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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독서의 의무감 허영심에서 벗어나세요

조회수 2017. 3. 5. 22: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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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승오가 말하는 '마음에 불을 붙이는 책 읽기'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중대한 전기를 맞게 됩니다. 그 전기가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게서 비롯할 수도 있지만, 한 권의 책이 중대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과 친해지는 것부터가 사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과서 중심의 공부와 시험 성적 중심의 학교 교육에 길들여져온 우리로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책을 멀게 혹은 가깝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쓴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박승오, 홍승완 공저 <위대한 멈춤: 삶을 바꿀 자유의 시간> 중에서 박승오가 쓴 '마음의 불꽃을 점화시키는 독서법'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맨 아래에 중국계 미국인 여성의 TED 강연 '책은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나'도 첨부합니다.

어렸을 적 나는 책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저 친구들과 땅따먹기나 전자오락을 하며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다. 집에 60권짜리 세계문학 전집이 있었는데 두 살 터울의 형은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읽은 반면, 내가 읽은 것이라곤 <로빈슨 크루소>와 <15소년 표류기> 단 두 권뿐이었다.


책보다는 영화나 운동, 친구들과의 수다가 더 즐겁고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아들을 부모님은 늘 걱정했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책 읽기가 재미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당시에 <투캅스>라는 영화가 인기였는데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책까지 출판되었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투캅스> 책이 놓여 있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본 터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집어 들었고 금세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늦게까지 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을, 새벽에 화장실에 가시던 아버지께서 문틈 사이로 보셨던 모양이다. 내심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아버지는 다음 날 시내의 큰 서점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처음으로 아들에게 책을 선물해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한 시간가량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들춰 보며 고민하던 아버지, 마침내 결정하신 듯 노란 황금빛 표지의 책을 들고 계산대로 오셨다. 중학생 아들에게 아버지가 처음으로 선물한 책은 무엇이었을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었다. 지금 읽어도 난해한 그 책을, 아버지는 과연 읽고 추천하신 건지 여전히 궁금하지만 웬지 죄송스러워 아직까지 여쭤 보지 못했다.


그 책을 선물 받은 이후로 나의 책 읽기는 다시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 연신 하품을 하며 몇 장을 들추다가 이내 방구석에 던져 두고는 '역시 난 책은 아냐'라며 휘파람을 불며 오락실로 나섰던 것이다.


책 읽기가 정말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나 지나 스물아홉 살이 되었을 때였다. 반은 농담이지만, 아버지의 한 번의 호기가 아들을 15년 동안 무명(無明)에 있게 한 셈이다.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책이 말 그대로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무심코 읽게 된 한 권의 책 때문에 가슴이 쿵쾅거려 밤새 잠을 못 이룬 것이 계기였다. 내게는 이때 읽은 구본형의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가 소로가 말한 '한 권의 책'이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무심코 집어든 그 책 속에서 젊은 날 내가 그토록 아파했던 이유와 내가 꿈꾸는 삶과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절망하게 했던 대학 시절 실명(失明)의 원인과 처방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 밤 너무 들뜬 나머지 밤새 뒤척이다가 다시 불을 켜고는, 밑줄 친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담배를 피우며 집 밖을 서성거리고, 친구들에게 엽서 몇 장을 쓰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하룻밤의 독서 경험이 나를 책과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사랑이 갓시작될 때마냥, 책 한 권에 내가 그렇게 전율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독서가 재미있다는 것, 독서가 주는 지식이나 유익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여행을 하듯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실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뒤늦게야 이런 즐거움을 알게 된 것에 대한 후회감도 밀려들었다...

책 읽기의 정수는 몰입과 황홀이다. 책 읽기에서 '즐거움'이 사라지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독서는 멈춘다. 무엇이든 마찬가지지만 스스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고, 깊이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의 즐거움을 살릴 수 있을까? 우선 독서를 재미없게 만드는 몇 가지 '방해 감정'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세 가지의 훼방꾼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의무감'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학교에서 배운 교훈이 독서를 망친다. 이런 의무감에서 출발한 독서는 '다독 컴플렉스'로 이어지기 쉽다.


1년에 50권을 읽는다는 목표를 매년 유지하는 사람들은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결국 넓고 얕은 지식만을 가진 '자랑하는 책 읽기'에 머물고 만다...

두 번째는 남들에게 뒤처질까 걱정하는 '불안감'이다. 동료들은 다 읽은 책을 나는 읽지 못했다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베스트셀러에 매달린다. 두려움으로 책을 고르기 때문이다. 과연 베스트셀러는 최고의 책인가?


베스트셀러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구입한 책일 뿐, 깊은 내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맥도널드 같은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들이 늘 건강하고 깊은 맛의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과 같다. 출판사와 서점의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짝 베스트셀러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베스트셀러를 읽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중에도 독자에게 재미와 지혜를 주는 책들이 많다. 베스트셀러를 통해 그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와 트렌드를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감으로 출발한 독서는 꾸준할 수 없으며,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가치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시대를 이해하는 것과 시대에 편승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이다.

마지막 훼방꾼인 '허영심'은 '나는 이런 책도 읽을 줄 아는 사람'임을 과시하려는 마음이다. 이런 이들은 주로 난해하고 전문적인 책들을 골라 읽는다. 그리고 자주 그런 책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저명한 저자의 뒤, 전문용어의 뒤로 숨는 행위의 이면에는 낮은 자신감과 무지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다.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세련된 용어와 어려운 개념을 사용하여 지적 수준을 부풀리고 싶은 욕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려운 용어 뒤에 숨지 않는다. 심입천출(深入淺出), 깊이 들어가서 얕게 나올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전문가다. 배울 때는 깊이 들어가되, 설명할 때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깊이 이해한 사람의 특징이다...

'의무감, 불안감, 허영심'이라는 세 가지 방해꾼에 좌우되는 독서는 당장은 효과가 있거나 화려할지 모르지만 실속은 없고 오래갈 수 없다.


더욱 심각한 폐해는 이 훼방꾼들이 우리 무의식에 '책은 본래 재미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새긴다는 점이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삶에 강력하게 작용하여 머지않아 손쉬운 다른 오락거리를 만들거나, 바쁜 일을 핑계로 책에서 손을 놓게 한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사람 가운데 하루 몇십 분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텔레비전 앞에서 꼼짝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쌓이면 스트레스에 대한 반동으로 책에서 멀어지고, 책에서 멀어질수록 스트레스가 더 가중되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가장 가장 주된 이유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말에 3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주어지면 그들은 책을 읽을까? 아니다. 아마도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결국 독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닌 '우선 순위'의 문제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활의 우선 순위를 바꾸기는 더욱 어렵다.


만약 책 읽을 시간이 진짜로 부족해 목표한 양을 채우기 어렵다면 '질'로 승부해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많은 책을 읽는 다독보다, 좋은 책을 철저히 읽고 또 다시 읽는 정독과 재독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독서의 질은 결국 책을 선택하는 안목과 직결된다... 많은 이들이 책을 고를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것은 베스트셀러 목록인데, 앞서 말했듯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린 책일 뿐이다.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를 택해야 실패 확률이 낮다...

책을 고를 때는 적어도 세 가지를 본다. 서문과 목차, 본문 한 꼭지. 사람에 비유하자면 서문은 얼굴 혹은 전체적인 분위기이고 목차는 바디 라인이며, 본문은 인품을 드러내는 언행이다.


먼저 서문을 읽으며 책의 전체적인 방향을 가늠한다. 목차를 살펴보면 저자의 전반적인 사고 체계와 책의 주제가 얼마나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소제목의 글 한 꼭지를 읽어 본다. 이렇게 신중하게 살피다 보면 마음 한 구석에 '이 책 참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 사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과연 우리가 스마트폰을 살 때 '괜찮은' 정도로 구매 결정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아무리 괜찮은 내용들이 많아 보여도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장이 없다면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괜찮네' 수준이 아니라, 한순간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는 책을 골라야 한다...


앞서 '정답을 찾는 독서'보다 '질문하는 독서'를 강조한 바 있다. 질문하는 독서를 위해서는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책을 골라야 한다. 지금 당장은 내게 쓸모없어 보이는 내용이라도 호기심으로 읽다 보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된다. 지식과 정보의 습득을 지향하지 않음에도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결과적으로 더 깊은 지식을 갖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히려 정답을 쫓는 독서는, 독자가 이미 갖고 있는 답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돈다. 그러므로 최고의 책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니며, 인문 고전 또한 아니다. 내 호기심을 강하게 촉발하는 책이야말로 최고의 책이다.

글쓴이: 박승오 directant@gmail.com


KAIST에서 공부하던 스물네 살에 갑작스레 시력을 잃었다. 밤샘 공부와 안약 남용 때문이었다. 뿌옇고 좁은 시야 속에서 좌절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었다. 그 책의 저자였던 구본형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이후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을 탐색했다. 이 2년 남짓의 기간이 삶의 전환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내면에서 울린 '깨달음을 얻고 타인과 나누라'는 삶의 목소리를 따라, 공학 분야를 떠나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자로 다시 시작했다. LG전자, 마이다스 아이티, 카네기연구소 등에서 일했다. <지금, 꿈이 없어도 괜찮아>,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는 법>을 공저했다.

책 읽기에 관한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중국계 미국인 여성 리사 부(Lisa Bu)가 TED에서 강연한 '책은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나(How Books Can Open Your Mind)'입니다. 한글 자막이 나옵니다.

책은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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