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기 판타지, '픽사'를 만나다

조회수 2017. 4. 28. 15: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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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과 도란도란~❤️
토이스토리 우디와 버즈 스케치

어린이의 상상력은 어른들의 범주를 초월한다. 어쩌면 지금 논의 중인 대부분의 미래 산업엔 종사자의 어릴 적 상상이 한몫했을 것이다. 상상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지점은 생명력 부여에 있다. 


‘나는 돌멩이한테 이름을 붙여주곤 했어.’ 


언젠가 어린 시절을 두고 이야기하던 자리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종종 길거리에서 발견한 예쁜 돌멩이를 주워다가 바지에 대충 쓱쓱 닦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이름을 붙이고, 성격을 부여하고, 같이 잠들었다. 그런데 이런 행위에 공감하는 이가 생각보다 많았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냐며 킬킬 웃었다. 인형, 베개, 반지 등. 다들 상상을 통해 허구의 무언가에 애정을 쏟았던 기억이 있었다. 딱히 애정결핍 때문은 아니다. 아이들의 감정은 그만큼 순수하고, 무형의 무언가를 향해야 할 만큼 폭발적이다.

출처: flickr.CC BY.nikolay semenov
돌멩이에 이름을 붙이고 친구가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향수는 이런 것들 때문에 생겼다. 어렸을 적 내가 최초로 쏟아부었던 애정에 대한 기억. 그래서 키덜트 문화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유년시절 겪었던 애정 관계에는 쉽게 무형의 존재들이 등장했다. 만화 캐릭터가 책에 나와도, TV 화면에 있어도, 엄마가 사준 장난감으로 나타나도 우리는 그들을 친구로 여기고 사랑했다. 그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빈도가 높아진 것이 키덜트 문화가 된 것이라면 그게 맞다. ‘You’ve Got a Friend in me’. 영화 ‘토이스토리’의 주제곡이 전 세계 사람들을 울렸던 이유에도 이런 감정들이 기반했다.

출처: flickr.CC BY.Jacob Davies
미국 캘리포니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글로벌한 범위로 향수를 입혔다. 1995년 개봉한 ‘토이스토리’는 당시 아이들에게 단순한 만화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내 방의 장난감들과 상상력으로 나누었던 애정을 현실처럼 만들어준 것, 나만 알고 있던 비밀스러운 관계가 사실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걸 깨닫게 도와준 선물과도 같았다. 그 덕에 15년이 지난 2010년, ‘토이스토리3’의 개봉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예술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 존 라세터(픽사-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우리의 상상력이 예술이 되기까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그 중심에 최첨단 기술을 내세웠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놀랍게도 픽사는 본래 ‘픽사 주식회사’라는 컴퓨터 하드웨어 회사로 출발했다. 주로 고성능 그래픽 디자인용 컴퓨터인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판매했다. 픽사(PIXAR)의 회사명이 화소를 뜻하는 ‘Pixel’과 예술을 뜻하는 ‘Art’를 조합한 것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회사의 본래 역할을 알 수 있다.


현재의 픽사를 있게 한 애니메이션 분야는 내부의 몇몇 기술 인력들로 구성된 작은 애니메이션 팀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기껏해야 홍보용 단편영화를 몇 편 제작했을 뿐이다. 존 래스터가 합류해 있었던 이 팀은 투자자들로부터 그다지 신뢰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픽사는 온전히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만 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만 가지고 달려나갔다.

출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새드니스 캐릭터 스케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어찌됐든 픽사는 1995년에 개봉된 ‘토이스토리’의 흥행에 성공했다. 이를 시작으로 ‘벅스라이프’, ‘토이스토리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카’, ‘라따뚜이’, ‘월E’, ‘업’, ‘토이스토리3’, ‘인사이드 아웃’까지(취향이 사람마다 달라 대표작을 최대한 다 적었다) 계속해서 큰 성공을 터트렸다. 현재 픽사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픽사에서 한 편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되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투자된다. 수년간의 시간을 걸쳐 수백여명의 아티스트들이 투입되고, 수천여대의 컴퓨터가 사용된다.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일은 그만큼 힘들다. 더욱 놀라운 점은, 각자의 머릿속에서나 존재할 세상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간단한 시놉시스와 캐릭터 스케치로 시작해 마무리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치는 과정을 통해 픽사의 아티스트들은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영화 속 세계를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 이렇게 상상력은 점점 형체를 띄게 된다. 디지털과 예술의 결합. 그 과정을 아래 도구를 통해 소개한다.

출처: 영화 ‘토이스토리 3’ 장면

1. 각본과 스토리보드

“우리의 영화들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핵심에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연필 끝과 종이 위에서 탄생한다.” – 리 언크리치(감독 에디터)모든 스토리의 시작은 종이 위에서 나온다. 픽사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픽사의 스토리는 아티스트들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던 백지 위에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생명이 등장한다. 무슨 일이 있을 것이고, 누가 등장하고, 이들이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에 대해서 꽤 구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정해진다. 이에 따라 스토리 아티스트들은 각본상에 나타난 대화와 동작들을 시퀀스별로 드로잉해낸다.

2. 디지털 스토리보드

사실상 컴퓨터가 투입되는 시점이다. 디지털 스토리보드 과정에서는 ‘릴’ 또는 ‘애니매틱스’라고 불리는 비디오 형식의 시퀀스 모음이 진행된다. 이 단계에서 애니메이터들은 화면 속에 감정을 입힐 방법을 고민한다. 화면을 비추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정하고, 어떤 흐름에 따라 각 장면을 이어나갈지를 결정한다. 다양한 버전의 스토리 릴 중에 감독의 연출 방향에 가장 적합한 스토리릴이 최종적으로 선택된다.
출처: 픽사
디지털 스토리 보드를 위한 스케치 화면

3. 세트 디자인과 컬러 스크립트

스토리 속 세계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단계다. 픽사의 아티스트들은 애니메이션 속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축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한다. ‘벅스라이프’를 예로 들면, 당시 픽사는 일명 ‘곤충 카메라’를 제작해, 실제 곤충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영화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퀀스 별로 색채 콘셉트를 정하는 컬러스크립트 등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고려하고 나면 최종 세트 디자인이 결정된다.

4. 캐릭터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이 스케치되고 나면 이를 바탕으로 모형 조각가들이 캐릭터를 3D 모형으로 제작한다. 모형 조각의 본을 떠서 틀을 만들고, 그 틀을 바탕으로 다양한 합성 재료를 이용해 최종적으로 ‘캐릭터 모델’을 만들어 낸다. 3D 모형 제작자들은 이 모형 조각을 바탕으로 캐릭터들이 어떤 움직임을 생성해낼지를 연구한다. 움직임마다 적용되는 과학 원리는 디지털 작업 때 반영됐다.
출처: 픽사
모형 조각가들이 캐릭터의 3D 모형을 섬세하게 만든다

5. 대화의 녹음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목소리를 입히는 작업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직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진행된다. 각본에 따라 성우들이 목소리 작업을 마치면 그 후 애니메이터들이 캐릭터의 움직임 및 감정과 어우러지도록 작업을 한다.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경우 우디 역 목소리의 톰 행크스 등 한 번 맡은 역할을 시즌 1,2,3에 걸쳐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
출처: 픽사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더빙 장면

6. 모델링

레이아웃 팀이 가상의 세트 안에서 디지털 캐릭터가 움직여야 할 화면의 구도를 정한다. 애니메이션 블로킹 작업을 통해 미리 녹음된 대화를 듣고 상상되는 아이디어와 실제 동작을 연결시켜 캐릭터의 모양에 변형을 주고 움직임을 입힌다. 다음엔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수백여 가지 복잡한 변화나 섬세한 감정 표현을 세련되게 다듬는다. 컴퓨터 애니메이터들은 캐릭터의 행동 표현을 다양화하기 위해 수백여 가지 컴퓨터 기술을 사용했다.
출처: 픽사
캐릭터의 동작에 실제 인간 동작을 대입해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하게 한다

7. 리깅

애니메이션에서 발생하는 변수를 조정하는 단계다. 3D 모형 제작자들은 미술팀에서 제공한 드로잉, 모델 패킷, 모형 조각들을 바탕으로 컴퓨터를 이용해 캐릭터와 세트를 만들다. 디지털 모형 제작자들은 캐릭터 몸의 각 부분이 어디에서 어떻게 굽혀지고 회전하는지 등 캐릭터의 움직임과 관련된 세부 사항들을 결정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음영 표현 및 채색, 털의 표현, 조명 등이 조정된다. 특히 털의 표현 부분에는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털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컴퓨터 공학자가 개발한 수학 방정식이 동원되기도 한다.
출처: 픽사
캐릭터에 관한 각종 섬세한 작업들이 최첨단 컴퓨터 기술을 통해 이뤄진다

8. 렌더링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영화관에서 개봉되기 위해 2D 이미지로 압축되는 과정이다. 그동안 모아둔 다층적인 3D 세계를 컴퓨터를 이용해 이미지를 압축하는 과정을 ‘렌더링’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는 ‘렌더 팜’이라고 하는 여러 대의 컴퓨터를 이용해 클러스터 배열을 계산하는 방식이 이루어진다. 초당 24장의 프레임이 넘어가는 90분짜리 영화의 경우, 129,600개의 프레임이 모여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탄생하는 것이다.
출처: 픽사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기술자들의 확인 작업이 계속된다

9. 음악·음향 및 최종 사운드 믹스

소리 없는 영화는, 색채 없는 영화보다 더 색이 없게 느껴진다. 캐릭터의 감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음악 테마가 필요하다. 니모가 물속을 헤엄치고, 벅스라이프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컴퓨터로 만들어낸 세계관을 진짜처럼 만들어낸다. 음악, 음향 효과, 대화 등 모든 소리는 한 데에 어우러져 균형을 잡아간다. 사운드 믹스를 통해 각 시퀀스의 월드는 하나가 된다.

10. 완성

단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단어와 글로 살을 붙이고 드로잉, 모형 조각, 컴퓨터 모델, 동작, 사운드, 질감, 음악, 조명 등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픽사 영화가 완성된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서로 협업하고, 예술과 과학 기술이 결합하는 창의적인 과정을 거쳤다.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과정. 이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눈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서울디자인재단, 지엔씨미디어와 함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 전시관에서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픽사의 아티스트들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손수 빚어낸 스케치, 그림, 스토리보드, 컬러 스트립트, 캐릭터 모형 조각 등 약 5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존 라세터는 2019년에 ‘토이스토리4’를 개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존 라세터는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월드’를 꼽았다.  2019년이 오기 전까지 픽사 애니메이션에 대한 ‘덕심’을 숨기기 힘들다면, 이번 전시회를 찾아 다음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세계관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향수를 마구 자극하는 기념품 매장에서 과소비를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토이스토리3’ 마지막 장면을 그린 포스터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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