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돌아다니는 게 미안한 일인가요?"
‘보조과학기술'(assistive technology)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신체의 일부가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이를 보조하는 기술을 말하죠. 기술이 인간의 삶을 돕는 한 방식입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게 가능하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수준에 오른 기술도 많은데요, 예컨대 각종 센서, 진동장치, GPS 등이 들어가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된 신발은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해줍니다. 제스처 인식 기술로 조작하는 반지 ‘핀’은 스마트폰을 보고 조작할 수 없는 사람을 돕습니다.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착용하는 외골격 형태의 보조기기도 있고, 손 떨림이나 파킨슨병으로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전자숟가락도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많이 보이는 전동휠체어에도 조금 더 진보한 기술이 적용된 것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휠체어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지만, 캐터필러 등을 적용해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고요.
이것을 보는 순간 나는
‘이건 또 얼마나 비쌀까?’
‘돈을 많이 벌어야 하겠구나..’ 란 생각이 든다.
더 나쁜 것은,
‘이런 기술이 있으니 미래에는
굳이 엘리베이터 설치 안해도 되겠다’
는 식의 생각을
아주 쉽게 하게 만든다는 거다.
보편적 이동권이 인간의 기본 권리가 아닌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되어 버린다.
'장애를 무의미하게', '협동조합' 무의
무의는 장애 여행 관련된 콘텐츠를 만드는 소설 벤처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미국 20여개 주를 누비며 도시의 접근성을 살피는 ’20 states on Wheels’ 프로젝트로 안내책자를 낸 김건호 씨가 시작한 스타트업입니다. 장애인 여행의 편견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2015년 말에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계기로 무의에 합류했습니다. 홍윤희 이사장의 자녀인 초등학교 4학년 지민이는 척수에 생긴 소아암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 지인인 김민태 EBS PD와 술을 마시다 내뱉은 푸념은 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는 프로젝트로 구체화됐습니다. 후원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모인 후원금은 지민이의 여정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동영상 촬영 비용으로 쓰였습니다. 이후 무의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이 모여서 서울의 10여곳 지역을 다니면서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우리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 콜택시는 ‘특별교통수단’입니다. 세금으로 운영됩니다. 시혜적인 관점에서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라 실제 사용에는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홍윤희 이사장은 “정작 필요할 때 못 쓴다”라며 “2시간 넘게 기다려도 안 올 때가 많아서, 일이 있으면 4시간 전에 부르기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편한 것도 아닙니다. 운영 주체가 지자체라서 관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버스도 아니고 택시를 탔는데 중간에 갈아타야 하고요.
장애인의 이동은 불편합니다. 이 이동을 돕기 위해 생기는 ‘특별’하거나 ‘시혜적’인 조치는 사용자 경험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윤희 이사장은 이 떨어지는 정보 접근성을 해결하기 위해 지하철 환승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리프트는 최대한 피하는 환승지도
서울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는 휠체어나 유모차로도 지하철을 비교적 쉽게 갈아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 중 특히 환승이 어려운 곳 14개 역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이어 기아자동차 직원들의 자원봉사로 4개 역 환승경로를 추가 제작했습니다. 계원예술대학교 김남형 교수와 4명의 학생이 참여해 UX,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에 따라 제작했습니다. 직접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사용자의 입장에서 파악했습니다.
휠체어 리프트를 최대한 덜 타는 것도 고려했습니다. 홍윤희 이사장은 “리프트는 되게 창피한 수단”이라며 “모욕감까진 아니지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수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리프트를 타면 안내음이 납니다. 타고 올라가는 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립니다. 무의에서 제작한 환승지도는 이러한 리프트를 최대한 덜 타게 만들어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인간답게 갈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이 지도는 앱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웹페이지로 구성된 것도 아닙니다. 모바일에서 보기 좋은 세로로 긴 층별 안내 이미지가 몇 장 있을 뿐입니다. 대단한 하이테크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해서죠.
무의가 제작한 맵은 실질적인 효용 이상의 가치를 전합니다. 홍윤희 이사장은 “장애인분들에게 격려 메시지를 받았다”라며 “이 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게 무척 뿌듯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홍윤희 이사장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장애인들이 조금 더 바깥에서 돌아다니게 하고자 합니다. 부딪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섭니다.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약 250만명입니다. 임산부, 유아를 동반한 승객, 일시적으로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잠재수요는 더 높습니다. 홍윤희 이사는 “모두를 위한 기술이나 접근 가능한 시설이 특정한 사람을 위한 특혜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