 역할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죠. 이제야 발견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출판사의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발견성을 위해 출판사가 해야 할 일은 뭐죠?
쓰기와 읽기를 연결하는 데서 출판사의 고유한 가치를 찾는다면, 그 역할을 더 분명하게 끌어올리고 보여줘야죠. 사실 조금씩 그렇게 돼왔어요. 저자 원고의 숨은 가치를 부각시키고 편집력으로 더 끌어올리는 거죠. 그러면 저자는 '역시 이 출판사랑 일하니까 내 원고의 보이지 않던 가치를 끌어올려서 독자들이 더 잘 볼 수 있게 됐어'라고 생각할 테고, 저자 입장에서는 출판사랑 같이 일할 이유가 생기겠죠.

독자 입장에서는 이 출판사 책은 믿고 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지요. 이른바 큐레이팅이죠. 이 출판사는 품질도 높고 정보 정리도 아주 잘하고 나한테 필요한 정보를 잘 골라 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죠.

요컨데, 첫 번째가 에디팅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고, 두 번째가 큐레이팅 능력이죠. 세 번째로는 투자입니다. 저자에 대한 투자죠. 저자가 원고를 쓰는 동안, 또는 무명일 때 생계라든가 자료 수집 같은 것을 도와준다든가 하는 게 중요한 일로 떠오르게 됐죠. 과거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죠.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듣다 보니 출판사도 연예기획사 같아야 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쪽 기획사들 보면, 재능 있는 신인 발굴하고 키워서 시장에 선보이고 홍보 마케팅까지 비즈니스로 체계화했잖아요.
사실 연예기획사도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 자기 가치를 찾은 거죠. 처음에는 그런 걸 안 해도 됐지만. 지금은 그런 역할까지 해줘야 하는 거죠.

그래야 저자 입장에서는 역시 출판사가 필요해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겠죠. 그걸 위해서는 편집력을 더 끌어올려야 하고요. 종래 출판 방식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편집력을 보여주는 출판이 필요하게 됐어요.
-과거 편집력과는 뭐가 어떻게 다른가요?
간단히 말하면 예전엔 교정 교열이나 간단한 기획이 중심이었죠. 원고에 대한 개입이랄까 변형이 제한적이었다고 하면, 이제 편집자들은 원고 자체를 아예 기획하기도 하고요, 저자와 협업 내지는 공동생산자 수준까지 가야 해요.
-연예기획사로 치면 매니저?
정신적인 것을 공유해야 하니까, 그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뭔가가 필요하죠.
-외국의 경우를 보면 유명 작가 뒤에는 전담 편집자가 있을 정도로 그런 게 관행이지 않나요?
숨어 있어서 그렇지, 그런 일들을 하죠. 더 매력적으로..
-국내는 그런 일이 약한가요?
그동안에는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죠. 물론 대형출판사들은 그런 일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전반적으로 좀 더 그쪽으로 분명해져야 하는 상황이 됐죠. 원고의 설계, 저자에 대한 지적 경제적 지원 이런 게 아주 중요해졌어요. 과거에도 안 해온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분명해 보이지 않으면 저자 입장에서는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졌죠.

다음으로는 마케팅이 있어요. 특히 이 문제가 심각하죠. 제 책에도 인용했지만 영국 작가 협회에서 출판사에 대한 저자 만족도를 조사한 걸 보면, 편집은 그래도 40%예요. 우리나라도 그 정도는 나올 겁니다. 디자인도. 괜찮아요. 저자보다는 잘 하는 부분이니까. 문제는 판매예요. 저자들 다수가 "왜 내 책은 이렇게 못 파는 거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한쪽에서는 팬덤 마케팅이라는 게 유행이죠. 출판사가 팬을 잘 관리해서 많이 데리고 있으면 그쪽 관련서는 그 출판사에서 내고 싶겠죠. 그런 팬덤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커뮤니티 기반 출판'이 나타나게 된 거죠.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저자의 브랜드를 연예기획사처럼 끌어올리는, 그걸 하기 위해서 에디팅이나 큐레이팅 역할을 다 해주는 쪽이 있겠고, 또 하나는 팬덤 마케팅이라고 해서 독자 커뮤니티 관리하면서... 그러고 보니 이것도 연예기획사가 팬클럽 관리하는 거랑 비슷하네요.(웃음) 사실 그쪽 산업에 돈이 훨씬 더 많이 움직이니까, 더 일찍 그렇게 간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자면 그쪽 대중시장 볼륨이 더 크고 수익률도 높으니까 자본이 먼저 들어갔고, 과학적인 시스템 경영도 먼저 적용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죠. 그와 비슷한 경영 형태가 출판계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죠.
-아까 방송사도 부동산으로 직원들 월급 줄 형편이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한 방송사는 드라마 하나 터지니까 '대박 만들기'에 전사적으로 힘을 쏟다시피하잖아요. 출판계도 그렇게 가야 하나요?
블록버스터 전략을 많이 쓰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왜 그렇게 되느냐면 아까 얘기했지만 최저 판매량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예요. 팔리는 책이 생겼을 때 거기에 더 집중하지 않으면, 평소 안 팔리는 책을 내서 생기는 손해를 메울 방법이 없으니까.

영화만 해도 하나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많이 안 만들잖아요. 출판계는 그럴 수도 없어요. 원래가 소수 미디어니까. 꾸준히 내지 않으면 기회조차 잡기가 힘드니까요. 그 결과, 다양한 니즈에 맞춰 계속 발굴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기회가 생기면 집중력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아주 낯선 조건들이 생긴 거예요. 그러다보니 산업 전체적으로는 리스크가 커진 거죠.
-지금 매체 환경의 핵심 키워드로 연결성을 꼽았는데요.
초연결사회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인데요. 원래 출판계에서 관리하던 연결 지점은 서점 내지는 언론사까지였어요. 독자들은 서점에 오거나 신문 서평을 보고 책을 발견해서 하는 식이었지요. 출판사가 굳이 독자와의 연결을 신경쓰지 않아도 됐어요.

이제는 바뀐 거예요. 예전에는 책이 나오면 1700부 정도를 서점에 깔 수 있었는데 요새는 600-700부 정도밖에 안 돼요. 초도 배본 물량이 예전 3분의 1 정도죠. 온라인 서점도 아무리 올려봐야 한 페이지밖에 안 돼요.

게다가 저자는 독자랑 직접 만날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서 지금 책이 팔리는 저자는 다 소셜 영향력도 센 사람이에요. '미디어셀러'라고 하는 것도 출판사 힘에서가 아니라 대중이 다른 경로를 통해 아는 거예요.

그러니 출판사 역할이 또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채사장이나 이런 저자들은 직접 독립해야겠다고 해서 출판사 차려 나가는 거죠. 그밖의 대형 저자들도 요구 사항이나 이익 배분 목소리도 높아지는 거죠. 모두가 출판의 역할이 약해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에요.
-이제 출판사가 살 길은 뭐죠?
근원적인 문제는 직접적인 독자와의 연결성 확보예요. 그래서 요즘 뒤늦게들 하는 것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나 강연 같은 것들이죠. 강연으로 돈을 벌려는 게 아니에요. 독자랑 만나서 연결하려고 하는 거예요. 팟캐스트도 블로그도 마찬가지고. 책 냈으니까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독자와 직접 관계를 맺으려는 거죠. 더 좋은 것은 북클럽 같은 거죠. 제가 민음사에서 했던 거예요. 독자에게 직접 판매도 하고, 저자 입장에서는 독자를 많이 데리고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하죠. 그러면 출판사의 존재이유가 생겨나는 거죠.

그래서 연결이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출판사들은 현재 서점과 연결돼 있지 독자와는 연결돼 있지 않아요. 그럴 경우 독자와 연결된 온라인서점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요. 월마트에 납품하는 제조사들이 한계이익에서 허덕대듯이 출판사들도 계속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D2C라고 해서 독자를 직접 겨냥한 판매 모델, 비(非)서점 연결이 필요하다고 봐요. 독자와 직접 연결되지 않으면 출판사의 역할을 강화할 수 없다는 게 제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지금은 콘텐츠의 주요 유통 소비 경로가 기술회사들이 운영하는 플랫폼입니다. 출판사로서는 플랫폼에 편승하든가 아니면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하든가 해야 할 텐데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술 기업의 목표는 결국 "돈을 내세요" 이렇게 나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출판사로서는 장기적으로 현명한 전략이 아니라고 봐요. 독자적으로 사이트를 만들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밸류(Value)'예요. 출판사의 가치를 정확히 설정해야 해요. 소셜미디어를 보면 잘 아시겠지만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으면 절대 관계를 맺지 않거든요. 처음에 트위터 같은 것 처음 생겼을 때 이벤트로 팔로워 수 늘이고 했잖아요. 아무리 수를 늘려놔도 가치 공유를 통해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면 실패하게 돼있습니다.

따라서 출판사로서는 특정 가치를 가진 콘텐츠를 반복해서 내고 자신들이 사회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줘서, 그 가치에 동의하고 동참하려고 하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그 출판사와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가야 해요. 그걸 아주 잘하는 데가 '북스피어'라고 봐요. 이른바 '야매 마케팅'에 능한.(웃음)

북스피어 홈페이지 바로가기

-일종의 니치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다들 종합 출판사를 생각하는데, 외국을 보면 종합 출판사라고 해도 그 안에 임프린트로 나뉘어져 있어요. 임프린트가 왜 생겼냐면 틈새시장별로 대응하기 위해서예요.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에요. 초연결 사회일수록 모든 사람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특정한 관계의 중심점을 만들어야 해요.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나뉠 거라고 봐요.
-처음부터 특정 고객만 겨냥하는 게 낫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게 여러 개 모이면 종합 출판사가 되는 거죠. 일종의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이죠. 이 분야는 이 브랜드로, 저 시장은 저 브랜드로 가는 거죠.
-요컨데 장기적으로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독자에게 매력을 소구해야 하고, 거기에 중요한 것은 편집력이고 투자라는 이야긴가요?
그렇죠. 편집력의 결과는 큐레이션 능력으로 나타나겠죠
-결국 핵심은 편집 역량이네요.
그래서 제가 '편집의 귀환'이라고 쓴 거예요. 편집력이라는 게 단순히 책 잘 만드는 게 아니라 가치에 따라서 콘텐츠를 개발하는 능력인 거죠. 지금까지는 책의 오탈자를 잡거나 물성 관리를 잘하는 개념이었다면 앞으로는 콘테츠를 잘 선별하고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고급 콘텐츠, 독자의 니즈에 맞춘 콘텐츠를 잘 선별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그러면 기존 편집자에게는 재교육이 필요한 셈인가요?
재교육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선행돼야 할 게 회사의 전략적 방향 설정이에요. 가치가 분명해야 한다는 거죠. 그 회사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져야 해요.

그 부분이 가장 선명한 곳 중 하나가 길벗 출판사예요. '고객의 1초를 아껴주는 기업'이 길벗의 지향점이에요. 그러기 위해 택한 접근법이 '비주얼 싱킹'이죠. 길벗의 편집력의 핵심은 비주얼 싱킹이에요. 모든 책을 비주얼 싱킹 중심으로 정보를 최단 시간내에 가장 선명하게 습득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자신들의 기업 가치로 보죠. 그걸 실현한 책이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죠.

길벗 출판사 홈페이지 바로가기

-장르 선택의 문제는 아니군요.
아니죠. 자신의 미션을 그렇게 정의한 거죠.
-일종의 '솔루션'의 제시군요.
책은 원래 솔루션 비즈니스의 일부예요. 유유출판사라는 1인 출판사도 제가 주목하는데, 그 출판사는 '공부'하고 '중국 고전'에만 집중해요. '우리는 사람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책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 미션을 어떻게 해결했느냐면, 판형을 문고본보다 조금 크게 해서 200쪽 내외 콘텐츠만 계속 개발하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출판사의 가치가 편집으로 나타나야 해요. 가치와 편집이 하나가 돼야 하는 거죠. 지금은 대개 분리돼 있죠. 그러니 회사 가치는 선언만 해놓고 평소에는 "어디 대박 칠만 한 것 없어? 요즘 트렌드는 뭐야?" 이러고 있는 거죠. 그런 출판사는 약해질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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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 분명해야 하는 거군요. 애플도 가치와 디자인이 같이 갔죠.
네 고유한 가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특정 고객을 목표로 해야 한다면 대형 종합 출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안에서 나뉘겠죠. 이제 독자들은 민음사를 하나로 인식하지 않아요. 세계문학전집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만, 동양고전은 그쪽만 보고 있는 거예요. 어떤 브랜드를 아는 것과, 그것과 관계를 맺고 충성도를 보이는 것은 달라요. 외국의 대형 출판사들도 마이크로 사이트를 운영해요. 랜덤하우스 홈페이지 들어가보세요. 아무것도 없어요. 실제 소통은 그 안에 링크된 마이크로 사이트로 가서 해요.

거대 회사들은 외형만 유지하고 내부적으로는 분할될 거라고 봐요. 카카오만 해도 이용자들이 카카오랑 소통하는 게 아니라 1분이랑 소통하고 카카오 스토리랑 소통하잖아요. 네이버도 마찬가지고. 출판도 그렇게 될 거라는 거죠.
-아까 투자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점에서 국내 출판사들은 규모가 대체로 영세한 데다 외부 투자도 활발하지 않습니다.
저는 '퍼블리싱 스타트업'이라고 하는 것들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출판은 디지털 기술을 버릴 수 없어요. 공진화해야 해요. 종이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어떤 식으로든 디지털 기술을 입혀서 가야 해요.
-아직도 소극적이거나 방어적인 곳이 많지요?
굉장히 방어적입니다. 그 이유가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수익원이 종이책이기 때문인데. 디지털화가 그 수익원을 약하게 한다는, '제살 깎아먹기(carnivalism)'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요. 설사 그런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과는 공진화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까지 출판에서 디지털 기술은 네 단계를 거쳐 왔어요. 처음에 DTP(Desktop Publishing)가 만들어질 때 디지털 기술이 처음 도입됐고요, 그 다음 온라인으로 책을 팔 때 두 번째 공진화가 있었죠. 세 번째가 킨들을 통해 전자책이 나왔죠.

예전에 컴퓨터로 글을 쓰면 어떻게 된다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괜한 걱정이었죠. 기술과 출판은 공진화할 수밖에 없어요. 인터넷 서점만 해도 저는 동네 서점이 없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많은 독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책을 만났다고 봐요. 물론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네 번째 혁신을 향해 가고 있어요. 증강현실(AR)과 인공지능(AI) 두 가지가 책과 만나고 있어요. 특히 AR쪽은 책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빅데이터도 출판과 만나고 있죠. 페이퍼와 AR을 결합해서 새로운 형태의 책을 만든다든가 빅데이터와 책으로 큐레이션을 해준다든가. 그쪽으로 전 세계에서 투자가 들어가고 있어요.

지금 상태로는 국내 출판사에 투자해주세요, 라고 하면 당연히 안 하죠. 이미 성숙기 산업이고 투자 기대 수익이 낮아요. 그러니 책과 강연이 결합된 '인플루엔셜' 같은 데라야 투자를 받을 수가 있는 거죠. 강연 플랫폼은 책과 결합하면 e러닝 시장 같은 데서 사업성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페이퍼 비즈니스+알파', 제가 '출판 2.0'이라고 부르는 쪽으로 진화하는 곳이라야 그나마 외부 투자자들이 관심 있지, 지금 출판 1.0으로는 어려워요. 실제로 은행 같은 데서 출판사는 투자 금지 등급으로 알고 있어요. 부동산 담보로 대출은 해줘도.(웃음)

그러니 출판사들은 디지털 기술과 함께 공진화해서 출판 2.0으로 진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돼요. 퍼블리싱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도 하고, 같이 일도 하고 그러면서 다른 영역으로 움직여 가야 해요. 그리고 출판계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외부 자금이 필요하긴 해요.
-출판계가 혁신하지 않으면 결국 외부에서 콘텐츠를 잠식해 들어가겠지요.
이미 하고 있죠. 제일 안타까운 게, 외국은 그래도 아마존 같은 서점들이 자가출판 사이트도 열고 해서 흡수했죠. 디지털과 출판이 만나는 공간을 서점에서 붙잡아놨어요. 하지만 우리는 네이버에 다 뺏겼단 말이죠. 웹툰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출판에서 만화가 떨어져 나간 거나 마찬가지가 됐어요. 종이 만화가 있긴 하지만 큰 의미가 없어요. 비즈니스는 저쪽에서 되고 있으니까.

그 다음으로 웹소설이 커지면서 가벼운 스토리들이 출판에서 떨어져나가고 있어요. 이 두 가지가 책 읽기가 시작되는 문턱이 낮은 영역이에요. 이게 빠져나가고 나면 출판계에는 어려운 책밖에 남지 않아요. 그러면 책을 읽게 만드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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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만화와 장르소설이 수익성이 높은 분야이기도 하죠.
그렇죠. 수익성 높은 쪽이 자꾸 출판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거예요. 저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고 봐요. 그런데도 그걸 남의 집 불 구경하듯 보면 안 되지요. 좀 더 공격적으로 그런 분야에서도 사업을 해야 한다고 봐요. 또 하나 걱정되는 것으로, 카카오에서 하는 스토리펀딩이나 브런치, 이런 것도 논픽션이 떨어져나가는 거거든요. 출판사에서 논픽션을 적극적으로 투자 안 하니까 온라인으로 빠져나가는 거죠. 기술 기업들이 이제는 그쪽에도 투자하고 있어요.

출판에서 문턱이 낮은 편인 논픽션 이런 게 다 옮겨가고 나면 사람들은 출판으로 안 들어올 수도 있어요. 출판이 지금까지는 원천 콘텐츠 비즈니스니까 사람들이 책에 대한 존중을 보여줘요. 하지만 이제 잘못하면 카카오 스토리나 브런치에서 읽기가 시작될 수도 있어요. 그쪽이 원천 콘텐츠 산업이 되고 출판계는 말단 콘텐츠 산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요. 이미 다른 데서 뜬 것을 가져와서 인쇄만 해주는 말 그대로 출판으로 위축될 수 있어요. 저는 그걸 굉장히 염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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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이 역전되는 거겠네요.
완전 역전이 되는 거죠. 만화는 이미 콘텐츠산업진흥원으로 넘어갔어요. 이제 콘텐츠산업진흥원이 스토리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단 말이죠. 웹소설, 시나리오 개발, 이런 게 다 스토리 비즈니스인데 그걸 콘텐츠산업진흥원이 자기 산업 영역으로 보는 거죠. 이제 출판문화가 아니라 콘텐츠산업이 돼버린 거죠. 이런 게 다 넘어가버리면 출판 산업의 위축은 피할 수 없다고 봐요. 그래서 출판계는 굉장히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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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표님만 해도 출판계 출신이고 애정이 있어서 그렇지,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누가 해도 상관 없는 일이겠죠.
그렇죠. 하기만 하면 되지, 아무 상관이 없죠. 그래서 출판계로서는 큰 문제죠. 그래서 좀 더 주도적으로 해야 해요. 문제는 출판사들의 규모가 작다는 거예요. 그러니 힘을 합쳐야 해요. 제3의 공동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그동안 사안별로 출판계의 공조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잘 안 되나요?
지금까지는 잘 안 됐죠. 제가 보기에는, 제 3의 단체를 만들기는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직접 그 일을 한 거예요. 출판사 대표들이 자기 원래 일도 하면서 거기 일도 겸임을 한 거죠. 누군가 전문경영인을 둬서 맡기는 방식이었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별로 없는 거예요. 전문 경영인을 두거나 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겸업을 하다 보니, 실질적인 성과는 없이, 마음은 자기 일에 가있다던가, 어떤 분은 계속 희생하는 경우도 생기고. 아직은 공동의 사업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요.
-개별 출판사들이 어쨌든 나만 책 잘 내고 유지할 정도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아요.
왜냐 하면 대개 건물주인들이니까. 우리야 정 안 되면 임대료만 나와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산업 자체가 위축되고 있을 때는 모든 법칙이 안 맞아요. 제가 이 책을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제 3자 입장에서 전체 그림이 이렇게 생겼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출판계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지식문화 유통의 현주소는 어떻게 보세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긴 글 읽기가 너무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독서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어쨌거나 짧은 글은 인상만 받아들이는 것이지 사고는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긴 글을 읽고 같이 생각하면서 사고를 깊게 교환하는 일들은 점점 안 하는 거죠. 소위 스낵 컬쳐 같은 게 너무 퍼져나가고 있어요.

그럴 경우에는 사유가 증발합니다. 특히 이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는 시민사회의 정착이 완성된 게 아니거든요. 광범위한 중산층이 없어요. 특히 사유의 중산층이 없어요. 그런 사유가 증발했을 때는 사유가 완전 양극화되고 맙니다.

그러면 모든 것들이 감각적으로 들끓어올랐다가 사라지는 사회가 돼요. 그런 지식밖에 소비가 안 되는 거예요. 우르르 끓어올랐다가 우르르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그러고 나면 사회 전체가 공허해지죠. 거대한 공허 같은 게 찾아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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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인력 수급은 어떤가요? 요즘 일자리 걱정도 심각한데. 출판계는 큐레이팅을 위한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고도 하셨는데.
불황이 오래 되니 신입 사원도 안 뽑고 있어서요.(웃음) 다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회에서 자기 세대에서 지식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계속 유입은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머무는 기간이 너무 짧아요. 어렵게 들어와서 몇 개월 있다가 그만두곤 하죠. 그런 사람 붙잡아두려면 출판계 전체가 미래 전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작업들을 하지 않는 한 고급 인력이 계속 유출되는 일은 피하기가 어렵죠.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들어오지만 오래 일하지 않으니 고도의 숙련성도 쌓이지가 않죠. 또 그런 사람들이 나가서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거예요.(웃음) 이런 분들이 좀 더 고급한 인력과 기반 위에서 일하면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런 시너지가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출판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지금도 출판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있지 않나요?
출판예비학교(SBI)가 있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고급 인력을 키우는 2년제 정도가 필요하다고 봐요. 출판학교라고 해도 좋겠네요.
-일반 대학 자체도 효용성이 도마 위에 오른 상태인데요.
출판학교를 통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력을 출판에 들여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편집자 생활에 위기가 여러 번 오거든요. 맨 먼저 입사 전에 이 일이 할 만한 일인가부터 시작해서, 3년차 때 독립 에디터가 될 때 심화교육이 필요하고, 7~10년차 됐을 때 편집장이 될 때 교육이 필요하고요. 그 다음 경영 내지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할 때 교육이 필요해요. 그런 다층적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지금은 아랫쪽 교육만 계속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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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서 신입 편집자에서 최고경영자까지 거치셨는데, 이 분야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조언이라면?
읽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읽기는 사람의 근원적인 욕구이기 때문이에요. 읽기가 있는 한 책도 있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읽기와 책을 사람과 연결하는 일에는 좀 더 창조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그런 걸 필요로 하는 한 그걸 할 사람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출판인의 사명이겠죠. 인간과 책을 연결하는 수많은 연결망들을 끊임없이 재설계하고 구축하고 생성하는 일을 자기 소명으로 삼는 한 출판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중요한 목적 중 하나도 우리에 비해 영미권은 답을 좀 찾은 것 같아요. 위축에서 벗어났어요. 디지털에서 공진화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우리도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고민하다 보면 그런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출판 창업을 고민하는 분에게 조언한다면요?
아까 말한 '밸류'예요. 내가 만들 책의 가치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해요. 어떤 출판을 할 것인가, 독자를 위해 나는 무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요. 저는 늘 "시장(트렌드)을 보지 말고 독자를 보라"고 해요. 출발점이 자기여서는 안 된다고 봐요.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게 있더라도 독자한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건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요. 자기 가치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하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편집적 솔루션이 있어야 해요. 그것 없이 시작하니까 다들 'me too(따라하기)' 로 가는 거죠. 자기개발서 뜨면 그쪽으로, 필사 뜨면 또 그쪽으로 몰려가는 식이죠. 그 너머를 봐야 해요.
-출판 2.0 시대를 열기 위한 편집자에게는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세요?
예전부터 얘기해온 것인데, 자기의 편집을 의식해야 해요. 하다 못해 띠지에 한 줄을 쓰더라도 그걸 왜 하는지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문장 하나를 책에 끼워넣더라도, 사진 하나를 넣더라도 왜 그 일을 내가 하고 그 일이 독자에게는, 책에는, 저자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편집 일이 좀 더 의식적 과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감각으로 많이 하거든요. 그걸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바꾸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해요. 그래야 공유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디지털에 개방돼야 해요. 소극적이어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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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혁신의 정점에 리더십이 있는데요.
어려운 문제인데요. 출판 선배들이 이룩한 기본적인 업적은 부인할 수 없는데, 좀 더 열린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출판계 전체에서. 건물 사는 리더십 말고요,(웃음) 더 크게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어요. 책과 인간과 콘테츠를 크게 보면 기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책에 갇힌 리더십이 아니라 책을 기반으로 일어서는 리더십이 있었으면 해요. 나는 책만 내면 되고 이걸로 만족한다, 이런 게 아니라 책이 진짜 지식문화의 중심이고 콘텐츠의 원천임을 스스로 보여주는, 자기의 사업으로 보여주는 그런 리더십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차세대 출판계를 이끌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전문경영인 시스템에 대해서는?
둬야죠. 아직은 오너십 중심 회사가 거의 대부분이죠.
-영세해서인가요?
영세하기도 한데, 영세성의 원인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 커지면 한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규모에 한계가 있어요. 그보다 커지려고 하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같이 일하는 것들이 필요하잖아요. 그것도 본인이 경험하고 연습해서 익혀야 하는 기술이에요. 좋은 경영자들은 그걸 익히죠. 믿을 수 있는 범위가 가족이나 이런 쪽으로 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 아니죠. 운이 좋아서 뛰어난 2세 덕에 회사가 더 커질 수도 있지만 안 그런 경우도 있으니까.

물론 경영권에서 오너십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는 보지 않아요. 의사결정이나 추진력 같은 데서 장점도 있죠. 그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반드시 누군가와 같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죠. 실제로 그렇게 된 출판사들만 커진 것 같아요.
-이른바 플랫폼 기술회사에 대해서는 콘텐츠와 관련해서 어떤 조언을 하시겠어요?
구글만 해도 검색회사에서 혁신적인 회사로 가는데, 국내 기술기업은 스스로 콘텐츠 회사가 돼가고 있어요. 네아버나 카카오나. 온라인에서도 콘텐츠 소비를 좋아하는 건 분명하지만, 연결해주는 게 그 회사들 역할이었는데,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요?
굳이 따진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면 제가 사업을 오해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는 혁신이 커지지 않아요. 근원적 혁신이 없는 거죠. 디지털 혁신에서 성공한 국내 회사들도 구글처럼 무인차 개발 같은 큰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를 위해 더 큰 비전을 가지길 바라죠.

자꾸만 광고비를 따먹기 위해서 콘텐츠를 모아들이는 일을 하잖아요. 그런 것은 생태계만 잘 활성화시키면 저절로 와서 할 텐데. 그걸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중요하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아요. 그 회사들이 근원적 혁신을 이룬 게 있나요?
-기술 회사들로서는 이용자들의 콘텐츠 수요에 부응하는 거라고 한다면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콘텐츠 제작자와 어떤 협업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느냐가 중요한데, 지금은 출판사나 영화사 역할을 뺏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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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의 뒷부분에 가면 콘텐츠 특화된 출판사와 기술회사들 사이의 협력 가능성, 파트너십 모델을 이야기하는데요. 구체적인 주문 사항은요?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홍보가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콘텐츠를 대가로. 그러다 보면 건강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스스로 독자를 모으고 독자들과 일을 할 수 있는데, 자꾸 편승하려고 하는 거죠. 기술회사들도 이미 이용자는 모아놓은 상태에서 콘텐츠가 유통되면 좋으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데, 지식 생산의 구조를 더 크게 혁신한다든가 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있어요.
-콘텐츠업계의 과실을 싸게 따먹으려고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있는 걸 가져가는 사업 모델로 가고 있다는 거죠. 그럴 경우 결국에는 그 과실마저 고갈될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저질 콘텐츠만 유통될 수도 있어요. 콘텐츠 생산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면 당연히 그 일을 안 하게 될 거니까요. 그렇게 가서는 단기적으로는 이 시장에서 가두리 양식처럼 그물 쳐서 좋은 독점을 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어느날 갑자기 애플 들어오고 샤오미가 들어왔을 때 삼성전자가 그랬듯이 어느 순간 와르르 넘어가지 않을까요. 지금 페이스북으로 넘어가는 트래픽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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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본과 콘텐츠 간의 협력 관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씀 같군요.
저는 차라리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처럼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워싱턴포스터로 들어가서 자기가 가진 기술적 노하우를 이용해서 기존 언론사를 혁신시키겠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지금 국내 모델은 다 자기한테 와서 놀라고 하는 모델이고, 진정한 혁신은 아니라고 봐요. 콘텐츠 회사들도 자꾸 거기에 의존하게 되면 달콤하게 중독돼 가는 거죠.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 사이트에는 안 오는 거죠. 내 연결이 없고 남에 의존한 연결이 기본 상태가 돼버리니까, 그러고 나면 결국 콘텐츠기업들은 점점 약해지겠죠.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게 편하다고 여길 경우 그걸 구현한 데로 어쩔 수 없이 몰리게 되지 않을까요? 페이스북이 그렇게 하고 있지요.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출판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독자적인 연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레진 코믹스' 같은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자기 기술과 콘텐츠 생산력을 결합해서 틈새시장을 공략해 자기 고유 독자들 모으고 거기서 일을 하고 있죠. 거기서 커지면 코믹 앱이 중요하게 되겠죠.

자꾸 패배의식에 젖어서 '어차피 툰은 전부 네이버에서 보는 거야' '웹소설은 어디에서만 하는 거야' 자꾸 그렇게 되면 진짜로 아무것도 안 생길 거예요. 설사 나중에 그렇게 되더라도 우리가 가진 고유한 편집력이 살아남으려면 네이버의 편집력에만 의존하면 안 되거든요.

인간의 핵심 능력이 편집력이에요. 알파고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에 편집자도 들었더라구요.(웃음) 그 편집력을 보여주는 것이 사업적으로 보존되는 방식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결국 규모의 싸움일 것도 같은데요.
네이버나 카카오가 이미 너무나 많은 콘텐츠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또 따로 뭔가를 하게 될 거고, 다른 연결을 원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거꾸로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가령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플랫폼은 뭘까요. 지금 네이버 웹소설이 크긴 하지만 '조아라'도 잘 되고 있잖아요. 그런 일들이 계속 벌어질 거라는 거죠. 거기에 특화되어 움직이는 전문적인 뭔가가 생길 거고, 거기로부터 진화하는 모델이 또 생길 거고, 다시 뭔가가 만들어지겠죠.

웹소설 전문 '조아라' 홈페이지 바로가기

조아라가 처음에 얼마나 작았는데요. 민음사 같은 데서 보기엔 손바닥만 한 업체였단 말이죠. 지금은 매출액도 엄청나고 2007년 한 번 망할 뻔했지만 지금 다시 일어나 시대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 분야 1위가 됐잖아요. 그런 일이 앞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있을 거라고 봐요. 뉴스든 뭐든. 지레짐작해서 포기하는 것은 결국 기업가 정신의 문제지요.
-현재 지배적인 경향에 일찍 투항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박맹호 민음사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출판은 영원한 벤처니까 기존의 어떤 것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벤처 정신을 잃는 순간 출판은 끝장이죠.

-자타가 공인하는 책벌레이신데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보통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요. 8시에 대개 아침을 먹고, 2시간 반 정도는 각종 자료를 읽어요. RSS로 200개 정도를 받는데.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간단하게 글로 써둬요. 나중에 글감으로 삼기 위한 짧은 것들이에요. 한두 문단. 아침 먹고 나서는 수업에 가는 경우도 있고. 저는 이동하면서 책을 많이 봐요. 기차나 주로 지하철 안에서. 저는 영화도 안 본 지 5년 됐어요. TV도 안 봐요. 저더러 언제 그 책을 다 보느냐고 하는데, 뭔가를 버리지 않으면 집중하기 어려워요. 지금처럼 읽고 쓰는 삶을 유지하기 어려워요.
-TV나 영화의 경우 대중적인 감각을 따라잡으려면 최소한이라도 봐야 하지 않나요?
그게 TV 안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다른 채널을 통해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저 말고도 '태양의 후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요 뭐.(웃음) 그렇게 해도 그 정도 인기 있는 건 지나다니면서 우연히 켜져있는 것 보는 정도만으로도 알게 되죠. 영화를 안 보는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다른 데 쓰고 싶은 거죠.
-책은 어떤 식으로 읽으세요?
크게 보면 독서는 두 가지로 하는데요. 일주일에 고전 한 권을 읽어요. 그냥 좋으니까. 주로 소설. 예전에 어릴 때 봤던 거라든지. 최근에 느끼는 게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재미있어요. 옛날에 왜 이걸 못 봤지, 이렇게 훌륭하다니 하면서 보죠. 셰익스피어도 최근에 거의 다 읽었구요, 나쓰메 소세키, 도스토예프스키 이런 것들. 사무엘 베케트를 아주 좋아하는데 반복해서 읽는 편이고요.

또 하나는 인문학 이론서를 주에 한 권 정도 읽어요. 그 외에 청탁이 들어와서 읽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읽죠. 요즘은 월 1회 일간지에 기고하기 위해 우리 고전을 하나씩 읽기도 해요.

다른 사람은 일하다가 산책하고 한다는데, 저도 물론 산책 다니기도 하지만 일하다가 쉴 때 주로 책을 읽어요. 일하다가 책 읽다가 다시 일하다가.(웃음)
-그때 일이란 건 뭐죠?
글도 쓰고, 회의 같은 것들이죠. 저는 굉장히 짧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책을 많이 읽어요. 10분, 15분도 활용해서.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면요?
최근에는 '사피엔스'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깊이도 있고 스토리텔링이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도 아주 잘 읽었고요. 제가 또 (지그문트) 바우만을 좋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있어요. 어떤 저자가 마음에 들면 다 구해서 읽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고 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저자가 있나요?
소세키를 굉장히 좋아해요. 반복해서 읽는 편이에요.
-어떤 점에서요?
뭐랄까, 정서나 생각하는 방식.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문제를 끌어안는 방식?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거기다 약간 냉소적인 게 매력적이에요. 진지하게 괴로워하는 게 마음에 들어요.

국내 저자로는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는 다섯 번 읽은 것 같아요.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읽으면 즐거워져요. 문장이 아름답고 리듬도 좋고 또 전체적으로 유쾌해서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서양 고전에서는 세르반테스 좋아해요. 돈키호테를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이나 구상은요?
일단은 독서공동체에서 취재하고 연재한 것이 있어서 정리하고 업그레이드해서 읽기에 관한 책을 낼 생각이고요. 편집의 기술 같은 것에 관한 정리를 하고 있어서 연내 출판할까 생각해요.

그 다음에 책 만드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아주 작게 총서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어요. 출판사를 낼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디서 할지. 아직 생각 단계여요.

저는 하나의 일을 하면 그 일이 다음 일을 마련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 여기 와서 인터뷰하는 것도 책을 냈기 때문에 딸린 일들이 생긴 거죠. 그 일이 다른 일을 만들어내겠죠. 마찬가지로 독서에 관한 책이나 편집에 관한 책을 내면 거기서 일이 생겨나겠죠. 언젠가는 책을 만드는 일로 복귀할 것 같기는 해요.

요즘 주말이면 충남 홍성에 내려가서 친구, 후배들과 텉밭도 가꾸면서 지내요. 옛날부터 같이 동인지 같은 걸 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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