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오늘의 큐레이션] 공동체 대신 셀럽을 얻다

조회수 2018. 4. 8. 20:2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레엄 터너 <셀러브리티: 우리 시대 셀럽의 탄생과 소멸>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늘의 큐레이션]으로 문화연구학자 그레엄 터너의 <셀러브리티: 우리 시대 셀럽의 탄생과 소멸에 관하여>를 소개합니다.


원제는 Understanding Celebrity이며 2013년 개정판이 최근 국내 학자들에 의해 번역돼 나왔습니다.


호주의 문화연구학자인 저자는 대중문화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호주 인문학술원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퀸즈랜드 대학교 문화연구학과 교수입니다.


이 책에서는 갈수록 영향력을 더해 가지만 그래서 더욱더 무감각해지기 쉬운 미디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이른바 '셀럽'으로 불리는 인기/유명인 현상, 이것이 문화는 물론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관련 문제를 깊이 있게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문 중에서 특히 함께 음미해볼 만한 내용을 부분 발췌했습니다.

셀러브리티는 현대 대중문화의 비진정성에 밀접히 관련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좀더 포괄적인 문화적 변화의 징후로 해석된다. 부어스틴은 시뮬라시옹simulation, 곧 허상이 문화를 지배한다고 해석한다. 문화가 이미지에 심취하면서 그 실체나 현실의 토대를 상실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심층적 동력에는 대중문화 실천이 함축한 민주적 차원과 대중적 차원을 향한 엘리트들의 혐오가 실제로 존재한다.


존 스토리는 <대중문화의 발명>에 쓴 서문에서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논평을 환기시킨다. <문화와 사회>에서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수세기 동안 민주적으로 확장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문화의 성격과 조건을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고, 오히려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뿐이다."


데이비드 마셜이 주장하듯 셀러브리티는 문화적 의미를 조직하고 협상하는 핵심 장소가 됐을 뿐 아니라 미디어 주목과 개인적 열망의 중심이 됐다. 좀더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런 변화는 대면 문화의 상실로 간주되며, 오늘날 사회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이 인간관계를 해체하고 파편화한다는 관점에서, 따라서 공동체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흔히 평가된다.


그 결과 현대 생활에서는 감정이 점점 메말라가고 심지어는 친밀한 관계조차 점점 더 해체된다. 공동체 문화가 아니라 핵가족과 확대 가족 현상에서 우리는 공동체 상실의 징후를 발견하며, 개별 가족과 좀더 넓은 교외 지역 동동체의 분리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의 축소는 유사 사회적 상호 작용으로 대체된다. 이제 상호 작용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상당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서 일어난다. 이를테면 우리는 대면 관계까 없어도 자기가 주목하고 숭배하는 셀러브리티를 향유할 수 잇다.


요컨대 공동체의 상실은 셀러브리티에게 기회를 안겨줬다. 우리는 공동체 대신에 셀러브리티를 얻었다. 우리는 유명인에게 열광적인 관심을 보내고, 그 인물과 나의 관계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게 된다. 유명인들은 미디어를 통한 공동체 건설의 새로운 도구로 활용된다.


크리스 로젝과 존 프로우가 주장하듯이 오늘날 셀러브리티의 문화적 기능은 종교의 일반적 기능과 매우 비슷하다. 두 사람은 특정한 셀러브리티와 종교적 인물의 특성을 자세히 비교하면서 수용자-팬과 신도-집단들이 일종의 영적 체험을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셀러브리티는 '특별한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담론적으로 구성된다. 데이비드 자일스가 말하듯이 명성이란 하나의 '과정', 곧 미디어가 개인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좌우된다.


첫째, 셀러브리티에 관한 미디어의 재현에서 담론들이 작동하는 양상은 매우 모순되고 양가적이다. 요컨대 셀러브리티는 특출하기도 하지만 '그저 우리와 비슷'하며, 성공할 만하지만 '단지 운이 좋'을 뿐이다. 또한 셀러브리티는 욕망과 모방의 대상이지만 조롱과 모욕을 불러일으키고, 진솔한 사람이지만 철저한 위선자일 수 있다.


둘째, 셀러브리티 재현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망도 매우 복합적이다. 특정한 유명인을 향한 우리의 열망은 한편으로는 환상의 투사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의 일상에서 우리는 셀러브리티를 만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 때문에 오늘날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 셀러브리티는 영향력 높은 상품으로 전환됐는데, 특히 다양한 미디어 영역에서 콘텐츠 개발에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미디어 환경은 지금처럼 고도로 융합되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에서 크로스 미디어, 크로스 플랫폼 콘텐츠, 크로스 프로모션이 서서히 표준이 됐다. 그리고 셀러브리티의 제작과 유통은 이제 광고 산업과 홍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미디어 조직이 요구하는 통상의 전략이 됐다.


간단히 말해 셀러브리티는 하나의 상품이다. 따라서 미디어와 홍보 산업이 생산하고 거래하고 구매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셀러브리티의 주된 역할은 홍보와 판매 촉진에 있다.


셀러브러티는 가십을 거쳐 스펙터클한 상품, 곧 그것 자체로 매력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가공된다. 그렇기는 해도 유명인들은 가십에 철저히 전용되며 뒷담화의 전통적인 사회적 기능에 복무한다. 특히 우리는 수다를 떨면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누군가를 무대에 올려놓고 서로의 판단, 가치, 규범을 공유한다. 이렇게 가십을 통한 공동체의 형성은 다면적 활동이다. 한편에는 존경, 계급 선망, 복수가 표출되고, 다른 한편에는 단순한 루머가 퍼져나간다.

지난 20년 동안 미디어, 문화, 사회 사이에는 결정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셀러브리티 생산과 소비는 그런 과정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첫째 문화와 사회의 '매개화'로 묘사되는 기능이다. 이 말은 오늘날 미디어가 우리의 일상 경험을 형성하는 데 좀더 근본적인 기능을 한다는 말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면, 여러 사람이 동의하듯 오늘날 미디어는 현실의 구성에서 선도적이고 독립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 문화, 사회에 관련된 우리의 실제 경험이 점점 더 미디어에 따라 '주조되고' 있다. 미디어가 우리의 문화를 '주조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셀러브리티는 미디어의 사회적 중심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사이를 담론적으로 연결하게 되고, 어떤 점에서 실질적으로 연결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셀러브리티는 매개화 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둘째, 변화는 이런 기능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미디어가 대응한 방식과 관련된다. 미디어는 시장 지배력, 또는 시장화를 강화하려고 했다. 이런 변화는 상업적 경쟁이 격화되는 맥락에서 발생했는데, 대중 매체가 폭잘적으로 증가하고 수용자들은 끊임없이 팽창하는 콘텐츠를 이용하게 됐다. 한때 미디어는 자기들이 상업적 영역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활동한다고 간주할 수 있었고, 연예 오락뿐 아니라 정보 영역에서 활동한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한 대로 오늘날 미디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 반대로 정보 제공, 곧 공적인 기능은 점점 중요성을 잃고 있다. 요컨대 미디어는 엔터테인먼트 기반의 콘텐츠를 주로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셀러브리티는 또다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로 실레브리티는 오늘날 미디어의 정치경제학에서 구조적인 중심 요소가 됐다.

생산 방식의 측면에서 오늘날 정치인의 대중적 인격은 스포츠와 연예계의 셀러브리티와 상당히 유사하다. 정치 뉴스는 점점 더 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대신에 논쟁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점점 더 멀리한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정치 보도는 엔터테인먼트 포맷으로 변신했다. 이를테면 <데일리 쇼>와 <콜버트 리포트> 같은 풍자식 뉴스쇼뿐 아니라 가십 저널리즘과 토크 쇼가 늘어나 전통적인 뉴스 제공자를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대중 매체를 통한 정치의 연출 방식이 변했다.


많은 사람이 염려하듯 바로 여기에서 정치에 관한 관심이 공공 정책의 문제에서 개인 선호의 문제로 점점 더 이동하게 된다. 미디어 전문가와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에 따르면, 오늘날 텔레비전 뉴스의 시청자 중에는 청년층이 거의 없으며 신문을 읽는 청년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젊은 세대는 (가장 열광적인 셀러브리티 소비층이며) 전통적인 뉴스 매체뿐 아니라 전통적인 정치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이야말로 조직화된 정치의 이해관계와 셀러브리티 생산 과정을 밀접하게 결합한다.


우리는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권력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미디어를 매개로 오늘날 어떻게 수행되는지 좀더 치열하게 검토해야 한다. 실제로 이 논쟁은 문화 연구에 주어진 새로운 임무로 보인다. 이런 논쟁들이 특정한 역사, 문화, 산업의 맥락에서 분리되면, 사태는 해결보다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끝맺으면서 내가 얻은 교훈이다.

[북클럽 오리진] 컨텐츠 카톡으로 받아보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