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배크만 씨네] 다들 대단한 일을 하며 사는군

조회수 2017. 7. 10. 08: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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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배크만 가족의 좌충우돌 일기 (7)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북유럽 소설 바람을 몰고온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블로그 일기 일곱 번째 일화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도 가끔은 존중받고 싶다'입니다.


요즘은 다들 바쁘고 급합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중대하고 시급을 다투는 일을 하고 사는 것만 같아 내 일상의 사소한 요구 정도는 너무 하찮게 느껴질 때 없으신가요?


번역: 이은선

일러스트: 최진영

배크만 씨네
*프레드릭 배크만 (36세)
요즘은 아이들까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그깟 과자 좀 집어먹었기로서니. 이래 봬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말이지..

*아내 (37세)
결혼이 아이 셋 키우는 일이 될 줄이야. 이 집에선 출근도 내 몫이다. 철없는 남편 뒷수습까지. 이만하면 내가 원더우먼 아닐까.

*아들 (7세)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고 물으면 솔직히 고민된다. 머리 속에는 레고 배트맨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딸 (4세)
무시하지마. 내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다구. 바닥에 드러누워 울음을 터뜨리면 다들 어떻게 되는지 알지?

내 친구 N과 함께 쓰는 사무실에서.


나: 아, 뭐야아아아~!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아주, 아주, 아주 살짝 짜증이 난 기색을 풍기며 안내 데스크로 터덜터덜 내려간다.)


나: 망할 와이파이가 또 말썽이에요. 지금….

(순간, 안내 데스크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대여섯 명의 다른 사람들을 보고 하던 말을 멈춘다.)


안내 데스크 직원: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아캄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시절처럼 한껏 인내심을 발휘해가며) 다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아요. 건물 전체에 와이파이가 안 잡혀서 문제인 거죠? 기술자들이 정비하러 갔으니까 금방 해결될 거예요. *아캄 수용소: 배트맨에 나오는 정신이상범죄자 치료감호소


남자 1: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고요! 데드라인이 걸려 있는 문젠데!


남자 2: 시스템을 업데이트하느라 문서를 전송하던 중이었는데 어쩌고저쩌고―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외계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 3: 여기 사무실 임대 계약을 맺을 때는 인터넷 접속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장담하더니― (화상 회의에 차질이 빚어져서 서유럽 시장이 상당 부분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둥 앞뒤가 안 맞는 장광설이 이어진다.)


여자: 이번 주 들어서 벌써 세 번째잖아요― (그러면서 전 사업장이 ‘일시 정지’ 상태가 됐다는데, 어찌나 어마어마한 단어들을 동원하는지 누가 들으면 이 건물 지하에서 군수품 공장을 돌리는 줄 알겠다.)


(정적이 흐르고 안내 데스크 직원이 내 쪽을 돌아본다.)


안내 데스크 직원: (여전히 기적적으로 상냥한 말투를 유지하며) 선생님도 불편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나: 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서…


안내 데스크 직원: (구석구석 이해와 배려심이 넘치는 분위기를 풍기며) 정말 죄송합니다. 아주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던 중이셨나 봐요?


나: (헛기침을 하고) 넷플릭스로 《플래시》를 보고 있었어요.


(정적이 흐르고 남자 1, 남자 2, 남자 3, 여자, 안내 데스크 직원이 서로 흘끗거린다.)

나: (부적절한 대답을 했을 때는 입을 다물고 있기보다 더 밀어붙이는 편이 낫다는 신조의 소유자답게) 아내보다 진도가 반 시즌이나 늦단 말이에요! 집에 가면 볼 시간이 나질 않잖아요. 안 그래요? 뭐… 말하자면… 뭐랄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닐지는 몰라도 그래도…


(계속 정적이 흐른다. 나는 큰소리로 웃어보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는다. 나는 허공에 대고 드럼 치는 흉내를 내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나: (얼굴 여기저기를 긁적이며) 하지만 뭐, 휴대전화로 보면 돼요. 그러니까 저기요… 와이파이가 다시 잡히면 알려주세요…


(계속 정적이 흐른다.)


나: (예민해져서) 나는 책도 써요! 요즘은 쉬어서 그렇지… 하루 종일 《플래시》만 보는 건 아니란 말예요. 보다가 말다가 하는… 아내보다 진도가 반 시즌이나 늦거든요. 그래서…


(계속 정적이 흐른다.)


나: (오로지 와이파이 때문에 내려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려고) 커피 머신에 우유도 다 떨어졌던데.


(계속 정적이 흐른다.)


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건 내가 채울게요.


(계속 정적이 흐른다.)


나: (얼른 헤어지고 싶은 마음에) 그럼 나중에 또 얘기해요.


#걱정해줘서_고맙지만_이런_때_말고는_나의_사회생활에_아무런_문제가_없다.

프레드릭 배크만 Fredrik Backman 


30대 중반의 작가이자 블로거. 데뷔작이자 첫 장편소설인 『오베라는 남자』로 인기몰이. 인구 9백만의 스웨덴에서 84만 부 이상, 전 세계 28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미국 아마존 소설 분야 1위, 뉴욕타임스 종합 1위 기록. 40개 언어권에 판권이 수출되면서 2016년 영화로도 제작. 이후 출간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세계적인 작가로 등극. 신작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 최근 번역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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