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페미니즘은 남녀 모두를 위한 길

조회수 2017. 9. 8. 17: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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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 방한 강연 "함께하는 축제가 됐으면"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늘은 최근 방한한 미국의 유명 작가 리베카 솔닛이 했던 두 차례의 강연과 현장에서 오간 질의응답 내용을 중계합니다.


리베카 솔닛은 미국에서 진보적인 사회운동과 수준 높은 저술을 병행해온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 현장을 누비는 한편 묵직한 예술·문화·사회 비평서들을 써왔습니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소개된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를 비롯한 페미니즘 저서로 뜨거운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 솔닛의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걷기의 인문학』을 출간한 창비와 민음사 초청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의 현안과 미래, 그리고 걷기와 도시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현장에서 오간 질의응답도 지금 국내 독자들의 관심사와 솔닛의 응축된 생각을 담고 있어 일독할 만합니다.

8월 25일 강연: 한국의 독자들에게―만약 내가 남자라면


모두 이 자리에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데 저는 여러분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지난 몇주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국에 간다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겨울 한국인들이 시민 사회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들고 일어났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고 감동했다는 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떠날 때는 아주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창비 제공

저는 앞으로 한달 동안 히말라야를 여행하러 가는 길 도중에 이곳에 들렀습니다. 제 나라와 그곳의 뉴스로부터 단 하루라도 떠나 있는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도 느껴집니다.


요즘 미국 기자들은 "내가 점심 먹으러 간 사이에 무슨 일 없었어?"라고 농담하곤 합니다. 사건들이 그만큼 갑자기, 자주 터지기 때문이지요. 제가 나중에 돌아갔을 때는 혹 새로 전쟁이 터졌을지, 새 대통령이 앉아 있을지, 새로운 저항운동이 일어났을지, 예상조차 못 하겠습니다.


많은 미국 시민들에게는 그간의 시간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만큼 겁을 먹었고,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아플 지경이었고, 불면증에 시달렸고, 식욕을 잃었고, 밤낮으로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박차고 일어나서, 어느 때보다 더 깊이 정치에 개입함으로써 대응했습니다. 선거 정치에도 개입했고, 거리에서도 시위했습니다.


저는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지진이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어떻게 용기와 연민으로 위기에 대응하는가를 이야기한 책입니다. 그 뒤에 남은 질문이 있습니다.

응급 상황이 다 끝난 뒤에도 응급 상황에서 보였던 모습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평소보다 좀 더 영웅적이고 타인에게 좀 더 감정이입할 줄 알았던 최선의 모습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까?


저는 그 답이 연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정신적인 연습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방식에, 일상의 모든 행위 속에 그 연습을 끼워 넣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재난과 혁명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런 가치를 삶 속에 받아들이는 것은 설령 그것이 미세하고 사적이고 개인적인 과정일지라도 혁명적인 일입니다.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유명한 선언,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도 당연히 여기에 적용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우리를 형성하고 거꾸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형성하는가를 탐구하는 글을 쓸 때, 저는 제 나라인 미국이 규정하는 여러 구분, 가령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구분을 가급적 상관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걷기의 인문학』을 쓸 때는, 정신과 몸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생각은 정신이 하지만, 몸은 걷기를 통해서 그 생각이 형성되고 대화가 발전하는 걸 거드니까요. 저는 또 도시와 시골을, 즐거움과 정치를 구분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한국 문화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제가 아는 것뿐입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희망뿐 아니라 여성이 겪는 폭력에 관한 글도 쓴 사람으로서 제 눈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뿐입니다. 희망, 그리고 여성이 겪는 폭력이라는 두 주제는 서로 모순되는 주제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여성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끔찍하게 많은 폭력을 겪고 있습니다.

출처: 창비 제공

하지만 한편 우리가 이런 사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심지어 볼 수 있다는 사실, 뉴스로 퍼뜨릴 수 있다는 사실, 엉뚱하게도 피해자인 여자를 비난하고 가해자인 남자를 이해해주는 오래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이런 사건을 논의한다는 사실, 이 자체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구체적인 통계 증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저는 언론계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이 그런 고정관념 없이, 또한 가해자 남성에게 동일시하지 않는 태도로 이런 사건을 보도해준 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야기를 다르게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요즘 가끔이나마 여성에 대한 폭력을 범죄로 고발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끔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이야기의 변화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남자들이 애초에 그런 행위를 저지르기를 바라지 않게 되는 것, 자신들에게 타인의 삶, 신체, 존엄, 생존, 행복을 지배할 특별한 권리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품지 않게 되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강간, 가정폭력, 거리와 일터에서의 성추행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름을 붙이고,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말해준 덕분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은 아주 단순한 사상입니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상입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 자기 일을 자기가 결정할 권리, 세상에 온전하게 참여할 권리, 존엄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페미니즘은 또한 그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지난 200년에 걸쳐서 노예제, 인종차별, 아동권 등을 다뤄온 인권 혁명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은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모두 다른 젠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는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믿습니다. 아니,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 과정의 초기 단계에 있으니까요. 제가 종종 떠올리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70년대에 중국의 어느 고위 관료가 했다는 말인데, 누가 그에게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직 뭐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군요."


그가 말한 혁명이 1968년 혁명이라고 이해한 사람도 있었고 1789년 혁명이라고 이해한 사람도 있었다지만, 어느 쪽이든, 어떤 사건의 결과는 수백 년에 걸쳐서 펼쳐지기 마련이므로 어떤 행동의 영향은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현대의 법률과 관습뿐만 아니라 성경에 따라서도, 그리고 역사가 2500년도 더 된 오래된 관습에 따라서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무언가를 바꾼다는 것은… 네,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지요.


우리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테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희망에 관해 탐구하면서 계속계속 되돌아오고 마는 결론이 있습니다. 바로 미래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행동으로, 사생활에서의 개인적 행동과 거리에서의 공동 행동으로 그 미래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희망에 관해서 계속 씀으로써 사람들에게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앞으로도 계속 써나가도록 격려하는 일이 바로 제 역할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지금부터 할 강연의 내용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의 내용과 같습니다. 제가 만약 남자였다면 삶이 얼마나 달랐을까 하고 상상해본 내용입니다. 남들은 나보다 더 쉽게 사는 것 같다고 여기는 것은 쉬운 일이지요. 저는 거기서 더 나아가,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쉽게 사는 면뿐 아니라 더 어렵게 사는 면까지 보려고 애썼습니다. 제 이야기가 여러분 각자의 경험과도 조금은 공명하는 데가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내가 남자라면> 축약


나는 여자인 것의 많은 측면이 좋다. 하지만 가끔은 여자인 것이 감옥이고, 그래서 가끔은 만약 그 감옥에서 벗어난다면 어떨까 몽상해본다. 물론 남자인 것도 다른 측면에서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나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불문하고 많은 남자를 알고 좋아하는데, 가끔 그들이 짊어진 짐을 보면서 내가 그것을 짊어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여기곤 한다.


대체 남자라면 해서는 안 되고, 말해서는 안 되고, 느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게 왜 그렇게 많은지. 남자아이들을 끊임없이 감시하여 이성애적 남성성의 관습에 들어맞지 않은 행위라면 뭐든지 금지하는 시선, 혹은 그런 행동을 저질렀을 때 처벌하는 시선은 어찌나 강력한지. 요즘도 자아 형성기의 소년들에게는 동성애자 같다느니 계집애 같다느니 하는 말이―즉, 이성애자 같지 않다느니 남자 같지 않다느니 하는 말이―최고의 조롱으로 통하는 표현이다.


남자아이들은 장차 대통령이 되거나, 엄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거나, 집안의 유일한 비빌 언덕이 되거나, 일상에서 매일 영웅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자랐다. 무엇이 되었든 특별한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냥 평범하고 점잖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래도 어쨌든 그들에게는 성공이 충분히 가능한 선택지였고, 그것은 분명 유리한 점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도 그런 전선에서는 성별의 불균형이 극심하다.


어머니가 딸인 내게 기대하는 바는 어머니가 세 아들에게 기대하는 바와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이것도 역시 내가 농담 삼아 하곤 했던 말인데, 어머니에게 아들들이 어머니 집 지붕을 고쳐줘야 하는 존재라면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고쳐줘야 하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내게 불가능한 역할을 요구했다.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제일 친한 친구이자, 자신을 보살펴주는 존재이자, 언제라도 무엇에 대해서라도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역할을.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내게 이 말을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다. “아들은 결혼하면 남이지만, 딸은 평생 딸이란다.” 어머니의 그런 기대에는 이런 숨은 뜻이 깔려 있었다. ‘나는 내 삶을 남들에게 희생했어. 그러니까 너는 네 삶을 내게 희생하렴.’


나는 희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일도 남들에게 갈등의 원인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대학에 일찍 들어가서 일찍 졸업했고, 이후 UC 버클리의 저널리즘 대학원에 진학했고, 만 23세가 되기 직전에 학위를 받았다. 이후 잡지에서 일했고, 잡지사를 떠난 뒤에는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게 되었으며, 지난 30년 동안 거의 그 일로 생계를 이었다. 나는 서른에 첫 책을 냈고, 이후 또다른 책을 냈으며,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스무권을 내게 되었다.


이성애자 여성에게, 성공은 암묵적 실패를 담은 것이기 쉽다. 세상이 생각하는 이성애자 여성의 성공이란 남자가 스스로를 신처럼 힘 있게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기나긴 세월 동안 여자들은 남자를 실물의 두배 크기로 비춰주는 마술적이고 기분 좋은 거울 역할을 해왔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뛰어난 남자들에게는 그들의 경력을 도우면서 그들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배우자가 있었다. 요즘도 성공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야말로 여자의 인생에서 최고의 성취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여자들 중에는 멋지게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적잖은 수는 남편의 조력자 겸 시녀라는 역할로 축소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만일 그런 여자가 이혼을 하게 된다면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일구고 유지해온 정체성과 이혼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여자의 뛰어남이나 성공을 견딜 줄 아는 남자를 가리켜 너그럽다고 말하곤 한다. 여자가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하거나 남자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이성애자 커플이 그런 상황을 다뤄야 하는 실정인데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자랄 때, 내가 세상에 참가하는 사람이 되거나 세상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듣는 청중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전에 나는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어떤 남자들은 자신이 실제로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 여성이 실제로는 아는 데도 모른다고 가정한다는 것에 관한 글이었다. 맨스플레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조짐은 아직 없다.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나는 낯선 사람이 내게 당연한 듯이 미소를 요구하는 나이를 넘어선 뒤에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게 자기 이론이나 이야기를 자진하여 길게 늘어놓고는 대화의 상호성은 허용하지 않는 경험을 자주 겪었다. 그런 일방통행을 과연 대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런 현상이 실제 현실임을 안다.


여자들은 온라인에서도 표적이 된다. 작년에 트위터에서 작은 실험이 있었다. 저널리스트 서머 브레너가 남자 형제의 사진을 빌려서 자기 프로필 사진으로 내걸고 자기 이름을 머리글자로 바꿨더니, 이전에 온라인에서 무수히 겪던 성희롱이 거의 전혀 없는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여자들은 그저 남자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만이라도 가끔 남자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끔 다른 사람처럼 다뤄지고 싶은 것뿐이었다. 혹은, 만약 내가 다른 존재였다면 그랬을 것처럼, 그냥 가만히 놔둬지기를 바란 것뿐이었다.


특히 나는 도시에서든 산에서든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혼자 걸어다닐 수 있기를 줄곧 바랐다. 누군가 쫓아오는 사람이 없나 늘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혹은 누군가 나를 확 움켜쥐면 어쩌나 싶어 늘 경계하는 상황에서는 구름처럼 홀로 자유롭게 쏘다닐 수 없다. 나는 모욕을 당해보았고, 위협을 당해보았고, 남이 뱉은 침을 맞아보았고, 공격을 당해보았고, 더듬는 손을 겪어보았고, 성추행을 당해보았고, 누가 나를 쫓아오는 경험도 해보았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느끼는 자유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여자인 것이 좋다. 나는 공원이나 식료품점이나 다른 곳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그 아이들에게 웃어주거나 가끔은 대화도 나누는 것이 좋다. 그럴 때 나는 누구도 나를 치한이나 납치범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상황이 더 복잡했을 것이라는 점도 안다.


그보다 좀 더 미묘한 이점도 있다. 내가 여자인 덕분에 사적인 관계에서 더 폭넓은 감정 표현이 허락된다는 점이다. 아주 친밀하고, 의지가 되고, 거리낌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여자 친구들과의 우정에서 그렇다.


나는 또 성인이 된 뒤 줄곧 게이 남성들과도 그런 우정을 누렸다. 그 친구들은 대담하고 흥겹고 멋지게 남성성의 규칙들을 깨뜨려왔으며, 나로 하여금 우리의 진정한 존재와 우리가 강요받는 존재 사이의 간격을 웃어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해방은 전염되는 사업이다. 그리고 젠더를 해체하여 재조립하는 사람들 곁에서 성장한 것은 나 같은 이성애자 여성의 해방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아니, 나는 남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냥 우리가 모두 자유롭기를 바란다.

[번역: 김명남]

가디언 기고문 원문


<질의 응답>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2014년이 미국 페미니즘의 분수령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2015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페미니즘의 물결은 과거보다 훨씬 대중적인 현상이 되었고 세계적인 흐름인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페미니즘이 성장하게 됐다, 이런 얘기들을 종종 하는데요. 사실 그런 끔찍한 일들은 만연해 있습니다. 성추행, 성폭행,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 여성을 폄하하는 시도 같은 것들은 도처에서 목도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여성들은 굉장히 많은 좌절감과 고통을 누적적으로 겪어 왔고요.

그렇게 되면서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여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힘을 가지고 새로운 도구들로 새로운 전략들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터키, 영국,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글로벌한, 새로운 운동으로 계속 확장, 성장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고요. 다만 새로운 전기를 맞은 페미니즘 운동이 어디로 가게 될지는 저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출처: 창비 제공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알라비스타 총격 사건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여자들의 관심을 얻지 못한 20대 남성이 여섯 명을 죽이고 열네 명을 다치게 하고 자살한 사건인데요, 이 남성이 예전에 자신을 향해 웃어주지 않았던 여자에게 까페라떼를 끼얹고 달아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나가던 여성에게 캡사이신 물총을 쏘거나 날계란을 던지거나 빨간 물감을 끼얹는 등의 범죄가 종종 일어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앞으로 더 큰 폭력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여성을 무시하거나, 여성이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하거나, 이런 원인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범죄들이 일어나는데 이제까지 이런 것을 굉장히 일상적으로 여겼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거나 테러를 저지르기 전에 전조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중 하나가 가정폭력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위험 신호를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타인을 해치는 원인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증오가 있겠고, 또 어떤 특권 의식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어떤 우월감 같은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성이 나에게 섹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또는 미소를 지어줄 의무, 또는 관심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그게 내가 누려 마땅한 것이다, 이런 권리 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고요. 때로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여성을 마치 하녀처럼 부리기도 하죠.

이런 행동의 원인들을 좀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회에 만연한 포르노라든지 또는 사회 각계각층의 남성에게 그런 영향을 끊임없이 주는 요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저는 남성이 청년으로 성장하고 나서 대응하는 것은 아주 늦다고 생각합니다. 아동일 때부터 여성을 증오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또 여성을 존중하고 자신이 여성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동등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창비 제공

-최근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심각한 인신 공격과 민원 폭탄에 시달린 일이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페미니즘 교육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런 질문을 듣게 된 것 자체가 우리 상황이 얼마나 이상한가를 방증하는 것 같은데요. 페미니즘은 망가진 것을 고치기 위해 대두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우리는 평등하다’ 이렇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뭔가 망가진 것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페미니즘 교육이 더욱더 필요한 겁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기존 생각과는 달리 ‘사실은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다’는 관점에서 가르치려고 한 것 같은데, 페미니즘은 그렇게 부서진 것, 망가진 것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많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은 서구식 페미니즘은 동등하고 옳은 것이지만 한국식 페미니즘은 이기적이고 틀린 것이라는 주장을 펴곤 합니다. 페미니즘은 한물 간 것이라고도 하는데요. 오랫동안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투쟁해온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국의 페미니즘이 옳다 그르다, 이런 것에 대해 제가 여기서 평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한물 갔다, 지금 현세대에는 의미가 없다, 이런 식의 주장에 대해 좀 말씀을 드리면, 일단 미국에서는 지금도 9-10초에 한 번꼴로 여성이 매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또,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강간을 경험한 ‘강간생존자’라고 합니다. 이런 잔혹한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페미니즘이 계속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계속해서 평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아주 수천년 전 고대로부터 지속되어 온 여성에 대한 혐오를 깨뜨리고 상황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 놓기 위한 노력입니다. 수천 년 지속돼 온 것들을 지난 50년 사이에 고치려고 많이 노력해 왔는데, 시작 선상에서 봤을 때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출처: 창비 제공

-저는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여성 혐오 범죄들 때문에 밤길을 걷는 것이 두렵고 페미니스트로서 신념을 밝혔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얻은 적도 있습니다. 솔닛 씨도 페미니즘에 대해 말한다는 이유로 개인적인 협박이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는지, 그리고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합니다. 

밤에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닌 것 같고요.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견해를 밝힌 데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들으셨겠지만 강력한 쌍욕(F로 시작되는 단어)을 날려주셨고요.

사실 모든 사람이 나랑 같은 견해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면 아마 너무 나약해서 그들에게 늘 밟히는 현관문 깔개 같은 존재라는 방증일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나이도 더 많고 또 페미니즘 외에 다양한 다른 주제로도 책을 썼고 했던 이유 때문인지 직접적으로 특별한 공격 대상이 되거나 했던 적은 좀 드문 편입니다.

하지만 저 말고,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게이머 게이트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페미니스트인 여성이 신상 공개도 당하고 각종 인신공격을 당한 적이 있는데요,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제가 볼 때 당할 수 있는 벌이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내 생각을 자신있게 말하고서 그것에 대해서 받는 벌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두려워서 웅크리고 있다가 괴로워서 받는 벌입니다. 내 인생에서 둘 중의 어떤 벌을 택할지는 여러분 자신의 몫인 것 같습니다.
출처: 창비 제공

-게이머 게이트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몇몇 남성 유투버들이 자신들 기분을 거스른 여성 유투버의 신상정보와 주소를 알아내 찾아가서 죽이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과정을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주 어린 남학생들조차 이런 폭력적인 영상을 소비하고 이들의 폭력적인 태도를 모방한다는 점인데요. 뉴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혐오를 접하는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유투브가 구글 사업 부문 중 하나죠. 저희 집에서 25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샌프란시스코 시민으로서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제가 사는 곳에 대해 굉장히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 상황입니다.

제가 트럼프에 대한 저항 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이버 보안 전문가에게 컴퓨터 시스템의 보안 강화를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페미니즘 운동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에도 인터넷 공간이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극우파라든지 여성 혐오자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에도 굉장이 유용한 매체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르노 사이트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도 그 증거가 되겠고요.

현실 세계에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안 좋은 상황도 동반해서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IT 분야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죠. 그러다보니 유투브나 페이스북에서 안 좋은 콘텐츠들이 유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령 살해 위협이 있다면 당연히 무슨 조치를 취하든가 그런 것을 올린 사람에 대해 처벌한다든지 하는 조치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쫓아내지도 않고 방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해위협을 했어도 이것이 사업의 수익성에 도움이 된다면 그대로 방관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이런 기업들이 방기하고 있는 부분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적발해내는 노력들을 전개하고, 이런 콘텐츠들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과 청소년들에게도 얼마나 유해한지 경각심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직 저도 갖고 있지 못해서 참 안타깝습니다.
출처: 창비 제공

-현재 한국사회의 젠더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솔닛 씨 말을 빌리자면, 한국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말을 하기 시작한 상황이고 또 그에 대한 반발도 그만큼 거셉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최근 한 2년 정도의 흐름을 더 큰 변화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런 척해야만 하는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미국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요. 어떻게 보면 별 진전이 없는 듯 절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 남성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만연해 있는 다양하고 유해한 포르노라든가 게임, 콘텐츠 때문에 젠더 간극이 계속 커지고 있는 측면도 있는데요.

어쨌거나 이런 안 좋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계속 지켜나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과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남성에게 잘 보이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일을 그저 감수하는 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이 지속되면 오히려 남성이 좀 소외되는 젠더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려면 그들도 이 흥겨운 파티에 동참하는 변화가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을 가진 남성과 여성이 함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성의 평등, 그리고 여성을 존엄한 존재로 인정해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하는 겁니다. 분명히 남성이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이 있고, 거기에 대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진 남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셨고, 이번 책에도 그런 내용의 챕터가 있는데요. 남성 페미니스트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선 남성들이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자신들이 뭔가를 주도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단 들고요.

아까 모르코 버스에서 정신지체 여성이 집단강간당한 사건의 현장에 있던 남성들이 자랑스레 사진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도대체 어떤 문화인가, 이런 것에 대해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남성들이 오히려 소외 대상이 돼야 하고, 비난받아 마땅한데 뭔가 쿨한 행동을 한 것처럼 여길 수 있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바꿔나가는 데 남성도 기여해야 합니다.

또, 자녀 양육 방식에서나 부담을 여성과 동등하게 지는 것, 또 일터에서 여성 동료를 평등하게 존중해주는 것, 이런 것들이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할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싶습니다. "페미니즘? 내가 너희들에게 설명해줄게" 이런 식의 자세로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뭔가를 자꾸 알려주려 한다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해방시켜 줄게" 이런 자세는 안됩니다.
출처: 창비 제공

-페미니스트는 외부의 여성혐오뿐 아니라 자기 내부의 여성혐오와도 싸우게 됩니다. 솔닛 씨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그리고 자기 안의 여성혐오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혹은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조금 전 남성 페미니스트에 대해 얘기했는데, 반대로 여성혐오 여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많은 경우에 여성들이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자기 탓으로 돌린다든가, 또는 다른 여성을 경쟁자로만 바라본다든가 하는 경험들을 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제 경우엔 어린 시절에 제 욕구를 돌보기보다 남성의 욕구와 필요에 맞추는 데 익숙해지는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마치 나는 타인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성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타인들이 다 동등하다, 평등하다고 보는 시각을 기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수적인 기독교 문화권에서 생활하던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이 매 맞는 아내였는데, 보수 기독교 문화에서는 용서를 굉장히 강조하죠. 그래서 때리는 남편을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강요받았던 겁니다. 이 여성은 결국 폭력적인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는데, 그때 주변의 여성들이 왜 남편을 용서하지 않았느냐면서 오히려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비난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좀 더 잘 돌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활동을 하시면서 오랫동안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요. "우리가 조만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대목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계속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동력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할지 패배할지 예정된 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무렵으로 돌아가 보면, 성차별이 굉장히 극심했고 성차별이 문제시되지도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죠.

이렇게 미래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다른 한편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굉장히 많은 승리들을 우리가 일궈왔습니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어떤 글이나 예술을 통해서 우리가 세계를 생각하는 관점들을 계속 바꿔오면서 이런 승리를 경험해 왔습니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히 조직화되면 그리고 목적 의식이 투철하면 이런 변화를 일굴 수 있다는 것도 우리가 봐 왔습니다. 이것에서 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그런 면에서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지난 50여 년의 시간 동안 정말 놀라운 수준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타파되면, 성소수자의 권익과 삶도 많이 개선될 여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결혼을 주종관계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이뤄졌듯이, 우리는 과거부터 끊임없이 많은 개선들을 봐 왔습니다. 이것이 제가 꾸준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출처: 민음사 제공

8월 26일 강연: 걷기의 인문학


<걷기의 인문학>은 오래 전에 썼던 책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공간으로부터 분리돼서 인터넷과 실내의 사적인 공간으로 자꾸 들어가 버리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의미가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걷기의 인문학>은 여러 가지의 걷는 행위를 기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서 시를 쓰기 위해, 자기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자연을 즐기기 위해 혼자 걷는 것도 있을 것이고, 둘씩 짝지어 연인들이 걷는 그런 유형도 있을 것이고, 또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시민사회로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걷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걷기의 유형에 대해 기념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도 적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발로 함께 걸으며 도시의 풍경에 우리의 역사를 씁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힘과 가능성을 기억하는 것은 제가 쓴 희망에 관한 책, 자연재해와 이를 극복하는 공동체에 관한 책 등 다양한 저서에서 중심축으로 작용하였고, 저항을 독려하기 위한 저의 다양한 활동들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을 써왔는데 몇 가지 공통된 주제를 중심으로 저술해왔습니다.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다룬 다른 사랑이라는 테마입니다.


우리는 보통 가족에 대한 사랑, 가정, 성, 그리고 그 외에 사적인 삶을 윤택하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 외에 우리 삶을 더 의미 있게, 더 만족스럽게 만드는 다른 요인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요소에는 목적의식,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 미래에 대한 희망, 자연, 영성, 기타 비인간세계에 대한 교감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해방의 과업입니다. 특히 전 여성의 해방에 대해 대단히 집중적으로 다뤄왔습니다. 왜냐하면 제 가슴과 삶, 어머니, 할머니의 삶과 직결돼 있고 직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페미니즘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제가 볼 땐 불교에서 주장하는 모든 존재의 해방, 그 큰 해방에 포함되는 하나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 희망에 대해 많이 써왔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직 모른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아직 미래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결국 우리가 미래를 쓰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희망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미래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달성한 수많은 승리를 돌아보는 데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출처: 민음사 제공

저는 오늘 우리의 상상이 장소를 어떻게 형성해갔느냐 하는 것과는 반대로, 장소가 우리 상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우리의 젠더와 역사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다만 제가 미국에서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은 네바다주의 테나야호수라는 곳입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끔찍한 사건이 이 책을 쓰는 데 하나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1890년대 미국 군대는 원주민들을 땅에서 내쫓기 위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곳에 매장된 금을 캐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미군이 부족장을 호숫가에 데려가서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땅에 돌아와 살지 못하겠지만 괜찮다. 호수를 부족장 이름을 따서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족장은 “이 호수는 원래 이름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원래 이름이 있다”고 했던 것은 ‘원래 우리가 누리던 문화가 있고 고유한 역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텅 빈 페이지로 있어서 당신들 마음대로 역사를 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여기 보이는 조각상에는 한 단란한 가족이 묘사돼 있습니다. 이 가족은 백인 침략자, 서부 개척자입니다. 조각상이 뜻하는 것은 이 땅에 쓰인 이야기가 원주민이 아닌 백인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이런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를 보호하자"는 메시지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했지만 남부 지역에 가면 노예제를 옹호했던 많은 남부 지역의 유명인들을 기리는 조각상이나 기념비가 많습니다. 이 조각상과 기념비를 철거하려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종차별, 불평등을 상징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민음사 제공

이처럼 우리가 사는 도시 풍경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합니다.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도 있고 묻혀서 전달되지 않는 숨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풍경 속에 드러난 이야기와 숨은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좀 더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풍경 덕분에 존재감을 더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도시 풍경에서 다뤄지지 않는 사람은 존재감이 위축되고 지워지기도 합니다.


<걷기의 인문학>에서 인용한 미국 여류시인 실비아 플래스의 19살 때 일기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길에서 일하는 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걷기의 인문학, 374쪽)

출처: 민음사 제공

요컨데 자유롭게 걷기 위해서는, 내가 즐기려고 걷기 위해서는 특별히 필요한 것들이 있다, 즉 자유로운 시간과,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제약당하지 않을 신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들은 공공장소에 있는 동안 사적인 영역을 침해당하는 일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발생합니다. 영어에도 여자의 걷기를 성별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춘부를 뜻하는 단어로 '거리를 걷는 사람(street walker)', '거리의 여자(woman on the street)', '공공 여성(public woman)'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여자woman'를 '남자man'로 바꾸면 '공인', '유행에 밝은 사람', '건달'이라는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성에 관한 관습을 깨뜨린 여성를 묘사하는 ‘방황한다’라는 뜻의 여러 표현들은 여자의 여행에는 성적인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또는 여자가 여행을 떠날 때는 여성의 성에 관한 관습을 위반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들은 도시 속에서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당했습니다. <걷기의 인문학>의 인용구를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엘리자베스 윌슨 작가가 19세기 한국여성들에 대해 묘사한 것입니다.

“밤이면 이런 제약들은 반대로 뒤집혀서 적용됐다. 서울시의 여러 대문들이 폐쇄되고 나면 맹인이거나 관리인 남성 제외하면, 모든 남성들은 거리에 나올 수 없었다. 이 도시들은 여성들의 것이 되었다. 그들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담소 나누며 걸었다. 어둑어둑한 등을 들고 다녔는데 어둑함 속에서도 부채, 장옷을 이용해서 얼굴을 가렸다. 그래서 이 도시 안에서의 여성의 경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숨어 지낸다는 것과 동일했다.”

출처: 민음사 제공

저는 정말 서울이 이전 남성들이 도시에 대한 자유를 누리고 여성들은 갇혀 지내는 제도를 뒤집은 곳이 맞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런 시도들이 남미, 콜롬비아 등에서 실제로 있었습니다. 남성이 야간에 아이를 보고 여성은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것을 조직한 사람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여성들만의 밤’ 행사를 하고 남성들에게는 자율적인 통금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이 상징적인 이벤트는 관련 기관, 주 당국 사회 전반에 있어서 가정폭력과 사회 속에서 남성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도시는 남성의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권력자, 큰 부자, 중추적 역할을 했던 사람 등등 많은 이들에 의해 기억되는 남성들의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반면 여성은 익명의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여성은 결혼해서 남편 성을 따르고 사적인 공간에서 생활했고, 상대적으로 더 쉽게 잊힙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여성인물들의 이름을 딴 지명은 찾기가 거의 어렵습니다. 제가 읽은 다른 에세이를 보면, 뉴욕시에서 여성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조각상은 다섯 점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네 개는 지난 30여 년 사이에 추가됐습니다. 1984년까지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잔다르크였습니다.


지금도 극장에 가면 남성 액션 히어로가 가득합니다. TV에도 그런 액션 히어로가 넘쳐납니다. 만약 어린 시절 여성들의 이름을 지명으로 차용한 곳이 많은 그런 도시에서 자랐다면, 그리고 영예롭고 성공적이었던 여성의 기념비로 가득한 도시에서 자랐다면 내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걷기의 인문학>에서 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도 풀어내고 있습니다. 걷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의미들이 어느 장소이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런 것들을 다양한 작업을 통해 천착하고 있습니다.


모든 풍경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입니다. 그 텍스트 안에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지시사항이 담겨 있고, 이 장소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누구의 것인지 아닌지도 담겨 있습니다.


모든 풍경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상상에 의해 쓰인 책과도 같습니다. 그들이 정의, 불의, 권력, 가능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책과도 같습니다. 그런 책들 중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다시 쓰이고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공공장소를 다시 쓰는 작업은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고, 이 모험은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 하고 계속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민음사 제공

<질의 응답>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날마다 낙관과 비관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부모자식인 동시에 여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듭니다. <멀고도 가까운>에서 어머니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지금의 심정과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이 어머니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엄마와 저와의 관계는 너무나 안타깝고 비극적이게도 너무나 소모적이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가부장제가 엄마의 가치를 비하했는데도 엄마는 그것을 직시하기보다는 그 기준을 내게 적용해 나의 가치를 깎아내렸습니다. 저를 동지로 보기보다는 경쟁자로 여겨 본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했고, 딸인 저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적개심으로 반응했습니다. 자신을 억압했던 남성에 맞서지 않고 그 고통을 제게 전가했던 거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관계가 달라졌을 겁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것을 담담하게 직시하고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불평등의 관계를 다시 조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를 해방한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 용품의 대부분이 푸른색은 남아, 분홍색은 여아용입니다. 종종 거기에 저항하는 뜻에서 블루를 사 입히거나 사용하는데요, 얼마 전 화이트와 핑크가 적절히 섞인 후드를 입혔는데 너무 예뻤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사회화되어서 그런가 봐요. 내 딸과 핑크, 공주라는 단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저도 딱히 답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애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고모이기도 하고 조카가 여러 명 있습니다. 최근에 조카 사내아이 옷을 사러 갔더니 말씀하신 것처럼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더군요. 색상뿐 아니라 여자아이 옷은 꽃, 고양이 같은 귀여운 것들이 그려져 있는데 남자아이 옷은 상어, 우주비행사처럼 별로 친밀하지 않은 차갑고 거리감 느껴지는 것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이런 성별의 구분과 역할에 아이들을 구속하고 싶지 않다는 것에 너무 공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딴 섬에 사는 게 아니어서 아이를 학교에도 보내야 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는 성 역할을 강화하는 일을 벌어집니다. 여기에 대응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시기입니다. 친구가 대학교에서 가르치는데요, 미국 캠퍼스에서는 강간 문제가 심각합니다. 대학교에 들어오는 남자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하는 건 이미 너무 늦습니다. 아동기에 교육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폭력은 쿨한 게 아니라는 걸 어릴 때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 안에는 이런 잘못된 게 많아서 깨뜨려야 합니다. 제 주변에 페미니스트가 많아서 양육하는 것을 보면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걸 보게 됩니다.

만약 내게 딸이 있다면 누가 내 딸을 해치면 어떡하지, 남자애가 있다면 얘가 남을 해치면 어떡하지 하고 저도 걱정할 것 같습니다. 요즘 만연한 포르노, 인터넷 게임이 남자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멀고도 가까운>에 쓴 것이 있습니다. 타인을 해치는 사람은 타인을 해치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자기 안의 뭔가를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타인을 해칠 수 있다고 썼습니다. 공격성과 폭력, 지배적 성향을 남자아이에게 끊임없이 가르치는 이런 사회를 어떻게 벗어나도록 하는지가 어려운 문제인데 이런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자아이들이 귀여운 것 괜찮습니다. 다만 여자아이에게도 액션 히어로가 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다. 남자아이도 액션 히어로가 되고 싶은 것 괜찮지만, 끌어안기 좋은 귀여운 존재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합니다. 이분법적으로 남녀는 이래야 한다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계속 타파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글쓰기 시작한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보세요. 여러분을 제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많은 경우 여성이 글을 쓰려고 하면 여성다운 주제를 택해라, 혹은 개인적인, 사적인 관점에서 쓰라는 주문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이런 주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뭔가 개인적인 주제를 벗어나 다른 주제를 택할 때는 용기가 필요한데, 해볼 만한 것입니다.

이제는 전쟁터 특파원, 철학자, 저널리스트 같이 다양한 직종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좀 더 윗세대 여성 저널리스트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여성들이 전쟁터 특파원으로 파견되면서 전쟁에 대한 보도방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남성처럼 영웅주의에 도취되는 보도를 덜 하고, 전쟁 상황 속에서 민간인이 겪는 어려움에 더 공감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그런 가능성들을 더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또 젊은 작가, 작가 지망생에게 버지니아 울프가 했던 이야기도 전하고 싶습니다. ‘여성을 위한 직업’ 이라는 글에서 ‘가정(집안)의 천사를 죽여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너에게 친절하라고, 달콤하라고 강요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 강요하는 가정의 천사를 죽여라. 너의 의견을 주장하고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는 감추라는 내면의 요구를 죽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만약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면 그것에 대해서 싫어할 수 있겠지만 개의치 말라고 조언합니다. 젊은 여성들이 남의 기분을 맞춰줄 것을 요구받고 남을 많이 칭찬해줄 것을 요구받고 그러다 보면 진실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본업은 진실을 다루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활동을 제약하는 그런 가정의 천사를 죽이기를 바라겠습니다.
출처: 유투브 캡쳐: 미국 C-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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