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지나가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조회수 2017. 3. 27. 08: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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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시인이 엮은 시집 '시가 나를 안아준다' 중에서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새로운 한 주의 첫날, 오랜만에 시 감상으로 시작해봅니다.


오늘은 시인이면서 사진작가인 신현림 씨가 최근에 엮어 펴낸 시선집 <시가 나를 안아준다>에서 골라봤습니다.


신 작가는 '잠들기 전에 읽어볼 만한 시 한편'을 '베갯머리 시(Pillow Poems)'라고 부르면서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 5개 주제에 맞는 국내외 시들을 묶고 어울리는 그림을 실었습니다.


그중에서 신 작가의 시와 국내외 시인의 시 한 편씩을 골라 소개합니다.

신현림 시인은 '좋은 시들이 나를 깊고 따스한 길로 이끌었다'라는 제목의 이 책 머리말 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한때 죽음에 가닿았을 만큼 심각한 불면증을 앓았다. 정신과 의사인 남동생은 불면증이 우울증에서 온다고 했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죽음 속으로 자신을 던진 사람들은 참으로 많다. 그들이 그때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닐까.

내게는 시가 약이었다. 시가 내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주었다. 또한 탐구하고 시를 쓰면서 인생의 많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많이 헤매었으나, 신앙생활과 더불어 시와 살면서 외롭고 불안한 나로부터 벗어났다.

이어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새로 쓴 시 한 편을 소개하더군요. 제목은 '사랑밥을 끓이며'입니다.

내 눈물은 빗더미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내 발은 사막을 건너는 법을 익히고

내 길은 무엇을 잘못했나 살핀다


내 생의 반은

실수와 부끄러움으로 얼룩졌다

꿀이 흐르는 길을 잃고

일만 하느라 사랑도 잃고

나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내 손은 뒤늦게

일으켜세우는 법을 익히고

어두운 몸에, 새 봄을 지피고 있다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고

함께라면 누구도 부럽지 않게

꿈의 아궁이에 해를 넣고

사랑밥을 끓이고 싶다


내 마지막 사랑과 밥

당신들에게 다 나누어주겠다

다음은 이 책의 '밤' 편에 수록된 신경림 시인의 시 '떠도는 자의 노래' 전문입니다. 원래 2002년 창비에서 출간한 시집 <뿔>에 수록된 시입니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감사' 편에 수록된 엘살바도르 시인 다비드 에스코바르 갈린도(1943년생)의 시 '지나가는 사람은' 전문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꽃 한 송이가

행운의 대가임을 모를 거다.


지나가는 사람은 우리 안에

생명이 숨어 있음을 모를 거다.


지나가는 사람은 거대한 공간이

내일의 우리 집인 줄 모를 거다.


지나가는 사람은 피가

존재의 유일한 여권임을 모를 거다.


지나가는 사람은

다른 영혼을 사랑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없음을 모를 거다.


지나가는 사람은 사랑의 빛이

절대 재가 될 수 없음을 모를 거다.


지나가는 사람은 꽃 한 송이가

기적의 대가임을 모를 거다.


지나가는 사람은

우리가 영원한 존재란 걸 모를 거다.

우리가 바로

신비로운 영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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