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안다는 것의 의미

조회수 2018. 4. 1. 09: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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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슬로먼 & 필립 페른백의 <지식의 착각>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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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으로 주목할 만한 번역 신간의 내용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미국의 인지과학자 스티븐 슬로먼 & 필립 페른백의 <지식의 착각>에서 골라봤습니다.


최근 들어 지식의 사회성에 주목하는 연구 결과가 늘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정보와 지식이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 공동 협력의 산물이며 사회 관계망에 의존한다는 거지요.


집단의 편견과 상호 갈등의 뿌리도 그런 사정의 무지에서 비롯한다는 진단과도 연결됩니다. 개인의 한계와 상호의존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것이 개인이나 집단, 사회가 보다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임을 알려줍니다. 완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여러 인지 체계가 함께 작동하면 한 사람의 역량을 뛰어넘는 집단지능이 출현한다.


인간과 벌은 다른 차원에서 중요한 특성을 공유한다. 둘 다 여러 구성원이 협력하는 능력을 통해 거대한 지능을 이룬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종인 이유는 각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 때문만이 아니라 뇌의 공동체가 협력하는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마음은 공동 작업의 방식으로 진화했고, 생각은 상호 의존적으로 진화해서 남들의 생각과 함께 작용한다. 벌집처럼 개인이 한 영역을 통달할 때 집단지능이 부분의 총합보다 커진다.

현대 인류의 주된 특징으로서 뇌가 커지고 지능이 폭발적으로 높아진 것에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생태 이론이 개인의 능력에 주목하는 반면 다른 이론은 인간 지능의 원동력이 여러 인지 체계가 결합하여 복잡한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사회적 뇌 가설이라고 한다. 사회적 뇌 가설에서는 지능이 발달한 원인을 사회 집단이 커지고 복잡해진 데서 찾는다.


사회적 뇌 가설에서는 집단으로 모여 사는 방식과 관련된 인지적 요구에 적응하면 눈덩이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집단이 커지고 복잡한 공동 활동이 생기면서 개인은 이런 활동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새로운 능력을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새로운 능력 덕분에 집단은 더 커지고 더 복잡한 활동을 수행한다. 인간의 공유된 활동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공유된 지능은 갈수록 높아진다.

사람들은 특정 공동체 안에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해서 인지 노동 분배에 최대한 기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언어와 기억과 집중-사실상 모든 정신 기능-은 인지 노동 분배에 따라 공동체에서 분산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간이 인지 노동을 자연스럽게 분담한다는 것은 개인의 생각과 지식이 다른 구성원들의 생각이나 지식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식 공동체에서는 지식을 얻는 것보다 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개인으로서 아는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의 지식으로 연결된다. 내 지식에는 사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포인터(메모리의 주소를 가리키는 자료-역주)와 플레이스홀더(빠진 내용을 대신하는 기호나 텍스트의 일부-역주)가 가득하다.

지식의 착각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지식 공동체 안에 살면서 머릿속에 든 지식과 외부의 지식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의 작동 원리에 관한 지식이 머릿속에 든 줄 알지만 사실 상당한 지식을 환경과 사람들에게서 얻는다. 이런 인지의 속성은 벌레와 유사하다. 세계와 공동체가 지식 기반의 대부분을 제공한다.


인간의 이해는 주로 지식이 외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정교한 이해는 대개 지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아는 것으로 달성된다. 아주 박식한 사람만이 기억해서 지식을 찾아낸다.


우리는 벌집 마음 안에 살면서 지식을 타인과 환경에 저장하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 든 지식은 대개 매우 피상적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피상적으로 사는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더 많이 알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들 역시 피상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도 인지 노동의 분배가 이루어져 지식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책임을 공동체로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이 대신 지식을 저장할 것이라고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는 불리하다. 남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만 무엇인가를 알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놓친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결과도 있다. 우리 머릿속에 든 지식과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을 혼동해서 스스로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보다 더 많이 이해한다고 믿고 산다. 사회에서 가장 긴급한 문제는 대부분 이런 착각에서 기인했다.

우리는 대체로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지 인정하지 못한다. 알량한 지식으로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한다. 전문가가 된 기분이 들면 전문가처럼 말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우리의 말을 듣는 상대도 많이 알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상대에 비하면 우리는 전문가다. 그래서 더 전문가가 된 기분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 공동체는 위험에 처한다.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집단 구성원들이 사실을 잘 모르는 채로 입장을 공유할 때는 구성원들끼리 이해한다는 느낌을 서로 강화한다. 그래서 확실한 근거가 되는 전문 지식이 없는데도 모두가 정당하고 명백한 사명을 가졌다고 여기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서로의 관점을 정당화해준다고 간주하므로 모두의 의견은 신기루 위에 선 것과 같다.


학습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이 아니다. 학습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인은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우리가 제공해야 할 지식은 무엇이고 남들이 채워 넣어야 할 틈새는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교육의 한 가지 목적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매체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게 해주는 데 있다. 독자들이 충분히 비판적인 시각을 기르면 매체도 과학 관련 뉴스를 제대로 보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어떤 주장이 타당한지, 누가 아는지,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해줄 것 같은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왜 우리는 다 알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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