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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7.05.18. 작성

노인은 햄버거 주문이 버겁다

무인 주문 기기의 확산이 가져오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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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주문 기기로 햄버거를 구매하는 노인

마우스를 화면에 올리라는 말에 허공 위로 마우스를 집어든다. 노인은 직원의 도움 없이는 인터넷으로 실업급여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야기다. 인터넷 난독증을 호소하는 주인공에게 관공서 직원은 난독증 안내 서비스를 이용하라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안내해준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소외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다. 영화관 바깥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보사회가 고도화될 수록 정보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불편은 사회 소외계층에게 가중된다. 최근 정보격차 문제는 먹거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 파고든 무인화 열풍


“카드결제는 앞쪽 무인포스기 이용해주세요.”


계산대를 향하던 사람들이 이내 발길을 돌린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문 앞에 설치된 2대의 ‘무인포스’로 향한다.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손님들은 무인포스에 내장된 터치스크린 위로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종각역 4번 출구 앞 롯데리아의 풍경이다. 기존 계산대에는 ‘지금은 무인POS 운영시간입니다’, ‘무인포스기 이용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점원은 계속해서 무인포스 이용을 권유했고 사람들은 말없이 햄버거를 주문했다.


무인포스는 고객이 직접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단말기다. ‘키오스크’라고도 불린다. 롯데리아는 2014년 4월부터 무인포스를 도입해 현재 1300여개 매장 중 460개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무인포스는 매출 확대 목적으로 도입됐다. 매장 입장에서는 주문할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나 기다리던 손님들의 주문율이 높아진다. 실제로 매출이 늘었다. 롯데리아 측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매출 중 무인포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10-15% 정도라고 밝혔다.

롯데리아에서 운영하는 '무인포스'

롯데리아 관계자는 “매장 입장에서 보면 큰 수치”라며 “무인포스를 통한 매출은 기존 매출에 더해진 부가 매출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롯데리아 외에도 많은 패스트푸드점들이 무인 주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2015년부터 ‘미래형 매장’을 내세우며 ‘시그니처버거’ 출시와 함께 무인포스를 들여왔다. 연내 250개까지 무인포스 운영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버거킹도 2016년부터 키오스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계속 설치를 늘려갈 예정이다. 이처럼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무인포스를 들이는 이유는 인건비 및 매장 운영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무인 주문은 없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무인포스의 편리함을 강조한다. 점심시간 등 바쁜 시간대에 기존 계산대와 병행해서 운영할 경우 분산효과로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올레 키오스크’가 2015년 미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5%가 줄을 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키오스크 서비스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12%는 점원과 마주하지 않아도 돼서 선호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무인포스가 제공하는 편리와 효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탑골공원(파고다공원)이 가까운 롯데리아 종각점은 노인 손님이 많다. 이들에게 무인포스는 ‘주문 장벽’이다. 매장에서 무인포스 이용을 독려하는 탓에 익숙지 않은 터치스크린을 이리저리 조작해보지만, 최소 9번의 터치를 거쳐야 결제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구성된 UI·UX는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다. 첫 페이지에 표시되지 않은 메뉴를 고르거나 선택 실수라도 하면 터치 횟수는 배로 늘어난다. 올해로 칠순을 맞은 신종식 씨는 한참을 무인포스 앞에서 서성이다 결국 매장 직원을 찾았다.

무인포스’ 이용을 권장하는 팻말

“몇 번 하다가 잘 안 돼가지고 저기(계산대) 가서 했어요. 몇 번 에러가 나서 잘 안 되겠더라고.” 신종식 씨는 노인들에게 무인 주문 시스템이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이가 먹으면 판단력이 젊었을 때하고 달라.” 그는 무인포스 사용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했다. 목적지를 찾아가기까지 수많은 판단이 필요한데 판단력과 학습능력이 저하되면서 길을 잘못 들게 된다는 얘기다. “화면이 착착착 바뀌니까 불안한 감이 있고, 이것저것 눌러가지고 결제를 해야 하는데 지금 누른 게 맞나 안 맞나 잘 모르겠어.”


롯데리아 측은 노년층의 무인포스 이용 불편에 대해 “노인 고객분들이 오면 대면 주문을 받는다”라며 “불편함이 있으면 직원이 해결해주고 있다”라고 답했다. 또 무인포스의 직원 호출기능을 소개하며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직원이 매대로 안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 이용률이 낮은 시간대에 무인포스 이용을 권하기는 하지만, 대면 주문을 아예 안 받는 것은 아니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계산대에 사람이 보이지 않고 무인포스를 이용하라는 팻말만 놓여있으면 대면 주문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무인포스 사용을 유도하는 문구와 말들은 디지털 기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을 소외시킨다.

출처 : 노인들에게 무인포스를 통한 햄버거 주문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인화, 피할 수 없다면 배려해라


노인의 정보격차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6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전체 국민의 54% 수준에 불과하다. 70대 이상의 경우 28.7% 수준으로 심각한 정보격차를 나타냈다. 만 55세 이상 장·노년층의 인터넷 이용률은 59.3%로 일반 국민의 인터넷 이용률 88.3%에 비해 29%p 낮았다. 스마트폰은 57.2%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의 스마트폰 보유율 85%보다 27.8%p 낮은 수준이다.

연령별 디지털정보화 수준

출처 : 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 ‘2016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하지만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은 부족하다고 지적된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은 ‘국가정보화기본법’으로 통폐합된다. 정보격차에 대한 단독법 유무는 해당 정부의 정보격차 해소에 대한 의지와 관심 정도를 나타낸다. 지난해 한국지역정보화학회지 12월호에 실린 ‘국내 정보격차연구 동향’ 논문에 따르면 정보격차 해소방안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초·중반에 집중되고 2000년대 후반부터 빈도수가 낮아진다. 이 논문은 “정보격차에 대한 국가적 관심의 저조는 정보격차해소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자의 참여 저조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인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무인 주문 시스템 도입은 세계적 추세다. 맥도날드를 비롯해 웬디, 칼스주니어, 하디스 등 미국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키오스크를 적극적으로 들이고 있다. 비용절감을 비롯해 매장운영에 있어서 무인 주문이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길게 줄을 서지 않고 차분히 메뉴를 선택할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디지털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정보 소외계층에게는 도리어 불편만 가중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정보격차 해소에 대한 관심과 매장 차원의 배려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롯데리아 종각점에서 만난 신종식 씨는 무인화 추세에 대해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노인들도 여러 번 해보면 할 수 있다”라며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 텐데 ‘상식적’으로 어렵지 않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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