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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은하수 별빛 아래 천지의 침묵

조회수 2017. 8. 24.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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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정상 칼데라호 위를 가로지른 별무리의 장엄한 고요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백두산에 오른 것은 마침 광복절 전날이었습니다. 우연 치고는 좀 공교로운 데가 있었습니다. 독립을 기념하는 날에 민족의 영봉에서 통일의 염원... 같은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것과는 무관했습니다.


일종의 '번개' 산행이었습니다. 백두산에 서식하는 새 사진을 오래 찍어온 사진작가를 따라가는 일행에 빈 자리가 생겨 덜컥 합류하게 된 거지요. 저로서는 백두산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수년 전 어쩌다 정상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변덕스런 날씨 탓에 천지는 못 보고 하산해야 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미련으로 남았었나 봅니다. 난데없이 날아든 동행 제의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때로는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삶의 숨은 희열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나이이기도 합니다. 이번 기회는 천지를 기필코 보여주겠다는 신의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이전의 초행은 2011년 7월이었습니다. 그때도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교사들의 한민족사 답사 프로그램에 수행 기자로 따라갔었지요. 중국 동북부 다롄, 선양, 지안의 역사 유적지를 도는 중에 백두산 등정도 들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천지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말과 사진으로만 접해왔던 신비의 호수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썼던 기사의 관련 대목을 옮겨봅니다.

분수령은 백두산 등정이었다. 서파(坡·언덕길)행 입구에 이르자 '長白山(장백산)' 한자 표지가 우뚝했다. 모두 1236개 계단이 정상까지 나있다. "태극기나 현수막을 펼치거나 애국가를 합창하거나 구호를 외치면 절대 안 됩니다." 조선족 가이드는 몇 번씩 다짐을 받았다.


날씨는 끝내 종잡을 수 없었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쾌청하던 하늘이 정상 쪽으로 가면서 흐려지더니 차에서 내릴 때는 급기야 빗줄기를 토했다. 그래도 다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2750m 꼭대기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경고문 비석이 보초처럼 서 있었다. '변경을 넘는 것을 엄금하며 변경 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엄금한다' '자신의 언행을 중시하며 국민형상을 수호하자'… 섬뜩한 경고문(2010년 8월 1일자)이 흰 바탕에 붉은색 한자·한글로 병기돼 있었다.


고대했던 천지는 안개비 속에 숨어 좀처럼 위용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도 운 좋은 사람은 있었다. 김포 고촌중학교 체육교사인 강학주(49)씨가 그랬다. "기다리고 있으니 잠깐 구름이 걷히면서 천지의 3분의 1 정도가 보였다"며 찍은 사진을 보이며 웃었다.

그때 '불운'의 조에 속했던 저로서는 꽤나 아쉬운 맘으로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굳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고산지대의 날씨라는 게 '미친 X 널 뛰듯' 변덕이 심해서 재차 등정한다고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듣기로는 마오쩌둥도 백두산에 수차례 올랐지만 천지는 끝내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나와도 인연이 아닌가보다 했습니다.


더욱이 그때 처음 목격했던 백두산 등정 코스에 대한 소감은 실망을 넘어 거의 경악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무렵 중국이 벌인 대대적인 개발로 산 정상 턱밑까지 시멘트 도로가 닦여 있었고, 그 위로는 셔틀버스들이 쉴새없이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에도 정상까지는 시멘트(돌?) 계단으로 오르게 돼 있더군요. 심지어 들것에 가까운 가마에다 손님을 태워 실어나르는 '인간 택시'도 성업 중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백두산 등정은 여느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인증샷을 찍기 위해 찾아가는 민족성지 순례쯤으로 여기게 됐지요.

하지만 이번 백두산행은 좀 달랐습니다. 우선 지난번에는 서파 코스였지만, 이번엔 북파 코스였습니다.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을 간략히 곁들이자면, 알다시피 백두산은 중국과 북한에 걸쳐 뻗어 있습니다. 천지를 중심으로 동남쪽이 북한, 북서쪽이 중국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접근이 허용된 곳은 중국을 통한 북서쪽 산행입니다.


이른바 서파(서백두)와 북파(북백두) 코스입니다. 파(坡)는 중국말로 언덕이란 뜻으로, 북파라고 하면 백두산 북쪽에서 오르는 길을 말하지요. 서파가 비교적 완만한 데 반해 북파는 산세가 험준합니다. 그만큼 풍광도 다채롭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그 진면목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등정 과정도 이번에는 일반 관광객들의 경우와는 달랐습니다. 동행한 사진작가가 오래 알고 지내온 중국측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산 정상에 있는 휴게소 직원 숙소에서 이틀을 묵으면서 천지 주변을 마당 앞 연못처럼 밤낮으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큰 행운이었지요.

도착 첫날, 우리 일행은 일반 관광객이 하산하고 난 뒤인 저녁 시간에 백두산 관리소 직원 부식배달 차량에 편승해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묵을 곳은 북파에서 가장 높은 산마루인 천문봉이었습니다. 해발고도가 2,670미터나 됩니다.


칠흑 같은 밤 굽이굽이 감아 오르는 순환도로를 달려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를 맞아준 것은 뜻밖에도 보석 같은 은하수였습니다. 정수리 위 검푸른 밤하늘을 가로질러 희부옇게 뻗어있는 크고작은 별무리들. 보는 사람마다 다들 와, 와, 탄성을 발하더군요. 도시 빛소음에서 한껏 멀어진 곳,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야 볼 수 있는 장관이었습니다.


은하수는 이전에도 여러 곳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만 백두산 천지를 앞에 두고 본 그것은 더 특별했습니다. 자라목이 되도록 한껏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넋을 놓고 봤습니다. 어느 순간 별똥별이 휙하고 머리 위에서 아래로 불화살처럼 지나가더군요. 어-어! 저는 말더듬이처럼 신음 같은 감탄사만 연발했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려니, 오히려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은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날 밤 사이에 크고 작은 별똥별을 여섯 차례나 더 봤습니다. (쉬가 마려워 나왔다가 별똥별과 조우하게 되는 일은 이런 야영에서 누리는 호사 중 하나입니다.) 몇 번은 여러 사람이 함께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밤이 깊어 달이 빛을 더해가자 은하수는 겸손하게 뒤로 물러났습니다. 달빛 아래 길을 따라 천지 쪽으로 다가가니 저 아래 검은 심연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깊은 숨을 죽인 채 낯선 침입자의 거동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같더군요. 그래, 우리가 이렇게 만나려고 지난번에는 그렇게 멀리했었구나. 지난번의 야속함은 오히려 속 깊은 배려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알아서 이해하려 들었습니다.


그동안 사진에서 봐왔던 밝고 맑은 화색의 천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증샷이라도 찍어둘까 앵글을 맞춰보았지만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 폰카 수준의 사진가로서는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음날 휴게소 전문가 수준의 직원이 대신 천지 위 은하수가 담긴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어느새 두 눈도 어둠에 적응하면서 천지는 점점 또렷한 윤곽을 드러내더군요. 문득, 북극 그린란드의 뭍에 올라 바위산에 오른 후 명상에 잠겼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절대 고요의 시공간.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을 또 하나의 기억이 될 거란 확신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천지는 칼데라 호수입니다. 칼데라의 라틴어 어원은 가마솥에서 왔다지요. 화산이 폭발한 후 중심부가 꺼지면서 생긴 지형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를 말합니다. 천지는 수면고도가 해발 2257미터에 이르고 평균수심이 213.3미터. 최대수심은 384미터나 됩니다.


중국에서도 제일 깊은 호수입니다. 호수 둘레는 14.4킬로미터에 달합니다. 흔한 전경 사진을 보면 호수가 한눈에 들어와서 얕잡아 보기 쉽지만, 파도가 출렁대는 근접 사진을 보면 규모가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첫날 밤 야간 천지 관람을 시작으로 이틀을 천문봉 정상에서 묵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날씨는 대체로 맑음에 가끔 흐림이었습니다. 구름은 해를 희롱하듯 수시로 하늘을 열었다 가렸다를  반복했습니다. 일과 시간 동안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입구부터 정상까지 난 등산로를 줄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컨베이어벨트 위의 인형들 같았습니다.

지금 같은 성수기에는 하루 2-3만명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백두산 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발한 이래 중국인들의 관광도 폭증했다고 하더군요. 간혹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낮시간은 피해 주로 이른 아침 일출을 보거나 저녁 시간 천지 인근 지역으로 가벼운 산행을 즐겼습니다. 천지는 각도를 달리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천의 얼굴을 과시했습니다. 처음엔 화보에 실린 사진 속 천지의 물색이 비현실적으로 새파래 틀림없이 '포토샵' 처리를 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행은 떠남이자 돌아옴이며, 우리는 그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잠시 머무를 뿐이라고 했던가요. 그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성장을 체험합니다. 오디세우스가 그랬듯 귀환할 때의 내 모습은 나설 때의 내가 아닙니다. 그것이 혼자만의 착각이라 해도 그런 느낌이 삶을 다시 살아가게 합니다. 그런 기운의 내가 다시 맞게 되는 삶은 결코 같은 것일 수 없습니다. 가끔씩 애써 집을 떠나 먼 길을 나서는 이유입니다.


우주에서 푸른 별 지구를 보면 인류애가 솟구친다고 하지요. 나라 밖에서 보면 지금 이곳의 우리가 더 애뜻해 보입니다. 얼마나 오랜 여정 끝에 이곳에 이르렀고 지금껏 한 무리를 이뤄 살아왔던가, 다시 그런 생각에 이르면서 가슴 한쪽이 저려왔습니다. 광복절을 그렇게 맞은 것은 우연치고는 공교로운 데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지금 21일 개기일식으로 들떠 있다지요. 오늘 뉴욕타임스를 보니 지금까지 9차례나 쫓아다니며 봤다는 사람의 체험기가 실렸더군요. 한 번 겪고 나면 그 마법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말했더군요. 어머니 자연은 그런 힘을 품고 있습니다.

굳이 저 멀리 대단한 곳, 기상천외한 현상을 찾아가야만 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어제 영국 신문 가디언에서 에세이 한 편을 읽었습니다. '나의 투쟁'의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글이었습니다. 흔들림없는 응시와 조밀한 관찰, 정밀한 글쓰기로 정평이 난 작가지요.


그는 이 글에서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명하게 여길 뿐 가만히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그가 소소한 것들에 대해 쓴 글을 따라 읽다 보니 마치 감춰진 문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백두산을 오가는 동안 인간의 호기심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을 때까지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인물이지요. 그도 비슷한 말을 했더군요. 세상의 무엇이든 골똘히 들여다보면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이번 여행이 준 교훈도 결국엔 그러합니다. 고요한 밤에 대면한 천지는 제게 침묵과 응시의 가치에 다시 한번 눈뜨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깨달음은 늘 우연처럼 다가옵니다. 공교롭습니다. 그 앞에서 전율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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