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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 잡지의 발견

조회수 2018. 2. 11. 14: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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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여성 인문 계간지 잇따라 내게 된 사연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리진의 새 코너 [책 만드는 사람]으로 계간지 3종을 잇따라 내고 있는 바다출판사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대표와 잡지 편집장 인터뷰입니다.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출판계도 다양한 실험에 나서고 있습니다. 주력 분야인 단행본 외에도 연속 기획물이나 정기 간행물도 펴내는 곳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다출판사도 그 중 한 곳입니다.


2년 전 과학 계간지 <스켑틱> 한국판을 창간한 데 이어 작년 말과 올 초 각각 여성과 인문을 전문으로 한 계간지 <우먼카인드>와 <뉴필로소퍼>를 잇따라 발행하기 시작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출판사 대표와 <뉴필로소퍼>, <우먼카인드> 편집장을 만나 이면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원래 최근에 나온 <뉴필로소퍼> 편집장을 만나러 갔다가 다른 두 사람도 차례로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싣는 순서도 그에 따른 것입니다.

장동석 <뉴필로소퍼> 한국판 편집장에게 물었습니다.


-<뉴필로소퍼>는 어떤 잡지인가요?

<뉴필로소퍼>는 2013년 호주에서 창간된 계간 철학·인문학 잡지입니다. 호주판이 처음 시작할 때 내건 모토는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잡지입니다.

-한국어판은 어떤 차이가 있지요?

한국판도 기본 취지는 같습니다만, 슬로건을 '매일매일의 삶을 성찰하는 생활철학잡지'로 잡았습니다. 우리의 삶과 생활에 방점을 둔 거지요. 창간 철학은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담론으로서의 철학도 소개하지만 철학의 본래 목적인 ‘삶으로 살아내는’ 적절한 해법에 집중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새로운 철학자’가 되어 그 길을 함께 가자고 독려할 생각입니다.

-표지에 NewPhilosopher 다소 길어 보이는 영문 제호를 그대로 쓴 것도 눈길을 끕니다. 판권 계약 조건에 들어 있었나요?

호주 원저작사와 계약하면서 편집권의 자율성은 전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받았습니다. 제목을 영문으로 그대로 사용한 것은 전체적인 잡지 표지 구성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테면 한글로 <뉴필로소퍼>라는 제호를 내걸 경우에는 NewPhilosopher가 갖고 있는 현재적 의미를 잘 담아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지배적이었습니다. 영어 단어가 좀더 의미와 목적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잡지를 어떻게 국내에 들여와 내게 됐지요?

바다출판사는 2015년 과학잡지 <스켑틱> 한국판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12호를 발행했습니다. 독자들 반응도 좋아서 최대 3000부 정기구독자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다분히 모험적인 시도였지만,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켑틱>이 순항하면서 내부에서 과학과 인문을 포괄하는 다양한 잡지를 출간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두 해 전부터 사장님을 중심으로 해외 여러 잡지를 찾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먼카인드>와 <뉴필로소퍼>를 찾게 되었고, 1년여의 검토 기간을 거쳐 2017년 11월 <우먼카인드>를, 2018년 1월 <뉴필로소퍼>를 창간했습니다. 과학은 <스켑틱>, 여성은 <우먼카인드>, 인문은 <뉴필로소퍼>, 이렇게 세 가지 주제를 관통하는 잡지를 나란히 발행하게 된 셈입니다.

바다출판사가 사실 이 세 가지를 큰 범주로 해서 다양한 영역에서 인문적인 출판 활동을 해왔는데 그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중을 겨냥한 철학 잡지가 나온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 지적 관심이 높아진 것도 있는 것 같은데요.

아시다시피 요즘 인문학 열풍이 뜨겁습니다. 학교라는 경직된 울타리를 벗어난 곳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인문학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일상 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본래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그런 사상과 철학적 탐구 정신을 품고 있는 인문학은 그 자체로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철학은 고담준론을 논하는 경향이 있었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문화와 예술은 상업화의 물결에 편승한 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다시 인문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깊어지고 있는 현상은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렸던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다시 떠올려보려는 욕구로 해석됩니다.

<뉴필로소퍼>는 고담준론을 논하는 철학이 아닌, 또 하나의 상업화 물결에 편승한 문화와 예술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철학적, 인문학적 시선으로 통찰해 보려고 합니다.

-기존 학술이나 인문학 계열 잡지들과는 어떤 점이 다르지요?

기존 학술잡지나 문예지의 경우 보통의 독자들을 의식하기보다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독자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뉴필로소퍼>는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에 대상을 굳이 특정 독자에 제한하지 않습니다. 철학을 공부한 사람도,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함께 귀 기울일 수 있는 내용들로 채울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실제로 <뉴필로소퍼>는 매 호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잡지를 구성합니다. 한국판 창간호의 주제는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입니다. 이 주제에 관련된 글들로 전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칼럼을 중심으로 인터뷰, 만화, 사진, 그림, 인포그래픽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습니다.

고전 읽기 코너에 소개된 <걸리버 여행기>의 경우, 작품이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언급하지 않지만, 내용 중에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어 5장을 발췌해 수록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하나의 주제에 접근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이 즐길 수 있습니다.

한국판은 호주 원판을 근간으로 하되 국내 필자의 관련 글을 더해서 만들어집니다. 매호 하나의 주제로 잡지 전체를 구성합니다. 호주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판의 경우 국내 독자의 관심을 감안하고 적실성과 밀도를 높히기 위해 한국판 편집자들이 전체 구성을 다시 짭니다.

한국 독자들은 기승전결 식의 구조에 익숙하기 때문에 평면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 호주판 그대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판의 경우는 좀더 한국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로 조금 변형하는 편집하고 있습니다.

잡지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구성된다고는 해도 모든 분야를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 빈자리를 한국 필자들의 원고를 통해 채우고 있습니다. 한국 필자들의 원고는 빈자리를 채우는 데만 그치지 않고 한국적 맥락에서 주제를 조명해보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필자들의 글이 훨씬 더 주제 적합성에 부합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번역 작업이 많을 텐데요,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기존 해외 단행본 작업과 다른 점이라면?

번역은 외부의 번역회사과 계약해서 업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여러 번역가들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데, 보통 6명이 작업을 합니다. 작업 공정 면에서 보면 기존 단행본과 다른 점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잡지라는 특성상 한 콘텐츠의 분량이 짧기 때문에 편집자들이 좀 더 흥미롭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해외 원판의 경우 그동안 어떤 주제들을 다뤘나요?

1호 깨어나라(자유), 2호 온라인 인격, 3호 행복, 4호 돈, 5호 나, 6호 경제성장, 7호 약물, 8호 여행, 9호 부동산, 10호 영웅, 11호 기술, 12호 교육, 13호 행운, 14호 자연, 15호 미래, 16호 음식, 17호 커뮤니케이션, 18호 소비입니다. 17호 커뮤니케이션을 이번 한국판 창간호 주제로 택했습니다.

-초기 반응은 어떤가요? 목표는?

초기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출시 10일 만에 초판 3000부가 모두 출고되는 바람에, 2쇄 2000부를 다시 제작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제가 다른 곳에 있을 때를 포함해서 15년 넘게 잡지를 만들었는데 2쇄를 찍은 건 처음입니다.

정기구독자도 나름 빠르게 유치된 편입니다. 20일 동안 300명 정도가 정기구독을 신청했습니다. 여기에는 1년과 2년 독자들이 섞여 있습니다.

낱권 판매도 순조로운 편입니다. 어느 온라인 서점에서는 출시 10일이 지난 시점에 잡지 분야 베스트셀러 1위,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3위, 전체 26위까지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목표는 정기구독자 1000명을 빠른 시일 안에 달성하는 것입니다. 잡지의 생명력은 결국 정기구독자들에게 달렸기 때문에 1000부선을 빠르게 진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 잡지는 별도의 팀으로 운영되나요? 서로 경쟁을 하게 되나요? 관계는 어떻게 되지요?

사내에 모두 3개 팀이 있습니다. 과학팀, 문화예술팀, 인문팀입니다. 각 팀은 2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6명인 셈입니다.

과학팀은 <스켑틱>을, 문화예술팀은 <우먼카인드>를, 인문팀은 <뉴필로소퍼>를 담당합니다. 각각의 팀은 1년에 4권이 잡지를 만들고, 단행본도 함께 작업하는 구조입니다.

서로 경쟁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잡지별로 팀 내 역량에 따라 움직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경쟁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단행본 생산이 줄어든다거나 소홀해질 우려는 없나요? 어떻게 해결하는지요?

<스켑틱>을 만드는 과학팀의 경우 2015년부터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안정된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마감 작업에 집중해야 하는 달을 제외하고는, 단행본 작업을 충분히 병행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우먼카인드>와 <뉴필로소퍼>는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다소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잡지를 만든다고 해서 단행본에 소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잡지의 다양한 콘텐츠를 어떻게 단행본으로 만들 수 있을까 구상에 도움이 되는 덤도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창간호에 국내 필자의 글 3편이 실렸더군요. 앞으로도 이런 포맷을 유지하실 생각이신가요?

창간호의 경우 호주 원판의 빈 자리를 찾아 국내 필자에게 원고를 부탁했습니다. 원판은 IT 전문가 니콜라스 카가 통신기기의 변화와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거시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어서, 좀더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에게 어릴 때부터 사용한 통신기기의 변화와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준 영향력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 원고가 서로 보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평론가 김만섭의 원고는 이른바 ‘한경오 사태’를 통해 본 지식인의 소통 방식에 대한 성찰이고, 철학자 최훈의 글은 합의 불가능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아직 고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주제에 맞는 글, 호주판이 보지 못한 지점을 찾아내 그것을 글로 구현한다는 생각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진에 대해서는 구상이 있나요?

국내 필진의 경우 호마다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각각의 주제에 맞는 필자를 구해야 하기 때문인데, 좀더 젋은 필자, 다양한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필자를 발굴한다는 게 기본 원칙입니다.

다만 지금처럼 구색 맞추기 필자를 뛰어넘어 한국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특집을 3호나 4호부터 만들어보려고 구상중입니다. 호주판이 보편적으로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조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몇몇 필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판 소특집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독자 확보나 유지, 확장에 대해서는 어떤 복안이 있나요?

현재로서는 널리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홍보도 중요하지만 좀더 대면 접촉을 강화해서 <뉴필로소퍼> 열혈독자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오프라인 모음으로 ‘리뷰 모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해당 호의 주제를 가지고 독자들이 집담회를 열수도 있고, 국내 필자를 초청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고등학생들의 철학 동아리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독서 수준이 좋은 학생들도 <뉴필로소퍼>의 텍스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철학 동아리가 활성화된다면 그것 자체로 뉴스일 텐데, 가능한 많은 학교에서 이런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동안 출판계에서 오래 일하시면서 잡지 발행에도 관여하셨지요?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하셨고, 이번 일은 어떤지요?

첫 직장이 월간 <빛과소금>이었습니다. 여기서 6년 가까이 기자로 일했습니다. 이후 <출판저널>로 옮겨 편집장으로 3년 정도 일했고, 이후 출판평론가, 북칼럼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 편집주간을 맡아 일했습니다. 2017년 바다출판사 인문팀장으로 일하면서 <뉴필로소퍼> 편집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다른 잡지 모두가 그랬지만, <뉴필로소퍼>는 새로운 지적 자극을 훨씬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해외 석학들이 쓴 글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잡지가 추구하는 목표와 이상이 제 생각과 비교적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뉴필로소퍼> 출간을 결정하고 지난해 9월 와우북에서 처음 홍보를 시작했는데, 그때 사용한 표현이 “삶으로 살아내는 철학”이었습니다. 창간호 편집장의 글 제목이기도 합니다.

<뉴필로소퍼>가 추구하는 정신이 고담준론만 읊는 것이 아니라 삶을 좀더 풍요롭게 하고, 하여 공동체적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잡지 만드는 기쁨으로 오랜만에 다시금 느끼게 되어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잡지 형태의 출판이 조금씩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출판업계나 시장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출판평론가로도 활동하셨지요. 최근 흐름을 어떻게 읽고 계신가요?

잡지가 사양길에 들어섰다는 말은 통계로 보면 사실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들 잡지는 지나치게 거시적인 관점을 제시하거나 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잡지들의 변화는 꽤나 주목할 만합니다. 말씀처럼 잡지 형태를 띈 단행본도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는 콘텐츠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합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독자들은 좀더 빠르게 많은 콘텐츠를 섭렵할 수 있습니다. 잡지가 하던 일을 신문이 대신하던 시대가 오면서 잡지가 사라졌고, 신문이 하던 일을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이 감당하면서 신문의 시대도 저물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단행본과 잡지형 단행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잡지형 단행본이 단행본의 지나친 단조로움을 뛰어넘어 독자들의 시각도 자극한 셈입니다. 물론 잔기술로는 이런 승부를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이제 시각적 효과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당분간 잡지형 단행본이 나름 작은 시장을 형성할 걸로 봅니다.

나희영 <우먼카인드> 한국판 편집장에게 물었습니다.


-<우먼카인드>는 어떤 잡지인가요?

페미니즘 노선을 표방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즘의 이슈만을 치열하게 다룬다기보다는 좀 더 넓게 문화적 반경 안에서 여성 문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문학이나 철학, 사회학, 예술까지 포괄적으로 아우르면서 접근하는 거죠.

글의 문체는 문학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폭넓게 시각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지요?

매 호마다 하나의 주제가 있어서 관련 콘텐츠를 싣고, 또 특정한 하나의 나라를 선정해서 그 나라의 평범한 시민들을 인터뷰해서 고정 꼭지로 싣고 있습니다. 창간호의 경우 특집 국가는 터키였는데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도 터키 이미지와 문화를 반영했지요. 2호는 주제 국가가 탄자니아인데, 자연과 사파리, 아프리카 여성의 이미지가 담깁니다. 그러다 보니 아트 디렉션은 내셔널지오그래픽 느낌도 나더군요.

-이런 잡지를 내게 된 배경이나 취지라면?

국내에도 이런 잡지가 나올 토대가 마련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낼 수 있었습니다. 2014년부터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늘었고 독자들도 적극 반응했지요. 잡지를 내고서 반응을 살피면서 개인적으로 깨달은 점은 그래도 이슈가 좀 더 분명한 메시지에 반응하는 정도가 높다는 겁니다. <우먼카인드>는 그보다 한 차원 더 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류 보편의 주제랄까, 한 국가를 특집으로 다루는 것도 그렇고.

-한국판에 대한 복안이라면?

목소리를 좀 더 분명히 하는 것이 과제일 텐데, 국내 저자의 원고로 보완하려고 합니다. 2호까지 편집을 마쳤고 다음주에 나오는데, 앞으로 국내 원고를 더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이번호 테마는 '나를 나로 긍정하기'입니다. 심리학 관련 글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자기 암시를 피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그런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뉴필로소퍼와 포개지는 면도 있어 보이는데요. 어떻게 다르지요?

저작권 본사가 같은 데다 한국판도 같은 곳에서 낸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묘하게 성격이나 분위기가 달라서 겹치는 독자도 있겠지만 각각의 개성이 있습니다.

<뉴필로소퍼>는 <우먼카인드>보다는 이슈가 보다 명확한 잡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먼카인드>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긴 한데 모든 글이 그 주제로 포섭되지는 않습니다. 창간호의 경우 '모티베이션의 비밀'이 주제였는데 여행, 독서 등에 관한 글들이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하나의 나라를 정해서 3분의 1 정도 할애하는 점도 독특합니다.

또 <우먼카인드>는 텍스트의 중요성과 더불어 시각 디자인, 이미지의 중요성도 강조하는 편입니다. 창간호를 보시면 호주 아티스트가 정규 제작진으로 많이 참여했어요. 그만큼 일관된 이미지를 가져가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다는 거죠. 이 부분에 호응하는 분도 많습니다.

-그동안 여성잡지라면 다양한 형태로 명멸했는데요.

사실 <우먼카인드>의 경우에 '여성지'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 잡지의 개성이 묻혀버릴 우려가 있습니다. 종래의 '무슨무슨 여성'이라는 제호의 여성잡지들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독자층도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적인 계보의 여성지도 있었지요?

지금은 없어진 <이프>와 <허스토리> 같은 것이 있긴 했어요. <이프>는 뚜렷한 이슈와 의제를 가진 잡지였고, <허스토리>는 좀 더 새로운 여성지를 표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 독자를 상대로 한 인문학적 읽기물로는 <우먼카인드>가 처음일 겁니다.

-드문 사례인 만큼 앞으로도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갈지가 숙제일 것 같습니다.

예전의 여성잡지 독자와 일부 겹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겨냥하는 독자는 지적인 남녀 독자입니다. 페미니즘 책을 구매해서 볼 정도의 적극적인 사회적으로 각성된 독자를 지향합니다. 아무래도 스펙트럼이 넓은 잡지이다 보니 호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보완될 것 같습니다. 고민을 많이 해야겠지요.

-경쟁 스트레스는 없나요?

<스켑틱>은 이제 2년 넘은 데다 첫 주자로 출간 당시에도 호응이 있어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한 편입니다. 이제 두 신생 잡지들도 그만큼 해야지요. 애쓰고 있습니다.

<뉴필로소퍼>는 독자 연령대나 성별 구분 제약을 덜 받는 편이고, <우먼카인드>는 아무래도 제호부터 그래서 여성 반응이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확장성에서는 제약이 있는 편이긴 합니다. 그래도 서로 견인하면서 시너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멀리 내다보고 계속 보완해가려고 합니다.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한 출판사가 각각 과학, 여성, 인문을 주제로 세 가지 잡지를 나란히 발행하게 됐습니다. 흔치 않은 일인데요. 처음부터 구상을 하신 건가요?

솔직히 말해서 하다 보니 그렇게 맞아떨어졌을 뿐입니다. 다만 지나온 과정을 복기해보면 어떤 예감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행본 출판사로서는 늘 새로운 책을 내면서 즐겁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속성에 대한 갈증이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옛날 출판사들은 시리즈나 전집류로 그런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자기 정체성을 뭘로 보여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마침 <스켑틱>을 알게 되어 국내에 들여오게 됐습니다. 막상 발간을 해보니 의외로 계간지가 참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단행본의 장점도 있으면서 연속성에 의한 정체성 확보도 해결이 되고, 일정하게 작은 성취감도 생기고 하니까 계간지라는 매체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간지의 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월간지만 해도 잡지로 소비하자면 권 수가 너무 많은 감이 있습니다. 보관도 쉽지 않고. 회사 역량을 볼 때도 월 단위는 소화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런 몇몇 현실적 고려가 있었는데 여러모로 계간지가 좋았습니다. 일정한 가치관을 반영할 수도 있고.

이번에 낸 <뉴필로소퍼>처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는 게 계간지 포맷이거든요. 단행본과 잡지의 장점을 함께 갖고 있는 거지요.

그걸 <스켑틱> 내면서 우연찮게 깨닫게 됐고, 그 뒤로도 가능하면 계간지는 몇 개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물색을 하던 차에 <우먼카인드>와 <뉴필로소퍼>를 알게 되어 같이 내게 됐습니다.

뉴필로소퍼는 초판 3천 부를 찍었는데 2주 만에 이미 다 나간 상태입니다. 한국에서 생활철학 잡지라면 낯설게 여길 수 있고, 저희로서도 큰 마케팅 계획도 없었는데 이렇게 나가는 걸 보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잡지를 읽는 이유가 주로 정보였다면, 이제는 가치관이 같고 기호가 맞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면 7-8천부도 팔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잡지를 꼭 다 봐야 하는 건 아니고, 거기에 돈을 지불하고 동의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기호와 가치관의 공동체, 이런 방향으로 설득해가면 가능할 수 있겠다 싶은 거지요. 어차피 수만 부를 팔아야 할 틀은 아니니까, 욕심을 줄이면 그런 모델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셋 다 외국 판권을 사서 번역해서 내는 잡지인데요.

번역이긴 하지만, <스켑틱>은 완전히 새로 편집을 하다시피 하고, <우먼카인드>나 <뉴필로소퍼>도 굉장히 손이 많이 갑니다. 뒤의 둘은 그나마 일러스트가 좋아서 거기에 많이 기대는 편입니다. 해외 콘텐츠를 확보하지 않고 맨땅에서 헤딩하듯 잡지를 내려면 인력이 최소 10명은 필요할 텐데 국내 시장 규모나 사정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판권료를 물거나 원고 번역료까지 감안하면 수지를 맞추기가 녹록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일정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안 따져보고 그냥 하는 일입니다. 손해는 안 볼 거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왜냐 하면 비용은 들더라도 해외 판권이 주는 그만큼의 안정성이 있습니다. 국내 잡지는 아시다시피 어렵습니다. 그러니 다들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광고를 뺀 대신에 몸을 가볍게 가는 조직의 잇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습니다. 단행본 출간에는 선수들이니까, 비용을 최소화하고 내부적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광고 받느라 뛰어다닐 여력은 없으니, 편집이나 기획이나 독자 확보에 역량 집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기동성 있게 효율적으로 작업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두 잡지가 해외에서도 같은 호주 발행사에서 내는 거더군요.

앞서 이야기한 대로 계간지에 관심이 생겨서 물색을 하고 있던 차였어요. 여러가지를 많이 봤는데, 판권을 들여올 때는 콘텐츠의 보편성이 중요한데, 현지에는 맞지만 우리한테는 안 맞는 것 걷어내고 나면 먹을 게 없는 게 꽤 많았습니다. 아주 좋은 잡지 중에도 그런 게 많아요. 마침 두 잡지를 아는 에이전시로부터 소개받았는데 아주 잘 맞아서 내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앞으로도 잡지를 더 내실 계획인가요?

지금은 국내 잡지 개발을 연구 중입니다. 하지만 이건 내부 역량이 좀 더 필요한 것이어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계간이든 격월간이든. 단행본 같은 독자성과 잡지 같은 연속성을 가지면서 가치와 기호를 공유하는 게 뭐가 있을까. 해외 판권 없이도 우리 내부 역량에다 약간의 힘을 보태는 식으로. 우선 이제 시작한 잡지들부터 안착시키고 난 후의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잡지에는 계속 관심이 있습니다. 외국 것도 보고. 이게 무작정 들여온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번역만 해서 표지 입혀 내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문맥을 잘 살피고 만져서 내놔야 우리 독자들이 읽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콘텐츠의 조율을 잘 해야 합니다. 좀 더 연구해보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잡지로 옮겨가는 건 아닙니다. 단행본의 정신은 갖고 있는 거지요. 책의 컨텐츠를 잘 조직해서 주기적으로 판다는 것 뿐이지, 굳이 잡지라고 인식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일정의 압박 때문에 잡지인 거지 우리 안에서는 컨텐츠 생산 면에서 단행본과 같은 거예요. 독자들도 그런 생각에서 산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이 세 잡지를 묶어서 통합 정기구독 회원제로 갈 생각입니다. 서로 다른 계간지가 3종이니까 구독자로서는 다양한 색깔의 잡지를 바꿔가며 매달 받아보게 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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