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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책이 불타는 세상이 오면

조회수 2018. 5. 21. 11: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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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SF 대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늘의 큐레이션]으로 소개해드리는 책은 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쓴 고전 <화씨 451>입니다.


원제가 <Fahrenheit 451>인 이 책은 1953년에 출간됐습니다. 과학 기술 발달 이면의 퇴색해 가는 정신문화를 되살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디스토피아적 미래 소설입니다. 


사람들이 스크린을 통해 쏟아지는 감각적이고 통속적인 정보와 쾌락에 중독된 미래 사회에서 비판적 사고와 지연된 생각을 갖게 만드는 '불온한 매체'인 책을 불태우는 임무를 맡은 주인공이 심경 변화를 겪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작가 브래드버리는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등과 함께 SF문학의 거장으로 꼽힙니다.


1920년 8월 22일 일리노이 주 워키건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은 포기했지만, "도서관이 나를 길러냈다"고 할 정도로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방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스무 살에 발표한 첫 단편 「홀러보첸의 딜레마」를 시작으로 여러 잡지에 작품을 기고했고, 단편과 장편 소설, 희곡, 시 등 장르를 넘나들며 5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문명비판서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화씨 451』, 『화성연대기』는 과학기술과 문명이 파괴하는 정신문화와 인간 실존에 대한 탐구와 재생의 노력을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저자는 SF 작가로는 최초로 2000년 전미도서재단이 주는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2004년 '내셔널 메달 오브 아트' 상, 2007년 프랑스문화훈장, 퓰리처 특별 표창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책 제목 '화씨 451'은 책에 불이 붙어 타는 온도를 뜻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게 된 거요? 어쩌다 책을 불태우는 일을 그만두게 된 거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건 다 있는데도 행복하지가 않아요.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한 유일하게 사라진 것이라고는 지난 10-12년 사이에 제가 불태운 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이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구제 불능의 낭만주의자이군. 심각하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 텐데. 당신에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라오. 과거 한때 책 속에 들어 있었던 그 무엇이오. 그와 똑같은 것을 잘하면 오늘 방영될 '거실 텔레비전 가족'(거실 사방벽 대형 스크린으로 시청하는 쇼 등장인물들: 편집자)에서 얻을 수도 있어요. 잘하면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도 책만큼이나 무한한 세부 사실과 자각을 얻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그러니, 당신이 찾는 것은 책이 아니오! 그런 것이야 찾을 수 있는 곳에서라면 어디서든 취하면 되오. 옛날 전축 음반이든, 옛날 영화든, 오랜 친구들에게서든. 자연도 좋고 당신 자신 안에서도 찾아봐요. 책이란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많은 것들을 모아 둔 그릇의 한 종류였을 뿐이오.


책 자체에는 마술적이랄 게 전혀 없소. 그 매력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 즉 우주의 부분들을 한 벌의 의복으로 꿰맨 방법에 있는 것이오. 물론 당신은 잘 몰랐을 수 있소. 지금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할 수 있어요. 아무튼 당신의 직관은 옳았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지. 자, 세상에 부족한 것은 세 가지요.


첫 번째, 당신은 이런 책들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있소?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좋은 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질이란 무슨 뜻인가? 내게는 짜임새를 의미하오. 책은 아주 세밀하게 짜여진 것이오. 아주 작은 숨구멍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붙어 있소. 자기 나름의 뚜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단 말이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여전히 짜임새가 눈에 보일 정도로 아주 세밀하게 엮인 것이오.


현미경을 통해서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것이오. 끊임없이 넘쳐 나는 이야기와 깨달음을 발견할 것이오. 그 현미경을 통해서 한 제곱 센티미터마다 얼마나 많은 숨구멍들이 보이는지, 책장 하나하나마다 진실한 삶의 이야기들을 얼마나 많이 얻을 수 있는지, 이것이 내가 내리는 '질'의 정의요.


그렇지만 질이 좋은 책도 읽는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하면 빛을 못 보지. 아무튼 내 생각은 이렇소. 세밀하게 이야기하라. 생생하게 이야기하라. 좋은 작가들은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담지만, 그저 그런 작가들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쓱 어루만지고 지나갈 뿐이오. 아주 형편없는 작가들은 삶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농락한 뒤에 파리똥이나 쌓이는 신세로 내팽개쳐 버리지요.


이제 알겠소? 왜 책들이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책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숨구멍을 통해 생생하게 보이는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오. 그런데 골치 아픈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저 달덩이처럼 둥글고 반반하기만 한 밀랍 얼굴을 바라는 거야. 숨구멍도 없고, 잔털도 없고, 표정도 없지. 꽃들이 빗물과 토양의 자양분을 흡수해서 살지 않고 다른 꽃에 기생해서만 살려고 하는 세상,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모습이오.


우리는 꽃에 물을 주면 그것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지만, 현실의 진짜 모습은 그게 아니지. 헤라클레스와 안타이오스(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 난 아들-옮긴이)의 전설을 아시는지? 거인 씨름꾼인 안타이오스는 어머니인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한 절대로 싸움에 지는 법이 없었다고 하는 얘기를 모르시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를 번쩍 들어 두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도록 한 뒤 손쉽게 제압했다고 하오. 오늘 이 도시에,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 고대의 전설에서 뭔가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완전히 미쳐 버릴 것이오. 자 아무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첫 번째가 무엇인지 말했소. 좋은 질, 정보의 짜임새가 얼마나 좋으냐는 것."


"그러면 두 번째는 뭡니까?"


"여가 시간이지."


"오, 그거라면 우리들은 근무 외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근무하지 않는 시간?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지. 그러나 생각할 시간이라면 어떻소? 당신은 시속 100마일을 즐기지 않는다면, 위험 외엔 도저히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때 말이오, 그러면 그 다음엔 가만히 앉아서 하릴없이 오락이나 즐기거나 거실에 앉아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벽면 텔레비전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지.


왜 그럴까? 벽면 텔레비전은 '현실'이기 때문이지. 그건 즉각적, 말초적이고 다양한 차원을 지녔소. 당신이 생각할 것은 모두 벽면이 제공해 주지. 거기서 말하는 게 모두 옳은 것 같이 보이고, 모두 옳아야만 할 것 같고. 그것은 너무나도 깔끔하고 즉각적으로 결론을 내려 주니까 당신의 마음은 미처 생각해 보고 반박할 여유도 갖지 못하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하고 말이지."


"'가족'(텔레비전 프로의 단골 등장인물들: 편집자)만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요."


"예? 지금 뭐라고 했소?"


"아내가 말하길 책들은 '현실'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건 천만다행한 일이오. 책은 읽다가도 잠시 덮고 생각에 잠길 수 있소. 거기서는 당신이 신이 되는 거요. 그러나 당신이 텔레비전 거실(사방 벽면이 대형 스크린인 거실: 편집자)에 씨를 뿌렸을 때는 누구라도 당신을 꽉 에워싼 집게발을 뿌리치고 달아나게 해준 적이 있소? 텔레비전은 마음먹은 대로 당신을 길러내지요! 그것은 실제 세상 만큼이나 현실적인 환경이오. 그것은 점점 진리가 돼고 있고, 이미 진리이기도 하오.


책은 이성으로 때려눕힐 수 있소. 그러나 100가지 악기로 편성된 오케스트라에 총천연색, 3차원의 텔레비전 거실은 내 모든 지식과 의심을 동원해도 도무지 언쟁 상대가 되지 않소. 나 자신이 이 터무니없는 텔레비전 거실 안에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의 일부요. 보시다시피 우리집 거실은 그저 회반죽을 바른 네 개의 벽면으로 돼 있을 뿐이오.(텔레비전을 제거한 상태라는 뜻: 편집자) 그리고 여기 이것."


파버는 조그만 고무 마개 두 개를 꺼내 보였다.

"난 지하철을 탈 땐 이걸 귀에다 꽂고 다닌다오."


"덴헴 덴티프라이스(모든 승객 귀에 쉴새없이 울려퍼지는 구강세척제 이름. 앞에서 말한 파버가 착용한 귀마개는 이 소리를 차단한다는 뜻: 편집자)"


몬태그는 눈을 감은 채 조용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책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까?"


"세 번째 조건이 만족된다면. 첫 번째는 말했다시피 정보의 질이오. 두 번째는 그 정보를 소화할 충분한 시간이지.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 말한 두 조건의 상호 작용으로 얻어지는 우리의 배움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리요. 그렇지만 나는 늙은이와 방화수 둘이서 뭘 해 보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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