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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북] 아침에 눈떠 하고 싶었던 일

조회수 2018. 6. 5. 11: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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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전파담> 의 로버트 파우저 "나는 왜 서울대를 떠났나"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한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오늘은 최근 출간된 <외국어 전파담>의 저자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인터뷰입니다.


지금은 '독립학자'를 자처하는 파우저 작가는 2008-1014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를 지낸 후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례적인 인물입니다. 미국인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오래 교수로 있다가 자진 퇴직하고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또 미국인으로 나서 일본과 한국에서 차례로 13년씩 생활하면서 말과 글을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어나 한국어, 혹은 언어학이 아닌 '외국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한글로 책을 썼습니다.


그는 외국어를 배우는 의미가 소통의 즐거움에 있다고 썼더군요. 다른 문화권의 '개인'의 발견과 그들 생각과의 만남이 결국에는 나 자신의 발견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혜화동에서 만났습니다. 80년대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생활할 때 자주 왔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저자의 자세한 이력은 맨 아래에 링크한 '자기소개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대 그만두시고 미국으로 가셨지요. 어떻게 지내세요?

2014년에 서울대 퇴직하고는 고향 미시간에서 생활하면서 책을 썼어요. 지금은 부모님도 돌아가셨고 해서 동생이 사는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지냅니다. 한국에도 1년에 한 번씩, 주로 봄에 와서 2-3개월 정도 있곤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일본과 한국에서 차례로 13년씩 지낸 이력이 특이합니다.

아버지가 2차 대전 때 일본 점령군으로 1년간 교토에 복무했어요. 어릴 때 아버지 통해 교토 사진이며 건축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일본에 관심이 생겼지요. 그래서 대학 시절 일어일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때 한국인 유학생을 통해 한국은 처음 알았어요.

-미시간에 한국인이 많지요?

네, 지금도 많아요. 그때는 한국 학생들이 대부분 국비 유학생이었는데, 아주 우수하고 재미있었어요. 1982년 여름에 일본으로 연수 가서 공부하는 동안 잠깐 일주일 한국에 온 적도 있어요. 같은 아시아지만 일본과는 좀 다른 게. 정이랄까, 조금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았어요.

물론 80년대 군부독재나 광주 같은 한국의 여러 사정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어려운 나라라는 것도 알고 왔어요. 그래도 한국인과의 관계가 즐거웠어요. 대학 졸업 후 한국 와서 1년간 서울대에서 한국어 공부하면서 관심이 커졌지요.

-그때 일본은 어땠나요?

이미 도시화돼 있었고 그래서 조금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한국인은 저같은 백인한테도 격의 없이 대해주는 것 같았어요.

-30년 사이에 한국도 많이 바뀌었지요?

그 사이 옛 일본 모습을 많이 따라갔지요. 경제도 빠르게 발전했고 도시화했고 인간 관계도 예전보다 좀 냉정해지고 바빠졌어요.

-서울대 전임 교수로 임용됐을 때도 화제였는데요?

일본 대학에 있을 때 2008년 봄 한국에 이명박 정부가 새로 들어서면서 대학가에도 국제화 바람과 함께 외국인 교수 채용 바람이 불었어요. 영광스럽게도 서울대에서 오라는 제의가 있었지요. 시기가 잘 맞았어요.

-그전에 한국과 교류가 있었나 보지요?

네, 제가 일본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맡고 있었어요. 관련 학회 일로 알게 된 교수를 통해 연락을 받게 됐지요.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것도 뜻밖이었지요. 어떤 사정이 있었나요?

서울대는 분위기가 좋은 편이어서 특별한 갈등은 없었어요. 다만 제가 계속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지요?

가장 큰 이유는 영어로 말하자면 'Agency'의 문제... 일본어로는 ‘이키가이(生きがい)’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 ‘사는 보람’ 같은 거지요. 어느새 기계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주도권을 못 느끼고 보람을 못 느끼게 된 거지요.

아무래도 큰 조직은 타협을 해야 하잖아요. 독립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서울대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문제의식이 강하게 든 거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이걸 하고 싶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서울대 책임이 아닌 내 문제였지요.

-그 무렵 인터뷰 기사를 보니 불만을 토로하신 대목이 있더군요. 학과장을 맡기지 않았다거나 호주 출장 때도 한국인 교수를 뒤늦게 추가한 일이라든가...

그 부분은 좀 잘못 전달됐어요. 그런 사실은 있었지만 핵심은 아니고 지나가는 여담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부각됐어요. 서울대 때리기도 작용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제 경우는 서울대 문제는 아니고 저의 의욕 감퇴가 컸어요. 6년 임기가 끝난 후에 재임용 지원을 안 했어요.

-이번 책의 저자 소개에 '독립학자'라고 쓰셨더군요.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싶었어요. 대학 교수는 연구논문이라든가 프로젝트로 늘 바빠요. 국어교육과는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계속 바빴어요. 개강해서 학사 일정 따라 강의하고 학생지도 하다 보면 금방 한 학기가 가지요.

차분히 글에 집중할 공간이 아니었어요. 더 능력이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조직 체계와 내가 바라는 것이 불일치하니까 독립학자로 나온 거지요. 서울대에 있다가 나오니까 다들 무슨 일 있냐고 물었지만, 그런 건 아니예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나온 거지요.

-지금 생활은 만족하세요?

좋아요. 처음엔 조금 걱정도 했어요. 그전엔 서울대 명함도 있으니까 소개하기도 편했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 수입도 확실히 줄었지요. 하지만 사실 50대에 접어들면 수입이 클 필요가 없어요. 쇼핑 목록은 확실히 줄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커피 마실 수 있고.. 기본적인 것만 해결할 수 있으면 충분하니까, 생각보다 괜찮아요. 다른 제약이 없고 무엇보다 내 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요즘 '워라벨', '소확행'이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갈 건가에 사람들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50이 되면서 달리 보인다고 하셨는데 어떤가요?

이제 절반 이상 살았다고 생각하면, 물론 벌써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매일매일 미시적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하고 싶은 것을 미래로 미루거나 하기 싫어은 것도 참고 있기보다는, 글 쓰고 싶으면 그날 쓰고 하는 식이지요. 아무래도 직장에 있을 때는 어려운 것들인데, 작은 데서 행복을 찾는 안목이랄까 능력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이번 책이 세 번째지요?

2년 전 <미래 시민의 조건>과 <서촌홀릭>을 차례로 냈고, 이번에 언어학 책을 냈습니다. <미래 시민의 조건>은 총선 직전에 출간했는데, 한국 체험 소감과 정치참여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을 담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러고 3주 후에 나온 <서촌홀릭>은 간격이 짧아서였는지 별 관심을 못 받았아요. 두 책에는 제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서울대 떠날 무렵 마지막 학기에 <서촌 홀릭> 원고를 먼저 쓰기 시작했는데, 오십대에 들어서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져서가 아니었나 싶어요. 절반 이상 살았다는 건 확실하고, 더 올라갈 일은 없는 상황에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살까, 뒤를 돌아보는 것과 앞을 바라보는 것이 혼재된 나이지요. <미래 시민의 조건>은 2015년 미시간 앤아버에 가서 썼어요. 한국 생활을 회상하면서 정리한 글이었지요.

-한국 사회에 대한 쓴소리도 좀 있었지요. 혹시 그 뒤에 비판적인 반응이나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없던가요?

다행히 별로 없었어요. 아마 다른 외국인 중에 더 강하게 한국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상대적으로 순한 편이어어요. 인터넷에 악플 같은 것도 별로 없었어요. 이유 중 하나가 제 책의 앞 부분 절반 가까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밝혔으니까, 이 사람 입장이 뭔지 알고 내용을 이해한 것 아닌가 싶어요. 책을 쓸 때 일부러 그런 것은 전혀 아닌데, 글에서 애정이 느껴진다고들 하더군요. 아마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돌아보며 미국에서 썼기 때문에개인적으로 좋은 감정이 담겨서가 아닐까 싶어요.

-미국에는 얼마 만에 돌아간 거지요?

28년 만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매년 크리스마스나 여름에는 한달여 미국에 체류했고 학회 같은 행사 때 가기도 했어요. 인터넷이 있어서 미국 사정도 잘 알고 있었고요. 그래도 좀 충격이 있었어요.

-어떤 변화 때문인가요?

내가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 학생의 30% 정도가 흑인이었는데 지금은 다 백인이에요. 도시 부동산 값이 오르면서 흑인은 떠나고 백인화가 된 거지요. 예전에는 중산층이 컸는데 그 사이 양극화가 확실히 심해진 것 같아요.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신귀족제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많더군요.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제조업이 줄고 전문직, 서비스업, IT 비중이 커졌어요. 그 사이 고학력 고소득층이 좌경화했어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강남좌파화한 거지요. 원래 전통적으로 부자는 공화당이고 노동자는 민주당인데 이게 뒤바뀌고있는 거예요.

지난 대선 때 이게 선명하게 나타났지요. 사실 강남좌파는 다 해봐야 20% 정도예요. 나머지 80%는 제조업에서 낙오된 노동자, 이민자, 흑인 다수지요. 이들의 좌절감과 소외감이 커져가고 있어요. 이들의 분노를 활용한 게 트럼프지요.

-한국 사회는 어떤 것 같나요?

제가 경험한 삼십 년 사이 가장 큰 변화는 일단 교육 수준이 빠르게 높아졌고 민주화했고 풍요로워졌지요. 하지만 앞으로 미국화할 수도 있어요. 짧은 시간에 급성장했지만 저성장 국면에 들어가고 엘리트층이 굳어지고 다수가 낙오자라는 느낌이 들면 트럼프 같은 사람 등장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도 약간 언급했어요. 강남 엘리트 문제. 이건 상징인데, 학원 교육을 잘 받아야 좋은 대학 가고, 자기 자녀는 작품처럼 키우고 그럴 능력이 못 되면 낙오되는 것은 걱정스럽다는 이야기였어요.

-미국인이면서 일본과 한국을 차례로 13년씩 사셨는데요,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처음엔 격차가 굉장히 컸지요. 처음 도쿄에서 부산 거쳐 서울에 왔을 때 못 사는 나라 인상이 강했어요. 그 사이 한국이 많이 따라와서 이제는 서울이나 도쿄나 사는 모습이 비슷합니다. 물론 일본이 크고 좀 더 깨끗하지만. 사고방식은 차이가 커요.

일본은 조직이나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강해요. 보은 의식이죠. 조직에 대한 의리가 강해서 떠나는 것을 꺼리지요. 그에 비해 한국은 개인주의가 강해요. 또 정치에서 일본은 '촛불 시위' 같은 게 없어요.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이지요. 일본은 이미 민주화했다고 생각하고 질서를 우선합니다. 개인보다 사회가 결정하면 따르는 식이지요. 메이지유신처럼 위에서 바꾸면 따라가지요.

-그런 차이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사회적 신뢰가 일본이 좀 높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일본에 갔을 때 오후에 꼬마 초등학생 3명이 지하철에 혼자 타고 있는 걸 봤어요. 미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저변에 사회적 신뢰가 있는 것 같아요. 직장에서도 내가 충성하면 직장은 나를 돌봐준다는 식이지요. 한국은 그런 사회적 신뢰나, 국가 기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를 우선해서 보호하려는 의식이 강한 거지요.

-말씀하신 일본의 사회적 신뢰라는 것이 국가주의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네, 양면이 있지요.

-<서촌 홀릭>에서는 한옥을 예찬했는데요, 최근 한옥에 대한 관심을 보면 선구적인 역할을 한 셈인데요.

저 말고도 한옥 보존 운동을 하는 분들이 계셨지요. 10년 전 이야기인데 당시 30대 초 젊은 사람들 관심이 컸어요. 좀 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면서 삶의 양식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이 강했지요. 아파트가 흔하니까 오히려 한옥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경향도 있었고요. 반면에 나이든 사람들은 그런 의식이 희박했고 재개발 욕심이 강했지요. 어렵게 살았으니까 주로 투자 수익의 가치로 본 거지요.

-요즘은 한옥을 살리거나 응용한 곳도 많습니다. 보람 같은 것을 느끼시나요?

2010년이 그런 움직임이 싹틀 무렵이었어요. 서촌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생각들이 생기기 시작했지요. 제가 무슨 선구적인 역할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막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건지 암튼 많이 바뀌었어요. 그때는 서촌 개발 위기에서 아끼는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지요.

그런 활동 하면서 다른 동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기뻤어요. 대구 같은 다른 지방 사람들과 연대도 하면서 지방 도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대구에 한옥이 굉장히 많아요. 구도심도 재미있고요. 수원, 인천의 구도심 활동하는 사람들과도 교류가 많았지요.

-외국어는 언제부터 관심이 많았나요?

1978년 고등학교 1학년 마치고 홈스테이 프로그램으로 혼자서 일본에 갔어요. 그때는 일어도 모르고 단어 몇 마디 배워서 지하철에서 화장실 물어보곤 하는데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느낌이 참 좋더군요. 그게 외국어에 눈뜬 계기였어요.

물론 책은 좋아하는 편이었고, 공부도 좋아했지만. 낯선 언어로 몰랐던 세상과 통하니까 신이 났어요. 미국으로 돌아가서 가을부터 (학교에 일본어 강좌는 없어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외국어에 재미를 붙였지요. 그때부터 외국어 공부를 넓혀가지 시작했어요.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석박사 때는 응용언어학을 하셨지요?

계속 일어일문학을 하면 좁아질 것 같았어요. 대학 졸업할 무렵에 1년 한국에 와서 공부하면서, 계속 일어 공부만 하기보다 응용언어학을 하면 외국어를 폭넓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원은 응용언어학으로 갔지요.

-박사 때는 왜 아일랜드로 갔지요?

제2 외국어 습득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던 교수가 거기에 있었어요. 그 교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게 됐지요. 또 아일랜드는 의무적으로 제2 외국어를 배우게 되어 있어서 분위기도 잘 맞았어요.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지만 정복과 지배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해의 확장을 추구하지만 정체성과 경계의 구심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이중성을 쓰신 책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례을 들어 설명하셨지요. 한국인에게는 외국어라고 하면 우선 영어가 떠오르고,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미국인은 외국어를, 그리고 영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인은 자국어가 국제어인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외국어를 연구하는 사람이라서 예외적이지만, 일반적인 미국인은 외국어에 대한 별 의식이 없습니다. 미국인 인구 중 11%만 여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과거 기억에 따른 것으로, 2017년 통계치로는 42%로 급증했다: 편집자) 영어는 국제 공통어의 지위를 누리지만, 영어가 가진 힘 때문에 그 말이 모어인 사람도 덩달아 누리는 편익이 있지요.

-보시기에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영어가 세계화에 따른 소통의 도구라는 점이 강조되면 좋겠는데 아직도 영어를 미국이나 미국 사람과 결부시키는 80년대 정서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2010년 이후로 바뀌고는 있지만. 그렇다 보니 영어를 하려면 미국에 가야 한다거나, 미국인처럼 발음해야 한다거나, 원어민한테서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기유학과 기러기 아빠 현상이 생기지요.

영어를 소통의 수단으로 봤을 때 발음이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원어민처럼 발음 안 해도 충분히 통합니다. 유럽에서 유창하게 영어하는 사람은 다 자기식으로 발음합니다. 뉴욕에서도 발음 상관 없이 식당에서 주문 다 하잖아요.

오히려 무작정 유학한 사람 보면 미국 교육 받아서 발음은 좋은데 한국 실상은 모르고 미국에 뿌리 내린 것도 아니고 태평양 사이에 낀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외국어를 소통의 도구로 보지 않고 나라와 결부시키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요.

-AI 시대 외국어의 개념이나 효용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책의 끝 부분에도 썼는데, AI 영향에 따른 환경 변화를 감안하면 외국어 교육도 말이나 소통 중심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문서 독해를 통해 최신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로서 외국어의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웬만한 문서는 AI가 바꿔줄 테니까요.

가령 신문기사를 자국어로 자동번역해주면 굳이 그걸 읽이 위해 외국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지지요. 외신 기자가 외국어를 몰라도 된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아예 중계인으로서 외신 기자가 필요없어질 수도?) 엔지니어 경우에도 자동번역 이메일로 소통하게 되면 직접 외국어를 습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외국어를 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취미 생활이나, 특별히 누구와 긴밀히 소통하고 싶은 필요에서 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외국어에서도 말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외국어 학습의 구체적인 동기 부여가 중요해질 겁니다.

-책에서도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습득하는 '추가 언어(additional language)'라는 개념을 이야기하셨지요.

앞으로 외국어 공부는 개인적인 문화 습득이나 일상의 필요와 관련성이 깊어질 겁니다. 대구에 갔을 때 일이에요. 은혜사에 가려고 지하철 1호선 종점에 내려서 버스를 탔는데, 파키스탄인 노동자가 많았어요.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거지요.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 말 배우는 게 영어보다 나을 수 있어요.

한반도는 늘 단일 민족이라고 하고 요즘 통일 이야기도 나오고 하는데, 남한 공동체 안에 이미 다른 언어가 다수 들어와 있어요. 베트남 며느리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 와 있기 때문에 그 언어도 중요해요. 공동체 일원이니까요. 지금은 외국어 하면 무조건 영어를 생각하는데, 기계가 영어의 정보 교환을 대신하게 되면 영어 이외 외국어를 섬세하게 구분해서 필요로 하게 되겠지요.

미국만 해도 히스패닉이 늘면서 이제 스페인어는 외국어라기보다 준공용어라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외국어가 아닌 추가언어 개념으로 봐야 할 겁니다.

-그마저도 시간 문제일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아직은 기계 번역의 완성도가 낮은데, 스마트폰 보급 과정을 떠올려보면, 가능성을 보인 후에는 어느 순간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어요. 변화가 올 것이고, 외국어 교육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단순 소통 도구로서 외국어 습득의 필요가 낮아지면 개인적인 취미로 가게 되고, 그런 맥락의 수업이나 교육 방식 요구가 높아질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외국어 교육의 기대 수준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수요는 줄지만 수준은 높아진다?

기계적인 외국어 교육 수요는 줄어드는 대신 더 깊고 섬세하게 갈 겁니다.

-언어라는 게 소통 도구이기도 하지만 의미 세계의 열쇠이기도 하지요. 기능적 수요는 기계에 의해 대체되겠지만 독특한 세계관의 그릇으로서 언어의 가치는 위태로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도전적인 말인데, 기술 발전에 따른 소멸은 흔히 있는 일이지요. 산업혁명 이후에도 없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요. 변화가 올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사회 공론이 중요합니다.

-세계적인 추세가 기술의 힘을 이길 수 있을까 싶어요.

유럽은 그래도 명분이 있어요. 다양한 민족이 서로 인접해서 살고 있고, 유럽연합이 있으니까요. 물론 어떻게든 버틸 거라는 전제 하에서요. 정치적 이유가 있고 이상주의가 살아 있지요. 한국의 경우에는 잘 모르겠어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면 굳이 고수해야 할 명분이 약해질 거예요.

-그런 점에서 디지털기술은 여러 각도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단순화 하는 경향이 큰 것 같아요. 잠재력은 풍부한데 대중적으로 한 방향이 강화되는..

작년 가을인가 뉴욕에 갔을 때 20대 후반의 젊은 직장인을 봤는데 서울이나 도쿄나 스타일이 다들 비슷해요. 스마트폰에 스타벅스 커피 마시고 작은 아파트에 살고... 약간의 문화 차이가 있긴 해도 IT, 디지털 때문에 비슷해져 가고 있어요. 요즘은 뉴욕에 가면 뉴욕이라는 영화세트장에 가는 것 같아요. 과거엔 뉴욕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디 가나 스타벅스처럼 표준화하고 있지요. 그런 표준화가 언어로도 넘어올 것 같아요.

-그런 표준화에 저항을 해야 한다고 보세요? 어쩔 수 없다고 보세요? 과거 한옥 보존 운동도 하셨는데?

한옥은 다른 곳에서 없어진 상태에서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큰 서울에서 한정된 지역이라도 지켜달라는 것이었어요. 외국어의 경우에는 특별히 유익하다거나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기면 보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위해 운동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소수 언어 보존 운동가도 있지 않나요? 문인들도 언어의 다양성을 중시하고요.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과 자국어 보존과 발전은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가끔 보면 번역서가 많아요. 한국어 책이 더 적어요. 아마 80-90년대에는 반대였을 텐데. 요즘은 한국어 소설은 잘 안 읽힌다더군요. 뉴욕, 도쿄, 서울의 생활 동질화와도 관계가 있지요.

그런 부분은 지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번역서만 읽으면 아무래도 한국어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지요. 앞으로는 기사도 AI가 쓸 거라는 논문을 봤는데, 그럴 경우에는 분명히 모어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책 뒷쪽에서 AI에 따른 전망을 다루셨는데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책을 쓰기 시작할 때 AI 부분도 써야 한다,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그 부분을 쓰려고 할 때 발전 속도가 무척 빨랐어요. 책에 자세히 쓰면 금방 낡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어요. 독자들도 그 부분을 재미있게 읽은 것 같더군요.

-요즘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서 책으로 내는 과정에서 상황이 바뀌어 있거나 뉴스가 구문이 돼 있기 십상이지요.

네, 그래서 확인을 해야 해요. 오히려 오래전 이야기는 상관 없는데. 제 책에서도 AI 이야기하면서 모어 위협은 안 썼는데, 이미 음성 같은 것은 그 수준까지 가고 있어요. 동생 집에 있을 때 콜 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동생이 통화를 했는데, "이게(통화 상대가) 컴퓨터인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얼마전 구글이 새로운 음성서비스를 시연할 때 깜쪽같이 사람으로 속아 넘어가는 장면이 실황으로 소개되어 충격을 줬지요. 오바마 연설 동영상도 만들어낼 수 있고요.

네, 음성도 선택할 수 있다고 해요. 사실 기계가 모어에 미칠 영향도 두고 볼 문제예요.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어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아예 언어 교육을 고전어로 돌아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아예 오래된 것 읽고 하는 게 디지털 시대에 문제 의식을 키울 수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서양의 라틴어나 한국어의 한자가 새로운 통찰을 줄 수도 있는 것처럼.

-책에서 모어(mother tongue) 이외 외국어에 한번은 빠져야 한다고 썼는데요.

외국어를 잘하려면 그 말의 세계관, 문화를 이해해야 해요. 원어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의 깊게 보다 보면 자신도 더 잘 이해하게 되지요.

-한국과 일본 양쪽을 오래 경험하셨지요. 아시다시피 멀고도 가까운 이웃입니다. 뭐가 문제 같아 보이나요?

말하기가 너무 조심스러운데, 일본은 사실 큰 나라입니다. 북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가보면 느낍니다. 한국을 보는 눈도 사실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양국의 외교 분쟁의 경우, 크게 봤을 때 문제가 일본은 가해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전쟁의 피해자라는 의식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가해자였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과 도쿄 폭격 등에 따른 피해자라는 의식이 있어요. 아베 같은 극우는 물론이고 공산당 계열의 극좌도 반미 입장에서 피해자 의식이 있지요. 이들 사이에 목소리가 크지 않은 다수가 있어요.

그런 이중적 의식이 가령 다른 전범국인 독일과의 차이를 낳는 것 같아요. 독일은 완전한 가해자로서 반성과 행동을 보이니까 폴란드 같은 피해국들도 진정성을 수용하고 화해를 받아들이지요. 그게 핵심 같아요.

-일본의 피해 의식은 미국과의 문제이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가해자일 뿐인데요?

네, 그렇지요.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일본만 해도 지역마다 한국에 대한 감정에 온도차가 있어요. 도쿄는 보수적인 반면, 큐슈나 오사카 같은 곳은 재일한국인도 많고 관광객이나 상업적 교유가 많아서 우호적이에요. 정치 문제엔 관심이 낮아요.

-한일 문제라고 하지만 관심이나 반응이 서로 비대칭적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아요.

위안부 문제만 해도 가고시마에 가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요. 후쿠호카 같은 곳도 그 지역과 관련된 한국 역사와 교류에 좌우될 뿐이지요. 한국처럼 통일된 목소리가 있는 게 아니에요. 주로 언론 보도로 만들어지고 일부 정치가들이 이용하지요.

-일본에도 자주 가시나요?

한국에 올 때마다 일본에도 갑니다.

-최근에는?

4월 말부터 8일간 체류했습니다. 이번에도 확실히 느낀 것은, 최근에 '혐한'류의 책도 있지만, 어학 부문에 가보면 영어 다음으로 한국어와 중국어 학습서가 비슷하게 많더군요. 출판 관계자 말로는 일본에서 한국어 시장이 2위라고 해요.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요.

정치를 떠나서 개인 차원에서 관심이 많아요. 선진국에서 한국에 그만큼 관심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을 겁니다. 미국만 해도 사실 별 관심이 없거든요.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정치권 외에 침묵하는 다수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많아요.

-한일 경험을 아우르는 책을 양국에서 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 이번 책이 일본에도 번역이 되면 좋겠고, 아니면 새 책을 쓰든가...

-평소 좋아하는 한국 저자나 책이 있나요?

최근에는 이 책을 내느라 관계서 외에는 많이 못 읽었어요. 좋아하는 한국 작가로는 김승옥을 꼽습니다. 문장의 흐름이라든가, 힘이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김승옥의 <야행>, <서울, 1964년 겨울>, <무진기행> 같은 작품 문장이 참 아름답습니다. <야행>은 영어로도 나왔지요.

그밖에 양귀자, 박완서도 좋아합니다. 조금 오래된 작가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최근 작품은 전하려는 메시지가 강한 것 같아 오히려 문학성은 좀 떨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 책을 번역하신 적도 있지요?

김홍규 교수의 <한국문학의 이해>, 한 권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아주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미국을 소개한 책을 추천한다면?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있고요, 80년대에 나온 Habits of the Heart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던진 질문에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 등이 당대 시각으로 답한 책입니다. 그리고 마이클 해링턴의 The Other America가 있습니다. 60년대 초 흑인 동네와 남부 농촌 빈민 문제를 다뤘는데 약간 좌파적인 책이지만 당시 양극화 문제를 지적했지요. 그 책이 출간된 후에 60년대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개혁적인 복지정책이 나왔지요.

최근에는 트럼프 현상을 다룬 분석서들이 많이 나오는데 '뉴욕의 부동산 아저씨'가 당선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터에 다들 감정적으로 들떠 있어요. 사회 현상으로서는 좀 더 차분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로 감정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 같아요.

-말씀이 나와서 이야긴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참고로 파우저 씨는 민주당원이었는데 지난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경선에서 패한 후 탈당했다고 했다.)

트럼프라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아버지 유산으로 물려받은 부동산을 확장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에요. 호텔 같은 사업도 복잡한 능력을 요구하는데 성공한 걸 보면 전략적 사고는 있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똑똑해요. 인격이 너무 안 좋아서 그렇지. 북한 문제도 부동산적인 시각으로, 좋은 땅으로 보는 것 같아요. 취임 때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서 뭔가 해보려고 한 것 같아요.

위험한 점은 한번 집착이 생겼기 때문에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계속 관심을 가질 거예요. 그래서 해결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요. 부시는 이라크에 매몰됐고, 오바마는 힘을 자제하느라 북한을 무시했는데 트럼프는 손을 댄 거지요. 다만 비핵화 약속 이행 과정에서 어그러질 때 전쟁 위험은 상존한다는 거지요.

트럼프는 선거 때도 그랬지만 'High Reward, Low Risk' 싸움을 많이 해요. 얻을 것은 크지만 잃을 것은 적을 때 배팅을 하지요. 확실히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으면 하는 스타일입니다. 확실한 승리 후에 보여주고 싶어하지요. 장기전은 싫어해요.

부시 같은 사람은 네오콘이어서 민주화 같은 가치에 대한 의지가 강한데, 트럼프는 북핵 문제도 부동산 거래처럼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핵과 경제 대가 교환으로 사업적인 타결을 보려고 하지요. 그래서 오히려 김정은에게는 부시 같은 타입보다 협상이 쉬울 수도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작가로 글을 쓰는 거지요. 그리고 이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한데, 책방 겸 복합 문화공간 같은 것을 운영해볼까 싶기도 해요. 미국이나 한국에서 하고 싶은 맘도 없진 않아요. 용기가 필요한데 그럴 용기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사업성 때문인가요?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되면 열심히 해야 하니까요. 그러면 아무래도 글은 못 쓰게 되지요. 사업을 하려면 완전히 몰두해야 하니까. 다만 도전은 재미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일도 자기 사업이고 스토리가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

-아마존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도 힘들다는데, 미국에서 그런 사업이 성공할 여지가 있나요?

미국은 임대료가 싼 편이어서 한국보다 더 큰 곳을 임대할 있어서 순환이 조금 되는 편이에요. 지역 공동체와 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되기는 돼요. 한국은 임대료가 비싸고 장소가 여의치 않아요. 하게 되면 서울은 피하고 싶어요. 임대료도 높고 미세먼지가 많아서. 남쪽에서 심플하게 살고 싶은 것도 있고.

-책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데요.

이제는 예쁘게 선별된 책, 큐레이트된 책이 있는 서점을 찾겠지요. 특별한 작품, 아이템이 되면 사람들이 찾을 것 같아요.

-앞으로 저술 계획은?

이번 책을 낸 곳에서 두 번째 책을 계약했어요. 도시에 대한 책이에요. 내가 살았던 잘 아는 도시들에 관한 이야기. 도시의 활기, 원동력이 뭔지를 이야기하려고 해요.

-요즘 도시에 관한 책이 많아졌습니다. 답사도 늘었고요. 사는 곳, 일상, 주변에 관심이 커졌어요. 왜 그럴까요?


예전 386 세대가 오십대가 되면서 향수랄까, 돌아보는 분위기가 되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유럽의 오래된 골목을 찾듯이 한국의 서촌, 북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요.

로버트 파우저 자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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